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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비밀기지, 〈몸 기울여〉: 하나로 맞물리는 다른 두 개의 세계REVIEW/Theater 2026. 2. 25. 14:02
극단 비밀기지의 〈몸 기울여〉는 길고양이를 찾는 두 인물과 그 나머지 인물들을 평행 몽타주로 교차시키거나 대위법으로 교차, 중첩시키는데, 특히 후자를 통해, 분화할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변경할 수는 없는 연극의 물리적 장소를 두 축의 인물이 동시에 경유하는 장면들을 적극 활용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하나의 프레임 바깥으로 비치는 단일한 평면에 모든 인물이 제각각의 포즈를 취하다가 음악에 맞춰 군무의 제스처를 취하는 것은, 〈몸 기울여〉의 심리우화적인 역설을 명시하는데, 이는 그 전에 서로 다른 목적으로 고양이를 찾는 두 인물과 거기에 더해지는 고양이는 삼각 편대를 이루면서 쫓고 쫓기는 인과관계의 폭력적 사슬을 환유적이고 실재적인 차원에서 감각화함을 하나의 코드로 완성 짓는 것이다. 곧 우리는 살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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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재하, 최가영, 《방금 전의 소문과 오래된 증거로부터》: 이미지의 서사를 수행하고 체현하는 방식들REVIEW/Visual arts 2026. 2. 25. 13:46
반재하와 최가영 작가의 2인전 《방금 전의 소문과 오래된 증거로부터》는 작가가 참여, 개입하는 각각의 영상 작업, 〈허풍선이, 촌뜨기, 익살꾼〉과 〈103년 전의 가이드북과 털이 자라나는 게〉을 기준으로, 그것과 관계된, 그 부산물로서 재료들을 다소 산만하게 병치하는 방식으로 전시된다. 반재하의 작업이 2018년의 것이지만, 여전히 작업 안팎의 사회와 시대가 동일하다는 점에서 유효하다면, 최가영의 작업은 모두 올해 제작된 것으로 과거의 흔적들을 추적한다는 점에서 유효할 것이었다. 곧 즉물적으로 제목에 대입해 보자면, 반재하의 작업은 조금 전의 소문이라면, 최가영의 작업은 오래된 증거일 것이다. 이 둘은 이미지의 경계, 경계를 넘는 이미지의 차원을 탐구하는 데 있어 모두 북한이라는 이미지를 경유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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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니 안무, 〈Pan & Opticon〉: 우리를 붙들어매는, 자유의 장치REVIEW/Dance 2026. 2. 25. 13:34
이해니 안무가의 〈Pan & Opticon〉은 18세기 말 영국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이 고안한 원형 감옥을 뜻하는 ‘판옵티콘’을 어원적으로 다시 분절해 인터랙티브한 환경 조성으로부터 주제의식을 설정해 낸다. 곧 모두[편재하는(pan)]와 보다[시각(opticon)을 가진 존재(on)] 사이에 간격을 둔 간격을 통한 절합을 통해, 모두‘가’ 보는 능동적 보기의 산출과 모두‘를’ 보는 일방향적 보기의 산출을 기약하며, 본래적 의미에서의 후자를 전자의 환경으로부터 추출해 내고자 한다. ‘판옵티콘’은 20세기의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가 보이지 않는 시선에 의해 내면화되는 감시 체제의 일환으로서 규율 권력을 가리키기 위해 새롭게 발굴해 내며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이 되었다. 〈Pan & Opticon〉은 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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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주 작/연출, 〈사사로운 사서〉: 사사로울 수 있는 장소 위의 주체들REVIEW/Theater 2026. 2. 25. 13:22
북부 도서관이라는 가상의 실재하는 도서관의 사서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사사로운 사서〉는, 도서관 일부를 그대로 옮겨 놓으려 한 무대 세트의 배경 아래, 도서관의 일상 업무의 세부적 요소를 바탕으로 한 대화의 시작으로써 극사실주의적 토대를 마련한다. 물론 이는 일차적인 것이며, 장마 기간의 엄청난 비로 인해 발생한 지하 보존 서고의 침수 피해로부터 책 복원 작업이라는 비일상적 차원의 특수한 업무의 긴급한 미션이 사서들에게 주어지며, 이는 책과 이들의 관계성을 묻고 책을 매개하고 다루는 이들로부터 어떻게 책 자체가 세계를 마주하는지, 나아가 세계를 반영하는 메타포로서 확장된 책의 모습이 펼쳐진다. 보존 서고 한편에 우물이 있다는 괴담은 망각된 한국 근현대사의 알레고리들을 담는 일종의 판도라의 상자로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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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해숙 개인전, 《파랑의 여항》: 자본주의 이후의 고고학, 그리고 (비)주체적 투사REVIEW/Visual arts 2026. 2. 24. 20:50
용해숙 작가의 《파랑의 여항》은, 그간 이어온 그의 파노라마 연작의 계승이다. 그의 작업은 사회적-정치적 차원의 세계를 또는 세계에 대한 관점을 현시해 왔다. 그리고 전자의 차원에서 《파랑의 여항》을 볼 수 있으며, 여기서 이 세계의 연합체로서 존재들의 연결 양상이 부각되는 가운데, 그 풍경 안에 속하는 인물들은 연극적 차원에서 미션을 하달받아 그것을 수행하는 중이다. “파랑(波浪)의 여항(閭巷)”은 오기이거나 오인을 유도하는 제목이다. 그를 통해 파랑색 여행에 대한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병기되는 한자를 알더라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주어는 여항이 아니라 파랑이다. 주거지들이 집산된 곳의 삶의 내력에 관한 메타포가 아닌, 여러 물결 자체를 의인화하여 삶을 전환시킨 것이다. 장소의 선택과 그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