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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말연시', 비워진 전시장을 채우는 퍼포먼스
    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16. 1. 22. 10:13




    지하의 정세영 작가의 냉장고 폴 댄스는 우스꽝스러움과 숭고함을 기이하게 엮은 작업이다. 냉장고를 통해 들리는 소음을 증폭해, 일상 감각을 이화시키는 한편, 계속적으로 문이 열리고 닫히는, 그래서 사실상 반만 열린/닫힌 냉장고의 빛은 온전하지 않은 시각으로 거대한 소리의 몸체 일부를 이루며 (그 시각을 비롯해) 파악되지 않는 숭고함/기괴함을 이룬다. 정세영 작가는 전시에서 마치 작가로서의 지위 자체까지를 소거하는 듯하며 이는 일견 최승윤 퍼포머를 송주호 작가의 작업과 잇는 영상으로 수행적 과정물의 일환을 담당하는 것에서 완결되는 듯 보인다.[각주:1]


    일층 최승윤 안무가의 작업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증여받은 옷들을 늘어놓고 관(람)객이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 탈의실 용도의 간이 시설에 들어가 갈아입고 10초 타이머 설정을 한 아이패드 앞에서 사진을 찍고, 최승윤은 그 사진에서 옷이 잘 어울렸던 사람을 뽑아 그 의상을 보내주는 작업을 한다. 실제 작업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사람들이 취한 포즈를 따라하는 추후 작업을 더한다고 한다. 일상에서 묻어 있는 보편 특수한 몸짓들을 안무의 재료로 삼는 셈인데, 실상은 옷을 입는 것 자체를 하나의 각자의 춤이라는 식으로 개념 결정 작용을 통해, 보여줌의 무대를 비물질적이면서 누구에게나 평등한 선택의 시장으로 바꾸고, 자신은 전시를 내내 지키는 파트타임 아르바이트의 지위를 전유함으로써 작가의 지위를 (생존하는 작가의 위태로운 지위를 물론 전제한 채) 권위를 없앤 관람자의 위치로 바꾼다. 이는 춤을 추는 노동의 대가를 자리 지킴이라는 더 적은 노동의 대가로 넓게 분배하여 치환하며 흐트러뜨리는 것이기도 하다. 


    송주호 작가는 4주 동안 매번 다른 작업을 선보였는데,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패러디/오마주해 속물 남성의 예쁜(?) 여성에 대한 비근한 욕망과 언행을 가시화하는 작업을 보여주는 한편, 그것을 퍼포먼스에서는 역으로 전환해 연기하여 되돌이표 같은 시간의 이상한 경험까지를 홍상수 영화의 양식적 전유로 가져간다. 실제 홍은예술창작센터에서부터 시작해 국립현대무용단 아카이브 플랫폼에서 보여준 바나나에 미끄러지는 슬랩스틱 코미디의 원 장면이나 미끄러운 바닥에서 비틀거림을 트위스트로 일치시키는 몸짓 등은 나오지 않지만, 갈팡질팡하거나 머뭇대는 언행은 유효하다. 


    곧 그럴싸한 그러나 이미 상투적인 욕망의 인물들의 서사를 이루는 영화로부터 연장된 관계론적 장의 부분에서 그것이 실제 퍼포먼스로 전환됐을 때, 우연적 발생을 중시하며 자신의 태생적 몸짓들을 진귀한 춤으로 현시/주장하는 작업인 동시에 그 과정에서의 퍼포머티비티를 고취하는 것을 지상 과제로 둔 것 같은 퍼포먼스에서의 의도는 또 다른 머뭇거림에 섞이며 연장되는데, 연기를 유효하게 이어가는 현지예나 최승윤의 모습은 영화와 달리 퍼포먼스를 하는 가운데서는 불필요한 잉여물 정도로 그에게 고민스런 과제로 다가오는 모습이며('이건 영화가 아니야, 그런데 계속 연기하는 거야?'라는 식으로) 한편 그에게 고용된 두 주체로서 그를 대하는 영화감독의 유효한 위치는 사실적인 과제로 그에게 부여된다.[각주:2] 


    특히 이러한 부분은 4주차에 최승윤, 현지예가 모두 박스가 아닌 무대 바깥으로 나와 영화 속 캐릭터의 잔상으로 그들 스스로의 모습을 보존할 때, 또는 그에게 고용된 주체로서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해서 쫑알댈 때 부각된다. 그리고 이는 영화 속의 배우이면서 동시에 감독이라는, 영화가 현실로 연장되면서 홍상수식 영화 속 인물들의 상투적인 욕망을 육화하던 자신을 바깥에서 어쩔 수 없이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다만 심증으로 남는 부분이지만, 그 머뭇거림에도 그래도 나아가는 어떤 시간의 전개 양상을 퍼포먼스의 과정으로 너르게 가져감으로써 퍼포먼스는 어떻게든 연장되고 성립된다. 


    마지막에는 무대를 모두 옮겨 공간 구석구석 기둥 옆에 세워 도미노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우물쭈물하며 명확하게 결정짓지 않는 퍼포먼스의 시간이 끝을 상정하지 않으며 계속 관객을 그의 둘레에 머물게 하는 동력이 된다. 곧 당황할 것 없이 감독으로서 신scene들을 머릿속에 대강 설정해 놓고 나서 이후 천천히 얼버무리는 듯한 말투로 그 사이 사이를 이으며 일종의 촬영 현장 자체를 완성해 나가는 것, 곧 그의 지금까지의 퍼포먼스가 그러한 감독이 상정한 촬영 현장 안에 관객을 두고 있었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 아닐까. 이는 영화를 다시 퍼포먼스로, 그리고 그 퍼포먼스가 영화의 연장선상에서 현실과 착종되고, 다시 상영되지 않는 일종의 영화로 수행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1. 한편 그가 촬영한 영상은 물론 송주호 감독이 영화에서 육화되기는 하지만 그의 무의식적 반향이 미친 영향이 클 것으로 사료된다. 송주호는 전시장 공간 구석구석을 반영하며 인사미술공간을 텅 빈 장소로 드러내는 한편, 남성 욕망에 의해 이용당하는 여성의 지위를 (최승윤 전시의 아이디어와 연계되는) 무턱대고 옷에 절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춤을 춰야 하는 현지예 무용수의 모습을 통해 타자적 무용수의 지위로 특수화시키는데, 절을 할 때 뒤늦게 드러나는 절을 하는 판이라든가 커튼 뒤로 둘이 들어가는 장면 등의 드러나지 않는 카메라를 통한 카메라 바깥의 시선이 냉장고의 빛-눈과 결부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곧 정세영 (촬영)감독의 무의식. [본문으로]
    2. 이러한 부분은 페미니즘적인 속물 남성 타자에 대한 비판/가격을 영화 바깥에서 자신에게 돌림으로써 남녀 권력의 공수 교대를 하는 그 가치를 용인하는 데서 어떤 긍정을 주창하고 있다기보다 예쁨에 대한 어떤 상상적이고도 합의 가능한 가치-가령 그것이 배우로서 연기에 의해 육화되고-가 있음에 기반을 둔 것 아닐까. 곧 두 사람이 역할로 빚어져 그대로 무대에서 결정될 때 이는 '무대라는 가상의 세계에 대한 어떤 공고한 공식 앞에 부딪친 송주호'의 머뭇거림으로 수렴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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