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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니쉬발레, 〈EGG.jpg〉(안무 이해니): 상품 미학에 침잠된 존재의 양식REVIEW/Dance 2026. 8. 17. 20:28
상품과 존재의 혼동 〈EGG.jpg〉는 10구짜리 계란판 안의 달걀과 동일한 크기의 타원형의 다양한 인형 얼굴들이 뒤섞인 이미지를 포스터에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그래픽 이미지가 출현하는 패널에서 상품 광고, 그리고 각 존재들의 캐릭터로 변모되는 양상들로 구체화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컨베이어벨트 공장 시스템에서 포장되어 상품화되는 달걀, 그리고 그 전에 그것이 가능한 닭장의 케이지를 각각 이미지 안의 구조, 그리고 실제 물리적 구조물의 동원을 경유해 표현하면서, 대중 소비 사회 속 대상화는 사물에서 인간으로 이르는 광범위한 범주에 적용됨을 함의한다. 이는 전 작, 〈꼬끼-오〉에서 소비되고 남은 닭 뼈들로 이뤄진 인류 이후의 지구를 배경으로, 닭이 유령적으로 점령한 세계에 대한 환상을 표현하는데,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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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문, 〈플란다스의 미친 개〉(정진새 작/연출): 인간적인 것 너머로부터REVIEW/Theater 2026. 8. 17. 20:27
인간의, 인간으로부터의 해방 〈플란다스의 미친 개〉는 영국의 소설가 위다(Ouida, 1839-1908)의 동화 『플란다스의 개』(1872)의 서사와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Napoléon, 1769-1821)의 역사를 중첩시키는데, 이는 나폴레옹이 일으킨 전쟁에 동원된 아이와 동물의 시선을 통해 전쟁의 끔찍한 면모를 환기하기 위함이다. 동화 원안보다는 쿠로다 요시오(黒田昌郎, KURODA YOSHIO, 1936-) 감독의 1975년 일본에서 제작된 후 한국에서도 방영된 애니메이션의 이미지가 결정적으로 보이는데,애니메이션의 O.S.T 부분 역시 초반에 등장한다. 곧 〈플란다스의 개〉의 만화적 생명력, 곧 시리즈물이 가진 일정한 구조적 틀과 형식으로부터 반복 학습을 거쳐 등장인물들이 주는 친연함과 끊임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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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 〈젤리디너〉(안무 이재영): 자본주의의 학습 기계 혹은 자본주의적 상상계의 욕망!?REVIEW/Dance 2026. 8. 17. 20:26
예기할 수 없는 선물의 쾌락 〈젤리디너〉는 화려한 색감의 전면과 상수 가의 핀볼 게임 세트로 구성된 무대―상수의 핀볼 기계의 핀들 안쪽에 각종 배관들이 그려진 그래픽 패널 막, 그리고 하수의 진짜 핀볼 기계들이 있다.―로부터 연속된 프로세스로 점철되는 포드 시스템의 메커니즘을 추출, 연장해 낸다. 일종의 틀 안에서의 도미노 게임과도 같은, 핀볼 기구 안의 자동성과 연속성이 타동적 차원의 노동으로 연장되는 것인데, 이는 최면에 가까운 그 자동성의 움직임이 사물이 아닌 존재의 차원으로 거듭날 때 진정 문제적인 것으로 드러난다. 곧 일종의 핀볼 기계의 공이 되는, 그리고 동시에 그 공을 따라가는 시선의 최면성 자체를 체현하는 동시적 작용은, 컨베이어벨트 노동의 관성적 반복 행위로서 균열 없이, 문제없는 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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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콘데 데 토레필 El Conde de Torrefiel, 〈호수의 빛 La luz de un lago〉: 서사라는 경계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26. 8. 17. 20:19
시작을 정초하기 〈호수의 빛〉은 무대 위에 스크린을 도입하며 영화와 연극을, 그리고 영화와 현실을 맞세우는데, 이는 스크린 자체―이미지의 지지체―의 조작성, 곧 극장에 임시 가설되고는 하는 스크린에서 이미지가 상영되며, 그것을 가설하거나 그것과 조응되는 ‘바깥’의 스태프~배우의 존재가 영화와 실제 관객 사이를 가로지르는 관객이 됨에 의거한다. 이는 비단 영화를, 이미지를 가능하게 하는 게 실제로는 바깥의 신체성임을 보여주는 것일까. 사실 영상은 짧게 상영되고 그치는, 상연의 형식 아래 이미지의 예시로서 주어지는 예외로 한다면, 순전한 이미지가 아니라, 들리지 않는 목소리, 곧 자막이다. 그것은 이미지를 보는 바깥의 신체를 묘사하며, 그들의 의식과 반응을 묘사한다. 이 화자의 차원만이 이미지와 바깥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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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환 , 김광우, 《띵찰》: 사유하기로서 사물 다루기REVIEW/Visual arts 2026. 8. 17. 19:52
전유의 방식 ‘띵찰’은 명찰의 오지각적 표기를 전면화한 것으로, 전시 안의 모든 작품은 명찰 안에 담겨 있다. 명찰이 실은 이름에 대한 지시, 분별의 기능적 오브제인 것에 상응해, 비닐과의 틈을 거쳐 식별을 요구하는 배경면의 텍스트들이 자리하는데, 이것은 거의 주재환에게서 온다. 그리고 반대로 순수 이미지들, 구체적으로는 고전 명화와 같은 이미지들을 잘라내고 그 위에 채색을 더해 (또는 그 반대일 수 있는 과정 아래) 전유하는 등의 어떤 이미지 공작을 거친 이미지들―김광우 작가의 그것―을 뚫고 그것들이 자리한다. 또는 그 반대로 어떤 텍스트들 배면에 이미지들이 있다. 아마 전시의 표층적 양상은 이와 같을 것인데, 이 명찰 규격의, 명찰로 포장된 작업들은 동시에 그만큼의 유격을 안고 존재하며, 개당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