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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리두기〉, 애도에 관하여
    REVIEW/Theater 2021. 7. 25. 00:49

    〈거리두기〉 포스터[출처=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페이스북(이하 상동)]

    ‘살아갈, 사라진, 사람들: 2021 세월호’의 일환으로 열린 0set프로젝트의 〈거리두기〉는 4.16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 오준영 군의 가족(오민영_오준영 군의 동생, 오홍진_오준영 군의 아버지, 임영애_오준영 군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 그리고 실제 등장한 오준영 군의 어머니의 이야기, 그리고 그 가족이 남긴 메모를 읽는 것, 그리고 극장 주변을 한 바퀴 도는 투어의 역순으로 구성된다. 
    ‘세월호’라는 단어는 정치적으로든 미학적으로든 너무나도 강력하며 따라서 세월호를 언급하지 않고 그것을 다른 식으로 말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곧 세월호를 다루는 작업의 과제는 궁극적으로 세월호와 현실의 틈을 언급하면서 공고한 우리, 곧 공고해질 수 없는 우리를 재정초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거리두기’라는 제목에서 가리키는바, 공연은 애도의 주체를 재현하기 위한 적절한 거리를 찾는 데 의의를 두고 있는 것일까(그러한 거리는 ‘작품 소개’에서 “거리가 멀면 알 수 없는 / 거리가 가까우면 물을 수 없는”처럼 알기 위해 또는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관계를 맺고 나아가 지속하기 위한 것일까). 

     

    극장 안에 있는 조약돌은 극장 바깥에서부터 이어졌다.

    우리가 첫 번째로 안산이 아닌 혜화동을 거닐며 놀랍게도 세월호를 인식하게 되는 건 담장 위에 놓인 몇몇 단어가 적힌 조약돌들로부터이다. 그것이 세월호 유가족의 개인적 기억이나 경험을 반추하는 것인지 아닌지가 확실하지 않은 상황 가운데서도 개인적으로 그것은 어떤 실재의 현현과 풍경의 전환을 가져왔는데, 이러한 드러남은 장소 특정적이지 않은, 곧 장소에 기대지 않은 채 나와 세월호 사이에 어떤 틈을 들여다보게 했다.
     
    불투명한 대상이 존재로 채워짐은 돌에의 기입과 그것을 대상 너머로 치환하는 인식으로 구성되었다. 그것은 돌과 존재 사이의 틈의 과잉, 기표와 기의의 심대한 불일치로 인한 것이었는데, 죽음과 현존의 괴리는 절대적인 것으로서, 재현 가능한 것이라는 점에서 주는 충격이었을까. 죽음은 말해지고 있었고 삶에 더할 나위 없이 박혀 있었다. 죽음의 절대적 현존은 이를 재현하는 불투명한, 또는 불투명해야 하는 언어의 존재로써 가시화되며 동시에 그러한 언어의 존재를, 언어의 사용자를 함께 가시화했다. 그 죽음을 부재가 아니라 어떤 경계로 구성하고 있었던 순간, 곧 애도가 반복되는 시간에 그러한 순간이 실재했다.

     

    극장에 들어가기 전에 일종의 통과의례와 같은 걷기와 흘깃 보는 시선의 관람이 있다.

    이러한 투어 이후 다시 극장으로 돌아왔을 때 세월호 유가족의 메모가 극장 내 빽빽한 아카이브를 구성하고 있었고, 앞선 조약돌 역시 그것의 편린임을 증거물임을 알 수 있었다. 관객들은 일렬로 서서 차례차례 그 메모들을 훑어보고 또한 하나씩 주워 담고 있었다. 세월호 유가족이 보내는 편지, 망각의 시간, 애도가 희미해져 갔던 개인적 시간의 궤적은 오르락내리락하며 숨고 삐쳐서 나오는 표층의 무늬로 새겨져 있었다. 이러한 시간의 구불거리는 두께와 정지된 시간의 흐름의 광경은 일차적으로 현기증을 다음으로 무게감을 안겼다. 
    그것들을 다 읽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어진 오준영 군의 어머니는 무대의 스피커, 배우가 되었다. 물론 그것은 자신을 연기하는 것도 그렇다고 어떤 편집점을 구성하지 않은 날것의 상태를 발화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는 유가족과 유가족이 아닌 예술계의 작업을 향유하는 관객의 만남이었고, 그러한 다른 존재의 양식이 구성되는 지점이 예술이라는 무대라는 점에 주목해야만 이 만남의 어색하고 특이한 감각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러한 어색함, 발화의 강박이 일종의 정체성적 정치의 자리를 전유해야 하는 개인의 의지와 손잡고 있음이 그 발화로부터 드러나고 있었고, 이 자리를 예술이 협력하기보다 내어 준다는 점에서, 마치 그러한 발화를 예술의 이름을 한 발 물린 자리에서 인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삶은 날것이자 예술을 초과하는 무엇으로 현시되고 있었다.

     

    〈거리두기〉는 세월호 유가족 가운데에도 한 가족의 서사에 주목해서 이를 여러 매체적 활용을 통해 재현한다. 여기에는 세월호 유가족 간의 다양한 입장차가 있음의 사실을 간과하지 않음으로써, 하나의 입장은 특수한 것으로 제시됨으로써 유가족의 말은 사회에 대한 묵묵한 외침으로서 바깥으로의 또 다른 응결을 기다린다(오준영 군의 어머니는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기보다 오준영의 어머니임을 자처한다. 차라리 그는 사회 운동가의 사명을 띠고 그럼으로써 아들의 죽음이 무의미가 되지 않는 방식을 택하는 듯 보인다. 그것은 일반적인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애도와는 분명 차이가 있다). 그의 말은 그 자체로 진리이기보다 진리로서의 존재 형상을 각인한다. 개인적인 차원이 뚫고 나오는 정치적인 것, 정치에 관한 사유와 애도의 방식들에 대한 각 개인의 고민이 비로소 시작되어야 하는 곳이 거기에 있는 듯하다.   
    재현의 반경을 넓히는 것에서 시작한, 곧 재현의 틈을 내는 것으로 시작한 〈거리두기〉는 열린 결말을 향해 간다. 무대 위의 배우로서 등장한 오준영 군의 어머니가 퇴장한 이후, 영상에서는 기록과 인터뷰 등이 교차되어 나온다. 여기에 어떤 개입과 시선이 들어가 있다면, 이는 바깥의 그것에 관해 재현하는 것이 아닌, 그러한 바깥이 물음과 기록을 통해 애도를 재현할 수 있는지에 관한 물음을 매개한다. 〈거리두기〉는 슬픔과 분노의 재현이 아니라, 애도의 주체를 소환함으로써 연극이 공백이 되는 자리를 선택한다. 이러한 공백은 애도에의 강요가 아닌 애도에 대한 사유를 향하는 듯 보인다. 곧 길에서 시작된 기록의 추상화에서 극장 안으로 넘어오며 마주한 기록의 과도함, 그 둘의 극단적인 대비 이후 말과 인터뷰 기록 영상까지 〈거리두기〉는 애도의 공감을 넘어 애도의 주체와 사회, 그리고 우리와의 간극을 확인시킨다. 

    김민관 mikwa@naver.com

    [공연 정보]

    거리가 멀면 알 수 없는
    거리가 가까우면 물을 수 없는
    거리에 서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거리를 두지 않으면 묘사할 수 없는
    거리를 둘 수 없는

    어떤 사람을 오해하지 않기 위한 거리, 어떤 장면이 남아있는 거리, 마음에 단단히 새겨진 이야기 거리를 헤아려 보고 있습니다.
    서로가 있어야 생겨날 거리에서, 두었다 넣었다를 수없이 반복한 이야기들을 꺼내어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만든 사람들〉
    창작 오민영_오홍진_임영애
    조명 고귀경
    그래픽디자인 김은정
    사운드_설치 다이애나밴드
    연출 신재
    셋업크루 양대은 
    영상 윤
    사진기록 허선혜
    수어통역 수어통역협동조합
    후원 서울시

    0set프로젝트는 사회적 문화적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명제’를 저울 위에 놓고 다시 사유하고자 조사, 인터뷰, 워크숍, 기록 등의 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 과정 중 일부를 공연으로 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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