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The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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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로 라우, 〈에브리우먼〉: 극장, 죽음, 공동체REVIEW/Theater 2024. 6. 5. 19:00
〈에브리우먼〉은 무대에 홀로 현존하는, 배우 우르시나 라르디의 전적인 매개의 위치를 상정하며, 스크린의 영상을 병치시키되 이 역시 라르디의 신체를 경유하여 재생한다. 〈에브리우먼〉은 휴고 폰 호프만스탈의 『예더만』을 가져오되(“예더만”은 ‘모든’과 ‘사람’이 합성된 하나의 단어로서, ‘누구든지’, ‘모두 다’라는 이 단어에서 영어로 man에 해당하는 부분을 woman으로 바꾼 제목이 〈에브리우먼〉인 셈이다.), 헬가 베다우라는 시한부 선고를 맞은 현재적 인물을 겹쳐 놓음으로써 죽음이라는 알레고리를 도덕적인 교훈극이 아닌, 하나의 수행사적인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고자 한다. 처음에 나오는 음악은 라르디가 카세트플레이어의 정지 버튼을 누르자 사라진다. 이는 라르디의 바깥에서의 제어가 아닌,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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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작/연출, 〈히라타 오리자를 위한 유튜브 스크립트〉: 발화가 아닌 발설의 장면들REVIEW/Theater 2024. 6. 5. 18:56
〈히라타 오리자를 위한 유튜브 스크립트〉(이하 〈히라타 오리자〉)는 제목과 같이 일본의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히라타 오리자의 이론을 소개하는 유튜브 스크립트를 짜려는 유튜버를 보여준다. 연습과 중계의 어느 사이에 자리한 그의 행위는 관객을 느슨한 혹은 타격감을 잃은 시청자-관객으로 연루시킨다. “세미 퍼블릭”이라는 히라타 오리자의 용어는 시종일관 머뭇거리며 웅얼거리는 전혜인의 화법에 의해 그의 신체로부터 난반사되는데, 내부를 매개하는 외부의 출입이 가능한 특정 시-공간의 상태를 가리키는 세미 퍼블릭의 시간이 일차적으로 그것을 전달하려는 자의 불확정적인 상태에서부터 덜그럭거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의 사적 영역은 제4의 벽에 가로막혀 보이지만, 그의 입지는 분명 공적인 사태라는 판단에 근거한다. 사실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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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 작/연출, 〈잃어버린 몸을 찾아서〉: 미시사적 기술과 재현이 접근하는 역사REVIEW/Theater 2024. 6. 5. 18:29
‘역사시비’ 프로젝트에서 카메라의 실시간 포착과 화면 중계는 기본 전제가 되는데, 이는 행위의 현재진행형의 수행성을 지시한다. 역사의 시비를 가린다는 건, 현재로 소급된 역사에 대한 관점을 진단함을 의미한다. 〈잃어버린 몸을 찾아서〉는 이를 다시 개인의 몸들과 연관을 지어 다룬다. 그 방편은 미시사적인 기술이거나 인식 체계의 정형성과 관습성을 깨뜨리는 것인데, 이 둘은 상호 연결된다. 이를 통해 역사의 미세한 틈을, 관점의 차이에 의해, 미시사적 개인의 몸을 통해 벌릴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작가의 휘어진 척추의 X-레이 사진은 보이지 않는 신체의 유물론적 역사성을 전제한다. 거기에는 누적된 시간의 무게가 있다. 이러한 시선은 배우와는 다른 위상으로 따로 또 같이 존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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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당연히, 극장, 〈.기다려〉: 배우 혹은 언어의 존재론REVIEW/Theater 2024. 2. 5. 20:00
〈.기다려〉는 연극을 하는 것에 대한 윤리를 사유한다는 점에서, 제도 비평적인 작업이며, 연극이 시작되는 물리적 경계를 관객의 승인 아래 재현하려 한다는 점에서, 공동체의 윤리를 확언하고자 하는 작업이다. 연극이 시작되는 건 누군가가 화장실에 모두 다녀온 후에 시작된다. 연극이 시작되기 전의 안전수칙 공지와 배리어 프리 버전의 설명은 연극을 순전히 대체하고, 그 비가시적인 ‘모두’에 대한 재현으로 향한다. 연극의 태도와 정신이 연극을 지배한다. 올바른 연극이 (시작)되기 위해서 필요한 도덕적인 혐의 차원의 언어는 극단적인 과잉을 향해 감으로써 비로소 순수한 형식으로서 연극의 내용이 된다. 기어이 한 명의 배우는 화장실에 갔다 옴을 보여준다. 연극이 현실의 시간을 끌어들인다고도 할 수 있는 이 작위적인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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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앤 인포메이션〉: 재현 체계 혹은 재현 방식의 사이에서REVIEW/Theater 2023. 12. 11. 17:25
〈러브 앤 인포메이션〉은 짧은 에피소드로 점철된다. 맥락을 형성하는 인지 단위로서의 불충분성이라는 하나의 공통됨은 정보의 과잉들 혹은 그로 인한 소통의 단절 현상을 묘사하는 메타포라고 의미화할 수 있을까. 그것이 쇼츠건 릴스건 어떤 짧은 구문의 재기발랄함으로 부상하는 즉시 사라지는 이미지라는 점을 상기시키는 것은 어떤 유의미한 지점으로 부상하는가. 시대에 관한 적확한 차원의 은유로서 나아가 극장의 공백이 불가능해지는 임계점에 대한 탐문으로서? 〈러브 앤 인포메이션〉은 일종의 ‘지시’로서 장면들이 추출됨으로써 이입에 대한 당위를 벗어난다고 할 때 그와 같은 나열의 방식은, 희미한 맥락들의 접합까지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미궁이라기보다 미로로서 작품은 일종의 퍼즐과 동기화된다. 등장인물들은 기억에 대한 불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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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다인, 〈beingbeingbeing〉: ‘극장이라는 어떤 규칙’REVIEW/Theater 2023. 11. 24. 00:17
연극 〈beingbeingbeing〉은 극장의 입구를 끊임없이 더듬는다, 극장이 시작되고 다시 시작됨을 끊임없이 자각하도록 만들며 출구를 부정하는 지시를 통해. 작업은 극장에 대한 탐문으로 자리한다. 이념적인 차원에서 메타-극장을 만드는 것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극장에 갇힌, 또는 닫힌 극장에 놓인 인격들의 무한 반복의 관념과 상념이 또한 있다는 점에서, 해소되지 않은 원환 감정의 고리를 이루는, 일종의 부조리극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자리하는 극장을 보여주는 한편, 인격들은 극장 관계자이자 극장 바깥의 역할을 가진 사회적 존재로 연장된다는 점에서, 제도적 차원의 메타포 역시 소환한다. 결과적으로 이 셋, 아리(박하늘 배우), 마지(이우람 배우), 사키(백소정 배우)은 무형적이고 유령적인 캐릭터로 읽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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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성, 〈세 개의 짧은 연작들-신촌텍스트, 빨치산, 나의 극장〉: 주체의 공백에 다가서기REVIEW/Theater 2023. 11. 23. 23:10
이경성의 〈세 개의 짧은 연작들-신촌텍스트, 빨치산, 나의 극장〉(이하 〈나의 극장〉)은 담백하고 대담하게 연출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이는 프로덕션이 가진 부피감과 완성도에 대한 강박 너머, 결국 개인의 서사와 수행이 역사와 현재, 현실과 만나 전면에 등장할 때 그 효과가 만듦새를 뛰어넘어 입체적으로 확장, 증폭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곧 작가-연출가로서의 관점이 다른 모든 여타의 것들을 상쇄할 수 있고, 더 중요함을 이야기한다. 이는 구자하 연출에 대한 상찬이 그가 여타의 모든 것을 자신이 한다는 것, 테크니션으로서의 성취만을 향하는 것이 오류인 것에 상응한다. “신촌텍스트”, “빨치산”, “나의 극장”의 순으로 진행되는, 〈나의 극장〉에서 이 세 개의 단어는 각각 현실의 표층, 역사의 비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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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옥, 〈겹괴기담〉: 구조는 서사의 바깥에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REVIEW/Theater 2023. 11. 15. 17:27
〈겹괴기담〉의 대칭으로 서로 마주 보는 객석의 구조는 공연의 바라보기의 방식을 절대적으로 규정한다. 여기에 여섯 개의 샤막(=겹)은 다섯 개의 앞뒤 공간을 만든다. 이 속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을 관객은 마주하기보다 바라보게 된다. 단속적으로 꺼졌다 켜지는 조명과 음악에 따라 그것들은 일종의 분절된 그림들의 연결로 감각된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 체제와 반복되는 구조의 형식 아래 유사하지만 다른 두 개의 이야기가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두 이야기 모두 가장 바깥쪽에서 시작되며 따라서 먼 쪽의 이야기는 가까워지고 가까운 쪽의 이야기는 점점 멀어진다. 그리고 이 두 이야기가 마침내 교차되며 두 이야기가 사실 다르지만 하나의 실재로서 맞물리는 것임을 그야말로 고스란히 보여준다. 첫 등장으로, 길을 잃고 헤매는 이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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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하, 〈Cuckoo〉: 압력 사회를 바라보는 법REVIEW/Theater 2023. 11. 15. 16:45
구자하의 〈Cuckoo〉는 압력밥솥 브랜드 “쿠쿠”를 전면에 내세운다. 쿠쿠를 존재화한다. 무대에는 세 개의 쿠쿠가 있고, 두 개는 해킹돼 두 다른 인공지능의 목소리가 쿠쿠에 체현된다. 나머지 말을 하지 못하는, 하나의 쿠쿠 밥솥이 밥을 하는 과정은 한국 사회에 관한 비유, “압력사회”를 재현하지만, 유학 시절 한국에서 가져갔던, 쿠쿠의 상투적인 멘트는 구자하에게 친구 혹은 동반자의 감정을 체현했었을 것이다. 그것이 구자하라는 인물만에 대한 것임이 아님에도 그 멘트는 오직 ‘구자하’만을 경유하기에, 이것은 타지에 온 이에게 들리는 듣기 쉽지 않은 모국어이기에 구자하에게는 매우 특별한 것이 된다. 구자하의 하마티아 3부작 중 하나이자 가장 앞서서 만들어진 〈Cuckoo〉는 다른 두 작업과 마찬가지로,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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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하, 〈롤링 앤 롤링 Lolling and Rolling〉: 한국 사회의 어떤 역사REVIEW/Theater 2023. 11. 15. 16:36
〈롤링 앤 롤링〉은 한국 사회에 자리한 영어 교육 강박이라는 무의식을 포착한다. 이는 직접적인 사회 비판이나 풍자로 부상하기보다는 사적 이야기의 맥락 아래 가라앉는다. 후자를 성립시키는 건 자못 비장하고 우울한 구자하의 퍼포머로서의 태도이다. 유럽에 갔을 때 첫 번째 자신의 영어 선생과의 격의 없는 친구와도 같은 관계는 구자하의 경험이다. 이러한 부분은 사실상 미시적이고 잉여적인 부분으로 보이며, 나아가 극의 주제로 보기는 어렵다고 보이지만, 실은 그것이 주는 안온함은 영어 강박을 앓는 한국인의 의식을 대체한다. 곧 한국 사회라는 상징계를 벗어남으로 인해 얻는 어떤 인지의 영역은 한국인으로서 살아가는 것과의 차별화된 기호를 산출한다. 중요한 건 인지의 영역이 아닌, 비-한국 사회에 자리한다는 사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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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하, 〈한국 연극의 역사 The History of Korean Western Theatre〉: 슬픈 한국(연극)인의 초상REVIEW/Theater 2023. 11. 15. 16:21
〈한국 연극의 역사〉는 제목 “한국 연극의 역사”를 재현하기보다는 지시한다. 서구 연극을 차용하고 모방하며 형성된 표층과 근저의 욕망으로 점철된 ‘한국 연극의 역사’로부터 그 바깥의 전통의 형식을 소환한다. 곧 구자하는 우선 “한국 연극의 역사”와 ‘한국 연극의 쓰이지 않은 역사’ 또는 ‘진짜 한국 연극(이어야 할 것)’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을 세운다. 그리고 그 둘을 모두 지나친다, 각각 배제하고 아득한 것으로 두며. ‘진짜’라 함은 가치 판단의 범주가 아닌, 연극의 말미에서 제시되듯 ‘역사가 다르게 쓰였더라면’, ‘역사가 다르게 시작되었더라면’의 전제에서 출현하는 자연스러움의 범주이다. 곧 자연스럽지 않음의 현재가 아닌, 그 이전의 역사가 계승되어왔었을 시의 자연스러움이 ‘진짜’에 속한다. 물론 역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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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 비그루 Franck Vigroux, 〈플레시 Flesh〉: 분투하는 어떤 몸들 또는 매체들REVIEW/Theater 2023. 11. 15. 16:03
〈플레시〉는 극장에서의 시지각적 환경을 창출하기 위한 조건을 구성한다. 이를 통해 이미지로 덮이고 사운드에 휘감기는 경험이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차원에서 예술의 언어일 수 있음을 주장한다. 프로젝션을 통한 이미지는 촘촘하게 극장 전면을 가득 채우고, 마침내 그것이 걷히고 무대가 드러났을 때 이 공간이 큐브임을 알 수 있게 된다. 마찬가지로 관객은 사운드라는 존재가 무대의 빈 곳에 달라붙기보다는 포화된 상태로 공간을 만든다고 인지하게 된다. 이러한 부분은 과잉된 집적의 경제를 통해 충분히 가능하다고 한다면, 관객은 양적인 증폭의 흐름에 어떤 종류의 이음매를 모두 지우는 것만으로 얻어지는 결과를 단지 수용하면 되는 것일까. 그러니까 입체 서라운드 시스템의 극장용 버전으로서 존재하는 작업의 특징이 가장 우선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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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현 작·연출, 〈스고파라갈〉: 동시대인의 공백을 노래하기REVIEW/Theater 2023. 11. 7. 02:50
〈스고파라갈〉은 창작을 한다는 것, 창작자로서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는 것을 자문한다. 하나의 사회 구조 아래 한 몸으로 묶인 듯한 배우들은 경쟁의 일선에 서는데, 이는 진화론을 즉물적으로 대입한 결과이다. “스고파라갈”이라는 제목은 과학자 다윈이 진화에 관한 힌트를 얻은, 에콰도르의 제도 ‘갈라파고스’를 뒤집은 이름으로, 이는 다윈이 갈라파고스에서 가져온 거북이의 신체가 뒤집히는 이미지를 상기시키면서도 현재를 역사로 객관화할 수 없는, 또는 그러한 현재‘들’의 하나를 선택하는 데 실패한 또는 포기한 동시대 창작자의 현기증 또는 무력감을 자조적으로 드러내는 듯 보인다. 거기에는 역사는 참조점이 되지 못하고, 새로운 시대는 이미 도래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에 관해 연극으로써 무언가를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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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신세계,〈부동산 오브 슈퍼맨〉: 슈퍼맨이라는 맥거핀REVIEW/Theater 2023. 11. 7. 02:12
극단 신세계의 〈부동산 오브 슈퍼맨〉(이하 〈부동산〉)은 부동산 전세 사기라는 현실을 극에 외삽한다. 〈부동산〉은 일상으로 돌아간 슈퍼맨(이강호 배우)의 모습을 비추는 것으로 시작하고, 부동산 전세 사기의 피해자 중 한 명이 되는 슈퍼맨의 모습과 이에 절망하고 또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부동산 경제 관련 사설 교육을 받는 모습 등을 보여줌에도, 이는 슈퍼맨조차도 당할 수밖에 없는 실재로서의 현실을 증명하기 위해 동원되는 것에 가깝다. 따라서 방점은 슈퍼맨이 아니라,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는 일반인이다. 곧 슈퍼맨의 함의는 특별한 이의 지위를 일반인의 신분으로 격하해야만 가시적인 대상으로 그나마 될 수 있다는 것. 실제 〈부동산〉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발화함을 무대 전면에 배치한다. 프로시니엄 아치가 아닌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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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잘못된 성장의 사례〉: 공간에의 서사를 세공하기 또는 넘어서기REVIEW/Theater 2023. 11. 7. 01:33
연극 〈잘못된 성장의 사례〉(이하 〈잘못된 성장〉)는 “지방 소도시 국립대학 식물분자생물학 연구실”에 있는 관련 종사자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히라타 오리자의 과학연극 시리즈를 떠올리게 한다. 극사실주의의 외피를 입은 공과 사가 혼합된 제3의 공간에서 등장인물들은 전문적인 지식이 자연스레 뒤섞이는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인간에 대한 성찰과 질문을 향해 나간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잡초인 애기장대의 저항성 유전자 발현을 연구하며 박사 과정을 밟는 주인공 혜경(류혜린 배우)을 통해 〈잘못된 성장〉 역시 비인간 자체에 대한 연구, 곧 식물 주체성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전문 직종을 가진 존재들의 언어, 그리고 보편적인 인간 정서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참고로, 여기서 전자와 후자는 구체성과 보편성의 차원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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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숲우화-짐승의 세계〉: 연극을 만들어 나가는 힘의 요체란REVIEW/Theater 2023. 9. 12. 00:24
〈이숲우화-짐승의 세계〉(이하 〈이숲우화〉)는 착시를 불러일으키는 제목이 말해주듯 ‘이솝우화’의 여러 서사를 언어 유희적 농담으로써 전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이솝이란 남자’. 뒤이어 ‘여우와 두루미’, ‘토끼와 거북이’, ‘개미와 배짱이’, ‘달에 간 까마귀’로 이어지는 네 개의 에피소드는 마지막 막에 이르러서야 파생 서사의 일단락을 짓는다. 곧 서사의 유희로써 유희적인 서사를 갈음하는 실험이든 유희이든 그 형식은 서사의 내용을 명확하게 만들기보다는 서사를 이렇게 간단하게 작동시킬 수 있다는 차원을 보여준다. 곧 서사와 유희 사이에 무수한 서사‘들’이 자리한다. 반면, ‘달에 간 까마귀’는 앞선 작업들을 일종의 예열 작업으로 두면서 사이의 서사로서 위치하는 게 아닌, 서사 자체의 동력을 가시화한다. 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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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옥 연출, 〈혁명의 춤〉: 구조는 완결되는 것인가REVIEW/Theater 2023. 9. 12. 00:09
〈혁명의 춤〉은 혁명의 이념을 혁명의 이미지로 대체한다. 여기서 혁명의 이미지는 작품 전체의 이미지는 아니다. 짧은 대사들, “이쪽이야!”, “뭐지?”, “기다려!”, “들려?”, “그들 거야!”, “누가 오고 있어” 등, 위치를 지정하는 지시 대명사, 하나의 동사이거나 두세 개의 단어로 이뤄진 구문은, 상대방과의 관계를 맺으며, 각기 다른 여덟 개의 장면으로 반복된다. 이 여덟 개의 장면에서 엄밀히 혁명의 이미지를 수여하는 건 마지막 단계 직전에 이르러서이며, 그 전의 이미지들이 혁명을 위한 모종의 단계로 적용되는 것 역시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혁명의 이미지는 작품 전체의 이미지가 아니다. 이러한 이미지를 둘러싸고 있는 건 긴장과 긴박함의 정서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서는 그것을 그 자체로 두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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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변방연극제: 연극을 파훼하기REVIEW/Theater 2023. 8. 18. 11:37
변방연극제는 “취약하고 오염되고 더러운 것들의 축제”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다. 이는 “변방”에 대한 새로운 정의이면서 연극제 안의 작품들의 다양한 코드로 분화하게 된다. 오염과 더러움이 같은 의미라면, 취약함은 조금 다른 양태의 단어라 하겠다. 전자가 세상의 시선으로부터의 부정적 규정을 뜻한다면, 후자는 어떤 부분의 구조적인 결여나 미비함 따위를 지시하지만 전자에 비해 그 자체가 절대적인 부정이 되지는 않는다. 이는 말 그대로 하나의 유기체적인 전체의 구조가 지닐 수밖에 없는 한계를 일컫기 때문이다. 내적인 차원에서는 후자가 연약함과 맞닿는다면, 전자는 그런 부정적인 규정에 대한 저항으로 전복될 수 있다. 바로 이런 차원에서 이번의 변방연극제는 세상의 원칙을 파훼하는 형식을 더욱 적극적으로 찾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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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이온(연출: 김상훈), 〈연극 안 하기 - 영화관 가기〉: 균열적 극장REVIEW/Theater 2023. 8. 7. 01:41
〈연극 안 하기 - 영화관 가기〉(이하 〈영화관 가기〉)는 극장에 커다란 스크린을 가설하고, 연극이 상연된다는 설정을 전복하고자 한다. 극장을 영화관으로서 지시하고 스크린을 둘러싼 환경에 연극적 시공간을 삽입한다. 그럼에도 감축되고 은폐된 연극의 언어를 구성하는 이러한 위치 바꿈 혹은 위치 교란은 연극을 지우기보다 그제야 성립되는 연극의 위치를 검토하게 만든다. 연극은 외화면의 잉여로서 부상하고, 거꾸로 영화는 사라진 연극을 지지하는 매체가 된다. 두 개의 영화 사이의 전환은 시공간을 재정의하는 결정적인 자국을 남긴다. 먼저 첫 번째 영화는 제목 없는 일종의 반복되는 이미지-계열체라면, 두 번째 영화는 〈Runaway Train(폭주 기관차)〉(1989)이라는 실제 영화다. 첫 번째 영화는 중력이 없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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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김광보 연출),〈벚꽃 동산〉: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서REVIEW/Theater 2023. 8. 7. 01:11
사실주의 연극으로 알려진 체호프의 작업 중 〈벚꽃 동산〉이 갖는 현재의 함의는 무엇일까. 물론 이는 의미에 대한 맹신이 아니라 고전이라 불리는 것의 관성적 도입에 대한 우려와 회의의 반문이다. 그것이 갖는 사실성은 표현의 층위와 함께 컨텍스트의 차원에서도 유효한가. 일종의 사실주의라는 지지난 기표를 어떻게 재인지할 것인가. 무엇보다 김광보 연출의 〈벚꽃 동산〉은 원작을 무대 위의 시점 속에서 재편하며 인물들이 가진 역량을 새롭게 구성해 낸다. 러시아 혁명 이후의 시대 상황에서, 혁명의 언어와 일상의 언어는 서로를 마주하고 있지 않은 듯 보인다. 시대정신은 응결된 양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벚꽃 동산〉이 혼란과 격변의 불안정함을 투사하고 있다면, 오히려 이는 새로운 시대와의 조응에서가 아니라 그 반대의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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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임도완 연출),〈우리 읍내〉: 고전은 유효하게 현재에 기입되는가REVIEW/Theater 2023. 8. 7. 00:43
〈우리 읍내〉는 원작, 손턴 와일더의 희곡 「아워 타운(Our Town)」의 1900년대 미국 뉴햄프셔주를 배경을 1980년대의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로 설정하는데, 이는 가장 비슷한 인구수를 가진 지역이라고 한다. ‘자동-결정’에 따른 이러한 설정은 표면적으로는 원작에 대한 엄밀한 고증의 명목을 띰에도 실은 원작이 가진 문화적 특성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며 국내 현실에 대한 합목적적 유인 역시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나이브하다. 게다가 1980년대의 현실은 오늘날의 현실과는 꽤나 거리가 있어 보인다. 여기에는 시대에 대한 재현의 과제뿐만 아니라, 재현이 향하는 이념의 새로움이 요구된다. 〈우리 읍내〉는 활발하게 국내 무대에 올라왔었지만, 어느 순간 이후에는 소강상태로도 보인다는 점에서, 이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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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놀이클럽 제작, 〈버건디 무키 채널 오프닝 멘트〉: 핍진한 재현과 서사 너머의 공터REVIEW/Theater 2023. 6. 1. 00:05
〈버건디 무키 채널 오프닝 멘트〉(이하 〈버건디〉)는 긴박하고도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말들의 섞임과 침투, 존재의 투여와 재투여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의 가속도는 역할과 역할을 섞고 말과 말의 자리를 바꾼다. 이는 관계의 갈등과 역할의 존재감이 툭툭 불거져 나옴을 의미한다. 동시에 중간중간 삽입되는 이미지나 전환 음악 등을 통해 감각적 편집의 효과가 현실에 적용된다. “버건디 무키”라고 하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이들의 현실을 다룬 〈버건디〉의 일상은 채널 송출의 이미지의 연장선상에서 존재하며, 이러한 이미지들로 수렴되는 이미지, 곧 메타-이미지로서 스크린이 그 일상을 되비추며 잠식하고 있다. 참고로 “버건디”는 색상의 이름, “무키”는 이들이 키우는 고양이 이름으로 여러 단어의 조합이 이룬 채널명과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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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드(적극 연출), 〈다페르튜토 쿼드〉: 연극을 정의하는 놀이REVIEW/Theater 2023. 5. 31. 23:46
〈다페르튜토 쿼드〉는 어떤 말이 있고, 그것을 수행하는 순서를 가져간다. 프롬프터의 말이 무대로 흘러나오고, 그것이 규칙이 되고 표현의 근거가 된다. 곧 각각 연출의 말과 배우의 수행이 그것이다. 그 말에 따라 관객은 빛과 어둠의 경계를 분별하며 어둠에 자리해야 한다. 마지막에 어둠과 빛의 경계를 무력화하는 것 역시 말이다. 쿼드 극장을 말(제목)과 공간으로 전유한, 〈다페르튜토 쿼드〉는 불, 물, 흙, 공기의 4막으로 태초의 세계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는 기원을 재현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 또는 기원을 재현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자유롭다. 순차적으로 흐르는 말과 움직임 또는 말과 이미지, 곧 언제나 이미지에 앞서 선행하는 말은 태초에 말이 있었다는 공연 바깥의 어떤 말을 따르는 것일 수도 있다.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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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페이스 타임〉: 부재를 현상하기REVIEW/Theater 2023. 3. 14. 01:10
창작집다 ‘여기에 있다’의 〈페이스 타임〉은 박세련 연출의 사라지지 않은 어머니의 번호로부터 영상 통화—“페이스 타임”—가 걸려 온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전화번호라는 흔적은 부재를 현재로 기입하고 있으며, 이를 눌렀을 때 뜨는 빈 화면은 과거를 미래로 위치시킨다. 물론 이 화면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고, 결말에는 정대진과 이진경 두 배우의 얼굴이 대체한다. 배우들의 발화와 극중극으로 투여되는 인형극 형식의 교차로 진행되는 극에서, 가상의 차원에서 이뤄진 현전은 후자와 관련되는 듯하다. 해와 바람의 다툼, 그리고 이를 방관하는 구름으로 인해 비가 내리고 제어되지 않고 홍수가 나서 생물들이 죽고 무덤으로 뒤덮인 세상이 된다. 이제 세상의 수많은 구멍은 갖은 생명체의 무덤이 된다. 또는 세상은 구멍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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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직, 〈아파야 낫는다 건강백세!〉: 애도라는 놀이의 효과REVIEW/Theater 2023. 3. 13. 23:37
이성직의 〈아파야 낫는다 건강백세!〉는 개인의 사적 추모 혹은 애도에 대한 몇 가지 형식을 구성한다. 이성직의 친할머니, 1933년생 이명숙을 이야기하고(1막) 그가 잘 담갔다는 물김치를 대신 담그고, 또 그를 대리하게 하며, 그를 대리한 이의 친구를 대리(2막)한 이가 꽃꽂이(3막)를 하는 일련의 행위가 그것이다. 1막의 이명숙에 관한 상기가 실상 그에 관한 비평적 해부에 가깝다면, 2막과 3막의 수행들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명숙을 재현하는 차원으로 전개된다. 물김치 담그기는 이명숙이 구성했던 맛에 다가가려는 시도로 시작되지만, 그 맛은 공연이 끝나고 별도로 약속을 잡아야지만 실행되는 사후적인 증거로만 남는다. 곧 이명숙의 물김치와 그것을 구현하고자 한 이성직의 물김치와의 관계는 후자를 통해 전자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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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집단 세사람, 〈노스체(NOSCE)〉: 재난을 상상하기REVIEW/Theater 2023. 2. 23. 01:47
프로젝트집단 세사람의 〈노스체(NOSCE)〉(황정은 작가, 윤성호 연출)는 원전 폭발 후 25년째 고립된 채 살아가는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할머니 옥(김은희 배우)과 20대 두 친구인 현(윤정로 배우), 희(김민주 배우)과 살아가는 이 마을에, 재난 구조 로봇 노스체(최희진 배우)라는 비인간 타자와 연(박윤정 배우), 필(선명균 배우)이 차례차례 찾아오며 마을에는 혼란과 균열이 생겨난다. 각종 빈티지한 가구와 집기로 촘촘하게 쌓아놓은 무대는 다른 일상의 시간과 세계의 환경을 강렬하게 보여주기 위한 시각적 양식이며, 나아가 외부와 분리된 게토화된 공간이자 폐허의 잔해로서의 시공간임을 드러낸다. 멧돼지의 침입으로 벽을 쌓는 일상의 시간이 지리하게 이어지던 이곳은 사회 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곳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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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비밀기지,〈라이더〉: 두꺼운 미시사의 표면들REVIEW/Theater 2023. 1. 24. 22:52
아마 현실을 다루는 대부분의 연극은 현실을 인지하게 하는 메타-현실의 관점을 창안하고자 할 것이다. 물론 이는 전적인 형식이 되지는 않더라도/않겠지만 일부분 그러한 지점에서 ‘현실’을 반향하는 바가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라이더〉의 물리적이고 형식적인 차원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바로 자신의 장면이 끝나고서도 그 무대를 떠나지 않는 배우들에 있다. 이들은 다른 등장인물들의 갈등을 바라보며 의도치 않은 개입에 적잖이 당혹하면서도 자신의 역할의 연장선상에서 이 연극과도 같은 현실에 부가적으로 동기화되어야 한다. 언제든지 개입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주로 무용 공연의 일종의 워크숍적 순환의 차원으로 종종 등장하는 이러한 구도가 〈라이더〉에서는 조금 더 지나친데, 이들의 존재가 무대로 함입되기 때문이다. 이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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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로켓캔디〉: 연극이라는 SF를 가지고 놀기REVIEW/Theater 2022. 12. 26. 16:32
공놀이클럽의 〈로켓캔디〉는 인간은 달을 개척하고 로봇이 노동을 대체해 더 이상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2043년을 다루지만, 정교한 우주 과학적 정보와 변화된 세계의 구체성을 특별히 가져가지는 않는다. 이는 한편, 등장부터 “더 나은 삶…”을 줄기차게 읊는, 솔라리아 최초 개발자 노아―버디-x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게 되었다고 한다.―가 화성에 가려고 하는 기업가 일론 머스크에 대한 기시감을 주는 것과 같이, 2043년 역시 미래가 (또한 달에) 완전히 도착했다기보다 염원과 희망의 슬로건이 세계에 남아 있는 현재의 양상을 띠며, 다른 한편, 질산칼륨과 설탕을 섞은 로봇캔디를 추진제로 해서 아버지를 보러 달로 떠나려는 ‘지구’의 상상계적이고 도착적인 관점에서 극이 연장되기 때문이다. 곧 지구(와 그와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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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비둘기, 〈걸리버스〉: 역사의 어떤 형상들REVIEW/Theater 2022. 12. 26. 16:09
성북동비둘기의 〈걸리버스〉는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를 모티브로 가져오되 원작을 해체하고 분해하며 완전히 새로운 작업으로 나아간다. ‘조나단 여행기를 쓰는 걸리버 작가’라는 소설과 현실이 뒤바뀐 세계는, 관객과 직접 닿아 있는 화자의 시점이 화면―제4의 벽―에 자리하는 이미지들을 매개하는 구조에 대한 관점으로 연장되는 것으로 치환해 볼 수 있다. 현실과 가상의 모든 걸 뒤섞는 다중 초점의 세계상은 각 세계를 하나의 중심적 위상으로 두지 않게 만들며, 종잡을 수 없이 매번 다른 세계를 마주하는 ‘걸리버’의 모험에서 유발되는 감각들을 생생한 차원으로 전이한다. 곧 〈걸리버스〉는 『걸리버 여행기』를 재현하지 않고 현전시킨다―그럼에도 사회 고발 소설의 성격은 연장한다. 이는 영화 〈명량〉을 소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