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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구 작, 전윤환 연출, 〈통로〉: 소통의 불가능성 혹은 시차로부터REVIEW/Theater 2026. 6. 5. 21:36
상연으로서 통로 〈통로〉는 학교 내 담배 피우는 장소를 공론의 합의에 입각해 가설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것이 아니라 어떤 면피의 통로임을 드러내는 지점에서, 〈통로〉는 상징계적 잔여 또는 실재에 다다르는 듯 보인다. “통로”는 학교 개구멍에서 이어지는 담벼락 사이 공간으로, 마을과 바깥의 경계에 있다. 이는 학교의 ‘권’역에 있지만, 마을 주민(다 은)의 개인 부지를 침입한다는 항의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며, 담장의 위치를 다투는 측량의 사태―측량사(변준섭)의 소환―로까지 번진다. 근본적으로 그 두 행위자의 의도는 학생이 담배 피우는 장소를 비가시적인 것으로 두는 것에 있는데, 그것이 그들을 자유롭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학생(최현조)의 흡연 자체에 대한 비판, 곧 부정성을 갖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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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공독무 서울교방 6인전: 깎여나가며 자리 잡는 형식들REVIEW/Dance 2026. 6. 5. 21:36
6인전이 지시하는바, 홀로 춘다는 ‘독무’는 홀로 닦아 낸다는 ‘독공’과 운을 맞추는 기능적 구성에 가깝다. ‘독’은 완전함의 요체를 가정하고 거기에 대한 1인칭의 신화적 서사를 가설한다. 그 완성을 위한 스스로의 깎여 나감을 감내하는 지난한 노력의 비가시적 시간이 ‘독’이며, 그 ‘독‘의 시간이 펼쳐지는 건 침범하지 못하는 신성의 영역에 다다르게 됨을 암시한다. 곧 6인전에서의 각각의 방들, 일종의 모나드들은 혼자만의 온전한 공간을 구성한다. 제목에 가정되지 않은 “온습회”는 “근대 시기에 권번에서 수련생들의 예술적 기량을 공개적으로 발표”했던 “행사”로, 여기에는 다시 대타자의 시선이 들어온다. 그것은 완전함의 요체에 선행하는 엄격함의 틀과 가치가 전제되며, 전통의 확립은 연대기적 시간 안에서 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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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승세 작, 심재찬 연출, 〈만선〉: 시대의 한계와 변경에서 이야기하다REVIEW/Theater 2026. 6. 5. 21:36
〈만선〉은 바닷가 마을에 사는 어부 곰치와 그의 가족, 구포댁, 도삼, 슬슬이의 삶을 중심으로 다루는데, 이는 지극히도 비극적인 양상으로 흘러간다. 그 비극의 원인은 무엇보다 선주 임제순의 급작스러운/무리한/얄궂은 빚 독촉의 시점, 곧 부서 떼가 가득 밀려오는 시점에 배를 묶으며 요구하는 빚으로 인해 곰치가 바람이 심하게 불어오는 시점에 무리하게 배를 겨우 띄우게 되고, 당장 상환일을 앞둔 상황에서 엄청난 만선의 결과를 가져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된 것이기 때문이겠지만, 이는 결국 곰치의 고집스러운/굳건한/독단적 의지, 그리고 그에 선행하는 맹목적인 열정 때문인 것으로 환원되는 듯 보인다. 먼저, 자기 소유의 배가 없는 곰치는 선주 임제순에게 빚으로 묶여 있으며 동시에 배의 이용권 역시 묶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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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실론 작, 김재엽 연출, 〈베를리너〉: 이국성으로서 자유에 대한 이념REVIEW/Theater 2026. 6. 5. 21:36
〈베를리너〉의 무대는 원형 광장을 상정한다.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평화의 현재를 결말의 풍경으로 제시함에 따라 광장이라는 장소에는 초월적 이념으로서 메시지를 부여되며, 밤과 정전의 몇 순간을 제외한 시종일관 밝은 무대의 조도 설정에 따라 실질적으로 그 광장을 완성하는 건 옆에 나오는 그래픽 이미지가 아닌, 마주하고 있는 관객이다. 이 광장을 관통하는 건 2층 높이의 난간으로 이는 연극의 해설자의 독립적인 위치와 예외적 영역에서 베를린을 횡단하는 사다리, “저쪽”으로 가기 위한 “이쪽”의 말미로 상정되며, 이 분리된 경계 영역에서의 여러 죽음의 장면을 불러옴으로써 파생되는 트라우마의 상징적 이미지로 자리 잡는다. 현실과의 간격 아래, 잠재하는 기억의 이미지는 시선을 방해하고 공간을 관통하고 있음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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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젊은안무자창작공연] 박주환, 〈무언의 삼각형〉, 윤나영, 〈한낱 작은 존재들〉, 김재권, 〈생각 조종자들〉 리뷰REVIEW/Dance 2026. 6. 5. 21:35
김재권, 〈생각 조종자들〉: 나로서의 너의 현상학 생각을 조종한다는 건 몸짓을 통해 어떻게 표현 가능한가. 한 남자(박현규)와 여자(고시아), 마네킹이 등장하는 〈생각 조종자들〉에서 한 남자가 부착하는, 한 남자에 부착되는 마네킹 혹은 여자의 표현에서 보면, 그것은 타자가 이전된 형식으로서 ‘나’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곧 몸짓이 나의 의식적 주체성을 상대에게 저당 잡힌 채 발현되는 것이라는 차원에서 무의지적으로 산출될 때 나의 생각이 조종되고 있음이 표현될 수 있다. 그렇다면 생각을 조종당하는 것과 그 반대의 존재가 하나의 짝을 이룰 것인데, 거의 둘씩의 관계에서 생각 조종자’들’은 어떻게 가능한가, 또는 또 다른 누구를 호명하는 것일까. 〈생각 조종자들〉은 인형극의 원리를 차용하고 있는데, 뒷모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