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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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진, 하지민, 〈밤짐승 놀이패〉: 역사를 뒤집기 또는 존재를 입기로서 수행REVIEW/Performance 2026. 5. 11. 20:31
조현진, 하지민의 〈밤짐승 놀이패〉는 동일한 크기로 분할, 배열된 거대한 “이동식 배경막”을 뒤집고, 수거하고, 바꾸고, 바닥에 던지며, 일정한 간격으로 자리한 집단이 여러 카드를 동시에 내보이거나 하는 일종의 “카드섹션”의 형식을 변주한다. 이때 적용되는 집체적인 움직임은 통일성을 지향하는 “매스게임”에 가까워지는데, 이는 의례의 비의성을 기계적 합리성으로 분산시킨다. 그것은 제식과 가까운데, 이때 제목이 가리키듯 “밤짐승”은 재현되지 않고 전문적으로 수행된다―“놀이패”―. 여기서 배경막은, 카드는 모두 존재를 초과하므로, 행위는 찰라적이기보다 지루한 수공업적 노동에 가까워지는데, 엄밀히 카드의 반 바퀴 회전, 곧 카드를 떼서 카드 중앙 상단의 홈을 다시 후크에 거는 이 행위는, 배경에 부착되는 형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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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 폼므라(Joël Pommerat) 작·연출, 〈이야기와 전설〉: 인간의 편견을 (재)경유하는 로봇REVIEW/Theater 2026. 5. 11. 20:30
조엘 폼므라 작, 연출의 〈이야기와 전설〉은 안드로이드―“AI 휴먼”―가 일상에 상용화된 시점에서, 로봇이 인간에게 건네주는 의미를 탐색한다, 주로 청소년 세대의 자의식과 연애와 사랑을 경유하며, 반-페미니즘의 기류를 감지하면서, 그리고 가족 안에서 그것을 정위하면서. 이는 인물들의 개별 서사와 관계가 빚어내는 형상(이야기)보다는 인물들에 놓이는 예고되지 않은 더 큰 서사의 축(전설)이 어떻게 그 이야기를 조직해 내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미래 시제의 ‘가정’은 이제 과거의 이야기로 들려오기 시작한다. 첫 장면의 양극단에 선 아이와 성인 여성 간의 대화에서는 쏟아지는 아이의 매우 거친 말들로부터 체화된 남녀 차별적 사고를 추출해 낼 수 있다. 이는 여성의 차분하고 끈기 있고 현명한 대처에 의해, 일정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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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쿼드 초이스, ‘다른, 춤을 위해’ Part2: 불균질한, 변증법적 대치의 흐름REVIEW/Dance 2026. 5. 11. 20:29
이루다, 〈Nu Black〉: 기괴한 이미지 아니 신체로부터 이루다의 기본적 양식은 보통은 검은 토슈즈와 상의 아래, 기괴한 펄럭임과 어긋난 스텝을 기초로 강렬한 캐릭터를 구축해 낸다. 바텐 앞뒤 여러 층차를 구성하는 프로젝션의 중층적 시각적 양상이 독자적인 군무를 시행하는 가운데, 이러한 공간에의 입자적 포석에 상응하여 〈Nu Black〉은 무용수들의 다양한 배치와 등장으로 입체화된다. 이는 사이키델릭한 이미지의 영도, 움직임과 배치의 끊임없는 변경을 통한 중첩된 이미지의 연쇄 작용을 경유하면서 오히려 캐릭터의 기괴함을 강화한다. 그것은 형해화된 캐릭터의 표층성을 지시한다. ‘기괴한 펄럭임’은 팔부터 몸통으로 번져가는 상체 전반의 움직임의 형태적 유사성을 가리킨다. 이는 움직임 전반을 관통하는 시작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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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쿼드 초이스, ‘다른, 춤을 위해’ Part1: 불균질한, 변증법적 대치의 흐름REVIEW/Dance 2026. 5. 11. 20:25
쿼드 초이스는 발레, 현대무용, 한국무용에서 각각 두 명의 안무가의 기존 작업을 선택해, 이를 재편집, 재구성하여 두 번의 무대로 올리는 방식이다. 첫 번째 파트는 윤별의 〈갓GAT〉, 김재덕의 〈BreathingAttackII〉, 정보경의 〈안녕, 나의 소녀: 디렉터스컷〉 순으로 열렸다. 결과적으로, 세 개의 무대가 내용이나 주제상으로 상응하지는 않으며, 장르적으로 순수한 차이를 전제한 채 출발한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세 개의 무대는 하나의 현장에서 연장될 수밖에 없으며, ‘초이스’의 차원에서 비교될 수밖에 없다. 기획은 어떤 최선의 것들의 선별에 있지만, 근본적으로 선택의 기준을 고도로 제시하기는 어렵다. 윤별, 〈갓GAT〉: 강박적, 하이브리드 신체 윤별 안무가의 〈갓GAT〉은 본래 7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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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지 연출, 〈살기 좋은 ○○〉: 우리라는 자화상REVIEW/Theater 2026. 5. 11. 20:17
〈살기 좋은 ○○〉은 중반 이후, 미래의 주거상을 AI를 매개해서 현재화해서 보여주는데, 이는 현재의 심리가 투사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집에 대한 두 배우의 자기 서사를 연장한 실제적 욕망의 세부가 그 전까지 발화된다면, 이는 욕망과 현실의 지나친 격차로부터 기술 이전을 통한 또 다른 현재의 버전이 미래를 가장하여 제시되는 것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여기서 집은 공적 공간의 폴리스가 아닌, 사적 생활단위의 집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오이코스’에 상응하며, 순수한 의미에서 정치적 영역의 바깥을 가리킨다. 오이코스는 ‘경제’의 어원이기도 한데, 따라서 부상할 것은, 환기되어야 할 것은 정치적 영역이다. 미시사는 교환되며 사회적 접점을 찾아 확장되어야 한다. 개인에 대한 초점과 관심은 전반부에서처럼 사적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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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태 개인전, 《개울가의 나한들》: 본질적 삶으로 향해 가는 특이한 노동의 형상들(이라는 과도기적 단계)REVIEW/Visual arts 2026. 5. 10. 21:56
박은태 작가의 개인전, 《개울가의 나한들》에서 가장 첫 번째 자리한 〈노동산수도2〉(2023. 캔버스에 아크릴, 130×194cm.)는 전시에서 가장 인상적이며 또한 예외적인 작업이다. 바로 옆의 〈노동산수도1〉 (2023. 캔버스에 아크릴, 130×194cm.)는 그것보다 원형적이고 기초적인 차원에서 먼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는데, 〈노동산수도2〉는 그것을 더 확장하는 한편, 완성한다. ‘노동산수도’는 과정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초기 시작 단계를 보여주는, 〈개울가의 나한들〉(2024. 캔버스에 아크릴, 130×388cm) 에서처럼 그 에스키스를 같이 보여주고 있지는 않지만, 인물들로 결국 수렴되는 작업임에도, 인물보다 대략적인 풍광의 전체적인 구도를 선의 흐름과 리듬으로 구성했음을 일러주는 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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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페르튜토 스튜디오, 〈다페르튜토 서서울〉: 고래 뱃속이라는 상상적 공간REVIEW/Performance 2026. 5. 10. 21:43
다페르튜토 스튜디오의 〈다페르튜토 서서울〉(이하 〈서서울〉)은 서서울미술관의 일몰에서 일출까지의 시간 안에 세 개의 이야기를 구성하는데, 일몰과 일출은 극장을 세계의 제의 공간으로 재처리함으로써 성립하며 이때 각각 서쪽과 동쪽은 높은 층고에 천장과 거의 맞물린 창문이 바투게 지상을 경유한 공간 내 그 창문 방향의 커다란 해의 전면 도상과 그 맞은편의 역시 블라인드를 열어 벽 내부에 숨겨져 있다 드러나면서 긴 벽면을 따라 사선 아래를 향해 투여되는 서치라이트로서 대별되며, 곧 스펙터클의 오브제-빛의 점멸로써 갈음된다. 일몰과 일출로 시간을 되돌리는 경로 안에는 세 개의 이야기 토막이 있는데, 이는 일종의 다페르튜토 스튜디오의 모듈형 창작 방식이 적용된 것으로, 그것은 오브제들의 측면에서는 일상 사물들의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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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니 프로토콜, 〈리모트 서울〉: 서울이라는 상상계적 극장으로부터 ‘개인’으로 소급되기REVIEW/Theater 2026. 5. 10. 21:20
리미니 프로토콜의 〈리모트 서울〉은 서울을 ‘원격’으로 현전하면서 ‘외딴’ 서울에의 고립을 구성하는데, 여기에는 헤드폰의 AI 음성의 가이드가 있다. 이 가이드는 국립현충원에서 GS아트센터를 오가는 서울의 특정 구간‘과’ 조우하게 하며, 서울‘로부터’ 나의 거리를 확보하게 한다. 이때 30명의 관객은 개인이 연장된 집단의 형상을 하는데, 그것은 이 거리로써 접면의 방식에 대한 물리적 지지체 역할을 한다―극장이라는 경계를 지시한다. 이 듣기의 일시적 공동체는 실재를 무대(“stage”)라기보다 화면으로 각색하는데―‘관객은 리모컨으로 TV를 튼다.’―, 이때의 ‘고립’을 집단적 신체의 근거로써 보족하며 연장한다―그것은 고립을 하나의 발화 형식으로 전도한다. 특히 시민과의 ‘대치’와 시민에의 고립을 오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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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세게, 쳐주세요〉: 숭고한 역사적 형상을 전도하기*REVIEW/Dance 2026. 5. 10. 20:45
이은경의 〈세게, 쳐주세요〉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 과정에 부역한 아돌프 아이히만 하면 자동 연상 되는 “악의 진부함(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갖고 아이히만에 접근한다. 이는 익숙한 이야기인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의 전범 재판에서의 발화를 토대로 도출해 낸 개념으로, 공연의 주요한 전제로 자리 잡는다. 곧 아이히만의 서사의 절편이 아렌트적 진단으로 응결되는 차원에서, 아이히만이라는 인물의 구체성은 축약되거나 소거되는 것 역시 가능한데, 이는 역사적 차원이 수렴하는 지점을 또한 아렌트의 개념적 매개가 완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에 따라 아이히만은 고유한 이미지의 차원보다는 개념에 대한 아이콘에 가까워진다. 물론 거기에는 문화적 차원의 번역에 따른 변용과 누락의 차원 역시 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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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샤르 무르쿠스 & 쿨르드 바젤 - 카사비 시어터 Khashabi Theatre, 〈뮤지엄 THE MUSEUM〉: 테러의 재기입REVIEW/Theater 2026. 5. 9. 13:45
〈뮤지엄〉은 테러를 저지르고 7년이 지난 후, 사형을 앞둔 사형수와 형사의 만남과 밀실에서의 하루를 구현하며, 두 남자의 언어가 복합적으로 착종되고 얽히며 상호 반영되고 굴절되는 심리의 일환을 치밀하게 바라보게끔 만든다. 형사의 은근한 주도 아래, 두 남자는 후반으로 갈수록 무대 안쪽에 놓인 카메라를 직접 향하며, 제삼자의 시점에 은밀한 둘의 시간을 맞세운다. 관찰되고 있음의 환상을 경유하며 연극 하기는 과잉으로 현상된다. 여기에 1막까지는 크게 의미가 없었던, 아니 이미지를 열화시키거나 중화시키는 감산적인 장치로서 여전히 기능하고 있었던, 그 둘 앞에 쓰인 거대한 샤막은 은밀한 관찰자의 심리와 결부되는 제4의 벽을 실제적으로 연장한다. 우리는 그 점들로, 점들의 틈으로 그 둘을 흐릿하게 바라본다. 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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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잉거, 〈워킹 매드 & 블리스〉: 고전/과거에서 현대/현재로…REVIEW/Dance 2026. 5. 9. 13:39
〈워킹 매드〉와 〈블리스〉는 일정한 서사의 전개 양상 아래 움직임을 예속시키는데, 이는 〈워킹 매드〉에서 강화되며, 〈블리스〉에서 해체된 양상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이는 음악적 차이에 상응한다. 우선, 하나의 음악을 사용하는, 곧 일종의 재즈 즉흥 피아노 연주인 후자의 키스 재럿의 〈쾰른 콘서트〉를 사용하는 후자에서는 개별 동작들의 수행성과 자율성, 일의적 차원의 특성이 강조되는 한편, 등장과 퇴장의 가변적 특질 아래 개입과 분산이 자유롭게 일어난다. 반면, 두 개의 음악을 사용하는 전자는 곧 (너무나도 익숙한) 모리스 라벨(Maurice Joseph Ravel, 1875~1937)의 〈볼레로〉와 이후 등장하는 아르보 패르트(Arvo Pärt, 1935~)의 피아노 독창곡 〈알리나를 위하여〉, 두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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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연출 류사라, 〈신의 바늘〉: 체험주의적 당사자성의 체현, 그리고 계몽의 다른 판본REVIEW/Theater 2026. 5. 9. 13:20
〈신의 바늘〉은 두 명의 등장인물이 그 둘만의 공간에서 마약을 하는 체험을 강도 높은 것으로 현상하는데, 이는 마약에서 깨어났을 때의 불쾌함 등을 동반한 잔여 감각까지 전달하며, 자기 파멸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향하는 가운데, 이 둘의 자아의 확장과 극단적인 변용의 순간은 시간이 축적됨에 따라, 탈구된 사회와 비대해진 자아의 해소할 수 없는 간격으로 인한 위기감으로 연장된다. 리얼리티로 측정되는 건 두 사람만의 내재적이고 은밀한 세계의 발현이며, 곧 관찰하는 이들에게 열린 닫힌 세계의 틈이며, 예외적이고도 고유한 체험을 하는 이의 당사자성은 〈신의 바늘〉의 표현 양식의 토대이자 주제의 중심 의미를 이룬다. 따라서 그 주제를 선택한 윤리적 고려의 차원은 다분히 재귀적인 것이다. 무엇보다 서사는 그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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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극장 쿼드X즉각반응, 〈엔드 월 - 저 벽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 문학의 견지에서 타자성을 구성하기REVIEW/Theater 2026. 5. 8. 13:10
〈엔드 월 - 저 벽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이하 〈엔드 월〉)는 한쪽 끝 벽에 깔려 죽은 주인공 아성이, 질문을 통해 이전의 시간으로 반복해서 돌아가며 죽음의 원인이 아닌, 그 상황 속에 자신의 행위에 개입된 자신의 의식을 탐문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죽음 직전의 상황과 친구들과의 추억이 계속해서 소환된다. 자신을 성찰하는, 자신을 화두로 삼는 이 과정은 문장의 빈 공간을 찾고 거기에 들어갈 적합한 말을 찾는 글쓰기에 비유되는데, 곧 아성이 본인의 죽음과 관련한 자신의 서사를 써 내려가는 작가로서 사건과 한 인물에 대한 접근이 이뤄짐은, 한편으로는 애도의 차원 바깥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원한 감정의 차원을 넘어, 한 인물에 대한 서술의 차원이 문학적으로 승화됨을 의미한다. 또 다른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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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돌파구, 〈키리에〉(장영 작/전인철 연출): 죽음을 경유한 사랑으로의 도약REVIEW/Theater 2026. 5. 8. 12:53
〈키리에〉는 자신이 건축한 집이 된 영혼(최희진)을 죽음을 앞두고 찾아온 존재들이 그와의 죽음이라는 공통분모를 안고 어떤 비지각적이고도 무매개적인 접촉 아래, 일종의 고해성사적 독백을 통해 삶을 다시 추스르고 도약하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일종의 영혼의 싸개로서 집은 영혼의 물리적 연장이자 또 다른 신체를 수용하며 그것을 지각하는 신체의 전면화된 재분절로서, 정신이 신체로 이완―탈영토화―되면서 정신-신체라는 반죽의 동일한 밀도를 띠는―재영토화되는―, 그리하여 거대한 하나의 기관, 혹은 기관 없는 신체가 된 집이 된다. 그때 들어오는 영혼들은 역설적으로 비워진 정신의 영역 아래, 정신을 그 확장된 신체에 이완할 수 있는 역량을 부여받는 것과 같다. 〈키리에〉는 이처럼 죽음 ‘이후’와 죽음 ‘직전’을 맞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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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안전연극제 : 면역력] 송정현, 〈정현 씨는 문화예술도 모르면서 왜 ‘포항장애인문화예술활동센터’를 만들었는가?〉: 예술의 형식으로서 정치적 발화가 갖는 어떤 효과들REVIEW/Performance 2026. 5. 7. 16:43
송정현의 〈정현 씨는 문화예술도 모르면서 왜? ‘포항장애인문화예술활동센터’를 만들었는가?〉(이하 〈정현 씨는〉)는 그 제목 이후, 포항장애인문화예술활동센터를 그럼에도 왜 차렸냐라는 질문에 대해 그가 주는 답을 좇아가는 과정 자체다. 송정현은 센터의 설립 미션과 비전을 주창하는, 이른바 단상에 오른 연사인데, 이는 장애인보다는 시민의 자격으로서 그러하다. 사실상 그 말은 센터 자체의 구체적인 사실들, 곧 센터의 연혁, 프로그램, 규모, 활동 사항, 운영 원리 등 센터가 갖는 실질적 차원의 제반 요소들을 대체하고 있는데, 그러니까 그 센터가 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앞서 주체를 향하는 이 질문은, 이러한 꿈의 추상적이고 거대한 윤곽이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공허한지에 대한 의심이 아니라, 예술과 어떻게 그의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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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안전연극제 : 면역력] 《소거된 몸짓: 연극in 미게재 희곡 작가 페스티벌》: 희곡 스스로 한 발 나아간 자리, 그리고 사라진 시간으로부터 발화하기REVIEW/Theater 2026. 5. 7. 16:32
《2026 안전연극제: 면역력》은 기획의 하나로, 《연극in》의 희곡 공모에 당선되었지만 《연극in》이 잠정 휴간되며 끝내 미게재된 여섯 편의 희곡을 《소거된 몸짓: 연극in 미게재 희곡 작가 페스티벌》(이하 《소거된 몸짓》)에 ‘싣는다’. 이는 제도가 가져온 2년간의 “기다림”과 “공백”을 작가 스스로 돌이켜보고 발화하며 희곡만이 아닌, 그것과 결부된 주체의 자리를 현상하고, 곧 그들이 가진 제도에서 버려진 자의 당사자성을 토대로 그들 스스로 자신의 희곡을 무대로 확장하고 변주하는 능동적 주체의 자리에 두게 함으로써 제도의 공백에 대한 면역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한다. 크레디트에는 여섯 명을 “참여작가(미게재 아님)”로 재명명하는데, 이는 곧 게재를 의미하는 동시에 그 전사를 소급한다. 이는 미게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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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노 세갈, 《티노 세갈》: 티노 세갈이라는 경계로서 장치(물)REVIEW/Performance 2026. 5. 7. 16:24
티노 세갈의 전시 《티노 세갈》은 간략하게 말하면 무언가 신체 움직임으로부터 ‘발생’하는 것들에 대한 것인데, 실제 전시명은 그의 이름으로 지어졌기보다 임시적으로 고착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 소급적 차원에서 티노 세갈의 고유성을 준별하되 전시로써 발생하는 무언가의 ‘더’ 부가된 관념의 자리를 그의 이름으로 재처리하는, 메우는 구멍 마개의 차원에서 그를 전시로 부르‘게 된다’―기존의 전시를 그가 아닌 것으로 정의한다(그런데 개인전, 곧 그의 전시라고 하면 그것을 다시 보통의 관념으로 되돌린다). 그러니까 ‘티노 세갈’은 까다로운 대상인데, 그것은 전시명을 짓지 않음으로써 이것이 전시와 다른 무엇이며, 실은 전시가 아니지만 전시의 틀로서 그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모순을 일으킨다. 곧 이 전시가 아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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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씨어터프로젝트, 〈김치찌개 웨스턴: 밥주걱과 45구경 권총의 결투〉: 어떤 구멍들이 보여주는 한국 사회에 대한 징후들REVIEW/Theater 2026. 5. 7. 16:14
김치찌개 웨스턴: 밥주걱과 45구경 권총의 결투〉(이하 〈김치찌개 웨스턴〉)는 스파게티의 본고장으로 익숙한 이탈리아에서 양산된 서부극을 칭하는 ‘스파게티 웨스턴’을 한국식으로 전유한 “김치찌게 웨스턴”이라는 일종의 장르적 수식 아래, 『흥부전』의 형제 간 갈등의 서사를 덧입힌다. 스페인 배경에 저예산 촬영, 선과 악의 구분이 모호하며 폭력으로 점철된 스파게티 웨스턴의 특징은, 극단의 이름처럼 트렁크에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정도의 미니어처 무대 위에서 퍼펫과 오브제 등을 통해 연장되며, 토건국가의 개발독재와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와해된 지역 공동체를 배경으로 냉혹한 상속 분쟁의 현실로 분화한다. 결국 남매간의 총질이라는 클라이맥스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근대 이후의 발전상과 국민 의식의 전환과 변화가 압축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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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AFE 2025] Ema Bertaud, 〈Recherche Mirages〉: 단속적 빛 아래 신체성REVIEW/Dance 2026. 5. 7. 16:00
빈 무대에는 두 개의 스탠드 조명이 놓이고, 무대 오른쪽에 조명만 켜져 있는 채 객석에서 Bertaud가 무대를 오른다. 이 첫 장면, 등장 장면은 극장의 경계를 지시하기 위함보다는 이 조명과 Bertaud의 관계성, 그로부터 조명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조건이다. 그리고 이어진 다른 한쪽의 조명 역시 켜짐은 이 조명의 신체적 형상―Bertaud의 신체로부터 유비되며 Bertaud로 다시 이전되는 앞선 조명으로부터―을 드러내며, 하나의 관계적, 유기적 장을 구성하는 의식적 큐의 일환이다. 전체 구성의 동력에는 온오프의 이진법적 산출의 도식이 전제되며 그것은 하나의 켜짐과 같이 그것의 꺼짐을 예비한다. 닫힘 이전의 일시적인 기호의 작동 속에 신체는 (그 조명을 받으며 또는 그것의 응시를 떠안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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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레디메이드, 〈제일 가까운 장애인화장실이 어디죠?〉: 원작 이후의 마법, 수행, 실재라는 배가되는 차원들REVIEW/Theater 2026. 5. 6. 15:20
프로젝트 레디메이드의 〈제일 가까운 장애인화장실이 어디죠?〉(연출: 강보름)는 동명의 희곡(작: 천쓰안, 번역: 김우석)을 수행성의 차원에 입각해 전유하는데, 이는 말 그대로 실제를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실제의 자리에 다른 실제를 끼워 넣는 방식에 의해 그러하다. 곧 대학로예술극장의 장소 특정적 연계와 재배치, 그리고 중국 인플루언서 자오홍청(趙紅程)의 실화를 바탕으로 쓴 동명의 희곡을 또 다른 “휠체어인” 조우리 배우가 연기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중국이라는 배경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존재를 고스란히 가져올 수 없는 재현의 간극은 수행성과 경합하는데, 그것은 원작의 ‘완벽한’ 재현이 아니라 현재의 다른 차원을 공진시키며 그 차이를 간극으로 그대로 표시하는 것과 같다. 강연을 앞둔 청즈가 대기실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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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이온, 〈갈대밭의 에듀케이션 葦原のエデュケーション Reed Field Education〉(작/연출: 김상훈): 불가능성의 가능성으로서 커뮤니케이션REVIEW/Theater 2026. 5. 6. 15:12
조합을 위한 모듈 〈갈대밭의 에듀케이션〉(이하 〈갈대밭〉)은 두 사람의 대화로 이뤄진 동명의 한 희곡을 영어·일본어·한국어 세 개의 언(어 중 두 개의 다른 언)어를 교차시키고 변형하여 반복하는 구조로 진행된다(Ⓐ). “모듈 구조”로 정의된 이 같은 형식은 일본과 한국의 배우가 섞인 Ⓐ 버전과 한국 배우만으로 이뤄진 Ⓑ 버전으로 나뉘는데, 두 역할에 대한, 다른 둘의 조합이라는 원칙과 다른 언어 간 교환은 일종의 경우의 수를 전제하며―거기에 배가되는 움직임의 유무가 부속된다.―, 이 역할-언어-존재의 차이는 일종의 확률에 따른 자의적 구성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모듈이라는 하나의 원칙으로 수렴한다). 여기서 역할과 언어와 존재는 ‘긴밀하게’ 묶여 있지 않은데, 따라서 더 많은 조합이 가능하다. 역할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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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ko + 하상철, Marina, 《침묵만이 배반하지 않는, part. 1》(큐레이터: 윤태균): 예술의 조건(에 대한 이념)과 소리로써/로서 이념REVIEW/Visual arts 2026. 5. 6. 14:59
Motoko+하상철과 Marina의 《침묵만이 배반하지 않는, part. 1》에서 윤태균 큐레이터는 언어의 빈자리―‘침묵’―에 예술 자체의 목소리를 두려는 일종의 강령적 언어로서 서문을 발화한다. 이때 과잉되고 관념적이며 또한 주지주의적인 그의 언어는 하나의 결론을 향해 닫히면서 작품의 자리를 보전하는데, 곧 자신은 순수 언어로서 사라지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언어 자체만을 지시함으로써 또는 언어로서 닫힘으로써 그 ‘바깥’의 세계가 가진 역능을 상정한다. 이때 그것은 낭만적인 차원에서 전제되는데, 그곳은 언어가 미치지 못하는, 미칠 수 없는, 미쳐서는 안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60년대 수전 손택의 ‘해석에 반대한다’ 식의 유사 논지는 한편으로 실제 현장에서 무차별하게 생산되는 언어, 그러니까 전시와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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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비둘기, 〈걸리버스 3〉: 불가능한 실재를 매개하는 방식들REVIEW/Theater 2026. 5. 6. 14:48
성북동비둘기는 조너선 스위프트(1667-1745)의 『걸리버 여행기』 4부작의 하나씩 순서대로 ‘걸리버스’ 연작을 발표해 오고 있는데, 〈걸리버스 3〉는 그 세 번째 작품으로, 천공의 섬 라퓨타를 모티브로 한다. 특정 학문 체계에 몰두하여 현실과 단절되며 매몰된 시각 체제를 갖고 있는 이 하늘에 떠 있는 섬은, 연극 입시의 부정성과 부조리성의 차원에 대한 메타포로 재조각된다. 무대 위 배우가 되고자 소망하는 입시생의 ‘장면’으로부터 부조리한 입시 체제의 현실을 들추어내는 것으로 확장되어 간다. 입시 카르텔에 대한 국정감사 현장이라는 현실에 대한 핍진한 묘사와 풍자가 대단원을 이루는 가운데, 〈걸리버스 3〉는 “연극 입시 지정 희곡”으로 알려진 희곡들이 연쇄적으로 병치되는 구조를 갖고 있는데, 이는 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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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적, 〈내가 살던 그 집엔〉(마정화 작, 이곤 연출): 여성의 역사와 여성의 글쓰기, 그리고 여성의 연대REVIEW/Theater 2026. 5. 6. 14:40
〈내가 살던 그 집엔〉은 1970년대 후반의 격동의 시기에 각자의 질곡 어린 삶을 겪어냈던 ‘마마’와 ‘엄마’ 두 여성 인물―실은 두 명의 엄마인데, 마마는 화교로 중국어로 마마는 엄마와 같다.―을 주축으로 이 사이에서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전하며, ‘마마가 살던 그 집’에 가서 베트남 이주 여성 꾸엔을 만나 마마와 엄마의 이야기를 마침내 완성한다. 1막이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로, ‘나’(곽지숙)가 엄마(정다함)에게 비친 상대역으로서 마마로 분한다면―엄마와 ‘나’가 내통한다.―, 2막은 마마가 들려준 이야기로, 마마(심연화)와 엄마의 이야기가 ‘나’에게 펼쳐진다―‘나’가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3막은 꾸엔(전형숙)의 이야기이자 꾸엔을 경유해 엄마와 나나 그 둘을 다시 불러오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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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케이댄스, 〈히야〉: 사물-존재-무대의 동시적인 큐REVIEW/Dance 2026. 5. 5. 22:02
리케이댄스의 〈히야〉는 입에서 꺼낸 파란 비닐 봉지는 공연 전반을 관통하는 상징이자 모티브가 되는데, 이는 이후 파란색을 걸치고 두른 무용수들의 색면 공간의 확장으로, 미세한 떨림과 소음을 가진 커다란 파란색 비닐봉지의 물질성으로, 무대 좌우의 중첩된 막들과 스크린의 빛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정면을 향한 채 한 남자가 무심하고도 표정 변화 없이 입 안에서 꺼내는 그 비닐은 신체에 들러붙는 접착성과 끈적거림의 기호라기보다는 신체와 독립적인 사물, 신체에 대한 우연한 개입의 산물인 것처럼 수행되는데, 이때 그것은 하나의 색이자 신체로서 독립성을 보장받게 된다. 그러니까 파란 비닐을 하나의 주어로 만드는 공작, 파란 비닐 바깥으로 세계가 구성되는―마치 파란 비닐이 인간의 죽음을 뚫고 새로운 생명 존재로 거듭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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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TZ Company/안애순, 〈나비존〉: 장소를 나타내기 혹은 장소로서 드러나기REVIEW/Dance 2026. 5. 5. 21:48
〈나비존〉은 독특하게도 두 명/팀의 안무가가 공동 안무를 전제하는데, 이는 한-이탈리아 수교 140주년을 ‘기념‘한 공동의 이상적 이념을 단순하고 투박하게 취한 형식의 일환으로, 결과적으로는 1부와 2부를 나누어 각각 이탈리아 듀오 FRITZ Company(이하 FRITZ)와 안애순이 맡는 것으로 결정―이는 그 수용의 차원에서 배타적인가 아님 절충적인가―된다. 아무튼 두 부분은 마치 하나인 것처럼 이어지는데, 여기에는 제목에서의 ‘나비가 위치하는 상징적 지점’으로 출현하는 뚜렷한 분리 구간이 그 틈을 초과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 바깥을 전적으로 채우는 다섯 명의 무용수는 창덕궁 낙선재에서 하나의 공통의 매체로서 두 안무가의 상호 영향력까지를 드러내는데, 곧 무용수의 시험 혹은 실험적 차원의 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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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텐 스팽베르크 Mårten Spångberg, 〈나튼 - 홀딩 어 캐슬 Natten – Holding a Castle〉: 밤을 통째로 붙잡는 법 혹은 통과하는 법REVIEW/Performance 2026. 5. 5. 21:16
마텐 스팽베르크의 〈나튼 - 홀딩 어 캐슬〉은 옵/신 페스티벌 2025의 주제어인 ‘환상’에 대한 집요하고 더딘 탐구로, 그 장광설 같은 1인칭 시점의 내러티브는 일종의 사변적 소설에 가깝다. 스팽베르크 자신이 옵/신의 예술감독으로서 이 작품이 축제에 대한 그의 이념을 자신의 작품으로 증명하는 셈이 되는 것인데, 그것은 문학이라는 매체의 토대를 확장된 형식으로 전파하고 있다―무대, 음악, 안무 모든 차원에서 〈훰닝엔〉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 작업의 독특함 역시 이 부분이다. 곧 그가 쓴 것이 확실한 하나의 소설이 김신우의 내레이션에 입각한 주로 이민진, 박진영 둘의 움직임이 만들어지고, 225분이라는 사전 계획된 시간을 완성하게 된다. 여기서 화자인 ‘나’의 성별이 특정될 수 있는 건 번역에 따른 가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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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디를 마실 것 같은.》(기획: 이성휘, 이선주): 회화의 어떤 분기점들, 그것이 시작되는 시점들REVIEW/Visual arts 2026. 5. 5. 21:08
강예빈, 회화적 얼룩. 강예빈의 연이어 배치되어 있는 네 개의 그림, 고양이를 아래로 내려다보는 여자를 그린 〈Moment〉(2025, oil on canvas, 162.2×97cm.), 모노크롬에 가까운 〈Turbidity〉(2023, oil on canvas, 65.1×53cm.)와 〈The Back of the Eyelid〉(2025, oil on canvas, 45.5×37.9cm.), 무희들을 부감 쇼트 시점에서 그린 〈Embers〉 (2025, oil on canvas, 130.3×97cm.)는, 모두 하나의 비가시적 원의 형상을 구현한다는 점에서 공통되는데, 은밀하게 또는 명확하게 드러난 그 원형의, 각각 빛, 어스름함 또는 얼룩(2), 치마는 추상과 구상의 일반적인 구분을 내파하는 회화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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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은, 청각이 다양한 세계를 경유하는 방식들REVIEW/Visual arts 2026. 5. 5. 20:34
김영은의 작업들 대부분은 청각의 자리를 시각의 그것보다 앞세우는데, 이는 빈 배경 위에 적히는 자막이 거의 유일한 시각적 기표로 자리함을 의미한다. 사운드는 언어를 명시하는 목소리와 그 밖의 비언어적 소리로 나뉠 수 있는데, 이는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이 화면을 대부분 잠식하고 이끌어가며 그것에 대한 단일한 주체의 의지가 투여됨을 의미한다. ‘미래의 청취자들에게’ 시리즈―〈미래의 청취자들에게 III〉(2025. 단채널 비디오, HD, 컬러, 사운드(스테레오), 12분.), 〈미래의 청취자들에게 I〉(2022. 단채널 비디오, HD, 컬러, 사운드(스테레오), 8분.)―는 다른데, 이는 그것이 내레이션이 주축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사운드 편집 소프트웨어들을 사용해 목표로 한 사운드를 변용시키는 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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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파, 《GORE DECO》: 깊이, 구멍, 말을 차폐하는 절편적 기호의 증식REVIEW/Visual arts 2026. 4. 24. 21:03
《GORE DECO》를 통해 새롭게 도입된 가장 눈에 띄는 요소는 타투이다. 실크스크린으로 처리된 이 부분은 그야말로 신체에 새겨진 것이 아니라, 찍힌 것인데, 이는 역설적으로 핏빛 내장으로서 피부에 또다시 파고들어 녹아든 지표적 흔적으로서가 아니라 그림과 분리되는 순수한 기표들의 놀이로서 회화 ‘위’에 쌓이며 그것을 회화로 (자신을 타투라는 이미지―이는 일종의 접착된 스티커다.―로) 지시한다. 앞서 끊없는 내장의 연결망으로 직조된 작가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화면은 작가가 이야기한 “남성적 숭고”, 아마도 팔루스적 신체 기관의 독립된 지위와 그것의 지배성을 부정하고 비판하려는 차원에서 이뤄지는 육체의 절편화, 증식하는 절편들, 절편들의 연결-접속의 체계, 조망되지 않는 세계로서 육체를 가설하는 것으로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