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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도에의 의무
    Contribution 2019.02.26 11:11




    안대웅


    *지난 시간, 두 번에 걸쳐 연재된 안대웅 미술평론가의 '헬조선의 탄생부터 《굿-즈》까지'를 최종 수정해 하나의 글로 다시 게재합니다.



    ▲ <멍때리기 대회>[각주:1]



        2001년 박찬국은 여주의 90년대 폐교에서 지역 학교 교사와 문제아, 장애 아동, 보육원 아동과 함께 예술과 놀이를 접목한 레컬쳐 le-culture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이를 밀머리미술학교라고 이름 붙였다.[각주:2] 2007년 백기영은 원곡동에 거주하는 예술가와 지역 거주민의 참여를 독려하는 장기대회 ‹일수불퇴›를 열었는데, 경기자가 진지하게 경기를 하는 가운데, 김정표가 제작한 이태원에서 마주칠 법한 현란한 장기 모양의 LED 인스톨레이션이 미술비평 언어로 무장하다시피 한 평론가 김종길의 장기 해설과 어우러져 기묘하게 즐거운 상황을 연출했다.

        김월식은 2011년 인계시장 프로젝트에서 소위 “인계동 박스”라고 불렸던 안마시술소 건물에 ‘무늬만’ 예술가와 함께 들어가, 폐자재로 예술적 생활용품을 만들어 지역 내에 순환시키는 일을 했다. 웁쓰양은 2014년 페스티벌봄에 기해 ‹멍때리기 대회›란 이름의 다소 악취미적 대중 경연대회를 열어, 멍 때리려고 안간 힘을 자진해서 쓰는 웃픈 커뮤니티를 한 순간 조직했다. 송지은은 2015년 ‹프로젝트 런;어웨이›라는 작업에서 이주민과 함께 옷 제작 워크샵을 한 후, 일상 거리에 레드 카페트를 깔고 그 위에 그들이 만든 옷을 입은 모델을 올려 거리 패션쇼를 열었다.   

        열거한 모든 예술은 미술관과 갤러리 전시를 염두에 두는 예술의 형태에 비해, 비교적 최근에, 아마도 본격적으로는 빨라도 한국에선 2000년대 중반쯤 이후 점진적으로 증가했다고 봐야한다. 많은 부분에서 스튜디오보다 실제 현장에서 작업과 전시가 거의 동시에 이뤄지며(이런 이유로 혹자는 포스트-스튜디오 미술이라고 이를 부른다), 거기서 (지역주민이든, 커뮤니티든, 공동체든, 이주민이든, 문제아든 뭐라고 부르든) 참여자의 존재와 협력은 작업이 실행되고 실천되기 위한 핵심 전제 조건이며, 집단적 창조성을 드넓게 포용하고 긍정하는 듯 보이는데, 예의 마르크스주의적 수사를 거의 함축하지 않으면서도 그렇게 한다. 

        과정이 중시되고 일정 이상의 시간이 장기적으로 투여된다는 이유로 예술 작업보다는 프로젝트란 꼬리표 달기를 선호하기도 한다. 이런 사회-관계 지향성을 가지는 예술의 형태를 우리는 몇 가지 용어로 불러왔다. 그것은 커뮤니티 아트 community-based art, 뉴장르공공미술, 더욱 최근에는 사회연계미술 socially engaged art이나 사회적실천 social practice, 관계미술 relational art, 대화미술 dialogic art, 참여미술 participatory art 등이다.[각주:3] 각 용어가 조금씩 다른 문맥을 가지고 있기도 하면서도, 이중에서 한국에서 현재 그나마 대접 받고 있는 비평 용어를 꼽으라고 하면 커뮤니티 아트가 유력하다. 뉴장르공공미술은 새로운 장르의 공공미술이라고 종종 번역되는데, 언어 효율성과 거리가 멀어 입에 잘 달라붙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애초에 공공장소에 설치된 모더니즘 조각을 지칭했던 공공미술과 차별화된 계보를 표현하는 용어가 필요했던 수잔 레이시의 절박함이 한국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는 듯하다. (그래서 한국의 미술현장에서 이 용어를 사용하는 작가를 만나보기는 쉽지 않다.) 사회연계미술 socially engaged art은 교육자이자 작가인 파블로 엘게라의 용어로, 그에 따르면 “사회연계미술을 특징짓는 것은 존재를 위한 필수 요소로서 사회적 교류에 대한 의존성이다.”[각주:4] 


        이를 소개하는 그가 쓴 대표적인 책이 이미 국문으로 번역되어 있지만 내가 비평 용어로서 모호하거나 사용성이 없다고 생각했던 지점 역시 번역으로 인한 오차에서 발생하는데, 여기서 사회연계미술은 사회참여예술이라고 번역된다. 이 차이는 내가 생각하기에 생각보다 크다. 한국에서 참여는 사르트르 같은 사람의 앙가주망engagement, 즉 지식인의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주로 의미하며, 때때로 미술에서는 이따금씩 민중미술의 현실 정치적 지향성과도 포개지는 것 같다. 이를 가장 도발적인 사회연계미술의 한 모습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엘게라가 이 용어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것이 아니다.

        사회연계미술이라는 용어는 무엇보다 그 자체로서 예술과 사회를 접목시킨다는 형식적 아이디어 이상을 표현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떠올릴 수 있는 용어로 관계미술과 미학이 있다. 이는 각종 대형 미술 비엔날레의 주류 담론이었으므로 공히 한국 미술계에서도 공부하고 넘어가야 하는 자료였지만, 정말로 유행 이상도 이하도 되지 못했다. 나는 한국의 작가가 스스로 관계미술을 한다고 선언한 경우를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으며, 이 이론을 소개하는 것 이상으로 지지하는 평론가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앞서 열거한 예술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우리는 커뮤니티 아트라는 말의 용례를 바로 살펴보면 된다. 커뮤니티 예술가는 사회에 개입한다. 이때 사회를 좁혀 들어가 보면, 대개 지역이나 공동체이며 그중에서도 주류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과 지역이 대상이 된다. 그래서 커뮤니티 예술가는 종종 주어진 시스템 안에서 쓰러져 가는 사회 (혹은 마을) 공동체를 창조적으로, 혹은 예술적으로 재건, 혹은 재생하는 도덕적 입장에 서게 되며, 그들에 대한 문화적 대변자 representatives로서, 혹은 지역 공동체에서 끝내는 사라져야 하는 예술가로서, 지역사회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그들에 대한 친화력을 만들었는지가, 그러니까 그들과 얼마만큼 소통하고 참여를 이끌어냈는지가,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들의 삶이 어떻게 (자발적으로, 혹은 창조적으로, 때때론 경제적으로) 변화하는지가, 때때론 커뮤니티 아트의 성과를 판단하는 훌륭한 지표가 된다.

        이런 견지에서 파악된 커뮤니티 아트는 예술적 질보다 공중의 이익 public interests을 추구하고 예술가가 참여자가 되기를, 혹은 반대로, 하지만 같은 의미로 참여자가 예술가가 되기를, 짧게든 길게든 그 역할을 자임하기를 독려한다. 짧게 이야기하면, 커뮤니티 아트는 예술과 사회를 끊임없이 화해시키려고 한다.

        이것이 삶 속의 예술을 실천하려 애쓰는 커뮤니티 아트란 용어의 대략적인 쓰임새이지만, 비평 언어로서 커뮤니티 아트는 부정에 의해 정의되는 경향이 더 자주 있어 왔다. 그리고 여기엔 한 차원이 더해져야 하는데, 바로 위대한 공공미술 지원제도의 존재다. 2006년이 넘어가면 한국미술씬에 실로 ‘공공미술의 해’가 당도한다. 2005년 『건축물 미술 장식 제도의 공공성 강화 방안』 (문화관광부, 2005) 이후, 2006년 『공공미술이 도시를 바꾼다』 (문화관광부, 2006)는 향후 문화예술 정책에서 예술의 공공성 제고를 위한 공공 미술 제도 정책의 방향을 보여준다. 이 보고서는 공공 미술의 역할을 통해서 중앙정부와 지방 자치체가 도시/지역 공간 환경을 바꾸고, 시각예술을 통한 인간적인 도시 만들기 작업으로 커뮤니티 아트를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지역재생’이란 모토 아래 광범위한 프로젝트 지원금이 풀렸으며, 잘 알다시피 ‹도시갤러리›를 비롯해 ‹아트인시티› ‹APAP› 등의 프로젝트가 유토피아적 예산을 등에 업고 과감하게 정부와 지자체 단위로 시행됐다. (하지만 공공미술을 염두에 놓지 않고 작품을 평가하더라도, 혹은 심지어 그 반대여도, 우수작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이때 홍경한 등 몇몇 평론가는 미국의 공공미술의 “발전사”를 거론하며, 저급 단계인 공공벽화나 공공조각으로 혈세를 낭비할 것이 아니라 가장 진정성 있고 진보한 형태의 공공미술, 즉 뉴장르공공미술 혹은 커뮤니티 아트로 한시 바삐 이동해야한다는 식으로 주장하곤 했다. 홍경한은 공공미술을 발전사로 보는 대표적인 평론가다. 그가 편집장으로 일했던 «퍼블릭아트»의 주요 기사를 참고할 것. 하지만 나는 하나의 정설처럼 되어 버린 장소 속의 미술, 장소로서의 미술, 뉴장르공공미술이라는 서구 공공미술의 장르적 발전 서사를 지지하지 않는다. 이것은 NEA 등의 지원제도의 변천과 궤를 함께 할 뿐인 제도 편의상의 구분이기 때문이다.

     즉, 공교롭게도 이 공공미술이란 장르, 혹은 제도가 그것을 향유해야 하는 실제 거주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면서 (원래 뉴장르공공미술이란 용어가 기존 공공미술과 자신을 장르적으로 구분하기 위한 의도를 가졌던 것과는 달리) 그것을, 그 [#]제도를 개량[#]해야 한다는 식의 의미로  커뮤니티 아트라는 대항비평용어가 더욱 많이 사용됐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까 커뮤니티 아트를 말하는 참여와 소통의 질의 실체는 문화행정에 대한 지역 공동체의 (불)만족 및 평론가의 손쉬운 반제도적 포즈잡기 posturing와 절대 무관하지 않으며, 사실 역설적인 건, 제도적으로 시행된 (공공미술을 포함한) 문화정책에 대한 대중의 반감과 민원을 잠재우기 위한 일종의 제도적 솔루션으로 제시됐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그 결과 커뮤니티 아트는 물리적 폐허를 만들지 않는다는 점에서(심리적인 폐허는 종종 만들지만), 그럼에도 소외된 지역 공동체가 문화 경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계기를 만들고, 나아가 지역 공동체를 보존하거나 재생시키려고 애쓴다는 점에서 몹시 ‘착한미술’로 받아들여졌다. (혹은 그렇게 강요된다.) 커뮤니티 아트를 착한미술로 보는 관점은 정부나 기초자치단체에서 두드러지는데,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발간한 「커뮤니티 아트 진흥 방안 연구」 (2007) 같은 논문에서 적나라케 드러난다. 그 논리 구조는 대체로 미적인 것의 ‘유용성’을, 그러니까 얼마나 예술이 [#]이타적[#]이었는지를 성과의 지표로 따진다. (그리고 이것은 물론, 내가 처음에 정의한 커뮤니티 아트가 가져다주는 [#]효과[#]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런 비평적 견지는 어쩌면 아주, 오래 전에, 공공미술의 제도가 완벽히 숙지한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날 정부나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공공미술 지원사업 공모의 선정자는 대다수가 커뮤니티 아트 예술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경기문화재단이 있다. 경기문화재단은 언제나 커뮤니티 아트의 든든한 후원자였으며, 그 누구보다도 발 빠르게 그것에 관심을 가지고 담론화하려고 애썼다. 경기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안양의 스톤앤워터와 안산의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 의정부의 문화살롱 공, 간접적으론 (경기문화재단의 수혜를 집중적으로 받았던 김월식의) 수원의 인계시장 레지던시 등에 이르기까지 서울의 미술씬과 대별되는 수많은 지역 거점이 수립됐으며, 이 공간은 커뮤니티 아트의 산파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핵심 인물로는 과거 라원식이란 필명을 썼던 80년대 두렁의 비평가이자, 경기문화재단의 문예지원정책을 맡았던 양원모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듯하다. 그에 의해 많은 공동체 지향 예술이 부상했으며, 그가 주도해 발간한 『커뮤니티와 아트』 (경기문화재단, 2011)는 여전히 아직까지 한국에서 발간한 커뮤니티 아트 관련 도서 목록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말이 나온 김에 여기서 잠깐 두렁과 커뮤니티 아트와의 관계를 짚고 넘어가 보자. 1970년대 탈춤과 마당극 동인으로 시작한 두렁은 서구 모더니즘을 차용한 미술 형식이 한국의 현실을 온전히 담을 수 없다는 인식 하에 ‘새로운 미술 운동’을 개시한다. 두렁은 미술의 건강성을 회복하고 민주화하는 것의 핵심이 미술 수요의 폭을 대중에게 확대하는 것이라기보다, 그들 스스로 자기표현의 욕구를 자극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각주:5] 

        다른 동인보다 훨씬 더, 두렁은 민속문화와 노동현실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민중주체성을 활동의 핵심 가치로 두며, 공동벽화와 판화, 굿, 미술교육 등 집단 창작과 수용에 용이한, 미술과 사회적 행동주의의 경계가 모호한 형태의 활동을 통해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80년대 그 유명한 걸개그림도 이들로부터 시발했다.) 이대범은 이런 예술가 상을 “문화협동자로서의 예술가”라고 부르며 “민중을 계몽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들에게 새로운 미술형식의 토대를 제공하고 그들이 주체자로서 발언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라고 논했다.[각주:6] 

        이렇게 보면 두렁의 문화협동자로서의 예술가 모델이 커뮤니티 아트 예술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관객(민중)을 더욱 능동적인 참여자로 활성화하려는 욕망은 지배 이데올로기로 인한 인간 소외 상태를 해방하려는 충동과도 같다. 그럼에도 두렁의 미학에 민족주의적 마르크스주의 경향성이 짙게 깔려 있는 반면, 커뮤니티 아트는 그렇지 않다.[각주:7] 

       

    ▲ 두렁, 산 그림, 1983, 표지 이미지 ⓒ 두렁


        김종길은 커뮤니티 아트를 두렁 등의 공동체미술와의 연속선상에서 보는 대표적인 평론가다. 나는 여기에 절반만 동의할 수 있는데, 이유는 커뮤니티 아트가 상기한 것처럼 저항적 민족주의 담론에 구애받지 않으며, 정치운동과 자신의 예술을 직접적으로 관련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동의할 수 있는 점은 커뮤니티 아트를 공공미술이 아니라 두렁 등 집단 창작 활동의 계보로 보는 시각이다. 

        따라서 행동주의적 방법을 공유한다고 하더라도, 커뮤니티 아트에게 현실 정치의 문제가 최우선의 고려 대상일 수는 없으며, 외려 작고 소외된 문화적인 것을 의제화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런 상대적 부드러움이 정부와 지자체, 문화재단에서 커뮤니티 아트를 선호하고 그것을 통해 지역공동체 재생을 도모하려고 예산을 쏟아 붓는 하나의 필요조건이 될 수는 있다.

        이들에게 정치적 경향성이 삭제된 두렁 모델은 민중이든 시민이든 지역주민이든 커뮤니티든 소외계층이든 뭐든 그런 명명된 (때로는 억지로 재현된) 집단의 삶에 [#]유용한[#] 미술로, 그리고 좀처럼 표시가 나지 않는 “순수예술”에 비해 지원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선량한’ 미술로 이해되지 않았다고 해도 거짓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유용성이란 참여자라기보다 작가나 나아가 지자체를 위한 유용성일지도 모르며, 그렇다면 문화협동자로서의 예술가는 심각한 윤리적 딜레마에 빠진다. 민중이나 커뮤니티는 예술가의 예술적 목적을 위한 매체인가? 혹은 더욱 상위 단계의 정부 지자체를 위한?)

        이렇게 커뮤니티 아트를 향한 요구에서 종종 관찰되는, 사회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그것을 개선하려고 애쓰는 선량한 예술가 모델은 시민단체의 그것과 몹시도 닮았는데, 네덜란드의 비평가 듀오 배보 Bavo는 이것을 간명하게 NGO 예술이라고 명명했다. 그들이 보기에 오늘날 예술은 삶의 현장에서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일상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실용주의적 참여는 그 숭고한 정신에도 불구하고 가장 심각하고 근본적인 비판을 우선순위 가장 아래에 두게 되는데, 왜냐하면 이들이 생각하기에 이런 종류의 비판은 당장 해결될 수 없기 때문에 무용하거나, 지금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구체적인 행동의 요구 자체가 그들의 행동 범위를 제약한다. 이들은 현실 민주주의 체제나 자본주의 경제 체제와 같은 지배 이데올로기와 똑바로 마주하고 비판하기 보다는 작은 해결책, 즉 “포켓 레볼루션”의 지속적인 생산에 더욱 관심이 있다. 하지만 배보가 썼듯이, 이런 NGO 예술가의 고귀한 의도는, 바로 그것 때문에 제도와 공모한다. 고장난 기계의 부품 수리공을 예술가가 의도치 않게 자처하는 것이다.[각주:8]

        이런 맥락에서 예술과 삶을 화해시킨다는 모토 아래에서 삶과 인간적 문제를 해결해나가고자 하는 커뮤니티 아트 예술가는 그야말로 NGO 예술가의 화신으로서,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는 지역의 문화적 해결사로서, 지역사회가 품고 있는 더욱 큰 문제를 봉합하는 역할을 자임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 결과 예술가와 지자체 및 문화재단 간의 공모 관계가 커뮤니티 아트라는 담론을 둘러싸고 종종 성립하며, 커뮤니티 아트가 극복하고자 했던 저자 모델이 다시 돌아오기도 하는데, 이것이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탈비판적 조건의 한 양태라고 볼 수 있을까? 조금 철지난 듯 보이는 글을 다시 한 번 상기해 보자. 할 포스터는 유명한 글 「민족지학자로서의 예술가」에서 커뮤니티 아트가 맞닥뜨린 이런 곤경을 이미 잘 포착했다. 포스터는 민족지학자로서의 모델이 새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발터 벤야민이 오래전에 제기했던 생산자로서의 작가라는 옛 모델과 유사한 문제, 즉 이데올로기의 후원자 역할을 반복한다고 의심한다.[각주:9] 

        다만 생산자 모델에서 경제적 관계에 입각해서 정의되는 주체는 이제 문화적 정체성에 의해 정의되는데, 여기서 마르크스주의의 계급과 자본주의적 착취라는 주제는 인종과 식민주의적 억압이라는 문제의 틀, 다시 말해 사회적인 것은 문화적인 것으로 대체되며, 이는 두렁에서 혁명의 주체로서의 민중이 커뮤니티 아트에서 문화적 정체성으로서의 공동체로 대체되는 과정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바다.[각주:10]

        아무튼 그럼에도 두 모델이 공유하는 문제도 있으며, 이것이 포스터가 지적하고 실로 나도 동감하는 바인데, 그것은 말하자면 “실재론적 가정”의 문제다.[각주:11] 

     생산자 모델이 “역사의 주체 개념을 계속 유지하고, 이 주체의 지위를 진리의 견지에서 정의하며, 이 진리의 위치를 타자성의 견지에서 결정”한다면, 마찬가지로 민족지학자 모델은 포스트식민지인이 “사회적으로 억압을 당하는 위치에 있고 정치적 전환을 일으킬 힘이 있으며 그리고/또는 물질적 생산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데올로기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쨌든 실재 속에, 즉 진리 속에 존재한다”고 간주한다는 것이다.[각주:12] 

     여기서 간명하게 두 모델은 모두 “타자는 참이다”라고 선포한다. 이것이 NGO 아트에서도 늘 벌어지는 일이다.

        포스터의 말처럼, 이렇게 타자를 초월적 외부에 위치시키는 것 자체가 어쩌면 투사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한편으로 원시주의적 환상을 자극하는데, 말하자면 백인중심주의가 동양을 보는 시각, 가장 멀고 오래된 것으로서 자신의 가장 오래된 과거, 문명의 원형상로 상상하는 방식은 명백히 인종차별적이며, 이는 사실 두렁이 민중을 상상하면서도 경계했던 위험, 하지만 결국에 매혹되고 말았던 실패의 지점이기도 하다.

        또한 포스터에 의하면, “원시적인 것은 우선 서양의 백인 주체에 의해서 문화사의 제1단계로 투사되고, 그 다음 개인사의 제1단계로 재흡수”되는데,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프로이트가 토템과 터부에서 가정했던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라고 하는 테제는 원시적인 것을 전오이디푸스적인 것과 등치시키며, 이는 커뮤니티 아트에서 진행되는 참여자와의 곧동 실천이 종종 유아적인 활동으로 만족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각주:13] 

     이 경우, 문제는 이렇게 나타난다.

        원시주의적 환상이 해체되지 않는 한, 타자가 무의식과 계속 융합되어 있는 한, 오늘날에도 타자성에 대한 탐구는 새로운 방식, 즉 (아마도 자아 속에 있는 타자성의 요소를 인지함으로써) 차이를 허용하며 심지어 그 진가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타자를 “자기화”하기보다는 오히려 낡은 방식, 즉 타자를 여전히 자아를 돋보이게 하는 금박 장식쯤으로 남겨두는 (그 과정에서 이 자아가 아무리 곤란을 겪는다 해도) 방식으로 자아를 “타자화”할 것이다.[각주:14] 

        이렇게 포스터는 유사 민족지학자의 정신승리를 향해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커뮤니티 아트의 타자를 향한 과잉동일시는 이렇게 그것이 재현의 수준에서 작동하게 될 타자화를 고려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다큐멘터리 인간극장에서 보여주는 것 같은 정신승리와 함께 더욱 심각한 타자의 소외를 불러일으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컨대 이주민을 때리고 추방하고 살해하는 비동일시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온전히 비판되어야 할 것일까? 이것이 커뮤니티 아트가 처한 곤경이다. 포스터는 이 곤경에 관해 이렇게 적고 있다.


        타자와의 환원적인 과잉동일시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더 나쁜 것은, 타자를 살해하는 것과 같은 비동일시다. 오늘날 좌우파의 문화정치학은 이러한 궁지에 빠져 있는 듯하다. 좌파는 상당한 정도로 희생자로서의 타자와 과잉동일시를 하고 있는데, 이는 타자를 고통의 위계질서 속에 가두며, 그로 인해서 비참한 자들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못하게 된다. 우파는 훨씬 더 상당한 정도로 타자와 비동일시를 하고 있는데, 타자는 희생자로서 이를 비난하지만, 우파는 이러한 비동일시를 이용해서 있지도 않은 공포와 혐오를 만들어내며 정치적 연대를 구축한다.[각주:15] 


        이것이 제주도의 예멘 난민을 포함해, 우리 사회에 산재되어 있는 각종 타자를 불현 듯 마주칠 때 겪는 딜레마이기도 하다. 포스터는 여기서 비판적 거리를 요청하는데, 말하자면, 이 자리는 과잉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어디쯤으로, 양자를 제대로 포착해내려는 일종의 비판적 사유-실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의심도 해 볼 필요가 있다.

        포스터의 말처럼, 그것이 과연 정말 나쁘지 않은 생각일까? 그것은 어쩌면, 모든 가능한 현실적인 실천을 막아내는 보수적 이데올로기 그 자체이지는 않을까? 만약 심지어 그 사유의 실천가가 스스로가 그런 후원자가 될 수 있다는 위험성까지 간파하고 있다면 그건 어쩌면 ‘끝판대장’이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커뮤니티 아트의 참여적 가치에 붙은 그림자를 하나 더 짧게 부기해 보도록 하자. 오늘날의 리비도는 많은 부분에서 실로 참여와 얽혀 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여기서 참여의 경험은 미디어 재현 기계와 연동되어 있으며 그 기계는 참여자를 단숨에 다수의 구경꾼 중 하나로 바꿔치기 하는 경험을 창출해 낸다. 쉽게도 소셜네트워킹서비스를 떠올려 볼 수 있다.

        소셜네트워킹서비스 플랫폼에서 참여자는 자원해서 스스로를 플랫폼에 전시하는 한편, 전시된 자신의 이미지를 한 명의 관중으로서 소비하는 것을 즐긴다. 이런 자발적 참여에 이어지는 전시화의 소비 경험을 창출하는 매커니즘을 마케팅 용어 “경험경제”로서 설명할 수도 있다. 여기선 상품 경제 이후 서비스 경제의 이행에 발맞춰, 자발적으로 수용할 수 있을만큼의 매혹적인 경험 수준을 소비자 대중에게 제시하고 독려함으로써 파생되는 이익을 취하는 것이 문제가 되며, 따라서 모든 사업은 [#]무대[#]이며 소비자가 기억할만한 연극을 만들어야 한다.[각주:16] 

        이런 반쪽짜리 참여적 경험성을 매력적으로 설계하는 사람을 오늘날 큐레이터라고 부른다. 전통적으로 미술 직업이었던 큐레이터 명칭은 오늘날 스티브 잡스에게도, 심지어 사용자 반응 시스템에게조차도 부여된다. 멜론이나 유튜브나 심지어 페이스북 등은 사용자의 취향을 읽어내고 컨텐츠를 구성해 제시함으로써 사용자 경험을 극대화하려고 노력한다. 미술계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어서, 예술가는 점점 더 큐레이터쉽을 발휘하며, 반대로 큐레이터는 예술가연 함으로써 전시 관람 경험을 (어떤 의도로든) 창의적으로 창출하려고 애쓴다.

        여기서 권미원이 언젠가 이야기했던 “행정의 미학” 이후 그 역전으로 인해 드러난 “미학의 행정” 패러다임을 다시 한 번 살펴보는 것은 유의미하다. 그에 따르면 예술가가 “창작 과정의 필수적인 부분으로서 큐레이터, 교육, 자료 수집 등 미술제도의 관리자적 기능을 채택함에 따라서 큐레이터, 교육자, 공공 프로그램 디렉터 등 이들 미술가로부터 힌트를 얻은 미술제도의 진짜 관리자들은 이제 스스로 작가와 유사한 권위를 가졌다고 여긴다.”[각주:17] 

        커뮤니티 아트를 둘러싼 담론에서도 이따금씩 이런 사실이 똑같이 벌어지고 있다. 언급했다시피 지자체와 그에 부속된 문화재단은 이제 “커뮤니티 아트”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으며, 문예지원정책을 때로는 정확히 그것의 효과가 발생하게끔 틀지어서 공모하거나 청탁하곤 한다. 이런 차원에서, (권미원이 지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일 수 있겠지만) 의미의 산출자로서의 저자 모델이 부지불식간에 다시 귀환한다. 진정한 무엇을 향해 떠나는 모험에 관한 다단계 아웃소싱 구조로 말이다.


     지원 제도는 예술가에게 진정한 커뮤니티를 조직하라는 임무를 위탁하며, 예술가는 또 그런 영광을 진정한 참여 주체에게로 넘기려고 한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여자의 진정성을 예술가가 착취하게 되며 또 예술가의 진정성은 지자체와 문화재단이 착취하며, 큰 틀에서 저자성은 지원 주체로 회귀하게 된다. 

     권미원은 저자의 귀환이 장소특정성이 담론적 장소로 이동하면서, 담론적 장소의 주제화의 필요성에 따라 요청된다고 본다. 쉽게 말해서 저자주의를 탈피하기 위한 전략으로서 장소지향적 미술이 개진되었다고 할지라도, 장소의 의미부여 자체는 예술가의 전문성에 기댈 수 밖에 없어진다는 것이다. 권미원은 이런 주장을 예술가에 중점을 두고 펼치고 있지만 커뮤니티 아트 담론의 경우 제도적 저자성이 예술가적 저자성을 압도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커뮤니티 아트의 비물질적 규모는 물리적인 공공미술보다 때로는 훨씬 많은 예산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예술가 독자적인 힘으로 작업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외려 목적이 있는 문화사업으로서 아웃소싱 구조로 위임된다고 봐야 한다.[각주:18] 

        이런 구조에서 수렴되는 문화적 저자성은 지자체와 문화재단의 정체성 그 자체로, 그것은 한편으로 현실 정치경제적 상황의 경향성과도 몹시 유관하게끔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마을만들기, 마을르네상스, 커뮤니티조성 사업으로 이해된 커뮤니티 아트는 결국 경제 정책 실패로 인한 양극화를 문화 같은 상징 자본으로 해소하기 위해, 지역 공동체나 마을, 도시를 일종의 문화관광상품으로 포장해 마케팅하는 한편, 그것을 경험경제 시대의 매력적인 경험을 창출하는 유사(마을)기업으로 제련하고자 애쓴다.[각주:19] 



        부기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커뮤니티 아트라는 이름에 얽힌 괴담 같은 것으로, 이로써 나는 커뮤니티 아트라는 용어를 저 멀리 보내버리려고 한다. 커뮤니티 아트를 둘러싼 담론은 많은 경우에 ‘아트’보다 ‘커뮤니티’에 초점을 강하게 맞추어 왔다. 그 명칭에서 보이듯, 커뮤니티라는 이름은 이미 ‘어떤’ 커뮤니티를 상정하고 있다. 이런 커뮤니티에 대한 물신은 종종 이미 소실됐거나, 먼 미래에 그제서야 도래할 그 공동체를, 현실 사회에 당장 있어야 할, 그리고 지켜내고 전수해야 할 공동체로 이해하며, 이때 상상된 공동체는 피할 수 없이 단일집단공동체로서 많은 사람의 손에 의해서 유토피아적 순간으로 착각되며 수차례 반복 재현되곤 했다.

        (전체주의의 결과를 여기서 다시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공동체를 다시 요청한다고 하면 아마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공동체로부터 오지는 않을 것이다. 비슷한 의미로 ‘진정한’ 의미의 커뮤니티 아트를 말하고 싶다면 아마도 커뮤니티 아트라는 말을 더 이상 사용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의미에서 나는 커뮤니티 아트를 보내면서, 그 담론에 묶여 있던 그들 고유의 미학 역시 구출해 내고 싶다.

        그러니까 커뮤니티 아트에 대한 나의 번잡한 애도는 서두에 내가 열거했던, 혹은 앞으로 내가 하나씩 모아보려고 하는 [#]실제[#] 예술 작업과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러니까 역설적이게도 이 글은 지금까지 커뮤니티 아트란 이름 아래에서 해석됐던 작업을 재방문해서, 이 이름 아래에서 억압되었던 것을 발굴하기 위한 일종의 기초 공사 같은 것이다. 여기서 나는 그 옛날 독일의 페터 뷔르거가 이론화 했던 아방가르드 예술의 작동 기제를, 지금처럼 동력을 상실한 한국의 현대미술씬에서 어떻게 현실적으로 써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아방가르드는 항상 심미주의 다음에 도래하며, 이때 아방가르드는 예술과 사회를 통합시키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통해[#], (그것 안의 심미주의를 부정하면서) 사회를 재구성한다.[각주:20] 내가 초점을 맞추고 싶은 점은, 아방가르드가 절대로 예술적 질을 간과하지 않으며, 그렇게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예술적 질만을 끊임없이 고수한다면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저자주의 모델이 그렇듯이 사회와 너무나도 쉽게 유리되어 버리며, 반면에 그것을 포기하면, 신경제체제의 문제를 미시적으로 봉합하려 애쓰는 문화적 보상물로 제시되거나, 혹은 경험경제의 소용돌이 속에서 다층적으로 상품화, 스펙터클화 할 위기에 처한다. 이런 꽃놀이패와도 같은 난점은 “커뮤니티 아트”라고 불렸던 예술의 무기력함의 상징 같은 것이 되었으며, 이 지점에서 포스터 식의 비판적 거리의 요청이 설득력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비판적 사유나 실천만으로 환원될 수 없기 때문에 예술이다.

        그러니까 재현된 주체를 비판하는 것도 여전히 중요하겠지만 예측 불가능한 주체를 고안하는 것에 비하면 소일거리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이 예술에서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러한 의미에서 예술에 요청되는 어떠한 미학적 행동주의는 여전히 시도되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커뮤니티 아트”라고 불린 수많은 무엇은, 간명하게도 커뮤니티이기 이전에 예술이었다. 하지만 실로 커뮤니티 아트의 비평은 (사실 게으른 평론가 몸 덕에 많이도 없지만, 있다고 해도) 바로 그 공동체라는 말이 허락하는 마술적인 올바름에 몹시도 취해 있었다. 

       박찬국이 ‹논아트밭아트› (2011)에서 구축한 것은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비일상적 사건이 벌어지는 임시적 공간이었다. 몹시 야릇한 빛을 발산하는 장기모양의 형광등 설치물과 꾸러기 앵커와 김종길 해설가의 위임된 퍼포먼스가 장기에 열중하고 있는 일반 경기자와 묘한 경쟁 관계를 이뤘던 백기영의 ‹일수불퇴› 역시 새로운 주체성이 탄생할 수 있는 가능성의 장소로 기능했다. 송지은이 ‹프로젝트 런; 어웨이›를 위해 진행했던 수차례의 워크샵과 프로그램, 쇼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예술 작업은 참여자와 함께 예측 불가능한 사건 속에서 조직되며, 그만큼 복잡한 미학을 순간순간 만들어내기에 그 자리에서 목격하기도, 그것을 서술하기도, 해석하기도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이것이 커뮤니티 아트에 관한 비평이 부재하거나, 미학적이고 이론적이라기보다 감상과 리포트 수준에 머무는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렇기에, 만약 이런 예술이 새로운 주체를 위한 가능성의 장소일 수 있다면, 비평에는, 어떤 면에서 이데올로기적 후원자를 자처한다고 하더라도, 일정 부분 그것이 가시화되고 또 이해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이 있을지 모른다. 

        나 또한 이런 미술의 형태를 뭐라고 부르기 마땅한 용어를 아직 찾지 못했으므로, 그때까지 “커뮤니티 아트”를 그냥 어떠한 수식어 없이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 그러니까 이렇게 커뮤니티 아트의 종언을 고하는 것은 “커뮤니티 아트”가 지향했던 가장 급진적인 차원을 복구하자는 요청이기도 하다. 이런 애도는 오늘날 같은 흉흉한 시대에, 예술적 상상력의 힘을 긍정하고 싶은 한 사람으로서 표하는, 오늘도 작업하고 있는 “커뮤니티 아트” 예술가에 대한 경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원고는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시각예술 비평가-매체 매칭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게재되었습니다.”




    1. <멍때리기 대회, 주최자 ‘듀오 전기호’ 알고보니 서울시 공무원? 도대체 왜?>, <<서울신문>>, 2014.10.28,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41028500200#csidx28f4f8b604d1863b6859403d4f22a01 ’ [본문으로]
    2. 박찬국의 용어. 레저와 컬처의 합성어. [본문으로]
    3. 이 모든 용어가 영미권에서 90년대 이후에 사용성을 얻었으며 한국에서 뒤늦게 수입한 것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더군다나 이 용어는 모두 현장의 수행적 실천을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는 점에서 이런 질문이 든다. 과연 우리에게 이 용어를 여기의 예술작업과 함께 놓고 제대로 검토할 시간이나 여력이 있었을까? [본문으로]
    4. 파블로 엘게라, 『사회참여예술이란 무엇인가』, 고기탁 역, (열린책들, 2013,) 19쪽. [본문으로]
    5. 성완경, 「«두렁창립», ‘산 미술’을 위한 전략」, 『민중미술 모더니즘 시각문화』, (열화당, 1999,) 73쪽. [본문으로]
    6. 이대범, 「민중미술과 민중주체성: 민중문화예술운동과 민중미술의 상관관계 연구」, (서울: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전문사 논문, 2009,) 59쪽. [본문으로]
    7. 김종길, 「공동체예술(community art)의 지형도」, 『커뮤니티와 아트』, 김소연 엮음, (수원: 경기문화재단, 2011)을 볼 것. [본문으로]
    8. Bavo, “Always Choose the Worst Option: Artistic Resistance and the Strategy of Over-Identification”, Cultural Activism Today: the Art of Over-Identification, (Rotterdam: Episode Publishers, 2007,) p. 24. [본문으로]
    9. 포스터가 말하는 민족지학자 모델은 두렁과 커뮤니티아티스트가 공유하는 문화협동가로서의 작가와 비슷하다. [본문으로]
    10. 할 포스터, 「민족지학자로서의 미술가」, 『실재의 귀환』, 이영욱, 조주연, 최연희 역, (경성대학교 출판부, 2003,) 274쪽. [본문으로]
    11. 위의 책, 274쪽. [본문으로]
    12. 위의 책, 274-5쪽. [본문으로]
    13. 위의 책, 277-8쪽. [본문으로]
    14. 위의 책, 279쪽. [본문으로]
    15. 위의 책, 315쪽. [본문으로]
    16. B. 조지프 파인과 제임스 H. 길모어가 쓴 『경험경제』라는 책의 부제 자체가 이 말을 포함하고 있다. 여기에 대한 자세한 설명으로는 B. Joseph Pine II, James H. Gilmore, the Experience Economy: Work Is Theater & Every Business a Stage, (Boston: Harvard Business School Press,) 1999. [본문으로]
    17. 권미원, 『장소특정적 미술』, 김인규, 우정아, 이영욱 옮김, (서울: 현실문화, 2013,) 81-82쪽. [본문으로]
    18. 권미원의 주장에 대해선 같은 책, 86p 참조할 것. [본문으로]
    19. 여기에 관해선 김장언, 「상징과 소통–지금 한국에서 공공미술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 «비주얼» 7호, 2010를 볼 것. [본문으로]
    20.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뷔르거가 지적한 아방가르드의 모순이다. 예술의 자율성은 비판적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인데, 여기서 연원한 아방가르드는 예술과 삶을 지양하려 함으로써 예술은 사회와 취해야 할 비판적 거리마저 상실해버리게 된다. 페터 뷔르거, 『아방가르드 이론』, 최성만 옮김, (서울: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3,) 118-123쪽을 볼 것.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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