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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라, 〈숨은 존재들〉: 존재의 용출로서 세계 또는 한계적 신체를 향하여PREVIEW/Dance 2026. 11. 6. 14:47
망으로서 표면 〈숨은 존재들〉은 역설적으로/필연적으로 숨은 존재들의 현시됨을 보여주는데, 이는 지나치게 긴 첫 등장 장면 이전에 이들의 숨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극장 자체를 현시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곧 극장 무대를 전유하여 회전 무대 바깥으로 4면의 객석이 X자로 교차하여 마주 보는 구조 아래, 하수와 상수의 날개 위아래로 이 ‘숨은 존재들’이 등장하기까지 약간의 지연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공연의 의도적인 지연이 부재의 공간과 그것의 식역이 발생하는 공간의 틈을 현상한다. 시간의 간격은 곧 공간의 간격이다. 프로시니엄 아치의 하수 무대 가, 객석 끝에 맞물리는, 주로 털실 뭉치로 이뤄진 패치워크 망이 무대 바깥으로 흘러내리듯 위치하여 공간의 경계를 가리키고 있는데, 이는 무대의 몸과 공간의 식역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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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역행기〉(김주희 극작, 신재훈 연출): 역사를 전승하여 현재를 재활성화하는 법REVIEW/Theater 2026. 11. 6. 14:47
모험 서사로써 역사에 다가서기 〈역행기〉는 8년간 방에서 고립되어 있던 인안나가 삶을 포기하려던 순간 지하 세계로 들어가며 이곳에서 과거의 고통받았던 기억들을 가지고 있는 자신의 가족들을 만나고 다시 지상으로 돌아오는 일종의 모험 서사의 양식을 지닌다. 이때 60년에 걸친 근대 한국 빈민 (노동자) 계층 여성의 삶을 4대에 걸쳐 나열함으로써 가려져 있던 여성 역사를 발굴하고 조명하는 한편, 그들 간 이해와 연대의 차원을 모색한다. 방에서 나오지 않고 집에 문장들을 새겨 넣던 인안나는 재개발 구역에 포함되어 압살되거나 사라질 위험에서 벗어나 그들을 듣는 이가 되며, 둡은 인안나와 동반되는 그에 대한 사관이거나 기록 매체 자체로, 그는 인안나를 새겨 넣다가 인안나를 따라서는 인안나가 듣는 말들을 새겨 넣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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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은의 혀〉(박지선 작, 윤혜숙 연출): 여성의 몫을 재활성화하기 또는 재가시화하기REVIEW/Theater 2026. 11. 6. 14:46
하층노동자로서 여성의 보편적인 상 〈은의 혀〉에서 여성의 일상적인 노동은 하층 노동자의 지위로 낙하한다. 정은(이지현 배우)의 위로 역시 상조 도우미라는 일종의 직업으로 나타나지만, 이 역시 그러하다. 정은을 통해 극은 여성의 노동이 어떻게 평가받고 있고 또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굳이 일상으로 그것을 옮겨 오지 않고 극단적인 캐릭터의 설정을 통해서. 이는 통속적인 여성에 대한 캐릭터가 아닌, 여성이라는 역사의 이념을 새롭게 형상화하는 작업이다. 다만 이 작업은 전자의 차원처럼 비춰지는 바가 크다. 억척스럽고 넉넉하고 넉살 좋은 캐릭터와 조용하고 고고하고 예민한 캐릭터는 여성 존재의 극단적인 나눔이다. 양분된 두 캐릭터는 내재적으로 만나고 교류하기보다 사건을 공유하는 차원에서 잠깐 만나며 실은 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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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소, 〈물의 시간〉: 반향되는 자연, 공간, 신체REVIEW/Music 2026. 11. 6. 14:46
이동하는 혹은 건축적인 〈물의 시간〉은 유휴화된 하수처리시설들을 재생해 만든 맑은물상상누리에 위치한, “하수처리장의 슬러지를 농축하던 농축조 5개 동을 재활용한 공간”인 비포어 전체와 마지막 장소인 비전타워 공간을 활용해 이동하며 전시와 공연을 각기 다른 여러 장소와 맞물려 경험하는 방식으로 열렸는데, 이는 대부도에 살며 서해의 바다와 갯벌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음악 작업 외에도 사진과 영상 등을 찍고 글을 쓰며 모은 방대한 자료들을 흐트려 놓기 위한 적절한 전략이 된다. 그것이 어떻게 우연한 사건의 단면으로서 제각각 다가왔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아카이브의 밀도를 응축시키는 차원이 아니라―나아가 아카이브로서 밀도를 응축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은 거꾸로 분산되고 편재된다. 곧 어떤 장소 ‘안’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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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반야 아재〉(작 안톤 체호프, 번안·연출 조광화): 외밀한 충동으로서 무대 - 무대-공간의 층위로 접근해 본 〈반야 아재〉REVIEW/Theater 2026. 11. 6. 14:46
역사라는 외부 〈반야 아재〉는 안톤 체호프(Anton Pavlovich Chekhov, 1860~1904)의 『바냐 아저씨』(1899)를 1930년대 말 일제강점기의 충청북도 영동 한 면에 소재한 한옥과 정미소를 배경으로 옮긴다. ‘아저씨’ 역시 “아재”라는 한국적 표현으로, ‘바냐’ 역시 “반야”라는 불교식 한자 용어로 재적용되는데, 이 전반적인 번안으로부터 가장 두드러지는 지점은 시간보다는 장소성으로, 일제강점기를 상정하는 일본 순사 한 쌍이 야심한 시각에 한옥 정원을 가로질러 반복적으로 출현함은 그들이 불쾌하고도 불길한 존재의 침범으로서 진정 ‘외부’적인 것이 됨에도, 이는 일종의 엑스트라-맥거핀으로서 처리된다. 곧 이 일본이라는 상징성을 환유하는 존재들의 이질성은 집단 무의식적 차원에서 인물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