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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진, 하지민, 〈밤짐승 놀이패〉: 역사를 뒤집기 또는 존재를 입기로서 수행REVIEW/Performance 2026. 5. 11. 20:31
조현진, 하지민의 〈밤짐승 놀이패〉는 동일한 크기로 분할, 배열된 거대한 “이동식 배경막”을 뒤집고, 수거하고, 바꾸고, 바닥에 던지며, 일정한 간격으로 자리한 집단이 여러 카드를 동시에 내보이거나 하는 일종의 “카드섹션”의 형식을 변주한다. 이때 적용되는 집체적인 움직임은 통일성을 지향하는 “매스게임”에 가까워지는데, 이는 의례의 비의성을 기계적 합리성으로 분산시킨다. 그것은 제식과 가까운데, 이때 제목이 가리키듯 “밤짐승”은 재현되지 않고 전문적으로 수행된다―“놀이패”―. 여기서 배경막은, 카드는 모두 존재를 초과하므로, 행위는 찰라적이기보다 지루한 수공업적 노동에 가까워지는데, 엄밀히 카드의 반 바퀴 회전, 곧 카드를 떼서 카드 중앙 상단의 홈을 다시 후크에 거는 이 행위는, 배경에 부착되는 형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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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 폼므라(Joël Pommerat) 작·연출, 〈이야기와 전설〉: 인간의 편견을 (재)경유하는 로봇REVIEW/Theater 2026. 5. 11. 20:30
조엘 폼므라 작, 연출의 〈이야기와 전설〉은 안드로이드―“AI 휴먼”―가 일상에 상용화된 시점에서, 로봇이 인간에게 건네주는 의미를 탐색한다, 주로 청소년 세대의 자의식과 연애와 사랑을 경유하며, 반-페미니즘의 기류를 감지하면서, 그리고 가족 안에서 그것을 정위하면서. 이는 인물들의 개별 서사와 관계가 빚어내는 형상(이야기)보다는 인물들에 놓이는 예고되지 않은 더 큰 서사의 축(전설)이 어떻게 그 이야기를 조직해 내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미래 시제의 ‘가정’은 이제 과거의 이야기로 들려오기 시작한다. 첫 장면의 양극단에 선 아이와 성인 여성 간의 대화에서는 쏟아지는 아이의 매우 거친 말들로부터 체화된 남녀 차별적 사고를 추출해 낼 수 있다. 이는 여성의 차분하고 끈기 있고 현명한 대처에 의해, 일정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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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쿼드 초이스, ‘다른, 춤을 위해’ Part2: 불균질한, 변증법적 대치의 흐름REVIEW/Dance 2026. 5. 11. 20:29
이루다, 〈Nu Black〉: 기괴한 이미지 아니 신체로부터 이루다의 기본적 양식은 보통은 검은 토슈즈와 상의 아래, 기괴한 펄럭임과 어긋난 스텝을 기초로 강렬한 캐릭터를 구축해 낸다. 바텐 앞뒤 여러 층차를 구성하는 프로젝션의 중층적 시각적 양상이 독자적인 군무를 시행하는 가운데, 이러한 공간에의 입자적 포석에 상응하여 〈Nu Black〉은 무용수들의 다양한 배치와 등장으로 입체화된다. 이는 사이키델릭한 이미지의 영도, 움직임과 배치의 끊임없는 변경을 통한 중첩된 이미지의 연쇄 작용을 경유하면서 오히려 캐릭터의 기괴함을 강화한다. 그것은 형해화된 캐릭터의 표층성을 지시한다. ‘기괴한 펄럭임’은 팔부터 몸통으로 번져가는 상체 전반의 움직임의 형태적 유사성을 가리킨다. 이는 움직임 전반을 관통하는 시작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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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쿼드 초이스, ‘다른, 춤을 위해’ Part1: 불균질한, 변증법적 대치의 흐름REVIEW/Dance 2026. 5. 11. 20:25
쿼드 초이스는 발레, 현대무용, 한국무용에서 각각 두 명의 안무가의 기존 작업을 선택해, 이를 재편집, 재구성하여 두 번의 무대로 올리는 방식이다. 첫 번째 파트는 윤별의 〈갓GAT〉, 김재덕의 〈BreathingAttackII〉, 정보경의 〈안녕, 나의 소녀: 디렉터스컷〉 순으로 열렸다. 결과적으로, 세 개의 무대가 내용이나 주제상으로 상응하지는 않으며, 장르적으로 순수한 차이를 전제한 채 출발한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세 개의 무대는 하나의 현장에서 연장될 수밖에 없으며, ‘초이스’의 차원에서 비교될 수밖에 없다. 기획은 어떤 최선의 것들의 선별에 있지만, 근본적으로 선택의 기준을 고도로 제시하기는 어렵다. 윤별, 〈갓GAT〉: 강박적, 하이브리드 신체 윤별 안무가의 〈갓GAT〉은 본래 7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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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지 연출, 〈살기 좋은 ○○〉: 우리라는 자화상REVIEW/Theater 2026. 5. 11. 20:17
〈살기 좋은 ○○〉은 중반 이후, 미래의 주거상을 AI를 매개해서 현재화해서 보여주는데, 이는 현재의 심리가 투사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집에 대한 두 배우의 자기 서사를 연장한 실제적 욕망의 세부가 그 전까지 발화된다면, 이는 욕망과 현실의 지나친 격차로부터 기술 이전을 통한 또 다른 현재의 버전이 미래를 가장하여 제시되는 것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여기서 집은 공적 공간의 폴리스가 아닌, 사적 생활단위의 집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오이코스’에 상응하며, 순수한 의미에서 정치적 영역의 바깥을 가리킨다. 오이코스는 ‘경제’의 어원이기도 한데, 따라서 부상할 것은, 환기되어야 할 것은 정치적 영역이다. 미시사는 교환되며 사회적 접점을 찾아 확장되어야 한다. 개인에 대한 초점과 관심은 전반부에서처럼 사적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