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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주: 그림자가 된 전통》(총괄 기획: 강정아): 기괴한 것들로부터REVIEW/Visual arts 2026. 3. 12. 14:33
《둔주: 그림자가 된 전통》(이하 《둔주》, 총괄 기획: 강정아)의 제목인 ‘둔주’는 해리성 장애의 일종으로 “‘정체성을 상실한 채 장소를 이동’”함을 의미하는데, 장소성 없음의 당대적 특성은 부제에서처럼 전통이 그림자화된 곧 영락해진 현상과 결부 지어 제시되고 있는 셈이다. 그 비어 있는 주체의 몫이 타자성을 안은 존재라면, 그것이 시간 차원에서 간극을 지닌 전통으로 옮겨지게 되는 셈인데, 이때 전통은 빛을 비춰 그 오지각된 현상으로부터 구제되어야 한다는 변증법적 결론을 향하게 된다. 곧 부정적 차원의 귀결은 타자성의 차원에서 재수용해야 하는 그 너머의 주체의 자리를 현상한다. 《둔주》는 쇠잔한 도시를 전시 장소로 삼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데, 그것은 타자로서 지역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전시를 보게 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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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집단 세 사람, 〈멸종위기종〉: 욕망의 시선 그리고 무심한 시선REVIEW/Theater 2026. 3. 12. 13:11
〈멸종위기종〉은 멸종위기종을 다루는 두 가지 인간의 기술을 겹쳐 놓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이는 그것에 대한 각기 다른 인간의 시선과 태도를 보여준다. 그것을 보호하고 지키는 동물원 사육사 윤정연과 그것을 찍어 인류에게 그것의 숭고함을 메시지로 전파하고자 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반우, 그리고 그것을 전유하는 그의 제자 정은호가 그것이다. 동물과 인간 사이에 하이픈을 구성하는, 동물과 소통하는 역량의 전자는 후자의 대중 추수주의적 열망 아래, 동물을 가치의 기호로 정제하는 그 작업의 매개자로서 편입되는데, 이제 그 기호의 발신에 따라 생겨난 세상과 후자의 피드백 고리로부터 모든 상황이 급변하게 된다 그 사이에서 잡지사의 편집장 최유형은 대중의 욕망을 찾고 주조하는 데 두 사진작가 모두를 활용하는 차원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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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울미술관 - 세마 퍼포먼스 《호흡》에 대한 두 가지 시나리오: 퍼포먼스는 왜 자기지시적 대상으로 물신화되는가에 대한 대답으로서Column 2026. 3. 12. 12:55
“뉴미디어 특화” 미술관을 표방한 서서울미술관의 개관 특별전은 “세마 퍼포먼스 《호흡》”이다. 퍼포먼스는 (그 전시의 제목이 “호흡”이듯) 신체 기반의 아날로그적 미디어에 가깝지 않은가. 그래서 서서울미술관은 그래서 퍼포먼스를 전시하고, 소장하고, 연구하는 미술관인 건가. 사실상 홈페이지의 기능을 대체한 서서울미술관 인스타그램에는 일주일마다 각 주차의 퍼포먼스 프로그램이 연이어 소개되었는데, 이 특별전만을 다룬 홈페이지로부터 서서울미술관의 이념, 어젠다, (설립) 배경 등을 추출하는 건 불가능하다. 5주 차에 걸쳐 진행되는 퍼포먼스들은 비어 있는 ‘퍼포먼스 미술관’을 수없이 채우고 비워질 것임을 가정하며, 퍼포먼스 미술관으로서 서서울미술관을 지시한다―또는 서서울미술관은 퍼포먼스의 이미지로 막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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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해률 작, 윤혜숙 연출, 〈시차〉: 사건을 연결하고 재발명하기REVIEW/Theater 2026. 3. 11. 20:16
배해률 작가가 쓴 〈시차〉는 시차를 둔 참사들의 성좌를 구성하는 가운데, 개인들의 미시사를 조립한다. 연극 바깥의, 실재의 참사들은 그 상징성으로 여전히 바깥에 자리하는데, 이는 엄밀히 인물들의 삶에 내재적으로 영향을 주지 않으며, 참사의 연표라는 순수한 형식으로 존재하는 듯 보인다. 무대 중앙의 천장에는 시간이 하나의 배경이자 전제 조건으로 장의 진행에 앞서 투사되며 강박적으로 참사의 시점 혹은 그것을 전후로 한 시간을 점검하도록 만든다. 그것은 순차적이고 각자의 고유성을 가진 것이지만, 일정 정도 세대와 그다음 세대, 그리고 개인의 세대적 분기와 같은 생애주기에 따라 분배된다. 참사는 기계적으로 조립되고 줄 세워져 있지만, 〈시차〉는 그것들을 똑바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참사는 우연한 것이며, 개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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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성 연출, 〈P와 함께 춤을〉: 피나 밖에서의 현전REVIEW/Theater 2026. 3. 11. 20:14
전설적인 혹은 당대를 대표했던 안무가 고 피나 바우쉬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연극 〈P와 함께 춤을〉은, 피나 바우쉬의 연대기를 충실히 따라가는 대신, ‘피나 바우쉬’라는 기표, 신화성의 자리로부터 시작되고 또 그곳을 맴돌며 흔적이 된다. 여기서 ‘흔적’은 사라졌으나 공고한 피나 바우쉬 자체이거나 그것을 좇는 전의식적 워밍업 형태의 대화 형식으로써 접근되는 산만하고 무질서한 이야기라는 무대의 과정을 모두 담는 또 다른 매체적 저장 경로를 가리킨다. 피나 바우쉬라는 실재와 신화의 틈을 비집거나 헤집는 차원 아래, 〈P와 함께 춤을〉은 실재와의 간극을 현재의 발화로 한정하며, 발화의 무한정함을 가정하고, 그렇게 꾸역꾸역 쌓아 올린 현재를 역사의 틈으로 곧장 밀어 넣는다. 아마도 그것은 피나의 이름으로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