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Visu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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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추니엔, 〈뉴턴〉에 대한 주석: 실험 박스 안의 존재REVIEW/Visual arts 2026. 7. 14. 20:25
〈뉴턴〉(2009. 단채널 영상, 스테레오 사운드, 4분 16초.), 〈지구〉(2009–2011. 단채널 영상, 5.1 서라운드 사운드, 42분. 싱가포르아트뮤지엄 컬렉션.), 〈굴드〉(2009-2013. 단채널 영상, 스테레오 사운드, 1분 49초.), 〈미지의 구름〉(2011. 단채널 프로젝션(16:9포맷), 컬러, 5.1 서라운드 사운드, 28분. 싱가포르아트뮤지엄 컬렉션.) 순으로 열린 호추니엔의 스크리닝에서, 나아가 1층과 2층의 전시에서 선보인 여러 영상 작업에서 역시도 두드러지는 건, 음악과 이미지의 공존이다. 오디오는 적극적인 화자가 되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영상의 합목적적 결과로 나타난다. 이미지는 총체적 서사로의 이행, 중간 단계로서 복속되기보다는 장면 하나 하나 시각 체제의 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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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찬숙, 〈더 텀블 올 댓 폴〉에 대한 주석: 횡단적 사고와 환원론적 사고 사이에서REVIEW/Visual arts 2026. 7. 13. 14:48
〈더 텀블 올 댓 폴〉(2024. 가변 크기, 1채널 비디오 설치(FHD), 30분, 컬러, 사운드, 아카이브.)은 일반적인 “에세이 필름”보다는 화자의 내레이션이 감싸는 오디오 비주얼 필름에 가까워 보이는데, 이는 인터뷰 당사자의 신체 역시 그래픽적 이미지의 전체 영상 미감에 흡수되어 있고, 일종의 이미지와 재료로서 융해되어 있기 때문이다. 작품은 원주민에 대한 제국주의적 침입과 강탈의 현장에 원주민 당사자의 목소리를 맞세우는데, 이로부터 도출되는 인간과 인간의 영적이고 신성한 만남이라는 전제는 내레이션의 형태로 명상적 정서 아래의 윤리적인 정언 명령으로 삽입되고, 이는 근대적 해석과 분석보다는 절대적인 타자의 형상을 수용하는 레비나스적 진리에 입각해 부족과 부족, 국가와 국가 사이의 관계에서도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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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량, 《증발하는 것들 Things Evaporating》에 대한 주석: 사물-공간 ‘위‘의 임시적 결정들로서 순간REVIEW/Visual arts 2026. 7. 13. 14:48
“증발하는 것들”이라는 제목은 “존재하는 것들”로 통칭되는 개별 작업들에 대한 적극적 외화를 기획한다. 여기에는 시간의 격차와 물리적 거리를 아우르는 일종의 태도가 개입한다. 추상회화의 전형적 표면은 캔버스, 나무, 리넨 등의 지지체와 결착되며 물질성의 토대로부터 연장된다. 회화는 철저히 후자의 배경에 대한 여유분을 어느 정도는 가장자리에 남기고, 그 위에 덩어리를 구성하는 형상의 운동성을 앞세운다. 물질적인 부분과 이미지의 차원이 쌓이는 가운데, 회화는 조각적인 구상에 포섭되며 현실의 재현적인 영역에 상응하게 된다. 별도로 구분된 레이어의 하단에 “Propositional Form 명제형식 L.taeR24”라고 쓰인, 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검은 덩어리 형상의 〈존재하는 것들〉(2024. 리넨에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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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건형, 〈한국인을 관두는 법〉에 대한 주석: 냉소라는 형식REVIEW/Visual arts 2026. 7. 8. 13:55
안건형 감독의 〈한국인을 관두는 법〉(2018/2024. 2채널 비디오, 흑백, 사운드. 66분 24초. 오리지널 버전 제10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커미션.)은 각각 이미지와 내레이션(좌측 스크린), 인용 문구와 사진(우측 스크린)으로 병치되는 2개의 스크린을 통해 “한국인”의 특정한 역사 문화적 DNA를 추상, 조감해 낸다. 기회주의자 한국인에 대한 강령 속에서 구분/분별의 방식을 통한 한국인 안의 경계를 내는 과정은 특정 한국인에 대한 범주와 그 바깥의 범주를 반드시 전제하므로, “한국인을 관두는 법”은 한국인임을 전적으로 포기하기보다 (기존의 것을 새롭게 범주화하고 바로 그것을) 선택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선택의 주술은 한결같이 반어적인 데다 메스꺼움을 유래하도록 전면화되어 있고, 따라서 비가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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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하는 몸: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 Connecting Bodies: Asia Women Artists》에 대한 메모: 통합과 신화화의 기제로서 고착되는 여성이라는 형상REVIEW/Visual arts 2026. 7. 8. 13:55
《접속하는 몸‒아시아 여성 미술가들》(이하, 《접속하는 몸》)은 타자의 형상으로서 여성과 아시아를 하나의 범주로 구성하는 거대한 기획을 전면에 내세우는데, 이는 이 두 범주를 담론적 차원에서 혹은 미술사적 차원에서 새롭게 갱신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괄호 치기의 방식, 곧 포함과 확장의 차원을 꾀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곧 아시아와 여성, 그로부터의 미술에 대한 차원은 각기 다른 범주에서 출발하는 하나의 교집합이 아니라, 처음부터 유기적인 하나의 형상으로 꾀어 있는 듯 보인다. 아시아의 여성의 미술가‘들’로 매끈하게 수렴하는 이 도식은 결국 다시 서구의 남성 미술(가들)이라는 도식의 변증법적 기술이 전제되었음을 가정한다. 곧 (제대로) 쓰이지 않은 역사를 쓰는 건 ‘다시’인가, 아님 ‘새롭게’인가? 이는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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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타임스위트, 〈초 다음 초〉에 대한 주석: 민중미술의/이라는 흔적REVIEW/Visual arts 2026. 7. 8. 13:55
파트타임스위트, 〈초 다음 초〉(2017. 단채널 HD 비디오, 컬러, 사운드. 25분 14초. 서울시립미술관 커미션.)는 민중미술이 동시대에서 어떤 형상으로 논의될 수 있는지, 혹은 어떤 매체로써 반복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영상에서 등장하는 어린아이들은 전반적으로 광장을 가고 노동가요인 ‘동지가’를 부르고 사물놀이를 하며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형식을 전유한다. 이들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보이는 시선은 아래로 떨어지거나 어지럽고 불안정하다. 이들의 정처없음을 강조하는 촬영은 정처 없는 이들의 행위에 대한 반향으로 생각된다. 곧 물리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초과되는 기술은 이들을 바라보기보다 촉각적으로 미치면서 온전히 장악, 파악할 수 없는 무력함의 가능성으로 일부러 자리하고, 그러한 혼란스러움이 거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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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훈, 《손과 얼룩》: 시간의 잠재적 계열로서 회화’들’REVIEW/Visual arts 2026. 7. 8. 13:52
“손과 얼룩”은 그야말로 회화 작가가 작업을 만드는 과정에서의 그 둘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드러낸다. 이는 작품의 특질이 아닌,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필연적인 사전 절차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와 같이 전시의 제목이 작품으로서 어떤 (특별한/예외적) 의미를 내포하지 않는다는 사실, 얼룩이 곧 그림은 아니라는 사실로부터 이 전시는 어떻게 그 평범한 진실을 마주하는가, 또는 그 평범함이 어떻게 새로운 언어가 될 수 있는가의 질문으로부터 전시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손과 얼룩》은 우선 그리고 아마도 결정적으로 그림들의 물리적 집산 그 자체로 드러난다. 전시장 자체가 분별할 수 없는 차원에서 하나의 얼룩이라는 사실은, 기존 전시에 대한 냉소적 회의를 동반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곧 전시와 작업의 불가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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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윤택, 《액체 순간 Memorandus momentum》에 대한 메모: 시간의 매듭으로서 눈-구멍REVIEW/Visual arts 2026. 7. 8. 13:52
사윤택 작가의 《액체 순간》은 시간성을 담지해 내는 회화의 여러 양태들을 보여준다. 곧 전시명은 시간이 맺히는 하나의 이미지로서, 유동적(=“액체”) 시간과 시간성을 지향하는 이미지―“순간”―에 대한 물리적 귀결로 보인다. 이는 너른 차원에서는, 20세기 이후의 인간과 세계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과 맞물려 있는 듯 보이는데, 시간의 지속을 담아내고자 했던 20세기 이후의 회화의 영점을 상기시키는 이미지의 즉물적 표현―자코모 발라의 ―에서부터 선형적인 시간 구조를 해체하고 기억과 시간의 관계를 고찰하는 철학적 의식―베르그송―, 역동적이고 유동적인 시간의 형상이라는 양자역학의 관점을 들 수 있다. 결과적으로, 《액체 순간》은 존재의 엉킴 또는 중첩된 시간에 대한 관점을 지시함으로써 시간에 대한 철학과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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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주, 〈고 故 The Late〉: 떠도는/유리된 신체로부터 죽음을 분별하기REVIEW/Visual arts 2026. 7. 7. 15:02
배치: 절단된 동시성 임영주의 〈고 故 The Late〉(2023-2025. 비디오, 사운드, 물체, 퍼포먼스, 웹사이트, 책, 60분.)는 12채널 영상으로 이뤄진 작업으로, 공간 전체는 영상에 맞춘 시각을 기준으로 크게 3면의 배치로써 재조정되며 부분적으로 적용되는 어포던스, 곧 일정한 자리 잡음에 대한 모순과 비틀림을 초래한다―아마도 이러한 물리적 차원의 배치를 제외하고 순수 형식으로 전시를 환원한다면, 고정된 스크리닝의 핵심적 차원만을 추출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혼동으로서 이 전시의 포맷 자체를 애써 무시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곧 관객은 영상들의 동시성의 산출 아래, 시간과 이미지 들의 비선형적 전개를 물리적으로 그리고 시간적으로 해제해야 함의 곤궁을 초래한다―하지만 결국 전시는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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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메이크랩, 핍진한 미래에 대한 거리 두기 혹은 틈새: 〈뉴 빌리지〉(2025)와 〈비미래를 위한 생태학〉(2023)을 중심에 두고REVIEW/Visual arts 2026. 7. 6. 14:15
언메이크랩의 영상들이 시작되는 장소는 모두 비어 있다. 그곳에 어떤 미래를 가설하기 위함이다. 〈뉴 빌리지〉(2025)에서 석양의 델타 위, 그리고 〈비미래를 위한 생태학〉(2023)에서의 불탄 산, 그리고 〈시시포스의 변수〉(2021)의 꼭대기가 그것으로, 이는 끊임없는 역설을 초래한다. 그것들은 일견 파국과 폐허에 대한 상상력과 연접해 있는 듯 보이는데, 〈시시포스의 변수〉에서 꼭대기에서 떨어지는 돌들은 〈비미래를 위한 생태학〉에서 온갖 비인간, 인간 존재들에게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신적 폭력’으로, 〈뉴 빌리지〉에서 도시 자체의 떨어짐으로 변주된다. 그리고 다시 쌓아 올릴 수 있는 건 인간을 경유한 언어, 이미지 따위를 데이터셋으로 다시 뭉쳐 인공지능 학습을 통해 재산출하는 것이다. 〈뉴 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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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시랑, 《뒤의 달 Black Moon》: 심연적 실재를 거스르기 혹은 뒤돌아서기REVIEW/Visual arts 2026. 7. 5. 14:14
막 너머에서 금시랑의 《뒤의 달》에서 “뒤의 달”은 우주와 같은 검은 배경에서 유추 가능한 것으로 드러나는데, 그 ‘앞’에 놓이는 건 무지개와 같은 얇고 출렁이는 천막과 같은 것이며, 이때 현실은 본질을 잠시 가리고 있는 일시적인 이미지의 상연으로 보인다. 그 일종의 베일을 펀치로 뚫어 나타난 작은 구형의 구멍이 ‘검은 달’인 셈으로, 그것이 예외적으로 두 개의 작품에서 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날 때, 비로소 현실은 제대로 흘러가고 있고, “뒤의 달”이 ‘검은 달(Black Moon)’임을, 곧 뒤집힌 현실의 이면을 보고 있었음이 분명해진다. 여기서 검은색은 그야말로 어둠으로서 곧 화면의 절대적인 무게를 차지하며, 상대적으로 혹은 거의 절대적으로 높은 채도의 베일은 산뜻하면서 가벼운 그리고 생동하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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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윤, 이초록, 《핑킹가위 증후군》: 하나의 공간으로서 작품, 디자인 혹은 명명을 통한…REVIEW/Visual arts 2026. 7. 5. 14:13
《핑킹가위 증후군》은 세운상가의 상품을 적재하는 공간인 10의 n승을 활용해, 여러 오브제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적재함으로써 가장 긴 면이 3미터 남짓인 윈도우 공간을 잡동사니 사물들의 우주로 ‘나열’하며 ‘디자인’한다. 두 명의 작가로 양희윤과 이초록이 각각 글과 디자인으로 참여했는데, 그 둘의 역할은 꽤 모호하게도 혼재되고 또 혼동된다. 우선 《핑킹가위 증후군》은 하나의 윈도우 공간 전체가 하나의 작품이며, 수많은 사물 배치로 이뤄진 이 하나의 작품을 일일이 나열한 캡션을 일종의 하나의 글로 볼 수 있는데, 일종의 서문 역할을 하는 또 다른 글에서 양희윤은 우리, 곧 양희윤과 이초록에 포함되는 최초의 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는 이 전시 제목이 탄생하는 순간이기도 하며, 동시에 이 두 주체의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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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타이틀 매치: 홍이현숙 VS 염지혜, 《돌과 밤》: 주름의 두 가지 양태 혹은 이념REVIEW/Visual arts 2026. 7. 2. 13:56
서울시립미술관의 “타이틀 매치”라는 제도적 형식은 두 명의 주연을 링에 세우고, 하나의 전시를 둘의 차이로 분화시키며 구성하는데―접근 방식과 표현의 양태 모두 비교의 근거가 된다.―, 《돌과 밤》은 세대 차를 가진 두 여성 작가, 홍이현숙과 염지혜를 전면에 내세웠다. 각각 돌과 밤이라는 추상적이고도 간단한 명사가 그 둘에게 대입되고, 이 둘을 엮는 서사로 재앙(=밤)과 재앙에 덮힌 사물(=돌)이라는 하나의 장면이 만들어진다. 전시의 지형을 그리기 위해, 두 작가는 공통의 토대를 글로써 유추해 나가는 방식을 택했는데, 그것은 주제 의식을 향한 작가의 고유한 언어를 노정하는, 그 둘의 상응점을 건져 올리는 방식에 가깝다. 그리고 이를 낭독함으로써 작가의 신체성을 전면에 드러내고―여기서 자신의 목소리를 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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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균, 《예언과 시나리오》: 믿음의 체계 혹은 비틀림REVIEW/Visual arts 2026. 6. 30. 23:00
‘예언’과 ‘시나리오’는 미래에 대한 두 다른 접근 방식을 의미한다. 전자가 미래를 확약하는 믿음의 체계를 전제한다면, 후자는 미래를 예측하(려)는 현실에 뿌리를 둔다. 시나리오가 예언을 현실과 봉합하는 표현이 되거나 예언의 비현실성을 구체화하는 형식으로 복무하는 지점에서의 균열을 찾아내는 방식, 아마도 이 둘이 상호 복무하며 통합되는 지점에서의 간격, 그 둘을 각자의 자리로 다시 돌려놓고자 하는 태도가 둘의 병치 속에 자리하며 전시의 실체를 이루는 것으로 보인다. 현실에 다가와 있는 미래, 다른 현실에 대한 반영, 미래를 바라보고 지각하는 여러 태도들은 미래에 대응하는 유사 과학적 혹은 핍진적 현실의 시나리오를 구성하는 서사, 비인간의 상이한 지각 체계, 분산되며 재발견되는 파편으로서 사물들을 통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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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은 없고 껍데기만》에 대한 주석: 가상을 가설하는 것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될 때REVIEW/Visual arts 2026. 6. 26. 13:56
‘앤리(Annlee)’라는 가상의 캐릭터는 《영혼은 없고 껍데기만》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인공이자 피규어이며 지표이다. 곧 앤리는 서사와 이미지와 작품들의 물리적 연결에 있어 주요한 기호로 부상한다. 이는 앤리를 경유한 어떤 주제의식의 구현 이전에 앤리라는 캐릭터의 인물에 초점을 둔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앤리는 곧 기능하기보다 그 자신으로서 발화한다. 앤리의 반복을 통한 앤리라는 자기 지시성의 획득이 하나의 주제로 보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프랑스 작가 피에르 위그와 필립 파레노가 1999년 일본 애니메이션 회사로부터 배경 역할의 단역 캐릭터를 구입하고 이름을 부여하는 것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는, 3년 동안 위그와 파레노를 비롯해 20여 명의 작가들이 참여하여 회화, 조각, 영상, 포스터, 책,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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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천, 《스터디(Studies)》: 이미지의 잔여 혹은 내파된 시각체제REVIEW/Visual arts 2026. 6. 20. 09:41
김희천 작가는 늘 뭔가 그럴듯함을 안기는 서사를 직조해 왔는데, 이는 뚜렷한 이념에 대한 정향이 아니라, 현재에 있어 어떤 결정적인 세계관이나 관점의 창조가 거기에 전제되어 있다는 인상을 창출함을 의미한다. 김희천의 개인전 《스터디》는 2채널로 된 하나의 영상 작업에 대한 스크리닝 설치로, 고교 레슬링팀의 선수 실종이라는 미스터리한 상황 아래 놓인 코치의 미묘한 내면의 층위로 수렴하며, 이를 속마음-내레이션으로 표현한다. 여기서 사라지는 존재들은 그제야 존재하는 존재들로, 사라졌음이 고지됨으로써만 인지되는 대상들이다. 사실상 실존하는 이, 배우라는 클리셰의 형상을 경유하는 이는 연습 영상을 재생할 때 코치와 대화를 나누는 이 한 명뿐이다. 아카이브 푸티지 삽입에 따른 등장인물의 소거와 대체 전략은 하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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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과 쿠보타 시게코의 〈알란과 앨런의 불평 allan n allen's complaint〉: 비디오 아트의 형식과 정신의 유기적 관계성REVIEW/Visual arts 2026. 6. 13. 13:43
백남준과 쿠보타 시게코의 〈알란과 앨런의 불평 allan n allen's complaint〉(1982. 28분 33초, 컬러, 사운드.)은 재치 있는 작품이면서 비디오 아트의 특징을 선취하고 있는 작품이다. 퍼포먼스 아티스트 앨란 캐프로와 비트 세대의 시인 앨런 긴즈버그의 이름이 같은 발음이라는 착상은 이 두 사람을 주축으로 하고 있는 이 영상의 제목으로 나타나는바, 영상은 그 두 사람에 대한, 그리고 그 두 사람을 잇는 내용적 전개로 이어진다. 두 다른 인물의 언어 유희적 공명은 프랑스 예술비평가인 피에르 레스타니의 강연으로부터 각기 다른 두 매체와 장르로 변별되는 두 대립되는 인물로 묶임으로써 선취되며 그 근거를 얻는다―그리고 레스타니는 그 역할을 끝마쳤기 때문에 자신의 발화를 더 연장하지 못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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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암 나트로슈빌리, 데투 진차라제, 〈So Far〉: 그다지 멀지 않은 역사…REVIEW/Visual arts 2026. 6. 11. 21:46
마리암 나트로슈빌리와 데투 진차라제의 작업들은 조지아의 역사적 잔여로 남은, 망각과 현재로 뒤덮인 공간을 조명하고 더듬으며 현대사의 기억을 되불러오는데, 이는 그들이 전시장 벽면에 새긴 일종의 그들 고유의 표어이자 전시명으로서 유일한 기입, “So Far”을 경유해, 그 현재와 밀착된 시점과 함께 또한 그로부터 너무 멀리 있는 역사의 진실―지금으로 뒤덮인―을 중의적이고 역설적으로 전달한다. 공간에 부착되는 이 작업은 공간에의 새로운 기입―미소한 조처로서 개입―을 통해 또 다른 시간의 지층을 임시적으로나마 더하는데, 이는 (이) 공간이 역사를 기입한 공간이며, 또한 많은 곳이 사라져 흔적들로 기워져 더듬더듬 발화하는 곳임을 드러내며, (이) 공간을 다시/새롭게 특정하기보다 또한 정체화하기보다 그 공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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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아-오도라마 시티》: 나열과 대비라는 전시의 시각적 단면REVIEW/Visual arts 2026. 6. 7. 19:30
《구정아-오도라마 시티》는 작가의 이름과 제목의 혼합된 형식은 베니스비엔날레의 전시명과 작가의 간단한 식별 절차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표기 방식을 연장해 온 것일 수 있다. 전시를 재현하면서 다른 지역에서 시차적으로 펼쳐놓는 행위는 전시의 이전 맥락을 보존하는 한편, 그 전시를 물리적으로 해제하는 방식으로, 곧 더 친절한 언어의 서브 텍스트의 나열과 그 텍스트로부터 추출한 향들의 분포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아마도 비엔날레의 국가 박람회라는 형식 속에, 서구의 동시대적인 공통된 주제 대신에, 세계 속 다른 한국은 무엇인가를 나타내는, 이질성과 타자성의 기호를 체현함으로써 각인시키는 방식은 한국(인)이라는 원재료의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추출 방식과 비시각적인 산출의 실험으로 이행되었다. 작가는 한국인의 대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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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요·황예간, 《눈치채길 기다리며》: 감각하거나 해석을 통한 작품의 존재방식을 읽어내기REVIEW/Visual arts 2026. 6. 2. 19:18
황예간 작가의 비교적 덜 잘려나간 그래서 읽을 수 있는 글자 동시에 의미가 아닌 읽는 우리의 능력에 단지 대응하며 시각적으로 더 부각되는 기호로서의 글자와 많이 잘려나간 신체 부위들과 그 기능을 온전히 달성하지 못하는 배경 이미지, 그리고 잘려나갔지만 여기서 유일하게 주체가 되는 어떤 존재의 이미지, 그렇지만 특정 언어가 온전히 구성되지 않는 것과 더불어 특정 발화를 결코 완성할 수 없는 이미지가 중심된 위치를 차지하면서 회화를 보는 순서를 어느 정도 결정 짓는 바 있다. 그러니까 회화의 색감은 여기서 다소 부가적이며 오히려 도상의 해독 가능성의 차원에서 이 회화를 선점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거기에 물론 회화의 색 역시 따라붙는다. 〈찰싹!화들짝!풀썩!〉은 화면 위에 살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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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월, 《허공에 뜬 그림자》: 허공을 산출하는 그림자 혹은 그림자를 기워 내는 허공REVIEW/Visual arts 2026. 5. 28. 13:33
박시월 작가의 개인전 《허공에 뜬 그림자》에서 유리 프레임이라는 지지체는 형상이 기입되는 장소이자 형상을 가두며 흐릿하게 배어 나오게 하는 이미지를 구성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매체와 서사 혹은 알레고리, 곧 프레임이면서 이미지인, 프레임이거나 이미지인 작업의 양상은 접합의 양식으로부터, 이 프레임‘들’의 겹침으로부터 생산된다. 이로부터 “허공”과 “그림자”는 그 매체적 표출이거나 그 매체가 담고 있는 서사적 산출이 된다. 이 유리라는 성질로 인해 작품들은 일종의 조각이나 설치 작업의 일환으로 드러나는데, 그것은 캔버스와 물감은 하나의 평면이 아닌, 접합되는 개별 매체로 분기되는 가운데 성립하는,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전시명과 같은 세 작품에서, 즉물적으로 ‘그림자’는 작품에 비친 조명으로 인해 맺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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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경, 〈늦게 온 보살〉에 대한 주석: 이미 온 미래를 부인하며 마주하는 법REVIEW/Visual arts 2026. 5. 20. 13:15
빅찬경의 〈늦게 온 보살〉(2019, 단채널 영상, 흑백/컬러, 사운드, 55분.)은 곽씨상부(槨示雙趺) 서사를 미래의 재난을 경유해 불러오는데, 이는 내러티브의 설명으로 시작된 작품은 제의의 차원에 다다르는 수미쌍관의 형식을 이룬다.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었을 때 관에 불이 붙지 않다가 가섭존자의 도착 이후에 부처의 양발이 관 밖으로 나오고 비로소 다비식이 가능해졌다는 기존의 서사에서, ‘늦게 온 보살’은 등산 차림으로 산을 배회하던 여자의 모습으로 옮겨지는데, 이때 그에 대응하는 ‘석가모니’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은 그 여성의 행위가 시종일관 그 발에 대한 클로즈업의 순간을 위해 유예되었음에 조응한다. 곧 여성의 서사 안에서의 무목적적인 방랑은 전사의 부재, 상실에 대한 산만한 방어로서만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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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SPAF] 얀 마르텐스, 〈도그 데이즈, 오버 2.0〉: 몸이라는 착각 혹은 의무REVIEW/Visual arts 2026. 5. 18. 19:55
얀 마르텐스의 〈도그 데이즈, 오버 2.0〉(이하 〈도그 데이즈〉)은 브라 톱과 쇼트 팬츠, 레오타드, 크롭티, 네온 컬러의 레깅스 등의 의상을 입은 채 무릎을 굴신하여 앞뒤로 점프하는 발 구름 동작을 하나의 ‘토대’로 두고 그야말로 공연 전체를 거의 일관되게 관통하는데, 이는 흔들리면서 정확한 몸의 지층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자세는 제자리이면서 그렇지 않은, 나아가지만 다시 소급되는 몸의 정형된 기억을, 고착된 체계 아래 종속되면서 그것의 틈새를 찾아내는 것이 관건인데, 그것은 집단적 대열을 재정비하며 그리하여 유지하는 차원에서, 후반에는 그 틈새 자체로부터 집단을 재배열하는 것으로 나아가면서 그 체계 자체를 전복하게 된다. 따라서 〈도그 데이즈〉은 집단 체계 아래 종속된 개체들의 프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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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시우, 《비프리 B-FREE》: 비평가에의 풀이REVIEW/Visual arts 2026. 5. 17. 19:56
권시우의 《비프리》에는 권시우 자신의 목소리로 녹음한 하나의 랩 곡이 흘러나오는데―〈안티 비평가〉(2026. 사운드 설치, 8분 15초.), 이는 랩퍼 비프리(B-FREE)의 〈네르갈〉을 배경음으로 전유한 것이다. 음악 매체의 전용을 지시하는 제목은 비프리를 (일차적으로) 겨냥하고 독해하는 대신, 카세트테이프의 B면이 비어져 있음을 지시하는(b-free) ‘비프리’의 또 다른 의미로 이행되고, 이어 포스터 이미지와 실제 전시 조각―〈mixtape〉(2026)―의 오직 B면만이 일곱 개의 트랙으로 채워져 있음을 경유해, 그 부재를 자유의 위치로 바꾼다, 또는 공백으로서 주체의 자유로움을 현상한다. 하지만 이 이미지는 무엇보다 비평가 자신으로 (우선) 돌아옴으로써 어떤 환시로서 오지각을 동반하는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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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형제, 〈풍경〉에 대한 주석: 4·16 세월호 참사를 경유하여...REVIEW/Visual arts 2026. 5. 15. 13:33
경기도미술관의 세월호 참사 10주기 추념전 《우리가, 바다》(2024.04.12~ 07.14)는 4·16 세월호 참사를 다루는 작가의 여러 방식, 또 주제의 확장성과 연계성의 테마를 생각해보게 한다. 곧 세월호를 재현하거나 지시, 정의하려는 것 대신에 작가의 태도가 어떻게 세월호 참사를 상기하고 연장시키는지에 대해 판단하는 몫이 관람객에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사실 각 작품이 세월호 참사와 모두 상응하고 직접적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은 아니며, 이는 각 작품의 고유한 미학적 영역들을 ‘태도들’의 관점과 함께 전시의 주제적 차원에 따른 이차적 접근에 의해 획득되는 사유의 영역, 곧 큐레이팅에 따른 전유와 연결의 영역을 동시에 진단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중 무진형제의 〈풍경〉(2016)은 무진형제 특유의 스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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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회화》: 동시대의 회화성은 어떻게 이행되는가의 질문REVIEW/Visual arts 2026. 5. 13. 20:13
큐레토리얼: 회화의 동시대성을 외부에서 바라보기 “봄 회화”라는 전시명은 크게 작품과 상관되지 않아 보이는데, 이는 그 전의 《겨울 회화》(2024~2025, 대안공간 루프.)에 이은 계열적 차원에서의 기획으로, 봄이라는 시간 특정적 차원의 계절을 수식어 차원으로 차용함으로써 회화라는 매체를 탐색하고 성찰하기 위한 본래의 목적을 봉합한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회화들을 추가적으로 따라붙는 어떤 내용과 이념에 직접 복무시키는 대신, 실재적 대상으로 두고 다루기 위함으로, 회화 자체가 동시대에 갖는 의미를 지시하는 차원에서 큐레이토리얼 실천을 상정한다. 그에 따르면, 회화를 바라보는 외부―“제도와 시장”―의 맥락은 회화가 성립하고 변화하는 어떤 조건과는 독립적이며, 마찬가지로 회화의 내재적 조건 역시 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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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태 개인전, 《개울가의 나한들》: 본질적 삶으로 향해 가는 특이한 노동의 형상들(이라는 과도기적 단계)REVIEW/Visual arts 2026. 5. 10. 21:56
박은태 작가의 개인전, 《개울가의 나한들》에서 가장 첫 번째 자리한 〈노동산수도2〉(2023. 캔버스에 아크릴, 130×194cm.)는 전시에서 가장 인상적이며 또한 예외적인 작업이다. 바로 옆의 〈노동산수도1〉 (2023. 캔버스에 아크릴, 130×194cm.)는 그것보다 원형적이고 기초적인 차원에서 먼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는데, 〈노동산수도2〉는 그것을 더 확장하는 한편, 완성한다. ‘노동산수도’는 과정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초기 시작 단계를 보여주는, 〈개울가의 나한들〉(2024. 캔버스에 아크릴, 130×388cm) 에서처럼 그 에스키스를 같이 보여주고 있지는 않지만, 인물들로 결국 수렴되는 작업임에도, 인물보다 대략적인 풍광의 전체적인 구도를 선의 흐름과 리듬으로 구성했음을 일러주는 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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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ko + 하상철, Marina, 《침묵만이 배반하지 않는, part. 1》(큐레이터: 윤태균): 예술의 조건(에 대한 이념)과 소리로써/로서 이념REVIEW/Visual arts 2026. 5. 6. 14:59
Motoko+하상철과 Marina의 《침묵만이 배반하지 않는, part. 1》에서 윤태균 큐레이터는 언어의 빈자리―‘침묵’―에 예술 자체의 목소리를 두려는 일종의 강령적 언어로서 서문을 발화한다. 이때 과잉되고 관념적이며 또한 주지주의적인 그의 언어는 하나의 결론을 향해 닫히면서 작품의 자리를 보전하는데, 곧 자신은 순수 언어로서 사라지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언어 자체만을 지시함으로써 또는 언어로서 닫힘으로써 그 ‘바깥’의 세계가 가진 역능을 상정한다. 이때 그것은 낭만적인 차원에서 전제되는데, 그곳은 언어가 미치지 못하는, 미칠 수 없는, 미쳐서는 안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60년대 수전 손택의 ‘해석에 반대한다’ 식의 유사 논지는 한편으로 실제 현장에서 무차별하게 생산되는 언어, 그러니까 전시와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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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디를 마실 것 같은.》(기획: 이성휘, 이선주): 회화의 어떤 분기점들, 그것이 시작되는 시점들REVIEW/Visual arts 2026. 5. 5. 21:08
강예빈, 회화적 얼룩. 강예빈의 연이어 배치되어 있는 네 개의 그림, 고양이를 아래로 내려다보는 여자를 그린 〈Moment〉(2025, oil on canvas, 162.2×97cm.), 모노크롬에 가까운 〈Turbidity〉(2023, oil on canvas, 65.1×53cm.)와 〈The Back of the Eyelid〉(2025, oil on canvas, 45.5×37.9cm.), 무희들을 부감 쇼트 시점에서 그린 〈Embers〉 (2025, oil on canvas, 130.3×97cm.)는, 모두 하나의 비가시적 원의 형상을 구현한다는 점에서 공통되는데, 은밀하게 또는 명확하게 드러난 그 원형의, 각각 빛, 어스름함 또는 얼룩(2), 치마는 추상과 구상의 일반적인 구분을 내파하는 회화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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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은, 청각이 다양한 세계를 경유하는 방식들REVIEW/Visual arts 2026. 5. 5. 20:34
김영은의 작업들 대부분은 청각의 자리를 시각의 그것보다 앞세우는데, 이는 빈 배경 위에 적히는 자막이 거의 유일한 시각적 기표로 자리함을 의미한다. 사운드는 언어를 명시하는 목소리와 그 밖의 비언어적 소리로 나뉠 수 있는데, 이는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이 화면을 대부분 잠식하고 이끌어가며 그것에 대한 단일한 주체의 의지가 투여됨을 의미한다. ‘미래의 청취자들에게’ 시리즈―〈미래의 청취자들에게 III〉(2025. 단채널 비디오, HD, 컬러, 사운드(스테레오), 12분.), 〈미래의 청취자들에게 I〉(2022. 단채널 비디오, HD, 컬러, 사운드(스테레오), 8분.)―는 다른데, 이는 그것이 내레이션이 주축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사운드 편집 소프트웨어들을 사용해 목표로 한 사운드를 변용시키는 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