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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빗홀씨어터, 〈호기우타〉(작 기타무라 소, 연출 윤혜숙): 무정형의 시간은 어디를 향하는가REVIEW/Theater 2026. 7. 28. 21:57
외부는 가능한가 〈호기우타〉는 낮과 밤의 바뀜만이 있는, 사막 같은 폐허의 환경에서 정처 없이 살아가는 또는 이동하는 교코와 게사쿠, 그리고 우연히 합류한 야스오 셋을 현상한다. 이 미지의 공간은 전쟁이 종식되었지만 미사일이 컴퓨터의 제어로 여전히 날아다니고, 인간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문명도, 외부도, 타자도 주어지지 않는다. 다만, 야스오라는 정체불명의 인물은 이 둘의 정처 없음에 저쪽의 거리라는 관념을 들여온다. 하지만 야스오를 경유해 그들의 내면이 상정되는 것 역시 아니며, 그 반대의 차원, 야스오를 통해 그들이 어떤 인물로 객관화되는 것 역시 아니다. ‘예수’와 이름의 유사성―중국식 발음으로 한자를 빌려 적은 음역어 耶蘇를 음독하면 ‘야소(やそ)’가 된다.―뿐만 아니라, 오병이어의 기적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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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승희의 춤―사제동연: 소탈한 움직임과 풍류의 정신 사이에서REVIEW/Dance 2026. 7. 28. 21:42
변승희, 〈대구광역시 무형유산 권명화류 살풀이춤〉 변승희의 춤은 어떤 긴장과 엄숙함 따위를 내려놓고 턱 힘을 뺀 소탈한 미가 있었는데, 이는 처연한 느낌을 전체적으로 가두거나 응결시키지 않은 채로 그저 흘러간다는 인상을 준다. 시작에는 단단하고 딱딱하다는 인상을 줄 정도였는데, 악단의 구음이 재차 들어갈 때 그는 살짝 미소를 짓고서는 몸을 단번에 변환한다. 수건을 고개에 두르고 두 손목을 꺾어 내리는데, 이는 그 꺾임의 정도로 인해, 고꾸라진 신체를 또 무의지적인 신체의 전반적인 상태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는 인상을 준다. 그리고 이는 수건을 펼쳐서 오른쪽 어깨가 마치 탈구되듯 힘이 빠지며 내려가는 순간의 고꾸라짐으로 연결된다. 장구가 두드러지며 어떤 정체 구간이 만들어지는데, 이때 장구는 중심을 잡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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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 Wave #1] 곽민우, 〈동행〉: 지팡이라는 혹은 지팡이의 지지체REVIEW/Dance 2026. 7. 28. 21:35
〈동행〉은 지팡이를 주요한 오브제로 사용하는데, 처음 곽민우는 두 개의 지팡이의 손잡이를 맞물려 들고 하나씩 바닥을 짚어 가는 모습을 연출한다. 이 최소한의 사물로 한 사람인 양 걸어가는 모습을 취하는 첫 이미지가 보여주는 일종의 인형극적 재현의 양상은 짧지만 인상적인데, 이는 이후 두 사람―김혜현과 곽민우―이 만나 주로 지팡이 하나만 가지고 주고받는 긴밀한 관계로 진척되는 과정을 예기하는 상징적 장면으로서 결정적이다. 지팡이의 굴곡 있는 손잡이의 특성상, 손목을 가볍게 돌림으로써 곧 손잡이를 위로 띄우거나 아래를 지탱하거나 할 수 있는데, 이는 마술의 효과와 같이 지팡이를 허공에 띄우고 다시 내리는 과정에서 상대의 시선을 훔친다. 그리고 이러한 속임수는 무엇보다 그것을 또는 서로를 주고받는 유희에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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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E아카이브, 〈한 몸에 얽힌(Intertwined)〉: 벽-스크린을 마주한/너머의 두 존재REVIEW/Performance 2026. 7. 28. 21:32
F-A-E아카이브의 〈한 몸에 얽힌(Intertwined)〉은 두 명의 퍼포머가 벽 ‘너머’의 카메라와 스크린-벽에 각각 반향하며 카메라-스크린의 이행 ‘안에서’ 서로를 횡단한다. 두 사람의 이미지는 동시적이고 혼합되지만, 이는 전자(권요셉)가 자신의 이미지를 후자(권요한)에게 쥐여준다는 일방향적 전개를 따른다. 하지만 전자가 후자의 이미지를 볼 수는 없다. 스크린은 동시에 투과되지 않는 벽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 벽면은 일정한 양쪽 가를 통해 어렴풋하게 반대쪽의 일부를 노출하는데, 따라서 반대쪽으로 횡단해 전자를 전면 가시화할 수 있는데, 이는 전자의 ‘대부분’의 기각을 통해 스크린-인터랙티브 퍼포먼스를 동시에 바라보는 후자를 마찬가지로 전면 기각―일부 수용―함으로써 가능하다. 여기서 아마도 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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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 〈개꿈〉(정록이 안무): 상상계적 실재의 풍경들REVIEW/Dance 2026. 7. 28. 21:16
촉각과 시각의 횡단 정록이의 〈개꿈〉은 피부-살-파편의 촉각적 전이와 막-베일-구멍의 시각적 산만함의 기호학적 횡단으로 쓰이는데, 그에 따라 무대는 마치 다트판이나 융단의 하나의 균일한 바닥이 되거나 하나의 레이어―바깥을 숨기거나 차단하는―로서 이미지로 결정된다. 존재자들은 편재할 뿐인데, 이는 뒤섞이지 않음을 말한다. 또는 개별 기호로서 자족적이다, 또는 과잉되어 있다. 이것은 ‘개꿈’(이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라―포스트모던의 낡은 비유에 가깝다.―, 반대로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강도를 주입한 것이(기에 개꿈이 가능하)다. 곧 개꿈은 은유적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환유적으로 도달하는 무엇이다. 개별 퍼포머들은 서로가 아니라, 점성의 하얀 물질, 반죽 같고 비정형의 구체이며 한 손에 제법 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