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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해률 작, 윤혜숙 연출, 〈시차〉: 사건을 연결하고 재발명하기REVIEW/Theater 2026. 3. 11. 20:16
배해률 작가가 쓴 〈시차〉는 시차를 둔 참사들의 성좌를 구성하는 가운데, 개인들의 미시사를 조립한다. 연극 바깥의, 실재의 참사들은 그 상징성으로 여전히 바깥에 자리하는데, 이는 엄밀히 인물들의 삶에 내재적으로 영향을 주지 않으며, 참사의 연표라는 순수한 형식으로 존재하는 듯 보인다. 무대 중앙의 천장에는 시간이 하나의 배경이자 전제 조건으로 장의 진행에 앞서 투사되며 강박적으로 참사의 시점 혹은 그것을 전후로 한 시간을 점검하도록 만든다. 그것은 순차적이고 각자의 고유성을 가진 것이지만, 일정 정도 세대와 그다음 세대, 그리고 개인의 세대적 분기와 같은 생애주기에 따라 분배된다. 참사는 기계적으로 조립되고 줄 세워져 있지만, 〈시차〉는 그것들을 똑바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참사는 우연한 것이며, 개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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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성 연출, 〈P와 함께 춤을〉: 피나 밖에서의 현전REVIEW/Theater 2026. 3. 11. 20:14
전설적인 혹은 당대를 대표했던 안무가 고 피나 바우쉬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연극 〈P와 함께 춤을〉은, 피나 바우쉬의 연대기를 충실히 따라가는 대신, ‘피나 바우쉬’라는 기표, 신화성의 자리로부터 시작되고 또 그곳을 맴돌며 흔적이 된다. 여기서 ‘흔적’은 사라졌으나 공고한 피나 바우쉬 자체이거나 그것을 좇는 전의식적 워밍업 형태의 대화 형식으로써 접근되는 산만하고 무질서한 이야기라는 무대의 과정을 모두 담는 또 다른 매체적 저장 경로를 가리킨다. 피나 바우쉬라는 실재와 신화의 틈을 비집거나 헤집는 차원 아래, 〈P와 함께 춤을〉은 실재와의 간극을 현재의 발화로 한정하며, 발화의 무한정함을 가정하고, 그렇게 꾸역꾸역 쌓아 올린 현재를 역사의 틈으로 곧장 밀어 넣는다. 아마도 그것은 피나의 이름으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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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수, 〈창 불 흐르는 MELTING FIRE ICEMAN〉: 이미지들의 틈 혹은 이미지라는 물질REVIEW/Movie 2026. 3. 11. 20:04
권희수 작가의 〈창 불 흐르는〉은 영화에 접근하고 영화를 활용하며 나아가 영화를 서술하고 정의한다는 점에서, 영화 자체에 대한 영화, 곧 메타 영화와도 같다. 필름이라는 영화의 물리적 근간의 요소와 맞세우는 근원적 요소를 더하고 이에 비추어 영화를 전유하고자 하는 데서 서사가 출발한다. 제목은 자신의 영화가 지닌 서사의 구조를 간직하는데, 가령 불(FIRE)과 물(MELTING)의 원자적 요소의 대립은 이미지의 흐름(ICEMAN)이라는 질서 아래 통합된다. 또는 이미지의 흐름으로서 불에 탄 필름과 극장, 점액질의 운동성의 각각의 궤적은 모두 흐르는 속성을 가진다. 이미지들은 뒤섞이면서도 어떤 서사의 지침 아래 묶이려다가도 벗어나며 그 자체로 지시되는데, 느슨한 결속 또는 의도적인 나열성은 불완전한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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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주, 《거친 모래가 뱀의 머리에 닿지 않도록》: 세계의 경계를 지우는 이미지REVIEW/Visual arts 2026. 3. 11. 19:59
노예주 작가의 회화들, 그리고 일련의 글이 덧붙여진 전시 《거친 모래가 뱀의 머리에 닿지 않도록》은 크게 전시 공간인 합정지구의 1층과 지하의 구분을 따라, 각각 인물과 사물 혹은 인물과 배경으로 나뉜다. 이러한 대상을 기준으로 한 구별은 피상적이고도 자의적인 기준 이외의 것을 제시할 수 없을 것이다. 반면, 이는 하나의 더 큰 지층에 따른 것이며, 그러한 구분은 그에 따른 구체화이자 다른 세부의 범주라는 지점에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 곧 인물이 초상의 모델로 작가에게 대상으로 직접 수여되거나 배경 역시 의도된 배치와 구성에 따른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 작가 스스로가 위치하고 있음을 자각하는 ‘현실’에서 포착, 재배치된 것이라는 사실, 따라서 그것들이 하나의 현실의 일부이자 어떤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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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연서 Cha Yeonså, 《살도 뼈도 없는 나에게 Feed me stones》: 훼손, 조율, 바깥으로서 애도REVIEW/Visual arts 2026. 3. 11. 19:44
차연서 작가의 《살도 뼈도 없는 나에게 Feed me stones》는 형해화된 주체의 자리를 형상화한다. 터전 없거나 비어 있는 그 자리에는 죽음에 대한 의례 혹은 종교 의식적 차원을 성사할 여러 오브제와 사운드, 이미지, 텍스트가 있다. 죽음은 애도의 대상이기보다 비워진 자리에 하나의 몸이 되어 현전한다. 작가의 아버지인 화가 고 차동하의 〈축제〉(2006~2017) 시리즈에서 사용된 채색된 닥종이라는 재료―그의 유품이자 작품의 일부이자 그의 신체에 대한 환유이기도 한 오브제―를 종이 오리기로써 전용하는 이번 전시는 재료에 대한 몰입과 침투되는 자연의 소리, 종교의식에 의한 도취를 통한 ‘나’의 형해화 과정―공기로의 더딘 분포 또는 사라짐―을 통해 ‘나’의 아버지의 신체를 무대로 펼쳐놓는다. 전시는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