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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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판야무, 〈누수〉: 세계를 메우고 매듭짓는 존재의 기약 없는 몸짓들REVIEW/Dance 2025. 11. 4. 22:18
‘누수’는 물리적 현상으로, 어떤 구조의 손실, 구멍, 빠져나가는 것들을 의미한다. 이는 그 구조의 와해라기보다 누수를 갖는 구조 자체로 새롭게 정의될 수 있다. 〈누수〉는 이 누수를 나로부터 찾는데―“나에게서 새어나오는 것”―, 이것이 더 큰 세계의 질서를 형성하는 과정을 탐색하는 것으로 외부와의 연결성을 추구한다―“이것은 어디로 흘러 무엇과 만나지는가.”. 여기서 ‘누수’는 심리적 차원의 메타포로 이해되어야 하는가 하면, 무엇보다 〈누수〉의 즉물적인 표현의 층위에 의거해 일차적인 의미로 그 단어 자체에 접근하는 것이 맞는다고 보인다. 무대 곳곳에는 테이프가 천장으로부터 늘어뜨려 있다. 그 중앙부로 온 남자(금배섭, 등장인물들은 크레디트상에서는 모두 “누수공”으로 기재된다.)은 위아래로 시선을 규칙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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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령은, 〈swallow swallow quick quick〉: 춤에 대한 망각 혹은 메타 학습REVIEW/Dance 2025. 11. 3. 00:56
렉처, 전수, 학습 권령은 안무가의 〈swallow swallow quick quick〉(이하 〈swallow〉)은 한국 컨템퍼러리 댄스의 역사와 무의식에 대한 보고(서)와도 같은데, 명료하고 분석적인 서술에 입각한 연대기적 차용의 형식은 근본적으로 부정된다기보다 춤의 형식으로 승화된다. 그리고 이는 그 춤이 무엇이라는 지시 아래 성립한다는 점에서, 〈swallow〉는 일종의 춤에 관한 렉처 퍼포먼스라 볼 수 있다. 이는 춤에 대한 특정한 시간의 형식 아래 기입되는데, 춤이 주요한 전거로 드러나는 가운데 그에 대한 말은 그 비중이 크지 않은 반면 선제적으로 또는 사후적으로 그 춤을 의미로 획정한다는 점에서 주요하다. 결과적으로, 컨템퍼러리 댄스라 불리는 일군의 춤을 ‘학습’한다는 차원에서 그것이 하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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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혜, 〈코스믹 댄스〉: 우주인의 시점을 경유한 춤의 재활성화REVIEW/Dance 2025. 11. 3. 00:51
정지혜 안무가의 〈코스믹 댄스〉는 우주에 보낼 춤을 관객이 직접 실시간으로 투표해 그 결과를 두 명의 무용수가 구현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설문은 모두 두 개의 선택지에서 주어지며, 선택되지 않은 다른 한 춤이 어떤 춤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는 점에서, 엄밀히 관객은 ‘그’ 춤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한 이미지 혹은 단어가 이러한 춤이었다는 사실을 알 뿐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 반대편의 춤이 어떤 춤일 것이라는 상상에서는 가로막히게 된다. 그러니까 〈코스믹 댄스〉는 우주로 보낼 춤이 순간적인 판단에 의해 자의적으로 결정된다는 차원에서, 그리고 일종의 선택에 대한 자유가 제약된 상상력과 선택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우주에 보낼 춤’이 대중의 무지하고 무심한 판단과 제도의 허술함과 성의 없음의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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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정, 〈폭발하는 구멍 작은 것이 커질 때〉: 이미지로 수렴되지 않는 움직임REVIEW/Dance 2025. 10. 20. 16:37
춤은 온전히 이미지로 수렴될 수 있는가. 또는(그것이 불가능한 차원임을 전제한다면) 그 반대편에서 이미지가 아닌 온전히 시간일 수 있는가. 사실 임은정 안무가의 안무의 출발선상은 모든 움직임이 재현의 움직임, 곧 그것이 춤으로서 어떠한 의심도 할 수 없는 명증한 이미지들이 되는 것에 대한 반-테제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기서 이미지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텍스트가 아닌 시간을 상정할 수 있는 건, 결과적으로 임은정의 시공간은 춤의 소멸 직전을 향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두드러지는 건 극소의 춤으로서, 그로부터 어떤 멈춘 시간 자체가 체현되기 때문이다. 임은정이 생각한 움직임은 무언가를 더하는 게 아니라 뺐을 때 얻는 효과에 가깝다. 원래 움직임이 (전형적인) 움직임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인지되게끔 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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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컴퍼니, 《모내기》_배현우, 이소진, 천영돈, 김희준REVIEW/Dance 2025. 10. 20. 01:15
배현우 〈SYSTEM IDLE〉: 극장이라는 규칙을 시험하기배현우 안무가의 〈SYSTEM IDLE〉은 공연의 규약을 공연 안에 반영시킴으로써 실질적인 공연 외부의 규약과의 혼선을 일으키는 전략을 꾀하는데, 이를 컴퓨터상의 CPU의 사용되지 않은 자원, 유휴 시스템의 퍼센트를 나타내는 ‘시스템 유휴 프로세스(System Idle Process)‘에서 가져온 개념으로써 일종의 시스템에 대한 사고 차원에서 공연과 공연 바깥의 경계를 구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SYSTEM IDLE〉에서 그 시작과 끝에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부분으로, 극장 입장과 동시에 공연이 시작됨으로써 그리고 공연의 끝을 앞당겨 지정함으로써 공연으로서 경계가 명확해지는 것이다. 가령 객석 입구 두 곳에서 검은색 고무줄 머리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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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푸름 안무, 〈관객, 되기: 떨어진 감각을 이어 붙이기〉: 관객이라는 선두, 관객의 이전 그리고 너머REVIEW/Dance 2025. 10. 19. 23:52
윤푸름 안무가의 〈관객, 되기: 떨어진 감각을 이어 붙이기〉(이하 〈관객, 되기〉)는 별도의 퍼포머의 등장 없이 관객을 그 자리에 대신 놓는데, 이는 관객이 어떤 것이 되는 것 이전에, 관객 옆(,)에 ‘되는 것’이 놓이며, 그 사이의 간격을 관객의 선택지에 두는 방식을 택한다. ‘되기’ 앞에는 필연적으로 무언가로의 이행이 명시되는데, 그것이 소거된 상태는 이 극장의 기이함이 연유하는 비어 있음의 질서, 시간, 체계가 가리키는 의지, 이념, 철학을 가리킨다. 마치 관객-되기에 대한 작은 혼란 혹은 혼선을 안기면서, 명시되지 않는 되기의 주체의 자리에 먼저 관객을 제시하는 이 같은 제목상의 유희는, 관객이 되기의 주체가 아닌 동시에, 되기의 주체를 볼 수 있는 유일한 목격자이자 그 단서이면서, 부제를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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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P, 〈슬라임〉: 해방적 주체를 향한 경로REVIEW/Dance 2025. 10. 19. 21:40
슬라임적 움직임 점액을 가리키는 슬라임(slime)은 대표적으로 〈슬라임〉에서 좌우를 오가는 끈적거리는 움직임의 요체에 부합해 보인다. 즉물적이고 일차적 차원에서 점성이 있는 유체를 체현하는 수평적 차원의 움직임이 있고, 이는 기본적인 차원의 움직임 메소드로서 몸의 토대가 되며, 대체로 군중적이고 집단적인 모습으로 발현된다. 그리고 이는 다시 수직적 차원에서 하늘을 보며 손을 뻗는 구원과 환희의 제스처로 급작스럽게 승화된다. 직접적 양태를 구축하는 움직임의 형식은 몇 개의 질적 변환의 절차 안에서 그 양태가 갖는 내용으로서 코드로 이전되는데, 그중에서도 이 전자와 후자의 움직임의 도상적 차원의 대립과 (극적) 차이는 주제가 가진 하나의 메시지를 구성한다. 결국, ‘슬라임’적 움직임은 무엇인가에서 그 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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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en Dance, 〈미스터 소크라테스〉: 구도를 위한 여정REVIEW/Dance 2025. 10. 19. 21:30
서사: 원초적인 세계의 원-장면 〈미스터 소크라테스〉(2024.05.11 ~ 05.12,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 이하 〈소크라테스〉)가 여는 세계는 일종의 원초적인 자아 혹은 그 자아가 지닌 충동과 정념이 지배하는, 부족적이고 원시적인 사회의 일면을 띤다. 이와 동시적인 차원에서 경계에 위치한 한 여자(정희나), 일종의 주체이자 주인공인 그 여자의 시종일관의 대조적인 수행의 모습은 두 다른 층위를 통해, 변증법적 결말에 도달하게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곧 이는 동물적 외양의 존재들의 무제약적인 분출에서도 의식적 차원과 성스러움의 외양을 잃지 않았던 여자가 여는 이전의 세계에 대한 정화의식이 될 것이다. 전체적으로 표현주의적 몸짓은 그것과 부합하는 움직임 메소드의 이념과 형식의 특유함―이따금의 과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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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호, 〈춤출 때 웃고 있지만〉: 무용에 대한 은밀한, 내밀한, 전복적인 발화들REVIEW/Dance 2025. 10. 19. 21:19
〈춤출 때 웃고 있지만〉은 한국무용과 발레를 전공한 두 안무가의 캐릭터를 ‘교차’시켜 두 장르의 제도가 가진 공고함과 억압의 양상을 ‘비교’무용적 기술로써 체현한다. 동등함의 기반은 약간의 불균형 속에 위치하는데, 이는 후반에 ‘자신만의 길’을 가야 한다는 윤상은의 말에 동조하는 조진호의 말에서 드러나듯 경험의 차이에 의거한 것이기도 하지만, 웃음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더 결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웃음이 춤에 더 적극적인 동력을 불어넣어 실제적인 수행의 효과를 극대화시킴에 대한 윤상은의 긍정에 움직일 때 늘 웃어야 했던 강제에 관한 조진호의 의구심이 맞선다. 이는 상대적으로 윤상은의 좀 더 과격하고 도발적인 춤을 통해 틀을 넘어설 때 춤이 구성된다, 또는 춤은 틀을 넘어선 것이라는 춤의 이념을 향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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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브로가슴에, 〈Earthing〉: 지구에의 접지된 감각에 대한 의례적 재생산의 형태들REVIEW/Dance 2025. 8. 20. 22:58
서로를 마주하는 원형의 대열은 〈Earthing〉에서 시종일관 유지된다. 정향된 움직임의 반복적 단위에 미세한 차이를 주어 점증적인 변화를 꾀하는 가운데, 몇 번의 전이 단계가 발생하고 클라이맥스에 이른다. 구심력은 땅과 붙어 있는 절반의 신체, 곧 제목의 접지를 뜻하는 ‘어싱(Earthing)’이 자연을 맨발로 감각하는 활동을 일컫는 것과 같이, 거의 제자리에서 이동 없이, 무대 바닥과 하반신의 밀착됨은 공연의 중반까지로 이어지는데, 이는 팔 동작의 세부에 주의를 기울이게 됨을 의미한다. 가령 두 발을 들고 내려놓고 고개를 숙이고 하는 하나의 단위가 성립한다면, 다음은 또 다른 단위적 움직임이 고안된다. 움직임은 포착 가능하며, 일정한 분기 아래 구분 가능하다. 그리고 일종의 의식적 절차로서 이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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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헌, 〈All i do for glory〉: 우리를 잠식하는 것들의 영광REVIEW/Dance 2025. 7. 30. 23:39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SAL) 창단 5주년 기획 공연 ‘GAMMA’의 시작을 연, 권재헌 안무의 〈All i do for glory〉는 두 다른 움직임의 병치를 주요하고 집요하게 사용한다. 이는 아마도 중앙에서 손목을 꺾은 채 아래로 향한 두 팔을 힘주어 좌우로 왔다 갔다 하는 중앙의 일자와 그 나머지의 일치된 집단적 움직임의 도열, 그 둘의 대비라는 첫 번째 순간에서 가장 강렬하게 드러난다. 전자의 두 팔의 한 방향으로의 운동이 한쪽 어깨의 꺾임을 필히 동반하며 그 뒤틀림에 주의를 실리게 한다면, 후자의 보디빌딩의 대표적인 포즈, 프론트 더블 바이셉스와 유사한 과시적 표현의 형태이지만 이두박근의 조임 대신에 거의 완벽한 직각을 이루는 팔꿈치의 각도를 유지하는 포즈는 그 자체로 너무 과도해서 기괴해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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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종, 〈Virgin Soil〉: 고통으로 뒤집힌 땅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서 서사REVIEW/Dance 2025. 7. 30. 23:37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SAL) 창단 5주년 기획 공연 ‘GAMMA’의 두 번째 막을 연, 최호종 안무가의 〈Virgin Soil〉은 한동안 뜬구름 잡는 것 같은, 정박되지 않는 흐릿한 형체들의 흐름, 그 가운데 일정 정도의 정동 정도만이 감지된다. 이러한 분위기는 처녀지를 뜻하는 제목을 따른다면, 되도록 형상(figure)적인 것들을 불명확하게 만듦으로써 일종의 배경(ground)으로서 장소를 강조하는 의도적인 전략에 의거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대지의 특징이 명확해지는 건 트로이의 목마를 재현한 커다란 구조물이 무대 오른쪽에 들어오면서부터인데, 그조차도 고정된 목마를 제외한 나머지를 뚜렷하게 부각되지는 않는다. 목마가 변함없는 형상을 유지하는 것처럼 실제 그 목마에 숨어 있던 존재는 등장하지 않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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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화, 〈마주하기 ; Reflection〉: 불화로서 몸에서 출발하기REVIEW/Dance 2025. 7. 15. 18:15
〈마주하기 ; Reflection〉(이하 〈마주하기〉)에서 거울과 카메라는 ‘reflection‘, 곧 제목이 가리킨 두 개의 상을 매개하며, 이를 이중으로/동시에 ’마주하는’ 박선화 안무가가 있다. 무대는 하나의 흰색 평면을 이루는 공간이며, 중앙의 분장대와 그 위에 놓인 카메라가 비추는 관객을 투사하는 분장대 위쪽의 화면이 공간의 너비만큼을 차지하고 있다. 이 거울을 통해 자신을 보면서 관객이 자신을 보는 걸 볼 수 있는 자신을 그 바라보는 시선들에 역으로 노출하는 박선화가 등장하고, 그 참여된 관객 자신을 보는 박선화를 보는, 그 보이는 대상이자 그러한 대상이 그 중간의 박선화에 의해 반영되어 감을 선취하는 보는 주체 사이의 시차 속에 이중으로 각인되는 (걸 보는) 관객이 뒤편에 자리한다. 이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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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인영의 춤 <ㅅ · ㅁ>(부제:서예를 하는 것과 같은 춤): 춤이 분기되는REVIEW/Dance 2025. 3. 12. 00:25
‘의미가 체현되는 몸’은 무엇일까. 손인영 안무가의 말에 따르면, 이는 무대 위의 이상적인 춤, 춤의 이념에 해당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서두를 연 “우리 시대의 춤은 형식적”이라는 말의 대립항으로서 존재할 것이다. 형태적 구성의 유려함과 단단함, 이미지적 향연과 발산이 감응을 추동하지 못한다면, 그것과 근본적인 차이를 만드는 춤은 어떤 정신에 사로잡힌 ‘나’로부터 출발하는 춤이 될 것이고, 그 온전한 나를 구성하는 건 ‘숨’이다―제목의 ㅅ 더하기 아래아 더하기 ㅁ 역시 숨을 의미한다. 아마도 무대 오른쪽에 놓인 마이크를 잡고 팔을 휘적거리며 춤을 추던 손인영이 말한 바를 대강 요약하자면 이와 같을 것이다. 손인영은 안무라고 하지 않고(안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춤이라고 했다. 무언가를 구성하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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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장현과친구들, 〈GRAVITY〉: 변경된 세계 위의 부유하는 물질로서의 몸REVIEW/Dance 2025. 3. 5. 00:05
〈GRAVITY〉는 중력이라는 지구의 기본적인 물리적 힘의 자장을 주제로 가져가는데, 그것은 물리적이고 자연(과학)적 진리이자 지구 전체에 보편적으로 편재하는 하나의 힘으로 적용되며 일상에서 의식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중력 자체를 지시한다고 할 때 이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지구 바깥의 영역, 힘, 곧 중력이 닿지 않거나 중력이 작용하지 않는 지점을, 그리고 거꾸로 중력과 관계 맺고 있는 지구상의 여러 존재를 가시화할 필요가 있다.이는 〈GRAVITY〉에서, 각각 물리적 차원에서―‘그것은 엄연한 하나의 힘이다!’―, 그리고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 차원에서―‘보이지 않지만 하나의 영향권 아래 존재들이 종속된다.’‘, 중력이 서사로 연장되어 감을 의미한다. 중력을 상정하기 위해서는 비중력적인 조건, 중력에 영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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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늘 안무·연출, 〈유토피아 - LET THERE BE LIGHT〉: 인류세 이후의 미래 시제에 대한 이미지, 정동, 환경REVIEW/Dance 2025. 3. 4. 22:05
〈유토피아 - LET THERE BE LIGHT〉(이하 〈유토피아〉)는 설치와 프로젝션을 통해 ‘환경’에 관한 상징적 배경을 구성해 낸다. 여기에 쌓이는 또는 연루되는 격렬한 몸짓들은 그 환경에 대한 반응이자 반영의 표현이다. 후반, 총천연색의 자연을 바라보는 여자의 이후 몸짓의 기조 변환은 세계에 대한 재인식이자 새로운 출발점을 노정한 것이다. 여기에 유토피아에 대한 희망적 장소를 성서적 해석과 겹쳐 두는 제목은 이와 결부된 작품을 해석하는 근거로 적용할 수 있을까. 플랫폼엘 플랫폼 라이브홀의 전체 객석을 거둬내고 관객이 공간 양 가에서 마주 보는 대형으로 구성한, 일종의 런웨이이기도 한 공간의 중앙은 허공에 매달린 초록색 도료를 칠한 각목들로 직조한 비정형 입체 구조물들과 의자들로 가로막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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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하, 〈여신과 우산이 해부대 위에서 우연히 만난 것처럼 아름답다〉: 이접되는 두 시공간REVIEW/Dance 2024. 12. 6. 21:54
이동하, 〈여신과 우산이 해부대 위에서 우연히 만난 것처럼 아름답다〉(〈해부대〉)는 그 제목에서부터 미스터리한 느낌을 만드는데, 이 분위기는 작업에서 해소되지 않음으로써 완성된다. “해부대”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역시 정확하지 않지만, 처음 군대의 기상나팔 소리로 시작된 작품에서 텐트를 비롯해서 ‘부대’라는 군대의 용어가 현실의 상징적 재현과 함께 장소 특정적 환경을 구성한다고 추정 가능하다. 얼굴을 가린 마스크와 의상, 텐트까지 모든 것이 분홍색을 이루는 가운데, 움직임에는 물론 표정과 언어가 없다. 그 부재의 강조는 이들의 뭔가 부산스러우면서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정위되지 않고 투박한 몸짓으로 나타나는 것과 맞물린다. 동시에 단세포 입자들처럼 보이는 구형들의 동시다발적 움직임이 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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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 〈인잇〉: 차이의 확산 혹은 분화REVIEW/Dance 2024. 12. 6. 20:15
〈인잇〉의 무대는 시간이 지나면서 아래로 내려오는, 천장으로부터 걸린 대략 270~300도 정도의 각도를 이루는 앞쪽 이가 빠진 원기둥과 그 뒤의 검은 장막으로 구성된다. 원기둥 앞과 검은 장막의 경계에는 각각 조명이 무대를 향한다. 후자의 경우, 사선의 무늬를 바닥에 그리며, 전반적으로 눈에 띄거나 공간 전반을 아우르지 않은 채 조명은 어두운 공간 범주를 구성하게 된다. 비스듬하게 바닥에 누운 무용수들 사이를 우측에서 좌측으로 횡단하는 누군가로부터 〈인잇〉은 시작된다. 이를 마치 잠에서 깨어나(게 하)는 장면으로 볼 수 있다면, 집단으로 굴신하고 있는 〈인잇〉의 마지막 장면은 다시 어둠 혹은 잠, 무의식과 같은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는 장면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장면의 직전 장면에서는 장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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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무브먼트, 〈음-파〉: 헉헉거리거나 한숨 쉬기라는 숨의 양태들REVIEW/Dance 2024. 10. 18. 10:42
제목에서 수영할 때 호흡법을 지시하는 〈음-파〉는 얼굴에 스타킹을 쓴 채 움직이는 무용수들을 통해 직접적 생존 방식을 통해 고군분투하는 삶의 메타포를 그려낸다. 그럼에도 그러한 메타포가 삶에 대한 재현의 양태로 드러나는 건 아닌데, 다름 아닌 표현 양식과 의미는 일 대 일의 대응 관계를 구성하며, 고립된 영역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그 간극에 대한 해소, 또는 의미에 구애받거나 의미를 해소하기 위한 차원으로서 표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음-파〉는 삶에 대한 실존적 양상의 장면들을 은유한다고 애초에 말할 수 있을까. 이 특이한 신체 양상의 역동적 움직임은 무대의 유한한 시간에 불사르는 완전한 소진을 향한 강박에 가깝지 않을까. 다섯 색깔의 스타킹은 은폐된 얼굴을 대신해 각각의 다름을 상정하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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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된 해부학적 풍경(SAL), 〈2122.21222〉: 미장센, 매질, 진동하는 신체 양식들REVIEW/Dance 2024. 10. 18. 10:29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SAL)의 〈2122.21222〉는 제목이 아닌 그룹명을 말 그대로 돌려주는데, 일종의 영화적으로 펼쳐지는 장면이자 그 장면이 갖는 일상의 기괴함과 거리감, 그리고 그 내용을 구성하는 몸의 극렬한 떨림과 진동은, 각각 요철이 있는 무대라기보다 매끄러운 풍경으로서 신(scene), 현실 층위의 전복적 코드, 해부학적 몸의 단면들을 상정한다. 이 풍경, 곧 장면은 장막이 걷히면 시작된다. 무대, 곧 장막이 열리기 전, 헐벗은 두 다리의 배배 꼬는 장면, 미시적 틈새가 거대한 무대 전반의 이미지로 확장되기 직전의 순간은, 그 무대를 향한 하나의 끌개로서 유예되며 잠재된 것으로 지속된다. 이는 ‘장면’의 예외적 순간이다. 장면으로 끌고 오려는, 하지만 그 장면과의 거리감으로 인한 균열과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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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화, 《오팔 Opal》: 조각-오브제-스크린-신체의 응결점으로서 이미지REVIEW/Dance 2024. 10. 18. 10:12
양윤화 작가의 《오팔 Opal》은 퍼포먼스와 전시가 결합된 형태이며, 더 정확히는 퍼포먼스를 통해 전시가 재형성되고 나아가 퍼포먼스를 통해서만 전시가 임시적으로 작동하는 퍼포먼스형 전시이다. 다섯 개의 살아 있는 신체의 지지체를 기초로 한 유동적인 다섯 개의 조각과 조명을 근간으로 한 무대(로서 오브제)의 캡션이 “러닝타임”이라는 용어로써 뒷받침되고 있음은 이를 나타낸다. 여기서 임시성의 가시화는 관람객의 신체를 경유하면서 일부 초과하는데, 50분으로 측정된 퍼포먼스에 비해 1시간으로 ‘책정’된 후자의 그 초과분은 일정 시간 동안 더 작동하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수여한다. 신체의 한계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후자는, 아마도 더 많은, 시간과 구애되지 않은 채 고정된 설치로 작동할 수 있겠지만, 관람객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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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영 안무, 〈비수기〉: 춤이 시작되는 장소REVIEW/Dance 2024. 10. 17. 10:06
〈비수기〉는 현실 공간의 전유와 문화 양식의 참조를 통해 완성된다. 이는 무대가 실존적 주체의 무정형적 터전이 되는 대부분의 공연과 다르게, 무대가 현실의 변형이거나 변환이라는 차원에서 출발함을 의미하는 한편, 현실 공간이 극장을 다른 세계의 입구로 지정하고 있음을 또한 의미한다. 그 변환은 이 공간에서라기보다 이 공간 내에서 이뤄짐으로써 가능해진다. 두 남녀가 앞쪽의 테이블을 항하여 바닥이 파인 중앙의 자리에 앉고 정면의 스크린을 응시하는 첫 번째 장은, 병풍과 같은 무대가 반쯤 옆으로 펼쳐지는 데 이어 마지막으로 비닐막이 걷히고 완전히 확장된 세트 아래서 종결된다. 펼쳐지는 무대에서 시종일관 무미건조한 표정―특히, 처음 일관되게 스크린을 향한 두 남녀의 심드렁한 눈빛과 몸짓 아래 진행되는 일상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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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무용단, 〈사자의 서〉: 재현은 무엇을 가리키는가REVIEW/Dance 2024. 6. 5. 18:35
국립무용단의 〈사자의 서〉는 죽음 너머의 세계를 그린다. 이는 신화적인 차원에서의 접근, 곧 재현의 한 범주에 속한다. 곧 죽음 너머의 현실이 존재한다는 전제가 서사의 한 종류를 이루며, 인간의 감정이 잔여하고 지속된다는 관점이 그 뒤를 따른다. 총 3개의 장으로 구성되는 가운데, 현실과의 단절을 인지하고 있음의 1장과 3장, 과거를 현재로 호출해 오는 2장으로 구분된다. 슬픔과 회한의 감정들이 혼재되는 세계는 전반적으로 의례의 정동을 구성하는 가운데, 2장에서는 현실에서 미끄러질 수밖에 없는 주체의 감정적 드라마로 변환된다. 망자를 인도하는 저승사자의 등장과 망자를 애도하는 수많은 사람은 현실과 죽음 너머의 현실을 접합하며 두 세계를 분리하면서 과거의 현실과 새로운 세계를 동시에 구성한다. 또는 전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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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목, 〈Yaras〉: 원시적 충동이 지배하는 괴랄한 ‘미래’ 사회REVIEW/Dance 2024. 3. 28. 02:01
정훈목의 〈Yaras〉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 대별되는 두 가상의 “종족”을 재현의 시점으로 불러온다는 점에서 움직임만의 서사가 아닌, 서사 안의 움직임을 통해 독특한 세계상을 창출한다. 제목인 “Yaras”(Yara의 복수형)는 그 서사의 중심을 차지하는, 주요한 하나의 종족이라면, 화려한 의복을 걸친 존재들이 다른 하나의 종족이다. 후자의 존재들은 이국적이고 오리엔탈적인 느낌을 강하게 주면서, 상대적으로 현실적인 모습을 조금 더 갖고 있는데, 그에 대비되는 Yaras 종족은 원시적인 느낌을 준다. 현실에 존재할 법하거나 그 존재를 상상할 수 있을 법한 각각의 두 존재를 마주하는, 곧 그 세계에 대한 접면은 그 기이하고 이질적인 세계가 목도됨에 가깝다. 〈Yaras〉는 통상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놓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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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은, 〈메타발레: 비(非)-코펠리아 선언〉: 발레를 사랑할 수 있는가REVIEW/Dance 2024. 2. 5. 20:15
〈메타발레: 비(非)-코펠리아 선언〉(이하 〈메타발레〉)은 윤상은 안무가가 〈모든 몸을 위한 발레 워크숍〉의 연장선상에 있다. 일종의 커뮤니티 아트가 수용하는 개방성의 감각―여기에는 어떤 특정 지역이나 특정한 주제와 관련된 대상을 가리키면서 예술가가 아닌 존재라는 더 중요한 조건을 동시에 전제한다.―과 연관 지을 법한 “모든”이 어떻게 장르를 고찰하며 지시하는 “메타”로 전환되었는지를 탐구하는 것이 그것을 입증할 것이다. 가령 이 ‘모두’는 발레를 하기 위한 적합한 몸, 발레의 특정 자세와 몸짓의 정교함을 이탈하거나 위반한다. 그렇게 강박적이기도 하고 동시에 율법이기도 한 발레의 몸과 동작은, ‘원래부터’ 발레를 하지 않았던 존재에 의해 전유됨으로써 발레의 틀을 깨뜨린다. 안무의 전략은 이 ‘모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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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판야무, 〈사이〉: 이미지와 행위 사이에서REVIEW/Dance 2024. 2. 5. 20:12
춤판야무의 〈사이〉는 대상과 신체의 연합을 통해 공간을 시시각각 구조화하는, 미장센의 구성적 원리를 구현함으로써 시각에 대한 알레고리를 보여준다. 〈사이〉는 어떻게 춤이 그 자체로서 상영되면서 동시에 영사되는지를 움직임, 구도, 가변적 설치 등을 통해 공간 전체에 가로새김으로써 보여준다. 그것은 원초적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이기도 한 무엇을 펼쳐낸다. 거기에는 어떤 특별한 서사가 요청되지 않는다. 몸짓을 의미와 감정의 기표로 치환할 필요 역시 없다. ‘행위’는 공간을 직접 그리거나 공간에 기입되는 대상이 되는 행위이다. 곧 관찰되거나 카메라를 응시하는 대상이 된다. 궁극적으로 〈사이〉는 미장센의 원리를 구현한다. ‘사이’는 하나로 계열화할 수 있는 무엇과 무엇의 틈을 이야기하며, 시간적으로는 연속의 흐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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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혜, 〈The Skills of Dust〉: ‘퍼포먼스의 비가시성’REVIEW/Dance 2023. 12. 12. 02:06
정지혜의 〈The Skills of Dust〉는 퍼포먼스의 비가시적인 산출을 지향한다. 그것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대상으로 의도치 않은 관객을 요청하고 용인하는 행동이며, 이는 극장이 아닌 거리에서 진행되었다는 점을 전제로 하지만, 그보다는 이를 사전에 매개하지 않는 차원에서 결정적이다. ‘비가시적인 것’으로서 먼지(dust)의 기술(skill)은 관객을 재정의하는 것에서부터 가능해진다. 〈The Skills of Dust〉에는 크게 세 개의 움직임 스코어가 두 사람 간의 교차로써 수행된다. 팔을 사선으로 위로 펼쳐내는 것, 마주한 채 방향을 달리해서 스텝을 옆으로 이동한 후 다시 돌아와서 교차한 후 처음부터 계속 반복하는 것, 등을 맞댄 채 천천히 앉은 후에 다시 일어서는 것. 이들은 전단을 한 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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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다이빙라인’, 〈단델re:ON〉: 시간들의 가상 현전을 향한 시도들REVIEW/Dance 2023. 12. 12. 02:00
극단 다이빙라인의 연극 〈단델re:ON〉은 투어 형식으로써 극장의 전사를 상영하면서 극장에 여러 시간의 지층을 가설한다. 극장이 이제 닫는다는, 마지막 극장의 하루에 초대된 것이라는 시작의 급작스러운 또는 급진적인 가정은 극장이 없는 미래라는 디스토피아적 가정과 지금 여기 존재하고 사라지고 마는 공연의 본질적 속성에 대한 지시 사이에서 모호하게 놓인다. 그러니까 그러한 가정은 동시대의 어떤 개념 혹은 정동이 반영된 것이거나 오히려 시대착오적으로 공연의 현존을 좇는 공연자의 이상이 반영된 것일 수 있다. 결국, 이곳은 천장산우화극장이라는 상징적 처소이므로, 그리하여 연극이 오르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무한한 영도이므로, 허구적 세계를 상정함은 그 가상이 향하는 곳을 가리키게 된다. 〈단델re:ON〉은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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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애, 〈21°11’〉: 몸에 관한 미학적 윤리REVIEW/Dance 2023. 12. 12. 00:42
노경애 안무가의 〈21°11’〉은 뇌성마비 장애인과 무용수의 각기 다른 몸의 움직임을 조합한다. 움직임은 몸으로부터 도출되는가. 전자의 움직임의 유래는 몸의 비중이 더 큰 듯 보인다. 반면, 후자에 있어서는 다른 몸을 구성함으로써 다른 움직임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 또는 다른 움직임으로 제한될 수 있다, 아니 밀도를 얻을 수 있다. 이 밀도의 차원을 다르게 갖는 것. 곧 시간을 늘리거나 호흡을 분배하거나 나아가 몸짓의 질서를 변형하는 작용이 다른 몸의 질서 차원에서 자연스럽게 성립한다는 것, 이러한 전제는 몸 자체가 하나의 구상적 전제이자 틀을 생성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안무는 그 몸에 관한 모방에 기초해야 한다. 이는 엄밀히 재현은 아니다. 상호 주관적 영향 관계 안에 서로가 위치함을 의미한다. 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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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벨 ,〈제롬 벨(Jérôme Bel)〉: 제롬 벨, 그리고 제롬 벨이 누락한 것들에 대한 질문REVIEW/Dance 2023. 12. 12. 00:29
제롬 벨의 〈제롬 벨〉은 렉처 퍼포먼스로, 환경오염에 악영향을 끼치는 비행기를 거부하는 생태적 실천에 의해 한국에서는 대리자인 이영준 기계비평가를 내세워 이를 수행한다. 사실 이영준은 그 직함은 물론 존재 자체가 무색한 상황을 맞는데, 일종의 배우로서 그것을 최대한 몰입해서 읽는 것 외에 다른 해석적 관점을 투영해 주석을 달거나 자신을 내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지점에서 다소 현학적인 문구로 자신의 삶을 해석하는 제롬 벨의 습관적 언어 사용을 제롬 벨, 곧 이영준으로서 수용함을 인지하고 있음을 발설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깨어버리는 순간, 곧 실수 혹은 실패의 순간이 첫 번째 공연――에서 발생하고야 말았다는 건, 이 위임 방식의 공연이 그럼에도 존재 자체의 현존을 의도치 않게 가져가게 되었음을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