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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아트신 초이스Column 2024. 8. 28. 01:26
2023 아트신 초이스 2023 올해의 연극: 〈다페르튜토 쿼드〉, 〈너의 왼손이 나의 왼손과 그의 왼손을 잡을 때〉, 〈.기다려〉 2023 올해의 무용: 〈갈라〉, 〈21°11’〉, 〈사이〉 2023 올해의 전시: 《슬픈 나의 젊은 날》, 《물의 왕: 동학과 화엄의 두물머리》, 《이동성 없는 거주, 거주 없는 이동성: 옵드라데크》 2023 올해의 퍼포먼스: 〈강; the river〉, 〈The Skills of Dust〉, 〈극장흉내〉 2023 올해의 플랫폼: 《옵/신 페스티벌》, 《서울서울변방연극제》 2023 올해의 연극으로, 적극이 콘셉트, 연출, 무대미술을 맡은 〈다페르튜토 쿼드〉, 정진새 작/연출의 〈너의 왼손이 나의 왼손과 그의 왼손을 잡을 때〉, 구자혜 작/연출의 〈기다려〉를 꼽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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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구가 쏘아올린 연극에 관한 작은 명제: 극장이라는 매체Column 2023. 8. 7. 02:23
얼마 전 손석구 배우의 발언과 함께 일어난 사태는 이 두 문장에서 출발하면 간단한 문제로 보인다. “연극은 기본적으로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는다.”와 “(어떤) 연극은 마이크를 사용한다.” 두 문장이 양립한다는 것만 인정한다면. 그에 따르면, 남명렬 배우는 연극의 전제를 기본적으로 전자로 축소한다. 조금 더 미묘한 문제는 이것이다. 전자를 연극의 기본적인 소양이자 절대값으로 둔다는 것. 그 두 개의 문장은 사실 모두 통용되는 부분이다. 실은 기본값이 연극에서는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렇게 할 수 있는 발성의 역량을 기르는 것이 배우의 기본 자질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배우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반면, 어떤 연극은 마이크를 사용한다. 사실 낭독극 역시 마이크를 대부분 사용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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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아트신 초이스Column 2023. 1. 4. 00:05
2022 아트신 초이스 아트신은 “2022 아트신 초이스”를 발표합니다. 범주는 2022년의 예술 작업에서, 장르/분야는 크게 연극, 무용, 퍼포먼스, 시각예술로 나눠, 각각의 장르/분야에서 가장 좋았던 것을 2021 아트신 초이스와 다르게 세 개씩 뽑았습니다. 각각 85편(중복 11편), 52편, 66개, 95개를 보았습니다. 퍼포먼스의 경우, 다른 장르와의 경계가 모호한 경우들도 포함돼 있으며, 각 범주를 초과하는 좋은 작업 역시 꽤 많아서, 이러한 구분 짓기가 어색하거나 필요 없는 경우 역시 존재합니다. 이러한 모든 범주 안에 물론 우열이 있지는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이 미진한 활동과 부족한 관점을 지닌 편집장의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에 의하니, 많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2022 올해의 연극: 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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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아트신 초이스Column 2022. 1. 1. 22:26
아트신은 “2021 아트신 초이스”를 발표합니다. 범주는 2021년의 예술 작업에서, 장르/분야는 크게 연극, 무용, 퍼포먼스, 시각예술로 나눠, 각각의 장르/분야에서 가장 좋았던 것을 하나씩 뽑았습니다. 각각 48편, 31편, 65개, 72개를 보았습니다. 퍼포먼스의 경우, 다른 장르와의 경계가 모호한 경우들도 포함돼 있으며, 각 범주를 초과하는 좋은 작업 역시 꽤 많아서, 이러한 구분 짓기가 어색하거나 필요 없는 경우 역시 존재합니다. 이러한 모든 범주 안에 물론 우열이 있지는 않습니다. 기타, “올해의 예술”에서 “플랫폼”, “작업”, “지역 예술”에 해당하는 예술 주체를 중심으로 뽑아 봤습니다. 이 모든 것이 미진한 활동과 부족한 관점을 지닌 편집장의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에 의하니, 많은 양해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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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예술의 이념Column 2021. 12. 31. 23:04
지역 예술의 이념 김민관 지역에서 예술을 경험하고 생각한 바를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올해는 강원도 인제에서 잠깐의 연을 맺었고, 이제 혼자 산 지 3년이 넘은 인천에서 제법 예술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작년까지 5년 정도 강원도 홍천에서 기획 일을 하면서 더 이상 지역의 의미가 낯설게 인식되는 것이 낯설지는 않은, 저 역시도 지역을 완전한 제 그라운드로 둘 수 없는 그런 중간자적 입장에서 지역에 놓여 헤맸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제가 할 수 있는 말이 지역 예술을 정돈된 이야기로 펼쳐 내며, 지역에서의 대안, 또는 지역으로서의 대안 모두를 이야기하는 데 애초에 실효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울은 2006년 예술과 처음 제가 관계 맺을 때 크게 대학로와 인사동으로 양분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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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플랫폼’으로서의 공간Column 2021. 12. 4. 02:03
부재하는 (기획의) 언어 김민관 어떤 여러 작가 혹은 아티스트를 모은 축제(페스티벌) 혹은 그룹전/단체전 형태를 생각해 보자. 하나의 어젠다 혹은 이념에 참여 작품들은 완전히 합치되거나 복속될 수 없다. 그것을 엮는 또는 꾀는 그러한 ‘시도’로서 이러한 이념은 작품 앞에 놓인다. 주로 물리적 장소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마주치는 서문과는 다소 다른 이러한 말은 그 축제의 첫 번째 입구가 된다. 그 축제를 인지하는 정보가 된다. 그러한 종합의 언어는 왜 이 작품들이 하나의 이념으로 모였는지, 그리하여 이러한 이념과 결부되며 작품 해석의 또 다른 단초를 제시하는지를 이야기한다. 따라서 작품이라는 실재가 있다면, 거기에 어떤 관점을 첫 번째로 부여하는 것이 이 기획의 언어이다. 이 언어는 작품들을 동시대적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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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포먼스는 무엇의 이름인가Column 2021. 11. 21. 15:23
김민관 *주로 최근 들어 미술에서 퍼포먼스라 불리는 것들 중 어떤 특정한 형상을 추상화하며 분석하고, 이를 통해 왜 퍼포먼스가 행해지는지를 추측해보고자 한다. 전시와 퍼포먼스 퍼포먼스는 무엇의 이름인가. 퍼포먼스는 예외적이고 특별한 제스처이지만 한편으로 너무 흔한 이름이 되었다. 퍼포먼스는 과잉 기표인 셈이다. 주로 전시의 이벤트적 성격으로 전시에 부착되는 그리하여 흔히 전시의 스펙터클로 확장되는 퍼포먼스의 중심에는 흔히 퍼포머라는 현존에 기댄 시간이 놓인다. 이는 한시적인 물량과 인원의 투입이 그 시간에의 몰입을 위해서만 예외적으로 존재함을 의미한다. 이는 동시에 전시장이 평소 비어 있는 곳임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현실적으로는 퍼포먼스는 전시를 보는 데 방해가 된다.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퍼포먼스를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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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디자인Column 2021. 11. 2. 23:09
안대웅 얼마 전 ≪서울, 25부작≫의 홈페이지와 관련해 SNS상에서 자그마한 논란이 있었다. 시작은 최황이라는 이름의 작가로, ≪서울, 25부작≫의 웹사이트가 자신이 기획하고 작가로 참여한 ≪광장조각내기≫와 “아이디어와 보여주는 형식”이 몹시 유사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서울, 25부작≫의 웹사이트는 미술계 일을 꽤 많이 맡아서 하는 것으로 알려진 디자인 스튜디오인 일상의실천이 만든 것으로, 공교롭게 일상의실천은 ≪광장조각내기≫ 웹사이트의 디자이너이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일단, 최황은 일상의실천이 아니라 ≪서울, 25부작≫의 실무자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아마 ≪광장조각내기≫의 웹사이트의 제작자가 일상의실천으로 동일하므로 표절까지 가기에는 무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테다. 그러다 약 4시간 뒤 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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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 담론의 작은 역사: 2013-2016Column 2019. 2. 12. 14:25
안대웅 이 에세이는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벌어진 세대 담론을 살핀다. 여기에 관해서는 다양한 논평들이 이미 나왔지만, 나 또한 여기에 일정 부분 가담한 자로서 개인적으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럼에도 이 주제를 굳이 다시 꺼내든 것이 개인적인 이유만은 아니다. 세대 담론이 출몰하게 된 배경은 여전히 미술계에서 문제적이며, 이는 새로운 세대에 대한 주목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루어졌다고 본다. 이 글을 통해 살피고자 하는 것은 그 배경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과정을 살필 수는 없으므로 중요한 세 장면을 꼽았는데, 그것은 2013년 미술생산자모임의 토론회, 2014년 홍태림의 공장미술제 비판, 2015년의 ≪굿-즈≫와 신생공간이다. 앞으로 이 글은 세 장면의 연관 관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