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
음악동인고물, 〈꼭두각시〉: 연주(자)의 신체적 자율성과 타동적 신체의 사이에서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25. 8. 20. 23:06
〈꼭두각시〉는 음악동인고물(장구_정준규, 해금_소명진, 대금_고진호, 피리_배승빈, 25현금_홍예진)과 고블린파티(이연주, 임성은, 지경민)*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만들어지는 작업으로, 이는 전자의 음악과 후자의 무용으로 대별되는 두 장르/매체의 집단이 서로의 그것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가능해진다. 이 참여의 감각은 무용을 초대한 음악에 더 방점이 찍히며, 이 둘의 접점은 시작과 동시에 길게 음위전환(metathesis)의 법칙을 따라 자의적인 조합을 반복해서 이루며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제목 ‘꼭두각시’와 같이 신체를 저당잡히며 주체성을 상실한다는 서사에 의해 고안된다. 곧 음악과 무용의 접점은 무엇보다 신체적인 양상으로 발현되는데, 꼭두각시의 몸짓을 체현하는 음악동인고물, 반대로 음악동인고물의 악기를 ..
-
시나브로가슴에, 〈Earthing〉: 지구에의 접지된 감각에 대한 의례적 재생산의 형태들REVIEW/Dance 2025. 8. 20. 22:58
서로를 마주하는 원형의 대열은 〈Earthing〉에서 시종일관 유지된다. 정향된 움직임의 반복적 단위에 미세한 차이를 주어 점증적인 변화를 꾀하는 가운데, 몇 번의 전이 단계가 발생하고 클라이맥스에 이른다. 구심력은 땅과 붙어 있는 절반의 신체, 곧 제목의 접지를 뜻하는 ‘어싱(Earthing)’이 자연을 맨발로 감각하는 활동을 일컫는 것과 같이, 거의 제자리에서 이동 없이, 무대 바닥과 하반신의 밀착됨은 공연의 중반까지로 이어지는데, 이는 팔 동작의 세부에 주의를 기울이게 됨을 의미한다. 가령 두 발을 들고 내려놓고 고개를 숙이고 하는 하나의 단위가 성립한다면, 다음은 또 다른 단위적 움직임이 고안된다. 움직임은 포착 가능하며, 일정한 분기 아래 구분 가능하다. 그리고 일종의 의식적 절차로서 이 행위..
-
팀 머구리,〈북/치기/박치기 : 아마도 이건 북어 이야기?〉: 현실로의 서사를 완수하는 북어의 주체적 미션에 대하여REVIEW/Theater 2025. 8. 20. 22:48
〈북/치기/박치기 : 아마도 이건 북어 이야기?〉(이하 〈북어〉)는 액막이 북어의 자기소개 이후, 자발적 백수를 택한 영동이의 자취방을 비추면서 시작된다. 10년간 자신의 집에 걸려 있던 액막이 북어가 없어지고 난 뒤 겪은 불행들을 거슬러 오르기 위해 액막이 북어를 찾는 영동이의 여정은, 바다를 찾아 떠난 액막이 북어와 배송 중 사고로 이탈한 동태 한 마리의 여정의 반대급부로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 둘이 하나의 특이한 장소 안에 머물게 되면서 새로운 공동의 탐험이 요청된다. 그리고 이 비선형의, 삐뚤빼뚤한 여정의 그늘진 서사는 그 처음의 시작으로 되돌아가게 하는데, 곧 그 어둠의 캄캄한 방의 고립된 공기, 그것에서부터 가능한 건 또는 그 안에서 예외적으로 유동적인 건 상상력의 일환일 것이라는 점을 반..
-
적극, 〈어디로나 흐르는 광주〉: 광주는 (어떻게) 흐를 수 있는가REVIEW/Theater 2025. 8. 20. 22:42
〈어디로나 흐르는 광주〉에서 연극의 등장과 퇴장은 설치와 철수의 절차로 바뀐다. 오브제와 한 몸으로 또는 오브제를 다루는 이들의 등장과 퇴장, 곧 이들이 오브제를 가져오고 또 가져감에 따라, 사물-신체들은 일시적이고 임시적 것이 된다. 그사이에는 천지창조의 7일과 안식일, 그리고 종말 7일을 지정하는 자막의 언어가 투사된다. 곧 〈어디로나 흐르는 광주〉는 각기 다른 장면, 이미지들을 넘겨보는 것, 그 같은 이미지들이 생겨나고 수거되는 데 따르는 행위들을 보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제일 큰 극장이라는 거대한 공간 속에서 퍼포머들은 스태프처럼 곧추 세운 신체들로 전력 질주로 공간을 활보해야 한다. 이는 광주 5·18민주화운동을 사유하고 감각하기 위한 이미지들의 무덤으로서 공간을 구성하기 위한 작은 소실점들의..
-
피에르 위그, 《리미널(Liminal)》: 인간에의 경계가 아닌, 인간으로서 경계REVIEW/Visual arts 2025. 7. 30. 23:48
피에르 위그의 전시 《리미널(Liminal)》의 다종다양한 작업들은 매체적으로 분기되며 특정한 형상으로서 수렴되는 대신, 각각의 고유한 동적 이미지를 생성하는데, 이는 그 제목이 가리키는바, 경계의 영역, 확정 불가능한 그곳에 위치한 존재자의 자리에 상응하는 임시적이고 가변적이며 불확실한 차원에서 획득된다는 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이는 변화 자체를 하나의 결과로 의도한 것이라기보다 변화 자체가 고정값으로 주어지는 작품들의 출발점이 다양성의 형태보다는 비정형적이고 유동적인 형상으로, 그보다는 여러 상태로 귀결되는 부분이다. 아마도 그 예외라면, 입구에 자리한 안이 둥글게 파인 현무암 조각, 〈에스텔라리움(Estelarium)〉(2024. 작가, 갤러리 샹탈 크루젤, 마리안 굿맨 갤러리, 하우저&워스, ..
-
권재헌, 〈All i do for glory〉: 우리를 잠식하는 것들의 영광REVIEW/Dance 2025. 7. 30. 23:39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SAL) 창단 5주년 기획 공연 ‘GAMMA’의 시작을 연, 권재헌 안무의 〈All i do for glory〉는 두 다른 움직임의 병치를 주요하고 집요하게 사용한다. 이는 아마도 중앙에서 손목을 꺾은 채 아래로 향한 두 팔을 힘주어 좌우로 왔다 갔다 하는 중앙의 일자와 그 나머지의 일치된 집단적 움직임의 도열, 그 둘의 대비라는 첫 번째 순간에서 가장 강렬하게 드러난다. 전자의 두 팔의 한 방향으로의 운동이 한쪽 어깨의 꺾임을 필히 동반하며 그 뒤틀림에 주의를 실리게 한다면, 후자의 보디빌딩의 대표적인 포즈, 프론트 더블 바이셉스와 유사한 과시적 표현의 형태이지만 이두박근의 조임 대신에 거의 완벽한 직각을 이루는 팔꿈치의 각도를 유지하는 포즈는 그 자체로 너무 과도해서 기괴해 보이..
-
최호종, 〈Virgin Soil〉: 고통으로 뒤집힌 땅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서 서사REVIEW/Dance 2025. 7. 30. 23:37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SAL) 창단 5주년 기획 공연 ‘GAMMA’의 두 번째 막을 연, 최호종 안무가의 〈Virgin Soil〉은 한동안 뜬구름 잡는 것 같은, 정박되지 않는 흐릿한 형체들의 흐름, 그 가운데 일정 정도의 정동 정도만이 감지된다. 이러한 분위기는 처녀지를 뜻하는 제목을 따른다면, 되도록 형상(figure)적인 것들을 불명확하게 만듦으로써 일종의 배경(ground)으로서 장소를 강조하는 의도적인 전략에 의거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대지의 특징이 명확해지는 건 트로이의 목마를 재현한 커다란 구조물이 무대 오른쪽에 들어오면서부터인데, 그조차도 고정된 목마를 제외한 나머지를 뚜렷하게 부각되지는 않는다. 목마가 변함없는 형상을 유지하는 것처럼 실제 그 목마에 숨어 있던 존재는 등장하지 않지만, ..
-
공놀이클럽,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 퀴어라는 세계/설렘의 입구 혹은 시작REVIEW/Theater 2025. 7. 30. 23:27
공놀이클럽의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이하 〈말린 고추〉)은 소시민 가족의 한 전형으로부터 퀴어와 페미니즘의 의제를 길어 올리고 맞세운다. 이는 각각 서울대 사범대학을 휴학 중인 규빈과 그의 동생 재수생 은빈에 해당하며, 이 둘은 자신들의 독립적인 욕망 실현을 위해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의 질서 아래 자신들만의 비밀을 은밀한 것으로 둔다. 그 질서를 지키거나 승인하기보다 그 아래 또 다른 삶의 지층을 전개하는 것이다. 은빈의 시점에서 가족의 모습이 그려지고,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지닌 오빠 규빈의 비밀이 은빈의 삶에 들어왔을 때 그것은 은빈의 은밀한 기호로 연장된다. 오빠는 그 전과 같이 남성으로 대별되어야 하고, 자신의 독립을 이루기 위해 유예되어야 하는 사실이 된다. 규빈이 할머니의 가부장적 ..
-
박선화, 〈마주하기 ; Reflection〉: 불화로서 몸에서 출발하기REVIEW/Dance 2025. 7. 15. 18:15
〈마주하기 ; Reflection〉(이하 〈마주하기〉)에서 거울과 카메라는 ‘reflection‘, 곧 제목이 가리킨 두 개의 상을 매개하며, 이를 이중으로/동시에 ’마주하는’ 박선화 안무가가 있다. 무대는 하나의 흰색 평면을 이루는 공간이며, 중앙의 분장대와 그 위에 놓인 카메라가 비추는 관객을 투사하는 분장대 위쪽의 화면이 공간의 너비만큼을 차지하고 있다. 이 거울을 통해 자신을 보면서 관객이 자신을 보는 걸 볼 수 있는 자신을 그 바라보는 시선들에 역으로 노출하는 박선화가 등장하고, 그 참여된 관객 자신을 보는 박선화를 보는, 그 보이는 대상이자 그러한 대상이 그 중간의 박선화에 의해 반영되어 감을 선취하는 보는 주체 사이의 시차 속에 이중으로 각인되는 (걸 보는) 관객이 뒤편에 자리한다. 이 복..
-
김상훈 작, 박해성 연출, 〈러브미투마로우〉: 고정적인 것으로부터 유동적인 것을 추출해 내기REVIEW/Theater 2025. 7. 15. 18:05
〈러브미투마로우〉에서 과잉된 무대 장치, 곧 무대 위에 놓인 비석 구조물들은 복잡한 지형지물의 한 전경으로 묶이는 대신, 편재된 비동시성의 동시성 아래 각각의 자리로 할당된다. 이 하나의 터전 아래 상응되는 유사성의 한 계열들―구조물들―은 하나의 매끈한 장면으로 처리되기에는 과포화된 상태로서 무대를 가로막고 제한하고 있으며, 인물들은 그 일부를 일시적으로 점유하고 거주하며, 그 구조물들로부터 발화하며 생성된다(는 점에서 그것들은 물론 제약 조건이 아니며 결과적으로 창발의 노드들에 가깝다). (시간적) 분할들과 (공간적) 배치들의 연극, 곧 내용적 단위의 분할들의 공간적 접착으로서 배치들, 그리고 반복으로 거듭나고 회수되는, 그보다 회수되며 거듭나는 이 연극은, 부분들, 단위들이 서로와 접합되어 놓이며,..
-
《합성열병》: 호 루이 안의 관점 제시로부터REVIEW/Visual arts 2025. 7. 15. 17:54
호 루이 안의 〈역사의 형상들과 지능의 토대〉(2024. 실시간 AI 생성 이미지와 비디오 설치, 컬러, 사운드, 75분, 시트지 가벽, 모래, 캠핑 의자.)는 그의 강연에 부가되는 영상과 그것을 생성형 인공 지능 이미지로 번역하는 또 다른 영상으로 이어진 2채널 비디오 작업으로, 《합성열병》(2025.03.19.~2025.06.28., 코리아나미술관)에서 예외적인 차원으로 또 상대적인 견지에서도 꽤 흥미로운 작업이다. AI라는 화두가 작품으로 옮겨질 때 보통 AI와 현재의 간극으로부터 미래의 부정적 차원이 예고된다면―또는 테크놀로지의 집약된 버전이 주는 놀라움으로 그것을 상쇄하려 한다면, 곧 AI 자체보다 AI와 현재의 거리로부터 현재를 미래로 갈음하는 차원을 향한다면, 결과적으로 호 루이 안의 작업은..
-
이예본 작가, 극단Y: 〈로비: 기어코 그 손을 잡고〉: 공백을 향하는 응시의 손길REVIEW/Theater 2025. 7. 15. 17:41
〈로비: 기어코 그 손을 잡고〉(이하 〈로비〉)는 청소노동자의 노동 행위와 산재 사고로 죽음을 맞은 이의 유가족의 팻말 시위가 겹쳐지는 하나의 지대를 로비로 제시한다. 이는 중앙의 직육면체의 프레임 안에 숫자를 표시하는 상단의 LED 문자가 엘리베이터 공간으로 확장되는 것과 함께, 고층 건물의 수평적, 수직적 차원에서의 직선의 선분이 각각 펼쳐지고 확산되는 것으로 상상된다. 또한 로비는 일종의 인트로에 해당하는, 〈로비〉의 등장인물들이 무더기로 지나가는 짧은 장면으로써 무정형의 사람들이, 보통의 바쁜 현대인이 냉랭하게 또는 생기 없이 지나가는 특색 없는 통로를 나타내며, 무엇보다 이를 생계의 차원으로 전유하는 복희(한혜진 배우)의 존재가 이곳을 가장 먼저 그의 삶의 일부로서 주요하게 점유한다. 이 수평..
-
손인영의 춤 <ㅅ · ㅁ>(부제:서예를 하는 것과 같은 춤): 춤이 분기되는REVIEW/Dance 2025. 3. 12. 00:25
‘의미가 체현되는 몸’은 무엇일까. 손인영 안무가의 말에 따르면, 이는 무대 위의 이상적인 춤, 춤의 이념에 해당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서두를 연 “우리 시대의 춤은 형식적”이라는 말의 대립항으로서 존재할 것이다. 형태적 구성의 유려함과 단단함, 이미지적 향연과 발산이 감응을 추동하지 못한다면, 그것과 근본적인 차이를 만드는 춤은 어떤 정신에 사로잡힌 ‘나’로부터 출발하는 춤이 될 것이고, 그 온전한 나를 구성하는 건 ‘숨’이다―제목의 ㅅ 더하기 아래아 더하기 ㅁ 역시 숨을 의미한다. 아마도 무대 오른쪽에 놓인 마이크를 잡고 팔을 휘적거리며 춤을 추던 손인영이 말한 바를 대강 요약하자면 이와 같을 것이다. 손인영은 안무라고 하지 않고(안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춤이라고 했다. 무언가를 구성하는 데..
-
음이온(김상훈 연출), 〈서대문구민들이 바라는 장면〉: 재현으로부터 미끄러지는 주체들REVIEW/Theater 2025. 3. 12. 00:11
〈서대문구민들이 바라는 장면〉(이하 〈서대문구〉)은 제목과 같이, 전면에 내세운 특정 관객층을 대리한다는 일종의 캐치프레이즈는 타자의 시점과 욕망을 향한 매개의 윤리를 전제한다. 이러한 ‘대리’는 그 자체가 하나의 목적이자 결과이면서, 일종의 연극을 하는 것의 명분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창작자의 욕망은 창작자의 도덕에 온전히 혹은 완전히 잠식될 수 있는가. 여기서 타자를 향한 도덕은 자신의 내재적 윤리에 부합할 수 있는가. 〈서대문구〉는 이러한 대리자의 지위로서 어떤 것을 성취하려 하는가. 아니 성취할 수 있을까. 100초 단위의 재현 질서의 토대가 되는 50개의 설문 아카이브는 불특정한 고유한 개인들의 욕망에 대한 목록과 특정 집단의 공통된 지점이 산출되는 지역 문화적 인류지 사이에 자리한다. ..
-
이무기 프로젝트, 〈이태원 트랜스젠더-클럽 2F〉: 존재들의 성좌, 그리고 진동REVIEW/Theater 2025. 3. 11. 23:46
이무기 프로젝트의 〈이태원 트랜스젠더-클럽 2F〉에서 색자, 미래, 미란, 세 등장인물은 트랜스젠더 클럽의 초창기를 연 대표적인 세 개의 클럽, 1978년 열매, 보카치오, 1984년 여보클럽의 시작을 알리며 등장한다. 세 명의 존재는 연표적 기입을 통해 그 공간을 대표하게 된다. 곧 그 공간을 존재에 일임하면서 역사의 기원을 선취하는데, 공간의 개별 역사적 특징을 기록하는 대신에 존재의 서사를 체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 존재는 그 스스로를 정의하기보다는 다른 공통 존재의 식별에 의해 기입되며 “언니” 혹은 “이년/저년”이라는 호명에 의해 세계의 일원이 된다. ‘미래’가 경험한, 구별 짓기의 시선에 의해 세계 바깥으로 밀어내는 또 다른 식별의 행위 바깥에서, 그러한 호명을 통한 수렴, 구분 짓기는..
-
동이향 작/이인수 연출, 〈간과 강〉: 언어의 꿈과 해제REVIEW/Theater 2025. 3. 11. 23:29
〈간과 강〉은 증상과 징후로 가득하다. 재앙과 종말의 기후와 분위기가 몸에 치밀어오르고 파고드는 주인공 L의 증상은 ‘간과 강’이라는 각각 몸의 장기 일부라는 개체의 내장 감각과 흐르고 흘러가는 것으로서 인류에 내속되는 역사적 힘에 대한 이미지, 그 두 단어의 유사성의 결합이 지닌 어떤 양상에 상응한다. L은 일종의 알레고리로서 질병에 걸려 있으며, 그것은 〈간과 강〉이 쌓아갈 언어의 세계가 언어를 정초하고 언어의 사이를 매만지고 헤집는 과정으로서 존재함의 연장선상에 있다. 반면, 이 언어는 대중문화적 재현을 경유한, 도시의 풍광 이미지에 의해 절대적으로 지지되는데, 언어의 토대를 불확실한 것, 아니 부조리한 차원으로 이끌고 가는 차원에서, 현실의 빈틈을 메워 현실의 토대를 무의식적인 진공의 토대로 연..
-
류장현과친구들, 〈GRAVITY〉: 변경된 세계 위의 부유하는 물질로서의 몸REVIEW/Dance 2025. 3. 5. 00:05
〈GRAVITY〉는 중력이라는 지구의 기본적인 물리적 힘의 자장을 주제로 가져가는데, 그것은 물리적이고 자연(과학)적 진리이자 지구 전체에 보편적으로 편재하는 하나의 힘으로 적용되며 일상에서 의식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중력 자체를 지시한다고 할 때 이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지구 바깥의 영역, 힘, 곧 중력이 닿지 않거나 중력이 작용하지 않는 지점을, 그리고 거꾸로 중력과 관계 맺고 있는 지구상의 여러 존재를 가시화할 필요가 있다.이는 〈GRAVITY〉에서, 각각 물리적 차원에서―‘그것은 엄연한 하나의 힘이다!’―, 그리고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 차원에서―‘보이지 않지만 하나의 영향권 아래 존재들이 종속된다.’‘, 중력이 서사로 연장되어 감을 의미한다. 중력을 상정하기 위해서는 비중력적인 조건, 중력에 영향을..
-
희박, 《썩지 않는 금은 없다》: 가치의 자의성 혹은 절대성REVIEW/Visual arts 2025. 3. 4. 23:29
희박 작가의 《썩지 않는 금은 없다》는 일곱 점의 회화로 구성되며, 작은 큐브의 공간으로 높은 천장고에 상응하는, 비닐에 싸인 바뇌의 성모를 그린, 세 개의 대형 작품과 상대적으로 작고 다양한 주제의 네 작품이 있다. 중심 도상인 성모를 비롯한, 하나의 공통된 토대는 배경이다. 배경에는 어떤 사물도 없고 일정한 톤을 형성한다―〈축하 케이크 Celebratory Cake〉(2025. Oil on canvas, 65.1×90.9cm.)는 그 예외이며, 예외성은 또한 전시장 바깥의 윈도우에 따로 전시되었다는 것으로 발현된다. 배경은 첫 번째로 피사체가 자리한 현실을 지우거나 축소하거나 은폐하며, 두 번째로 그 현실이 자리한 시간성을 소거한다. 이는 물론 피사체를 강조하기 위한 의도를 함축하며, 나아가 실내 ..
-
조음기관, 《기존의 인형들》: 인형이라는 물질로부터…REVIEW/Theater 2025. 3. 4. 22:39
《기존의 인형들》은 인형이라는 사물 혹은 대상으로부터 되먹임되는 인간 존재에 대한 탐문을 전제한다. 작년 낭독 쇼케이스에 이어 이번에 본 공연으로 오른 ‘인형의 텍스트’라는 부제로 열린, 세 번째 ‘기존의 인형들’은 그동안 세 명의 작업자들과 함께해 왔으며, 제목이 가리키는 것처럼 ‘기존’의 인형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자각의 출발점을 예비한다. 인형의 텍스트는 또한 인형으로부터의 텍스트이기도 한데, 이 두 사이에서, 세 개의 극작이 이루어졌다. 이는 인형의 존재론을 쓰는 일로 이어진다. 인형의 존재론은 곧 언어와 서사의 형상을 새롭게 정초하는 하나의 단초로(〈한 명 또는 두 명의 인간은 바늘구멍 속에서 바늘을 이야기한다〉), 로봇(인형)과 인간(만)의 의사소통의 관계가 상정되는 시기에 대한 상상으로(〈범..
-
정하늘 안무·연출, 〈유토피아 - LET THERE BE LIGHT〉: 인류세 이후의 미래 시제에 대한 이미지, 정동, 환경REVIEW/Dance 2025. 3. 4. 22:05
〈유토피아 - LET THERE BE LIGHT〉(이하 〈유토피아〉)는 설치와 프로젝션을 통해 ‘환경’에 관한 상징적 배경을 구성해 낸다. 여기에 쌓이는 또는 연루되는 격렬한 몸짓들은 그 환경에 대한 반응이자 반영의 표현이다. 후반, 총천연색의 자연을 바라보는 여자의 이후 몸짓의 기조 변환은 세계에 대한 재인식이자 새로운 출발점을 노정한 것이다. 여기에 유토피아에 대한 희망적 장소를 성서적 해석과 겹쳐 두는 제목은 이와 결부된 작품을 해석하는 근거로 적용할 수 있을까. 플랫폼엘 플랫폼 라이브홀의 전체 객석을 거둬내고 관객이 공간 양 가에서 마주 보는 대형으로 구성한, 일종의 런웨이이기도 한 공간의 중앙은 허공에 매달린 초록색 도료를 칠한 각목들로 직조한 비정형 입체 구조물들과 의자들로 가로막혀 있는데..
-
이동하, 〈여신과 우산이 해부대 위에서 우연히 만난 것처럼 아름답다〉: 이접되는 두 시공간REVIEW/Dance 2024. 12. 6. 21:54
이동하, 〈여신과 우산이 해부대 위에서 우연히 만난 것처럼 아름답다〉(〈해부대〉)는 그 제목에서부터 미스터리한 느낌을 만드는데, 이 분위기는 작업에서 해소되지 않음으로써 완성된다. “해부대”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역시 정확하지 않지만, 처음 군대의 기상나팔 소리로 시작된 작품에서 텐트를 비롯해서 ‘부대’라는 군대의 용어가 현실의 상징적 재현과 함께 장소 특정적 환경을 구성한다고 추정 가능하다. 얼굴을 가린 마스크와 의상, 텐트까지 모든 것이 분홍색을 이루는 가운데, 움직임에는 물론 표정과 언어가 없다. 그 부재의 강조는 이들의 뭔가 부산스러우면서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정위되지 않고 투박한 몸짓으로 나타나는 것과 맞물린다. 동시에 단세포 입자들처럼 보이는 구형들의 동시다발적 움직임이 미디..
-
국립현대무용단, 〈인잇〉: 차이의 확산 혹은 분화REVIEW/Dance 2024. 12. 6. 20:15
〈인잇〉의 무대는 시간이 지나면서 아래로 내려오는, 천장으로부터 걸린 대략 270~300도 정도의 각도를 이루는 앞쪽 이가 빠진 원기둥과 그 뒤의 검은 장막으로 구성된다. 원기둥 앞과 검은 장막의 경계에는 각각 조명이 무대를 향한다. 후자의 경우, 사선의 무늬를 바닥에 그리며, 전반적으로 눈에 띄거나 공간 전반을 아우르지 않은 채 조명은 어두운 공간 범주를 구성하게 된다. 비스듬하게 바닥에 누운 무용수들 사이를 우측에서 좌측으로 횡단하는 누군가로부터 〈인잇〉은 시작된다. 이를 마치 잠에서 깨어나(게 하)는 장면으로 볼 수 있다면, 집단으로 굴신하고 있는 〈인잇〉의 마지막 장면은 다시 어둠 혹은 잠, 무의식과 같은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는 장면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장면의 직전 장면에서는 장막을..
-
아하무브먼트, 〈음-파〉: 헉헉거리거나 한숨 쉬기라는 숨의 양태들REVIEW/Dance 2024. 10. 18. 10:42
제목에서 수영할 때 호흡법을 지시하는 〈음-파〉는 얼굴에 스타킹을 쓴 채 움직이는 무용수들을 통해 직접적 생존 방식을 통해 고군분투하는 삶의 메타포를 그려낸다. 그럼에도 그러한 메타포가 삶에 대한 재현의 양태로 드러나는 건 아닌데, 다름 아닌 표현 양식과 의미는 일 대 일의 대응 관계를 구성하며, 고립된 영역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그 간극에 대한 해소, 또는 의미에 구애받거나 의미를 해소하기 위한 차원으로서 표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음-파〉는 삶에 대한 실존적 양상의 장면들을 은유한다고 애초에 말할 수 있을까. 이 특이한 신체 양상의 역동적 움직임은 무대의 유한한 시간에 불사르는 완전한 소진을 향한 강박에 가깝지 않을까. 다섯 색깔의 스타킹은 은폐된 얼굴을 대신해 각각의 다름을 상정하고 또..
-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SAL), 〈2122.21222〉: 미장센, 매질, 진동하는 신체 양식들REVIEW/Dance 2024. 10. 18. 10:29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SAL)의 〈2122.21222〉는 제목이 아닌 그룹명을 말 그대로 돌려주는데, 일종의 영화적으로 펼쳐지는 장면이자 그 장면이 갖는 일상의 기괴함과 거리감, 그리고 그 내용을 구성하는 몸의 극렬한 떨림과 진동은, 각각 요철이 있는 무대라기보다 매끄러운 풍경으로서 신(scene), 현실 층위의 전복적 코드, 해부학적 몸의 단면들을 상정한다. 이 풍경, 곧 장면은 장막이 걷히면 시작된다. 무대, 곧 장막이 열리기 전, 헐벗은 두 다리의 배배 꼬는 장면, 미시적 틈새가 거대한 무대 전반의 이미지로 확장되기 직전의 순간은, 그 무대를 향한 하나의 끌개로서 유예되며 잠재된 것으로 지속된다. 이는 ‘장면’의 예외적 순간이다. 장면으로 끌고 오려는, 하지만 그 장면과의 거리감으로 인한 균열과 실..
-
김신록×손현선, 〈없는 시간〉: 불순물, 오차, 수행, 유행하는 것 등의 이름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24. 10. 18. 10:16
김신록×손현선의 〈없는 시간〉이 추구하는 매체는 곧 연극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손현선의 작품을 하나의 과제로 받아들이는 김신록이 있고, 그 결과 존재와의 유기적인 결속을 위한 배경, 오브제 정도로 현재에 포함되는 것이다. 이는 무대 위에 자신을 ‘드리운’ 손현선의 작품들을 어떻게 다루느냐, 희곡의 세계 안에 포함시키느냐의 차원에서 그것이 순수 배경이 되거나 온전한 출발점이 되지 않고, 다소 이질적인 양상으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협업의 불가능성이라기보다 협업의 어려움을 다분히 드러낸다. 처음 〈투명-몸〉(투명 필름 위에 젤 미디엄, 2024, 가변 크기.)에 관한 텍스트는 일종의 추상적 시에 가까운데, 이는 다시 작품의 재귀적 성격으로 어느 정도 수렴되는 걸 의도하는 듯 보인다. 〈투명-몸〉 앞에서 이..
-
양윤화, 《오팔 Opal》: 조각-오브제-스크린-신체의 응결점으로서 이미지REVIEW/Dance 2024. 10. 18. 10:12
양윤화 작가의 《오팔 Opal》은 퍼포먼스와 전시가 결합된 형태이며, 더 정확히는 퍼포먼스를 통해 전시가 재형성되고 나아가 퍼포먼스를 통해서만 전시가 임시적으로 작동하는 퍼포먼스형 전시이다. 다섯 개의 살아 있는 신체의 지지체를 기초로 한 유동적인 다섯 개의 조각과 조명을 근간으로 한 무대(로서 오브제)의 캡션이 “러닝타임”이라는 용어로써 뒷받침되고 있음은 이를 나타낸다. 여기서 임시성의 가시화는 관람객의 신체를 경유하면서 일부 초과하는데, 50분으로 측정된 퍼포먼스에 비해 1시간으로 ‘책정’된 후자의 그 초과분은 일정 시간 동안 더 작동하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수여한다. 신체의 한계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후자는, 아마도 더 많은, 시간과 구애되지 않은 채 고정된 설치로 작동할 수 있겠지만, 관람객이 ..
-
이가영 안무, 〈비수기〉: 춤이 시작되는 장소REVIEW/Dance 2024. 10. 17. 10:06
〈비수기〉는 현실 공간의 전유와 문화 양식의 참조를 통해 완성된다. 이는 무대가 실존적 주체의 무정형적 터전이 되는 대부분의 공연과 다르게, 무대가 현실의 변형이거나 변환이라는 차원에서 출발함을 의미하는 한편, 현실 공간이 극장을 다른 세계의 입구로 지정하고 있음을 또한 의미한다. 그 변환은 이 공간에서라기보다 이 공간 내에서 이뤄짐으로써 가능해진다. 두 남녀가 앞쪽의 테이블을 항하여 바닥이 파인 중앙의 자리에 앉고 정면의 스크린을 응시하는 첫 번째 장은, 병풍과 같은 무대가 반쯤 옆으로 펼쳐지는 데 이어 마지막으로 비닐막이 걷히고 완전히 확장된 세트 아래서 종결된다. 펼쳐지는 무대에서 시종일관 무미건조한 표정―특히, 처음 일관되게 스크린을 향한 두 남녀의 심드렁한 눈빛과 몸짓 아래 진행되는 일상의 시..
-
시각의 경계를 뚫는 변성 공간의 체험 – 김도희, 《빛선소리》REVIEW/Visual arts 2024. 8. 6. 12:28
도병훈(작가·비평) Ⅰ. 현대미술은 고정 관념과 기존의 의미망을 깨트리며, 명사적 ‘의미’가 아닌 동사형 ‘사건’으로 확장되어왔다. 이러한 국면에서는 ‘X란 무엇인가’ 대신 ‘무엇을 X라고 하는가?’라는 질문, 또는 자문이 요구된다. 따라서 ‘예술이란 무엇인가’는 ‘무엇을 예술이라고 하는가?’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폴 세잔(Paul Cézanne)의 자문은 “이것이 과연 내가 보고 있는 것인가?”였다. 그는 치밀한 관찰과 함께 색채의 차이와 한 번의 터치가 화면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점에 고심하며 화면 부분마다 긴 시간을 소요해 천천히 작업했다. 세잔의 후기 원작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이러한 머뭇거림이 생생하다. 세잔의 이러한 태도와 유례없는 회화의 특성은 ‘멜랑콜리아(melancholia)’,..
-
밀로 라우, 〈에브리우먼〉: 극장, 죽음, 공동체REVIEW/Theater 2024. 6. 5. 19:00
〈에브리우먼〉은 무대에 홀로 현존하는, 배우 우르시나 라르디의 전적인 매개의 위치를 상정하며, 스크린의 영상을 병치시키되 이 역시 라르디의 신체를 경유하여 재생한다. 〈에브리우먼〉은 휴고 폰 호프만스탈의 『예더만』을 가져오되(“예더만”은 ‘모든’과 ‘사람’이 합성된 하나의 단어로서, ‘누구든지’, ‘모두 다’라는 이 단어에서 영어로 man에 해당하는 부분을 woman으로 바꾼 제목이 〈에브리우먼〉인 셈이다.), 헬가 베다우라는 시한부 선고를 맞은 현재적 인물을 겹쳐 놓음으로써 죽음이라는 알레고리를 도덕적인 교훈극이 아닌, 하나의 수행사적인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고자 한다. 처음에 나오는 음악은 라르디가 카세트플레이어의 정지 버튼을 누르자 사라진다. 이는 라르디의 바깥에서의 제어가 아닌, 무대..
-
김상훈, 작/연출, 〈히라타 오리자를 위한 유튜브 스크립트〉: 발화가 아닌 발설의 장면들REVIEW/Theater 2024. 6. 5. 18:56
〈히라타 오리자를 위한 유튜브 스크립트〉(이하 〈히라타 오리자〉)는 제목과 같이 일본의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히라타 오리자의 이론을 소개하는 유튜브 스크립트를 짜려는 유튜버를 보여준다. 연습과 중계의 어느 사이에 자리한 그의 행위는 관객을 느슨한 혹은 타격감을 잃은 시청자-관객으로 연루시킨다. “세미 퍼블릭”이라는 히라타 오리자의 용어는 시종일관 머뭇거리며 웅얼거리는 전혜인의 화법에 의해 그의 신체로부터 난반사되는데, 내부를 매개하는 외부의 출입이 가능한 특정 시-공간의 상태를 가리키는 세미 퍼블릭의 시간이 일차적으로 그것을 전달하려는 자의 불확정적인 상태에서부터 덜그럭거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의 사적 영역은 제4의 벽에 가로막혀 보이지만, 그의 입지는 분명 공적인 사태라는 판단에 근거한다. 사실 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