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
이동하, 〈여신과 우산이 해부대 위에서 우연히 만난 것처럼 아름답다〉: 이접되는 두 시공간REVIEW/Dance 2024. 12. 6. 21:54
이동하, 〈여신과 우산이 해부대 위에서 우연히 만난 것처럼 아름답다〉(〈해부대〉)는 그 제목에서부터 미스터리한 느낌을 만드는데, 이 분위기는 작업에서 해소되지 않음으로써 완성된다. “해부대”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역시 정확하지 않지만, 처음 군대의 기상나팔 소리로 시작된 작품에서 텐트를 비롯해서 ‘부대’라는 군대의 용어가 현실의 상징적 재현과 함께 장소 특정적 환경을 구성한다고 추정 가능하다. 얼굴을 가린 마스크와 의상, 텐트까지 모든 것이 분홍색을 이루는 가운데, 움직임에는 물론 표정과 언어가 없다. 그 부재의 강조는 이들의 뭔가 부산스러우면서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정위되지 않고 투박한 몸짓으로 나타나는 것과 맞물린다. 동시에 단세포 입자들처럼 보이는 구형들의 동시다발적 움직임이 미디..
-
국립현대무용단, 〈인잇〉: 차이의 확산 혹은 분화REVIEW/Dance 2024. 12. 6. 20:15
〈인잇〉의 무대는 시간이 지나면서 아래로 내려오는, 천장으로부터 걸린 대략 270~300도 정도의 각도를 이루는 앞쪽 이가 빠진 원기둥과 그 뒤의 검은 장막으로 구성된다. 원기둥 앞과 검은 장막의 경계에는 각각 조명이 무대를 향한다. 후자의 경우, 사선의 무늬를 바닥에 그리며, 전반적으로 눈에 띄거나 공간 전반을 아우르지 않은 채 조명은 어두운 공간 범주를 구성하게 된다. 비스듬하게 바닥에 누운 무용수들 사이를 우측에서 좌측으로 횡단하는 누군가로부터 〈인잇〉은 시작된다. 이를 마치 잠에서 깨어나(게 하)는 장면으로 볼 수 있다면, 집단으로 굴신하고 있는 〈인잇〉의 마지막 장면은 다시 어둠 혹은 잠, 무의식과 같은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는 장면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장면의 직전 장면에서는 장막을..
-
아하무브먼트, 〈음-파〉: 헉헉거리거나 한숨 쉬기라는 숨의 양태들REVIEW/Dance 2024. 10. 18. 10:42
제목에서 수영할 때 호흡법을 지시하는 〈음-파〉는 얼굴에 스타킹을 쓴 채 움직이는 무용수들을 통해 직접적 생존 방식을 통해 고군분투하는 삶의 메타포를 그려낸다. 그럼에도 그러한 메타포가 삶에 대한 재현의 양태로 드러나는 건 아닌데, 다름 아닌 표현 양식과 의미는 일 대 일의 대응 관계를 구성하며, 고립된 영역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그 간극에 대한 해소, 또는 의미에 구애받거나 의미를 해소하기 위한 차원으로서 표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음-파〉는 삶에 대한 실존적 양상의 장면들을 은유한다고 애초에 말할 수 있을까. 이 특이한 신체 양상의 역동적 움직임은 무대의 유한한 시간에 불사르는 완전한 소진을 향한 강박에 가깝지 않을까. 다섯 색깔의 스타킹은 은폐된 얼굴을 대신해 각각의 다름을 상정하고 또..
-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SAL), 〈2122.21222〉: 미장센, 매질, 진동하는 신체 양식들REVIEW/Dance 2024. 10. 18. 10:29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SAL)의 〈2122.21222〉는 제목이 아닌 그룹명을 말 그대로 돌려주는데, 일종의 영화적으로 펼쳐지는 장면이자 그 장면이 갖는 일상의 기괴함과 거리감, 그리고 그 내용을 구성하는 몸의 극렬한 떨림과 진동은, 각각 요철이 있는 무대라기보다 매끄러운 풍경으로서 신(scene), 현실 층위의 전복적 코드, 해부학적 몸의 단면들을 상정한다. 이 풍경, 곧 장면은 장막이 걷히면 시작된다. 무대, 곧 장막이 열리기 전, 헐벗은 두 다리의 배배 꼬는 장면, 미시적 틈새가 거대한 무대 전반의 이미지로 확장되기 직전의 순간은, 그 무대를 향한 하나의 끌개로서 유예되며 잠재된 것으로 지속된다. 이는 ‘장면’의 예외적 순간이다. 장면으로 끌고 오려는, 하지만 그 장면과의 거리감으로 인한 균열과 실..
-
김신록×손현선, 〈없는 시간〉: 불순물, 오차, 수행, 유행하는 것 등의 이름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24. 10. 18. 10:16
김신록×손현선의 〈없는 시간〉이 추구하는 매체는 곧 연극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손현선의 작품을 하나의 과제로 받아들이는 김신록이 있고, 그 결과 존재와의 유기적인 결속을 위한 배경, 오브제 정도로 현재에 포함되는 것이다. 이는 무대 위에 자신을 ‘드리운’ 손현선의 작품들을 어떻게 다루느냐, 희곡의 세계 안에 포함시키느냐의 차원에서 그것이 순수 배경이 되거나 온전한 출발점이 되지 않고, 다소 이질적인 양상으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협업의 불가능성이라기보다 협업의 어려움을 다분히 드러낸다. 처음 〈투명-몸〉(투명 필름 위에 젤 미디엄, 2024, 가변 크기.)에 관한 텍스트는 일종의 추상적 시에 가까운데, 이는 다시 작품의 재귀적 성격으로 어느 정도 수렴되는 걸 의도하는 듯 보인다. 〈투명-몸〉 앞에서 이..
-
양윤화, 《오팔 Opal》: 조각-오브제-스크린-신체의 응결점으로서 이미지REVIEW/Dance 2024. 10. 18. 10:12
양윤화 작가의 《오팔 Opal》은 퍼포먼스와 전시가 결합된 형태이며, 더 정확히는 퍼포먼스를 통해 전시가 재형성되고 나아가 퍼포먼스를 통해서만 전시가 임시적으로 작동하는 퍼포먼스형 전시이다. 다섯 개의 살아 있는 신체의 지지체를 기초로 한 유동적인 다섯 개의 조각과 조명을 근간으로 한 무대(로서 오브제)의 캡션이 “러닝타임”이라는 용어로써 뒷받침되고 있음은 이를 나타낸다. 여기서 임시성의 가시화는 관람객의 신체를 경유하면서 일부 초과하는데, 50분으로 측정된 퍼포먼스에 비해 1시간으로 ‘책정’된 후자의 그 초과분은 일정 시간 동안 더 작동하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수여한다. 신체의 한계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후자는, 아마도 더 많은, 시간과 구애되지 않은 채 고정된 설치로 작동할 수 있겠지만, 관람객이 ..
-
이가영 안무, 〈비수기〉: 춤이 시작되는 장소REVIEW/Dance 2024. 10. 17. 10:06
〈비수기〉는 현실 공간의 전유와 문화 양식의 참조를 통해 완성된다. 이는 무대가 실존적 주체의 무정형적 터전이 되는 대부분의 공연과 다르게, 무대가 현실의 변형이거나 변환이라는 차원에서 출발함을 의미하는 한편, 현실 공간이 극장을 다른 세계의 입구로 지정하고 있음을 또한 의미한다. 그 변환은 이 공간에서라기보다 이 공간 내에서 이뤄짐으로써 가능해진다. 두 남녀가 앞쪽의 테이블을 항하여 바닥이 파인 중앙의 자리에 앉고 정면의 스크린을 응시하는 첫 번째 장은, 병풍과 같은 무대가 반쯤 옆으로 펼쳐지는 데 이어 마지막으로 비닐막이 걷히고 완전히 확장된 세트 아래서 종결된다. 펼쳐지는 무대에서 시종일관 무미건조한 표정―특히, 처음 일관되게 스크린을 향한 두 남녀의 심드렁한 눈빛과 몸짓 아래 진행되는 일상의 시..
-
시각의 경계를 뚫는 변성 공간의 체험 – 김도희, 《빛선소리》REVIEW/Visual arts 2024. 8. 6. 12:28
도병훈(작가·비평) Ⅰ. 현대미술은 고정 관념과 기존의 의미망을 깨트리며, 명사적 ‘의미’가 아닌 동사형 ‘사건’으로 확장되어왔다. 이러한 국면에서는 ‘X란 무엇인가’ 대신 ‘무엇을 X라고 하는가?’라는 질문, 또는 자문이 요구된다. 따라서 ‘예술이란 무엇인가’는 ‘무엇을 예술이라고 하는가?’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폴 세잔(Paul Cézanne)의 자문은 “이것이 과연 내가 보고 있는 것인가?”였다. 그는 치밀한 관찰과 함께 색채의 차이와 한 번의 터치가 화면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점에 고심하며 화면 부분마다 긴 시간을 소요해 천천히 작업했다. 세잔의 후기 원작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이러한 머뭇거림이 생생하다. 세잔의 이러한 태도와 유례없는 회화의 특성은 ‘멜랑콜리아(melancholia)’,..
-
밀로 라우, 〈에브리우먼〉: 극장, 죽음, 공동체REVIEW/Theater 2024. 6. 5. 19:00
〈에브리우먼〉은 무대에 홀로 현존하는, 배우 우르시나 라르디의 전적인 매개의 위치를 상정하며, 스크린의 영상을 병치시키되 이 역시 라르디의 신체를 경유하여 재생한다. 〈에브리우먼〉은 휴고 폰 호프만스탈의 『예더만』을 가져오되(“예더만”은 ‘모든’과 ‘사람’이 합성된 하나의 단어로서, ‘누구든지’, ‘모두 다’라는 이 단어에서 영어로 man에 해당하는 부분을 woman으로 바꾼 제목이 〈에브리우먼〉인 셈이다.), 헬가 베다우라는 시한부 선고를 맞은 현재적 인물을 겹쳐 놓음으로써 죽음이라는 알레고리를 도덕적인 교훈극이 아닌, 하나의 수행사적인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고자 한다. 처음에 나오는 음악은 라르디가 카세트플레이어의 정지 버튼을 누르자 사라진다. 이는 라르디의 바깥에서의 제어가 아닌, 무대..
-
김상훈, 작/연출, 〈히라타 오리자를 위한 유튜브 스크립트〉: 발화가 아닌 발설의 장면들REVIEW/Theater 2024. 6. 5. 18:56
〈히라타 오리자를 위한 유튜브 스크립트〉(이하 〈히라타 오리자〉)는 제목과 같이 일본의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히라타 오리자의 이론을 소개하는 유튜브 스크립트를 짜려는 유튜버를 보여준다. 연습과 중계의 어느 사이에 자리한 그의 행위는 관객을 느슨한 혹은 타격감을 잃은 시청자-관객으로 연루시킨다. “세미 퍼블릭”이라는 히라타 오리자의 용어는 시종일관 머뭇거리며 웅얼거리는 전혜인의 화법에 의해 그의 신체로부터 난반사되는데, 내부를 매개하는 외부의 출입이 가능한 특정 시-공간의 상태를 가리키는 세미 퍼블릭의 시간이 일차적으로 그것을 전달하려는 자의 불확정적인 상태에서부터 덜그럭거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의 사적 영역은 제4의 벽에 가로막혀 보이지만, 그의 입지는 분명 공적인 사태라는 판단에 근거한다. 사실 그가..
-
국립무용단, 〈사자의 서〉: 재현은 무엇을 가리키는가REVIEW/Dance 2024. 6. 5. 18:35
국립무용단의 〈사자의 서〉는 죽음 너머의 세계를 그린다. 이는 신화적인 차원에서의 접근, 곧 재현의 한 범주에 속한다. 곧 죽음 너머의 현실이 존재한다는 전제가 서사의 한 종류를 이루며, 인간의 감정이 잔여하고 지속된다는 관점이 그 뒤를 따른다. 총 3개의 장으로 구성되는 가운데, 현실과의 단절을 인지하고 있음의 1장과 3장, 과거를 현재로 호출해 오는 2장으로 구분된다. 슬픔과 회한의 감정들이 혼재되는 세계는 전반적으로 의례의 정동을 구성하는 가운데, 2장에서는 현실에서 미끄러질 수밖에 없는 주체의 감정적 드라마로 변환된다. 망자를 인도하는 저승사자의 등장과 망자를 애도하는 수많은 사람은 현실과 죽음 너머의 현실을 접합하며 두 세계를 분리하면서 과거의 현실과 새로운 세계를 동시에 구성한다. 또는 전자를..
-
정유진 작/연출, 〈잃어버린 몸을 찾아서〉: 미시사적 기술과 재현이 접근하는 역사REVIEW/Theater 2024. 6. 5. 18:29
‘역사시비’ 프로젝트에서 카메라의 실시간 포착과 화면 중계는 기본 전제가 되는데, 이는 행위의 현재진행형의 수행성을 지시한다. 역사의 시비를 가린다는 건, 현재로 소급된 역사에 대한 관점을 진단함을 의미한다. 〈잃어버린 몸을 찾아서〉는 이를 다시 개인의 몸들과 연관을 지어 다룬다. 그 방편은 미시사적인 기술이거나 인식 체계의 정형성과 관습성을 깨뜨리는 것인데, 이 둘은 상호 연결된다. 이를 통해 역사의 미세한 틈을, 관점의 차이에 의해, 미시사적 개인의 몸을 통해 벌릴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작가의 휘어진 척추의 X-레이 사진은 보이지 않는 신체의 유물론적 역사성을 전제한다. 거기에는 누적된 시간의 무게가 있다. 이러한 시선은 배우와는 다른 위상으로 따로 또 같이 존재한다. ..
-
정훈목, 〈Yaras〉: 원시적 충동이 지배하는 괴랄한 ‘미래’ 사회REVIEW/Dance 2024. 3. 28. 02:01
정훈목의 〈Yaras〉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 대별되는 두 가상의 “종족”을 재현의 시점으로 불러온다는 점에서 움직임만의 서사가 아닌, 서사 안의 움직임을 통해 독특한 세계상을 창출한다. 제목인 “Yaras”(Yara의 복수형)는 그 서사의 중심을 차지하는, 주요한 하나의 종족이라면, 화려한 의복을 걸친 존재들이 다른 하나의 종족이다. 후자의 존재들은 이국적이고 오리엔탈적인 느낌을 강하게 주면서, 상대적으로 현실적인 모습을 조금 더 갖고 있는데, 그에 대비되는 Yaras 종족은 원시적인 느낌을 준다. 현실에 존재할 법하거나 그 존재를 상상할 수 있을 법한 각각의 두 존재를 마주하는, 곧 그 세계에 대한 접면은 그 기이하고 이질적인 세계가 목도됨에 가깝다. 〈Yaras〉는 통상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놓이는..
-
윤상은, 〈메타발레: 비(非)-코펠리아 선언〉: 발레를 사랑할 수 있는가REVIEW/Dance 2024. 2. 5. 20:15
〈메타발레: 비(非)-코펠리아 선언〉(이하 〈메타발레〉)은 윤상은 안무가가 〈모든 몸을 위한 발레 워크숍〉의 연장선상에 있다. 일종의 커뮤니티 아트가 수용하는 개방성의 감각―여기에는 어떤 특정 지역이나 특정한 주제와 관련된 대상을 가리키면서 예술가가 아닌 존재라는 더 중요한 조건을 동시에 전제한다.―과 연관 지을 법한 “모든”이 어떻게 장르를 고찰하며 지시하는 “메타”로 전환되었는지를 탐구하는 것이 그것을 입증할 것이다. 가령 이 ‘모두’는 발레를 하기 위한 적합한 몸, 발레의 특정 자세와 몸짓의 정교함을 이탈하거나 위반한다. 그렇게 강박적이기도 하고 동시에 율법이기도 한 발레의 몸과 동작은, ‘원래부터’ 발레를 하지 않았던 존재에 의해 전유됨으로써 발레의 틀을 깨뜨린다. 안무의 전략은 이 ‘모든’ 것을..
-
춤판야무, 〈사이〉: 이미지와 행위 사이에서REVIEW/Dance 2024. 2. 5. 20:12
춤판야무의 〈사이〉는 대상과 신체의 연합을 통해 공간을 시시각각 구조화하는, 미장센의 구성적 원리를 구현함으로써 시각에 대한 알레고리를 보여준다. 〈사이〉는 어떻게 춤이 그 자체로서 상영되면서 동시에 영사되는지를 움직임, 구도, 가변적 설치 등을 통해 공간 전체에 가로새김으로써 보여준다. 그것은 원초적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이기도 한 무엇을 펼쳐낸다. 거기에는 어떤 특별한 서사가 요청되지 않는다. 몸짓을 의미와 감정의 기표로 치환할 필요 역시 없다. ‘행위’는 공간을 직접 그리거나 공간에 기입되는 대상이 되는 행위이다. 곧 관찰되거나 카메라를 응시하는 대상이 된다. 궁극적으로 〈사이〉는 미장센의 원리를 구현한다. ‘사이’는 하나로 계열화할 수 있는 무엇과 무엇의 틈을 이야기하며, 시간적으로는 연속의 흐름을,..
-
여기는 당연히, 극장, 〈.기다려〉: 배우 혹은 언어의 존재론REVIEW/Theater 2024. 2. 5. 20:00
〈.기다려〉는 연극을 하는 것에 대한 윤리를 사유한다는 점에서, 제도 비평적인 작업이며, 연극이 시작되는 물리적 경계를 관객의 승인 아래 재현하려 한다는 점에서, 공동체의 윤리를 확언하고자 하는 작업이다. 연극이 시작되는 건 누군가가 화장실에 모두 다녀온 후에 시작된다. 연극이 시작되기 전의 안전수칙 공지와 배리어 프리 버전의 설명은 연극을 순전히 대체하고, 그 비가시적인 ‘모두’에 대한 재현으로 향한다. 연극의 태도와 정신이 연극을 지배한다. 올바른 연극이 (시작)되기 위해서 필요한 도덕적인 혐의 차원의 언어는 극단적인 과잉을 향해 감으로써 비로소 순수한 형식으로서 연극의 내용이 된다. 기어이 한 명의 배우는 화장실에 갔다 옴을 보여준다. 연극이 현실의 시간을 끌어들인다고도 할 수 있는 이 작위적인 장..
-
정지혜, 〈The Skills of Dust〉: ‘퍼포먼스의 비가시성’REVIEW/Dance 2023. 12. 12. 02:06
정지혜의 〈The Skills of Dust〉는 퍼포먼스의 비가시적인 산출을 지향한다. 그것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대상으로 의도치 않은 관객을 요청하고 용인하는 행동이며, 이는 극장이 아닌 거리에서 진행되었다는 점을 전제로 하지만, 그보다는 이를 사전에 매개하지 않는 차원에서 결정적이다. ‘비가시적인 것’으로서 먼지(dust)의 기술(skill)은 관객을 재정의하는 것에서부터 가능해진다. 〈The Skills of Dust〉에는 크게 세 개의 움직임 스코어가 두 사람 간의 교차로써 수행된다. 팔을 사선으로 위로 펼쳐내는 것, 마주한 채 방향을 달리해서 스텝을 옆으로 이동한 후 다시 돌아와서 교차한 후 처음부터 계속 반복하는 것, 등을 맞댄 채 천천히 앉은 후에 다시 일어서는 것. 이들은 전단을 한 손에..
-
극단 ‘다이빙라인’, 〈단델re:ON〉: 시간들의 가상 현전을 향한 시도들REVIEW/Dance 2023. 12. 12. 02:00
극단 다이빙라인의 연극 〈단델re:ON〉은 투어 형식으로써 극장의 전사를 상영하면서 극장에 여러 시간의 지층을 가설한다. 극장이 이제 닫는다는, 마지막 극장의 하루에 초대된 것이라는 시작의 급작스러운 또는 급진적인 가정은 극장이 없는 미래라는 디스토피아적 가정과 지금 여기 존재하고 사라지고 마는 공연의 본질적 속성에 대한 지시 사이에서 모호하게 놓인다. 그러니까 그러한 가정은 동시대의 어떤 개념 혹은 정동이 반영된 것이거나 오히려 시대착오적으로 공연의 현존을 좇는 공연자의 이상이 반영된 것일 수 있다. 결국, 이곳은 천장산우화극장이라는 상징적 처소이므로, 그리하여 연극이 오르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무한한 영도이므로, 허구적 세계를 상정함은 그 가상이 향하는 곳을 가리키게 된다. 〈단델re:ON〉은 ‘가정..
-
노경애, 〈21°11’〉: 몸에 관한 미학적 윤리REVIEW/Dance 2023. 12. 12. 00:42
노경애 안무가의 〈21°11’〉은 뇌성마비 장애인과 무용수의 각기 다른 몸의 움직임을 조합한다. 움직임은 몸으로부터 도출되는가. 전자의 움직임의 유래는 몸의 비중이 더 큰 듯 보인다. 반면, 후자에 있어서는 다른 몸을 구성함으로써 다른 움직임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 또는 다른 움직임으로 제한될 수 있다, 아니 밀도를 얻을 수 있다. 이 밀도의 차원을 다르게 갖는 것. 곧 시간을 늘리거나 호흡을 분배하거나 나아가 몸짓의 질서를 변형하는 작용이 다른 몸의 질서 차원에서 자연스럽게 성립한다는 것, 이러한 전제는 몸 자체가 하나의 구상적 전제이자 틀을 생성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안무는 그 몸에 관한 모방에 기초해야 한다. 이는 엄밀히 재현은 아니다. 상호 주관적 영향 관계 안에 서로가 위치함을 의미한다. 무용수..
-
제롬 벨 ,〈제롬 벨(Jérôme Bel)〉: 제롬 벨, 그리고 제롬 벨이 누락한 것들에 대한 질문REVIEW/Dance 2023. 12. 12. 00:29
제롬 벨의 〈제롬 벨〉은 렉처 퍼포먼스로, 환경오염에 악영향을 끼치는 비행기를 거부하는 생태적 실천에 의해 한국에서는 대리자인 이영준 기계비평가를 내세워 이를 수행한다. 사실 이영준은 그 직함은 물론 존재 자체가 무색한 상황을 맞는데, 일종의 배우로서 그것을 최대한 몰입해서 읽는 것 외에 다른 해석적 관점을 투영해 주석을 달거나 자신을 내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지점에서 다소 현학적인 문구로 자신의 삶을 해석하는 제롬 벨의 습관적 언어 사용을 제롬 벨, 곧 이영준으로서 수용함을 인지하고 있음을 발설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깨어버리는 순간, 곧 실수 혹은 실패의 순간이 첫 번째 공연――에서 발생하고야 말았다는 건, 이 위임 방식의 공연이 그럼에도 존재 자체의 현존을 의도치 않게 가져가게 되었음을 의미..
-
최호종, 〈Cosmo〉: 트랜스를 위한 어떤 감각 혹은 리듬REVIEW/Dance 2023. 12. 12. 00:07
Sal의 ‘Alpha’의 하나로 묶인 최호종의 〈Cosmo〉에서 퍼포머 그룹의 종종거리는 스텝은 일관되게 구사된다. ‘자극이 가해지는 몸’이라는 은유와 같이 트랜스된 몸의 상태에 상응하는 듯 보인다. 이러한 트랜스는 ‘우주’라는 뜻의 접두사로서 기능하는 제목을 상기시킨다. 자극, 곧 도파민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물리적이고 비가시적인 차원을 극단적으로 자극하는 주사―“자극이 피하주사침을 통해 피부를 뚫고 주입된다.”―로 비유되는 세계의 광경은 가치 평가를 유예한다. 〈Cosmo〉는 그 트랜스의 상태를 관객에게 전이시키는 데 집중한다. 2박자에 미치지 못하는 스텝과 느슨해지고 풀어헤쳐지는 몸의 상태는 일정한 박자의 체현과 몸의 이완과 확장이라는 두 가지 상태를 합성하고 있다. 음악의 상태로도 연장되는 이 같..
-
샤요 국립무용극장, 〈익스트림 바디〉: 관계를 구성하기REVIEW/Dance 2023. 12. 11. 18:34
〈익스트림 바디〉는 무대 바깥의 존재를 무대로 끌어오는 것으로써 작업을 제작해온 라시드 우람단의 콘셉트에서 시작되었으며, 프랑스의 줄타기 선수 나단 폴린(Nathan Paulin)과 스위스 클라이밍 선수 니나 카프레즈(Nina Caprez) 외 8명의 곡예사가 나오는 무대는, 현존과 재현의 간격을 새롭게 쓰는 것과 함께 인지적으로 확장된 무대 공간을 구성한다. 줄타기와 클라이밍의 수행은 두 다른 인물의 서사와만 결부되지만, 무대에는 중첩되어 제시된다. 허공에 매달려 있는 나단의 손에 다른 퍼포머들의 손이 닿으려는 찰라, 또는 간발의 차로 닿지 못하는 모습으로 두 수행의 공간이 겹침으로 인한 시공간의 제약 또는 또 다른 가능성을 시험하고 연기한다. 독보적으로 가장 고공의 높이에 있는 나단의 서사는 그리고 ..
-
황수현 안무가 〈Zzz〉: 잠을 자는 신체의 표현 혹은 상태REVIEW/Dance 2023. 12. 11. 17:41
황수현 안무가의 〈Zzz〉는 잠을 공연의 주요한 경험으로 구성한다. 이는 관객의 각기 다른 몸들이 스스로의 공연들을 완성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대학로극장 쿼드는 프로시니엄 아치를 제거한 하나의 바닥 공간이 된다. 제목이 의성어로 잠잘 때 내는 소리를 가리키듯 〈Zzz〉는 평평한 바닥 위에서 잠을 공연의 주요한 매질로 상정한다. 이를 위해 최소한의 몸짓과 조명, 사운드가 엷고 길게 공간에 분포하게 된다. 곧 각종 매체의 정보 값은 최소화되고 감축되고 늘어뜨려진다. 그것은 밀도를 강하게 갖지 않는다. 이는 공간 전체에의 개입이라는 커다란 전제에 비해 움직임과 그 동선이 한없이 줄어듦을 또한 의미한다. 퍼포머의 몸짓은 여타 특별한 것이랄 게 없다. 그것은 춤이 되어서도 안 되는데, 그것은 환경에 비해 비대한 ..
-
〈러브 앤 인포메이션〉: 재현 체계 혹은 재현 방식의 사이에서REVIEW/Theater 2023. 12. 11. 17:25
〈러브 앤 인포메이션〉은 짧은 에피소드로 점철된다. 맥락을 형성하는 인지 단위로서의 불충분성이라는 하나의 공통됨은 정보의 과잉들 혹은 그로 인한 소통의 단절 현상을 묘사하는 메타포라고 의미화할 수 있을까. 그것이 쇼츠건 릴스건 어떤 짧은 구문의 재기발랄함으로 부상하는 즉시 사라지는 이미지라는 점을 상기시키는 것은 어떤 유의미한 지점으로 부상하는가. 시대에 관한 적확한 차원의 은유로서 나아가 극장의 공백이 불가능해지는 임계점에 대한 탐문으로서? 〈러브 앤 인포메이션〉은 일종의 ‘지시’로서 장면들이 추출됨으로써 이입에 대한 당위를 벗어난다고 할 때 그와 같은 나열의 방식은, 희미한 맥락들의 접합까지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미궁이라기보다 미로로서 작품은 일종의 퍼즐과 동기화된다. 등장인물들은 기억에 대한 불확실..
-
성다인, 〈beingbeingbeing〉: ‘극장이라는 어떤 규칙’REVIEW/Theater 2023. 11. 24. 00:17
연극 〈beingbeingbeing〉은 극장의 입구를 끊임없이 더듬는다, 극장이 시작되고 다시 시작됨을 끊임없이 자각하도록 만들며 출구를 부정하는 지시를 통해. 작업은 극장에 대한 탐문으로 자리한다. 이념적인 차원에서 메타-극장을 만드는 것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극장에 갇힌, 또는 닫힌 극장에 놓인 인격들의 무한 반복의 관념과 상념이 또한 있다는 점에서, 해소되지 않은 원환 감정의 고리를 이루는, 일종의 부조리극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자리하는 극장을 보여주는 한편, 인격들은 극장 관계자이자 극장 바깥의 역할을 가진 사회적 존재로 연장된다는 점에서, 제도적 차원의 메타포 역시 소환한다. 결과적으로 이 셋, 아리(박하늘 배우), 마지(이우람 배우), 사키(백소정 배우)은 무형적이고 유령적인 캐릭터로 읽히지만..
-
이경성, 〈세 개의 짧은 연작들-신촌텍스트, 빨치산, 나의 극장〉: 주체의 공백에 다가서기REVIEW/Theater 2023. 11. 23. 23:10
이경성의 〈세 개의 짧은 연작들-신촌텍스트, 빨치산, 나의 극장〉(이하 〈나의 극장〉)은 담백하고 대담하게 연출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이는 프로덕션이 가진 부피감과 완성도에 대한 강박 너머, 결국 개인의 서사와 수행이 역사와 현재, 현실과 만나 전면에 등장할 때 그 효과가 만듦새를 뛰어넘어 입체적으로 확장, 증폭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곧 작가-연출가로서의 관점이 다른 모든 여타의 것들을 상쇄할 수 있고, 더 중요함을 이야기한다. 이는 구자하 연출에 대한 상찬이 그가 여타의 모든 것을 자신이 한다는 것, 테크니션으로서의 성취만을 향하는 것이 오류인 것에 상응한다. “신촌텍스트”, “빨치산”, “나의 극장”의 순으로 진행되는, 〈나의 극장〉에서 이 세 개의 단어는 각각 현실의 표층, 역사의 비가시..
-
마텐 스팽베르크 Mårten Spångberg, 〈감정으로부터 힘을 얻다 Powered by Emotion〉: 춤은 무엇과의 간격인가REVIEW/Dance 2023. 11. 15. 17:30
“감정으로부터 힘을 얻다”에서 “감정”은 작품에서 직접 언급되는 단어는 아니지만, 주요한 매체로서 확인된다. 사실이라면, 그것은 “힘”을 추동한다. 이는 움직임의 어떤 프로세스를 지시한다. 마텐은 움직임의 형태가 아닌, 재현 체계의 질서를 드러내고자 한다.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춤을 추는 스티브 팩스턴을 담은 발터 베르딘의 영상의 춤”에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노래들”로 분기되는 텅 빈 무대는, 일관된 보여주기를 실천한다. 이에 따라 퍼포머의 역량 자체가 재고의 대상이 된다. 실제, 음악이 입혀지는 움직임이 아니라,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이 드러난다. 곧 약간의 오차―음악의 박자를 살짝 늦게 체현하는 움직임, 누구라도 출 수 있을 거 같은 뻣뻣한 관절의 적은 가동 범위, 움직임을 ..
-
김우옥, 〈겹괴기담〉: 구조는 서사의 바깥에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REVIEW/Theater 2023. 11. 15. 17:27
〈겹괴기담〉의 대칭으로 서로 마주 보는 객석의 구조는 공연의 바라보기의 방식을 절대적으로 규정한다. 여기에 여섯 개의 샤막(=겹)은 다섯 개의 앞뒤 공간을 만든다. 이 속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을 관객은 마주하기보다 바라보게 된다. 단속적으로 꺼졌다 켜지는 조명과 음악에 따라 그것들은 일종의 분절된 그림들의 연결로 감각된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 체제와 반복되는 구조의 형식 아래 유사하지만 다른 두 개의 이야기가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두 이야기 모두 가장 바깥쪽에서 시작되며 따라서 먼 쪽의 이야기는 가까워지고 가까운 쪽의 이야기는 점점 멀어진다. 그리고 이 두 이야기가 마침내 교차되며 두 이야기가 사실 다르지만 하나의 실재로서 맞물리는 것임을 그야말로 고스란히 보여준다. 첫 등장으로, 길을 잃고 헤매는 이와 ..
-
최강 프로젝트, 〈이들은 그냥 존재한다 They just exist〉: 존재의 다변위성에 관한 언설REVIEW/Dance 2023. 11. 15. 17:03
“이들은 그냥 존재한다”라는 문장은 움직임에 관한 어떤 확약도 설명도 주지 않는다. 그러한 움직임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 무엇을 보게끔 하는 것일까. 추상적 언설로서 자막과 공존하는 “얼굴”이라는 첫 번째 명사를 보면, 현상학적 명제가 부상하는 것 같지만, 이 얼굴은 단지 여러 표면의 하나임이 지시된다. 그것은 이전의 것을 각인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현재의 것 역시 곧 포기하게 만들려는 제스처로서 존재하는 듯 보인다. 여러 차례 반복되는 “그림과 그림자”라는 말이 가진 언어유희의 자의적 연관 관계가 결과적으로 차이의 분별로써 그 의미를 결정짓는다는 점을 보면, 〈이들은 그냥 존재한다〉는 본질로부터 현상을 추출하기보다는 현상으로부터 본질을 구성하는, 현대의 시를 쓰는 자율적 역량에 닿아 있다고 보인다..
-
구자하, 〈Cuckoo〉: 압력 사회를 바라보는 법REVIEW/Theater 2023. 11. 15. 16:45
구자하의 〈Cuckoo〉는 압력밥솥 브랜드 “쿠쿠”를 전면에 내세운다. 쿠쿠를 존재화한다. 무대에는 세 개의 쿠쿠가 있고, 두 개는 해킹돼 두 다른 인공지능의 목소리가 쿠쿠에 체현된다. 나머지 말을 하지 못하는, 하나의 쿠쿠 밥솥이 밥을 하는 과정은 한국 사회에 관한 비유, “압력사회”를 재현하지만, 유학 시절 한국에서 가져갔던, 쿠쿠의 상투적인 멘트는 구자하에게 친구 혹은 동반자의 감정을 체현했었을 것이다. 그것이 구자하라는 인물만에 대한 것임이 아님에도 그 멘트는 오직 ‘구자하’만을 경유하기에, 이것은 타지에 온 이에게 들리는 듣기 쉽지 않은 모국어이기에 구자하에게는 매우 특별한 것이 된다. 구자하의 하마티아 3부작 중 하나이자 가장 앞서서 만들어진 〈Cuckoo〉는 다른 두 작업과 마찬가지로, 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