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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무브먼트, 〈맨땅〉(안무 하지혜): 근본적이거나 핍진한 맨땅에 대한 두 가지 알레고리REVIEW/Dance 2026. 7. 25. 13:33
지지체로서 바닥 〈맨땅〉은 맨땅이라는 육체에 대한 지지체를 하나의 기원으로, 영도로 두는데, 이는 맨땅을 매체로서 탐문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맨땅의 연장선상에서 움직임을 탐색해 간다는 걸 또한 의미한다. 소위 맨땅에의 몸, 맨땅과의 교감 작용을 통해 〈맨땅〉은 무엇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인가. 이는 쉬이 아무것도 없이 시작하는 우리의 현실, 곤궁한 삶에 대한 상투적인 비유로 환원될 위험을 갖는데, 그것은 신체적인 것이 단순히 비언어적인 것으로 재현될 수 있는 위험의 그 반대편에 위치한다. 곧 신체-움직임이 실은 언어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경유할 수밖에 없으며, 또한 그 언어를 궁극에는 가로지를 수 있어야 한다는, 가로지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언어와 신체가 양립할 수 있는 근거를, 또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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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다페 초이스] C2dance, 〈모델하우스〉: 실재의 몸의 진실에서 현기증 나는 가상 환경으로REVIEW/Dance 2026. 7. 25. 13:33
〈모델하우스〉는 시작 시의 워킹패드, 이후 등장하는 투시도법을 차용한 파란색 그래픽 이미지 패널로 구현한 ‘모델하우스’를 주요한 오브제로 등장시킨다. 전자가 신체의 직접적 지지체라면, 후자는 배경으로서 공간감을 가설한다. 이층 침대가 잠깐 등장하는 한편, 회색 정장에 흰색 선분이 동일한 간격으로 연이어 그려져 4선을 이룬, 특정 브랜드를 떠올리게 하는 무늬로 응결되는 의상 역시 하나의 주요한 이미지를 그린다. 전자에서, 처음 발전기와 같은 일정한 동력이 부여되는 장치가 내는 소음 아래, 어둠 속에서 모로 누워 꾸물꾸물 굴곡이 있는 구조물을 통과해가는 존재들의 첫 장면은, 컨베이어벨트 위에 부착되는 몸의 적나라한 양상을 보여준다. 이는 비교적 무대 바깥쪽 중앙에 임시로 위치하는―한번에 치워지는―,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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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애,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응시하는 섬들처럼〉: 매개되지 않는 실재의 몸들REVIEW/Performance 2026. 7. 25. 13:33
번역, 시차적인 혹은 연대하는 임지애의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응시하는 섬들처럼〉(이하 〈섬들처럼〉)은 제목과 같이, 두 출연자인, 일본과 독일에서 각각 거주하는 재일조선인 4세 조혜미와 안무가 임지애의 한국(의 춤)이라는 공통점을 하나의 결절점으로 두고, 하나의 바다를 사이로 마주하고 있는, 일본과 한국의 역사-지리적 차이로써 그 둘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의미화하는데, 역으로 일본과 한국의 부정적 관계성의 바깥으로 출현하는 실제적 차원의 의미-흔적을 특히 조혜미가 체현하고 있음에서 이것이 가능하다고 하겠다. 이때 조혜미가 일본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는 특수한 한국인의 지위를 선취한다면, 그것과 공통의 근거를 이루는, 곧 그것에 공감할 수 있는 임지애는 그 반대편에서 한국의 환유물이 되는데, 이로써 제목의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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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헤르×엠비규어스댄스컴퍼니, 〈집 속의 집: 문 밖의 문〉(서연수 안무, 강요찬 연출, 김보람 협력 안무): 절대적 경계를 기준으로 한 관계의 상대성REVIEW/Dance 2026. 7. 25. 13:32
모헤르×엠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집 속의 집: 문 밖의 문〉(이하 〈집 속의 집〉)은 무대 막과 문틀 형상의 긴 높이의 직육면체 철재 구조물로써 안과 밖의 경계를 표시한다. 존재들은 그 경계에서 서로 마주하며 동시에 나뉜다. 그 ‘경계’는 두드리거나 열어야 하는 문 그리고 투과하는 투명한 창문의 메타포를 인장하며, 동시에 각자가 내속한 공간의 한계를 나타낸다. 처음 막이 일부 걷히며 틈이 생긴다. 그러니까 〈집 속의 집〉이 막 너머로, 저 너머로 이행하는 서사가 아니라, 그 막을 둘러싸고 분기된 두 영역의 영원한 간격을 확인하는 데 서사의 초점이 자리함을 환기할 필요가 있는데, 그 틈은 그것의 ‘속’을 불안하면서 동시에 기대를 안기는 차원에서 들여오면서 동시에 그 밖, 가장자리에 머문 신체의 영역에서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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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더 벨트〉: 끝없는 소진을 위한 충전의 기술들REVIEW/Dance 2026. 7. 25. 13:32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더 벨트〉는 음악과 조명의 끊임없는 낙차 안에서 꼿꼿하고도 유유하게 대열을 이루는 일군의 선글라스 낀 무용수 집단이 보여주는 역동적 자태와 가속하는 몸짓에 대한 경이와 감응을 꾀하는 작품이라 하겠다. 또는 세계의 변경이 있고, 각기 다른 몸들이 있고, 그 몸들이 일정 정도의 양식성과 구조적인 상응의 특성을 띠고 질주함을 지켜보는 작품이라 하겠다. 그것은 이른바 우스꽝스러운 숭고미라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거기에는 어떤 특별한 서사가 없으며, 단지 하나의 서사가 있다면, 이는 그것이 어떤 소진을 향해 간다는 것이다. 감응의 차원은 소진을 유예하는 지속의 힘, 아니 어쩌면 소진 자체라는 점에 있으며, 따라서 이들의 우스꽝스러운 외양은 그 소진되는 바를 가장 진정한 것으로 보여준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