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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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쿼드 초이스, ‘다른, 춤을 위해’ Part2: 불균질한, 변증법적 대치의 흐름REVIEW/Dance 2026. 5. 11. 20:29
이루다, 〈Nu Black〉: 기괴한 이미지 아니 신체로부터 이루다의 기본적 양식은 보통은 검은 토슈즈와 상의 아래, 기괴한 펄럭임과 어긋난 스텝을 기초로 강렬한 캐릭터를 구축해 낸다. 바텐 앞뒤 여러 층차를 구성하는 프로젝션의 중층적 시각적 양상이 독자적인 군무를 시행하는 가운데, 이러한 공간에의 입자적 포석에 상응하여 〈Nu Black〉은 무용수들의 다양한 배치와 등장으로 입체화된다. 이는 사이키델릭한 이미지의 영도, 움직임과 배치의 끊임없는 변경을 통한 중첩된 이미지의 연쇄 작용을 경유하면서 오히려 캐릭터의 기괴함을 강화한다. 그것은 형해화된 캐릭터의 표층성을 지시한다. ‘기괴한 펄럭임’은 팔부터 몸통으로 번져가는 상체 전반의 움직임의 형태적 유사성을 가리킨다. 이는 움직임 전반을 관통하는 시작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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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쿼드 초이스, ‘다른, 춤을 위해’ Part1: 불균질한, 변증법적 대치의 흐름REVIEW/Dance 2026. 5. 11. 20:25
쿼드 초이스는 발레, 현대무용, 한국무용에서 각각 두 명의 안무가의 기존 작업을 선택해, 이를 재편집, 재구성하여 두 번의 무대로 올리는 방식이다. 첫 번째 파트는 윤별의 〈갓GAT〉, 김재덕의 〈BreathingAttackII〉, 정보경의 〈안녕, 나의 소녀: 디렉터스컷〉 순으로 열렸다. 결과적으로, 세 개의 무대가 내용이나 주제상으로 상응하지는 않으며, 장르적으로 순수한 차이를 전제한 채 출발한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세 개의 무대는 하나의 현장에서 연장될 수밖에 없으며, ‘초이스’의 차원에서 비교될 수밖에 없다. 기획은 어떤 최선의 것들의 선별에 있지만, 근본적으로 선택의 기준을 고도로 제시하기는 어렵다. 윤별, 〈갓GAT〉: 강박적, 하이브리드 신체 윤별 안무가의 〈갓GAT〉은 본래 7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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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세게, 쳐주세요〉: 숭고한 역사적 형상을 전도하기*REVIEW/Dance 2026. 5. 10. 20:45
이은경의 〈세게, 쳐주세요〉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 과정에 부역한 아돌프 아이히만 하면 자동 연상 되는 “악의 진부함(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갖고 아이히만에 접근한다. 이는 익숙한 이야기인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의 전범 재판에서의 발화를 토대로 도출해 낸 개념으로, 공연의 주요한 전제로 자리 잡는다. 곧 아이히만의 서사의 절편이 아렌트적 진단으로 응결되는 차원에서, 아이히만이라는 인물의 구체성은 축약되거나 소거되는 것 역시 가능한데, 이는 역사적 차원이 수렴하는 지점을 또한 아렌트의 개념적 매개가 완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에 따라 아이히만은 고유한 이미지의 차원보다는 개념에 대한 아이콘에 가까워진다. 물론 거기에는 문화적 차원의 번역에 따른 변용과 누락의 차원 역시 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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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잉거, 〈워킹 매드 & 블리스〉: 고전/과거에서 현대/현재로…REVIEW/Dance 2026. 5. 9. 13:39
〈워킹 매드〉와 〈블리스〉는 일정한 서사의 전개 양상 아래 움직임을 예속시키는데, 이는 〈워킹 매드〉에서 강화되며, 〈블리스〉에서 해체된 양상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이는 음악적 차이에 상응한다. 우선, 하나의 음악을 사용하는, 곧 일종의 재즈 즉흥 피아노 연주인 후자의 키스 재럿의 〈쾰른 콘서트〉를 사용하는 후자에서는 개별 동작들의 수행성과 자율성, 일의적 차원의 특성이 강조되는 한편, 등장과 퇴장의 가변적 특질 아래 개입과 분산이 자유롭게 일어난다. 반면, 두 개의 음악을 사용하는 전자는 곧 (너무나도 익숙한) 모리스 라벨(Maurice Joseph Ravel, 1875~1937)의 〈볼레로〉와 이후 등장하는 아르보 패르트(Arvo Pärt, 1935~)의 피아노 독창곡 〈알리나를 위하여〉, 두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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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AFE 2025] Ema Bertaud, 〈Recherche Mirages〉: 단속적 빛 아래 신체성REVIEW/Dance 2026. 5. 7. 16:00
빈 무대에는 두 개의 스탠드 조명이 놓이고, 무대 오른쪽에 조명만 켜져 있는 채 객석에서 Bertaud가 무대를 오른다. 이 첫 장면, 등장 장면은 극장의 경계를 지시하기 위함보다는 이 조명과 Bertaud의 관계성, 그로부터 조명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조건이다. 그리고 이어진 다른 한쪽의 조명 역시 켜짐은 이 조명의 신체적 형상―Bertaud의 신체로부터 유비되며 Bertaud로 다시 이전되는 앞선 조명으로부터―을 드러내며, 하나의 관계적, 유기적 장을 구성하는 의식적 큐의 일환이다. 전체 구성의 동력에는 온오프의 이진법적 산출의 도식이 전제되며 그것은 하나의 켜짐과 같이 그것의 꺼짐을 예비한다. 닫힘 이전의 일시적인 기호의 작동 속에 신체는 (그 조명을 받으며 또는 그것의 응시를 떠안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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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케이댄스, 〈히야〉: 사물-존재-무대의 동시적인 큐REVIEW/Dance 2026. 5. 5. 22:02
리케이댄스의 〈히야〉는 입에서 꺼낸 파란 비닐 봉지는 공연 전반을 관통하는 상징이자 모티브가 되는데, 이는 이후 파란색을 걸치고 두른 무용수들의 색면 공간의 확장으로, 미세한 떨림과 소음을 가진 커다란 파란색 비닐봉지의 물질성으로, 무대 좌우의 중첩된 막들과 스크린의 빛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정면을 향한 채 한 남자가 무심하고도 표정 변화 없이 입 안에서 꺼내는 그 비닐은 신체에 들러붙는 접착성과 끈적거림의 기호라기보다는 신체와 독립적인 사물, 신체에 대한 우연한 개입의 산물인 것처럼 수행되는데, 이때 그것은 하나의 색이자 신체로서 독립성을 보장받게 된다. 그러니까 파란 비닐을 하나의 주어로 만드는 공작, 파란 비닐 바깥으로 세계가 구성되는―마치 파란 비닐이 인간의 죽음을 뚫고 새로운 생명 존재로 거듭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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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TZ Company/안애순, 〈나비존〉: 장소를 나타내기 혹은 장소로서 드러나기REVIEW/Dance 2026. 5. 5. 21:48
〈나비존〉은 독특하게도 두 명/팀의 안무가가 공동 안무를 전제하는데, 이는 한-이탈리아 수교 140주년을 ‘기념‘한 공동의 이상적 이념을 단순하고 투박하게 취한 형식의 일환으로, 결과적으로는 1부와 2부를 나누어 각각 이탈리아 듀오 FRITZ Company(이하 FRITZ)와 안애순이 맡는 것으로 결정―이는 그 수용의 차원에서 배타적인가 아님 절충적인가―된다. 아무튼 두 부분은 마치 하나인 것처럼 이어지는데, 여기에는 제목에서의 ‘나비가 위치하는 상징적 지점’으로 출현하는 뚜렷한 분리 구간이 그 틈을 초과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 바깥을 전적으로 채우는 다섯 명의 무용수는 창덕궁 낙선재에서 하나의 공통의 매체로서 두 안무가의 상호 영향력까지를 드러내는데, 곧 무용수의 시험 혹은 실험적 차원의 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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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 〈오디토리움 시리즈: 그 때 그 극장 편〉: 공동체를 ‘지정’하는 법REVIEW/Dance 2026. 4. 10. 22:13
이소의 〈오디토리움 시리즈: 그 때 그 극장 편〉(이하 〈그 때 그 극장 편〉)은 〈오디토리움 시리즈: 연희예술극장 편〉(2025, 이하 〈연희예술극장 편〉)의 반향으로서 존재한다. 이 둘은 모두 어떤 상상적 간극으로부터 출발하는데, 이는 장소 특정성보다는 시차적인 것이다. 곧 후자가 제목에서처럼 “연희예술극장”을 장소 특정적으로 인계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장소를 어떤 식으로든 오판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것이 전적인 오류라기보다 공연이 가설하는 장소적 토대와의 오차로서 사후적으로 승인된다는 것에 착안해, 극장이 가설되는 불분명한 경계를 오히려 공연(자) 스스로가 함입한다. 이는 거꾸로 관객이 공연을 가정하는 것처럼 공연 역시 관객을 가정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오디토리움”, 곧 ‘객석’이 관객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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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정, 〈성율전26〉: 결핍-과잉된 신체의 두 가지 형상 또는 두 다른 신체-장르의 배치REVIEW/Dance 2026. 4. 10. 21:55
강화정 연출의 〈성율전26〉에는 두 존재의 오직 움직임만이 있는데, 그 위에 놓이는 건 대체로 오페라를 비롯한 보컬이 강조되는 음악이다. 몸이 목소리의 지지체라면, 목소리는 몸의 지속됨에 합목적성을 부여한다. 목소리는 몸을 경유하여 자신의 몸을 얻는다면, 몸은 목소리로부터 연장된 삶을 얻는다. 하지만 그것은 죽음일지도 모르는데, 목소리가 몸에 부착된다면, 목소리는 그 몸을 경유해, 자신의 가상적 몸에 이르는데, 이때 몸은 배경으로 전도되며, 목소리는 형상의 지위를 진정 획득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진정 ‘다른’ 두 개의 움직임이 있는 것 아닐까. 몸은 마치 사물처럼 진동하고 있다. 주체의 의지가 재분절되는 그 몸은, 산포되며 형해화되는 이 몸은 정신의 영역, 언어의 영역, 유기적인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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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현, 〈세계〉: 불가능한 소통의 변증법적 귀환REVIEW/Dance 2026. 4. 10. 20:42
황수현의 〈세계〉는 세계에 이르는 데 두 가지 다른 매체의 양식을 취급하는데, 그것은 신체 자체―존재의 이야기―거나 휴대폰―상호 연결의 분절된 대화―이다. 전자가 지엽적이고도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소구한다면, 후자는 너르고 또 닫힌 차원에서 관객을 스쳐 지나간다. 후자가 이미지라면, 전자는 말인데, 이미지는 텍스트를 신체에 새긴다면, 말은 이미지를 가정한다. 긴 후자에서 짧은 전자로 가는 과정으로서 〈세계〉의 변곡점은 곧 그 휴대폰을 공간 입구 맞은편 작은 테이블에 일제히 내려놓는 순간이다. 그리고 전동 블라인드가 올라가고 블랙박스가 한낮의 풍경 아래 재각인될 때, 이야기가 찾아온다, 또는 스며든다. 곧 텍스트가 정지되어 상영되는 화면의 그 휴대폰을 잡은 손을 반대편으로 튼 얼굴로 보내 슬며시 눈을 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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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된 해부학적 풍경(SAL), 〈X〉: 인간과 기계 사이의 혼종적 존재REVIEW/Dance 2026. 4. 9. 22:02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SAL)의 〈X〉는 인간과 기계의 혼종적 경계에 있다. 인간적임과 기계적임은 서로를 마주하는 가운데, 대자적 관계를 이룬다. 그러니까 여기서 기계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적이지 않은 무엇이라기보다 분간하거나 판별할 수 없는 것, 모호하고 기이한 것으로서 진정 인간적임이 무엇인지를 질문하는/의심하는 차원에서 결정되지 않는가. 〈X〉는 빈 무대와 거의 움직임만으로 인간과 기계 사이의 여러 스펙트럼을, 분간과 변용의 절차를 수행하고자 하는데, 예외적으로 가장 기계적인 대상으로서 주유기는 이들을 기계화하는 동시에 기계로서 분별해 낸다. 막이 걷히고 하수 끝에 선 나시를 입고 짧은 반바지와 검은 롱 부츠를 신은 채 주유기를 든 여자(서이진) 앞으로 나머지 존재들이 도열하여 있고, 그 주유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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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진, 〈흐르는〉: 말과 움직임은 서로를 향해 어떻게 흐르는가REVIEW/Dance 2026. 3. 7. 15:10
〈흐르는〉 의 천장 중앙으로부터 내려온 마이크는 중심 오브제를 넘어, 공간 전체를 환유한다. 그것은 구심과 원심의 자장 아래 있는 하나의 원의 공간이다. 이 마이크-공간과 하나의 신체의 상호작용이 곧 〈흐르는〉의 움직임이다. 공간과 신체 사이에는 마이크가 있다. 따라서 신체-마이크와 마이크-공간의 각각의 연합체는 신체-마이크-공간의 하나의 계열을 이룬다. 마이크는 점토가 덧대어 있고, 그 덧댐의 흔적이 전이되어 있다. 손(의 형상)이 거기에 있다. 그것은 만짐에 의한, 만짐을 수용하는 사물이다. 동시에 마이크는 소리를 반향하는 사물이며, 그것을 당겨서 놓았을 때 그 자체로 공기를 가르며 내는 자신으로부터의 노이즈를 동시에 반향할 수 있다. 그리하여 후반의 클라이맥스는 장혜진의 말, 신체를 마이크로 옮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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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니 안무, 〈Pan & Opticon〉: 우리를 붙들어매는, 자유의 장치REVIEW/Dance 2026. 2. 25. 13:34
이해니 안무가의 〈Pan & Opticon〉은 18세기 말 영국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이 고안한 원형 감옥을 뜻하는 ‘판옵티콘’을 어원적으로 다시 분절해 인터랙티브한 환경 조성으로부터 주제의식을 설정해 낸다. 곧 모두[편재하는(pan)]와 보다[시각(opticon)을 가진 존재(on)] 사이에 간격을 둔 두 단어의 절합을 통해, 모두‘가’ 보는 능동적 보기의 산출과 모두‘를’ 보는 일방향적 보기의 산출을 끌어내며, 본래적 의미에서의 후자를 전자의 환경으로부터 추출해 내고자 한다. ‘판옵티콘’은 20세기의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가 보이지 않는 시선에 의해 내면화되는 감시 체제의 일환으로서 규율 권력을 가리키기 위해 새롭게 발굴해 내며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이 되었다. 〈Pan & Opticon〉은 원형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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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노 세갈, 〈이 환희〉: 신체에의 음악적 가시화 또는 음악의 신체적 (재)용출REVIEW/Dance 2026. 2. 24. 20:23
티노 세갈의 〈이 환희〉는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 "환희의 송가"를 포함한 베토벤의 여섯 곡에서 발췌한 곡들을 스코어로 재구성해 이행된다. 이는 두 명의 퍼포머의 노래-연주-움직임의 어떤 계열을 만들어 내는데, 이는 4시간의 러닝타임으로 예정되었었다. 이 두 사람 안의 공유된 스코어는 음악의 어떤 분기들 아래 있으며, 그 음악에 대한 상호적 교환, 침투, 공명 등에 대한 약속과 합의를 위한 조건 혹은 기억이 된다. 두 명의 퍼포먼스 중 마르게리타 디아다모에게 주도권이 있는데, 이는 지휘의 역할이 주로 그에게 이전되었음을 뜻한다. 계단 아래, 분리된 위치에서 그가 연주의 시작을 음가로 표현할 때 길게 늘어뜨린 “This Joy”라는 표제는, 결코 표제음악으로서 음악이 아닌, 이 정전으로서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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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숙, 〈거의 새로운 춤〉에 대한 주석: 새로움과의 시차로서 주어REVIEW/Dance 2026. 2. 24. 19:59
“거의 새로운 춤”은 새로움에 가깝지만 새롭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자신의 무용과의 관계가 새로움에 대한 강박 일변도로 흘러왔다는 전미숙 안무가의 말은, 언제까지 무용수로 무대에 설 수 있을까에 대한 조바심 혹은 걱정과 같은 정서를 안고 살아온 최수진 무용가의 발화 이후에 출현한다. 거기에 대한 해결책이 제시되지는 않지만, 다만 마흔이 채 되기 전―39살이 되었다고 하는 최수진의 언급―의 무용수가 이미 그러한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의 뉘앙스로부터, 65살이 되어서도 역시 무대에 서고 있는 자신의 삶의 차원에서 언제까지 무대에 설 수 있느냐의 부분은, 섣부르게 단정할 수 없는 영역이며, 너는 지속적으로 노력한다면 그것은 충분히 가능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여지를 끌어낼 수는 있을 것이다. 반면,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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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중 안무, 〈미들 워킹 미들(middle walking middle)〉: 경보를 경유한 춤의 재정초성REVIEW/Dance 2026. 2. 20. 19:53
김건중의 〈미들 워킹 미들(middle walking middle)〉은 스포츠의 일종인 경보를 분절하고 파편으로 추출, 미세한 신체 단위로 변주한다. 대체적인 흐름은 경보를 느린 동작으로 분쇄하다가 이내 경보를 재현하며, 들숨과 날숨의 단위로 구분 지어 어느 하나를 선택해 연결함으로써 부각시키며 몸 전체로 확장시킨다. 여기서 드러나는 건 경보를 표상하되 그것의 변형, 감축, 확대를 통한 파편적 조합을 통해 환유한다는 것이다. 이는 경보를 하는 몸의 탐구일 수도 있으며, 그보다는 그로써 얻어진 결과, 경보에서 움직임의 작동 원리가 무용의 그것에 상응하는 경계를 발견하는 것 혹은 역으로, 그 전이 지대를 찾아내기 위한 경보의 탈경보화를 감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경보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며 또한 절대적으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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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댄스컴퍼니, 〈모빌리티 : 테스트드라이브〉: 이동에 대한 열망 혹은 제약과 변용, 축적에 대한 욕망REVIEW/Dance 2026. 2. 20. 14:11
〈모빌리티 : 테스트드라이브〉는 전적으로 이동성을 지닌 도구로서 몸을 재편한다. 이는 일종의 두 개의 런웨이, 두 개의 직사각형이 X자로 교차하는 무대 위에서 끊임없이 두 개의 경로를 이동하는 흐름으로만 구성되는데, 다시 말해, 모든 움직임은 이동성에 기초한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는 몸에 특정한 제약을 거는 걸 의미한다. 곧 전진의 한 방향성을 지속하기 위한 혹은 힘을 가하기 위한 하반신에 초점을 맞춘 신체 전반의 운용은, 좌우축의 움직임과 수직축의 움직임을, 나아가 그에 수반되는 유연성의 움직임을 모두 제한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움직임의 배제, 비자율적인 기계 장치로의 단순화는 다양한 형상이라는 대치, 이행, 변주의 차원에서 상쇄되는데, 그것은 질적, 내재적 차원의 전개가 아닌, 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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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 〈아무도,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닌〉: 비기능적인, 비의도적인 움직임REVIEW/Dance 2026. 1. 31. 22:11
“아무도,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닌”이라는 제목은 부정의 부정을 거듭한다. 아무도, 아무것도 아닌 무엇이 아니라는 것은 그것이 어떤 무엇으로 특정 가능하다는 것을, 어떤 의미를 띤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그것은 적어도 아무도, 아무것도 아닌 존재를 경유해서만 자신을 그것으로서 드러낸다, 적어도 이 문장에서는 말이다. 〈아닌 것이 아닌〉은 곧 이 아무것도 아닌 무엇으로부터 더는 부정할 수 없는 움직임을 추출해 내려는 어떤 시도들이다. 아마도 내장까지 숨을 불어넣어 쉬고, 하품하고,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태로 흔들리는 어떤 일련의 과정은, 움직임의 메커니즘을 가시화하는 절차들이 곧 움직임임을 나타낸다. 그 안에서 어떤 소리가 불거지고 몸을 지배하고 주요한 매체 표현으로 드러나는 양상은, 일견 황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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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무용단의 《안무가 랩: 듀오》 ‘둘’이라는 실험적 요소 혹은 관계의 확장REVIEW/Dance 2026. 1. 31. 21:54
서울시무용단의 《안무가 랩: 듀오》는 서울시무용단 내에서 짝을 이룬 듀오 다섯 팀의 공연을 묶어 보여준 것으로, 이는 2인무라는 긴밀한 협업과 지지에 기반한 창작의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내부의 창작 역량을 고취하고자 한 프로젝트로, 상대적으로 밀도가 높은 소규모의 공연들이 펼쳐졌다. 둘의 관계 지향적 이행은 필연적으로 서사로 연장되기에 이르는데, 이러한 측면에서 대부분에 있어 하나의 공통점이 출현했다. 그리고 이를 내용과 메시지로 가져갈 것인가 순수한 움직임의 차원에서 구현할 것인가가 작품의 성격을 본질적으로 결정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오정윤과 박희주의 〈니나〉(안무 오정윤)는 붉은 빛으로 채워진 좁은 네모 프레임 안에서 그에 맞추어 낮은 자세로 바닥에 밀착한 움직임들을 취하는데, 이는 숨에 기반한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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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은, 〈메타발레: 즉흥, 구겨진 아티튜드〉: 발레라는 문지방으로 들어서기REVIEW/Dance 2026. 1. 31. 21:22
〈메타발레: 즉흥, 구겨진 아티튜드〉(이하 〈메타발레〉)는 발레 자체를 비트는 시도인데, 이는 곧 발레를 부정하고 거기에 비판적으로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발레의 심급을, 발레에 대한 관점을 재조정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따라서 그것은 잠재적이며 수행적이지만, 그 표현의 일체는 ‘모호하게’ 가시화된다. 곧 표면은 비틀려 있다. 뒤로 갈수록 〈메타발레〉는 하나의 공연의 형태를 완성해 가게 되는데, 이때 그 공연 역시 그것이 공연으로 완수되는 것인지 공연이라는 형식에 우연하게 근접한 것인지, 더 정확히는 무용수가 (또 하나의 다른) 역할을 연기하는 것인지 무용수라는 하나의 역할이 공연으로 연장되는 것인지 전적인 혼동 아래 놓인다. 무용수마다의 여러 레이어가 중첩된 형태로 주어지며, 그 일부를 이어 받아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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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민 호크미, 〈쉬라즈 Shiraz〉(2025): 의례가 구성하는 개인으로서 해방REVIEW/Dance 2026. 1. 27. 21:51
아르민 호크미의 〈쉬라즈〉는 하나의 포즈로부터 시작되며, 그것은 점차 변화되기도 하지만, 거의 일괄적으로 적용된다. 오른손을 얼굴께까지 올린 이 포즈는 오른발을 살포시 내밀고 왼발을 두 번 정도 더 재게 따라잡는 더딘 이동 안에 있다. 이는 신체의 전면적인 드러남이자 약간의 회피이며, 후자의 내면 공간 안에 침잠한 이들의 전체로서 후자에 고스란히 대응하는 표면에 대한 강한 인력을 낳는다. 이 포즈는, 신체는 직접적인 해석을 유예하고 인류학적 관찰의 시선으로 전이되거나 의례 혹은 명상 차원에 조응하는 감각의 전환을 요청한다―바로 전자에서 표층의 해부학적 기술이 가능하며 또 필요해진다. ‘쉬라즈’라는 축제가 열리던 동명의 도시 공간에 대해 상기함이 감은 눈의 그들의 내면을 잠식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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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호, 〈전야제: 겨 터를 열다〉(2025): 리서치를 위한 대화, 혹은 대화를 위한 리서치REVIEW/Dance 2026. 1. 27. 21:25
〈전야제: 겨 터를 열다〉(이하 〈전야제〉)는 겨드랑이와 관련한 여러 서사적 조각을 연결하는 조진호의 디에게시스적 경로를 따르는데, 여기에는 신체 특정 부위로서 겨드랑이와 상응되는 움직임의 탐색, 겨드랑이를 관계의 접합부로 활용하는 두 사람의 긴밀한 구조적 움직임의 실천이 경유된다. 처음 조진호는 무용에 입문해 레오타드를 하며 겨드랑이에 민감하게 된 자신의 원-경험에서 출발하지만, 겨드랑이에 관한 애착 심리의 차원에서 자신의 무용사를 정리하는 것으로 연장하기보다는 밤 야(夜) 자의 상형문자 풀이를 통해 겨드랑이를 의식의 차원으로 고양해 내고자 한다. 제목에서처럼 겨드랑이를 하나의 터로서 확장된 의미의 공간으로 마련하면서 밤의 축제적 공간으로 그것을 재정립함에는, 갑골문에서 밤 야 자의 원래 형상이 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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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가 매칭 프로젝트 제26회 생생 춤 페스티벌》 (240927) 리뷰REVIEW/Dance 2026. 1. 19. 20:57
이형희×이형희 무용단의 〈To.children〉은 어른과 아이의 세대적 간격을 전제로, 아이들의 에너지와 순수함을 경유하며 밝은 미래에 관한 소망을, 아이에게 투사하는 어른으로 수렴시키는 작업이다. 따라서 움직임은 목적적이고 다분히 기능적이다. 마이클 잭슨의 〈Heal the world〉가 배경음악이 되며, 움직임 역시 그에 정합되는데, 이는 대중문화적 정서의 차원으로 크게 고양된다. 김나이×SKK-人 Dance의 〈(RE)Direct〉는 움직임의 형식적 차원을 하나의 절대적인 심급으로 내세운다는 점에서, 예외적인 작업이다. 여기에는 특별한 당위나 주제에 대한 의식이 덧붙지 않는데, 두 팔을 한 방향으로 곧고 길게 뻗어내는 동작은 동시에 이동 경로의 한 부분을 구성한다. 곧 개체들의 크고 유려하며 투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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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가 매칭 프로젝트 제26회 생생 춤 페스티벌》 (240926) 리뷰REVIEW/Dance 2026. 1. 19. 20:55
양승관×Sejong Dance Company의 〈깊은 바닷속, 漁〉는 드라마적 서사의 극적 재현과 현대무용의 표현의 두 축을 모두 활용하는데, 물방울 소리에서 바다를 표상하는 사운드로 나아가는 시작점으로부터 익숙한 팝송을 연이어 차용하면서 드라마적 장르의 힘을 불러온다. 세계는 음악적 힘과 부피로부터 지지되고 충만해지는데, 여기서 움직임은 그 정서에 대한 표출이다. 이는 음악의 틀을 깨고 강박적이고 단속적인 리듬에 의거한 사운드로부터 변전되는데, 이로써 현대무용의 범주 안에 기입될 수 있게 된다. 기계체조적인 몸짓과 유려한 선에 실리 힘은 두 팔을 허공에 흔드는 동작으로 나아간다. 이는 다시 움직임 자체의 역량을 전시하는 대신, 서사의 모티브를 존재의 형상으로 가두는 몸짓이다. 장두익×CAU Move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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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가 매칭 프로젝트 제26회 생생 춤 페스티벌》(240922) 리뷰REVIEW/Dance 2026. 1. 19. 20:51
김유미×오르난댄스컴퍼니의 〈Childlike〉는 무용수들이 지닌 젊음의 특징을 작품의 형식으로 고스란히 전환하는데, 패션은 그 물리적 특징과 차이의 기호학으로 적용된다. 파란 정장에서 하얀 티셔츠로의 변화는 해방과 일탈의 의미로 부상한다. 상의를 벗어 던지고 베개를 던지고 환호성을 지르며 뛰쳐나오는 모습은 싱그러움으로 가득한 공간을 만든다. 말하듯 표현되는 보컬 아래, 정장의 움직임들이 세련됨의 기호를 추구하는 것으로 이어진다면, 전환의 구문은 앞선 시간을 손쉽게 전복하고 탈환한다. 김민×KARTS무용단-Choreography의 〈BARCODE〉는 앞서 다룬 바 있는 작품으로(https://www.artscene.co.kr/1923), 이번에는 그 길이를 줄여서 진행되었다. 대중을 상대로 한 서커스의 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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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가 매칭 프로젝트 제26회 생생 춤 페스티벌》(240921) 리뷰REVIEW/Dance 2026. 1. 19. 20:43
《안무가 매칭 프로젝트 제26회 생생 춤 페스티벌》은 크게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대규모로 출현하는 무용수, 그리고 연달아 작품이 소개되는 가운데 특별한 무대 장치를 동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작품 주제와 상관없지만, 작품의 형식을 결정하는 물리적 조건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수많은 인원을 다루는 쉬운 방식은 통일된 안무를 구현하는 것이다. 이는 개별 무용수들의 차이보다는 동등함을 요청하며, 그 결과, 힘의 공식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그 춤의 구현이 개별자에게 어려울 수 있음에도 결과적으로 이것을 보는 이의 관점에서는 그 춤은 쉽고 간결하고 명확하다. 동일한 욕망을 좇는 이들의 사유 없는 행위 양식은 어떤 의심 없이 명쾌하다. 그 동일함의 양태는 실상 당연한 것은 아니지만, 그 안에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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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판야무, 〈누수〉: 세계를 메우고 매듭짓는 존재의 기약 없는 몸짓들REVIEW/Dance 2025. 11. 4. 22:18
‘누수’는 물리적 현상으로, 어떤 구조의 손실, 구멍, 빠져나가는 것들을 의미한다. 이는 그 구조의 와해라기보다 누수를 갖는 구조 자체로 새롭게 정의될 수 있다. 〈누수〉는 이 누수를 나로부터 찾는데―“나에게서 새어나오는 것”―, 이것이 더 큰 세계의 질서를 형성하는 과정을 탐색하는 것으로 외부와의 연결성을 추구한다―“이것은 어디로 흘러 무엇과 만나지는가.”. 여기서 ‘누수’는 심리적 차원의 메타포로 이해되어야 하는가 하면, 무엇보다 〈누수〉의 즉물적인 표현의 층위에 의거해 일차적인 의미로 그 단어 자체에 접근하는 것이 맞는다고 보인다. 무대 곳곳에는 테이프가 천장으로부터 늘어뜨려 있다. 그 중앙부로 온 남자(금배섭, 등장인물들은 크레디트상에서는 모두 “누수공”으로 기재된다.)은 위아래로 시선을 규칙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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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령은, 〈swallow swallow quick quick〉: 춤에 대한 망각 혹은 메타 학습REVIEW/Dance 2025. 11. 3. 00:56
렉처, 전수, 학습 권령은 안무가의 〈swallow swallow quick quick〉(이하 〈swallow〉)은 한국 컨템퍼러리 댄스의 역사와 무의식에 대한 보고(서)와도 같은데, 명료하고 분석적인 서술에 입각한 연대기적 차용의 형식은 근본적으로 부정된다기보다 춤의 형식으로 승화된다. 그리고 이는 그 춤이 무엇이라는 지시 아래 성립한다는 점에서, 〈swallow〉는 일종의 춤에 관한 렉처 퍼포먼스라 볼 수 있다. 이는 춤에 대한 특정한 시간의 형식 아래 기입되는데, 춤이 주요한 전거로 드러나는 가운데 그에 대한 말은 그 비중이 크지 않은 반면 선제적으로 또는 사후적으로 그 춤을 의미로 획정한다는 점에서 주요하다. 결과적으로, 컨템퍼러리 댄스라 불리는 일군의 춤을 ‘학습’한다는 차원에서 그것이 하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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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혜, 〈코스믹 댄스〉: 우주인의 시점을 경유한 춤의 재활성화REVIEW/Dance 2025. 11. 3. 00:51
정지혜 안무가의 〈코스믹 댄스〉는 우주에 보낼 춤을 관객이 직접 실시간으로 투표해 그 결과를 두 명의 무용수가 구현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설문은 모두 두 개의 선택지에서 주어지며, 선택되지 않은 다른 한 춤이 어떤 춤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는 점에서, 엄밀히 관객은 ‘그’ 춤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한 이미지 혹은 단어가 이러한 춤이었다는 사실을 알 뿐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 반대편의 춤이 어떤 춤일 것이라는 상상에서는 가로막히게 된다. 그러니까 〈코스믹 댄스〉는 우주로 보낼 춤이 순간적인 판단에 의해 자의적으로 결정된다는 차원에서, 그리고 일종의 선택에 대한 자유가 제약된 상상력과 선택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우주에 보낼 춤’이 대중의 무지하고 무심한 판단과 제도의 허술함과 성의 없음의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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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정, 〈폭발하는 구멍 작은 것이 커질 때〉: 이미지로 수렴되지 않는 움직임REVIEW/Dance 2025. 10. 20. 16:37
춤은 온전히 이미지로 수렴될 수 있는가. 또는(그것이 불가능한 차원임을 전제한다면) 그 반대편에서 이미지가 아닌 온전히 시간일 수 있는가. 사실 임은정 안무가의 안무의 출발선상은 모든 움직임이 재현의 움직임, 곧 그것이 춤으로서 어떠한 의심도 할 수 없는 명증한 이미지들이 되는 것에 대한 반-테제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기서 이미지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텍스트가 아닌 시간을 상정할 수 있는 건, 결과적으로 임은정의 시공간은 춤의 소멸 직전을 향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두드러지는 건 극소의 춤으로서, 그로부터 어떤 멈춘 시간 자체가 체현되기 때문이다. 임은정이 생각한 움직임은 무언가를 더하는 게 아니라 뺐을 때 얻는 효과에 가깝다. 원래 움직임이 (전형적인) 움직임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인지되게끔 하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