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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서치 기반 텍스트' : 윤한솔, 「나는야 쎅쓰왕」, 『고래, 시간의 잠수자』
    REVIEW/고래, 시간의 잠수자 2011. 8. 19. 08:32


    ▲ 『고래, 시간의 잠수자』포스터[출처=국립극단 홈페이지]

    지난 12일부터 21일까지 국립극단 소극장 판 및 열린문화공간 야외에서 국립극단(학술출판팀 김남수‧김해주)가 기획한 퍼포먼스가 연계된 전시, 퍼포먼스의 결과가 전시로 남고, 전시의 개념을 새롭게 확장하는 『고래, 시간의 잠수자』가 열리고 있다.

    최소한의 정보, 브로슈어만이 인터넷상에는 주어져 있고, 현장에 가면 긴 전단을 받을 수 있는, 하루나 이틀 많은 퍼포먼스가 놓인 가운데, 이를 하나의 전시라고 칭하는 매우 묘연한 형태, 곧 시작과 연장의 '전시 기간'을 찾을 수 없는 것도 그러한 예측하기 힘든 상황을 가속한다.

    (어쨌거나 흥미로운 전시, 퍼포먼스를 만났고, 연작으로 본 매체에서 작품 리뷰를 다루고자 한다. 겨우 전시 하나가 이 넘치는 예술 축제의 향연 속에 무려 10일을 붙잡아 두는 페스티벌이 될 줄이야. 대다수 이 '전시'를 찾는 관객은 마니아 형태의 대다수 전시 안 퍼포먼스를 훑는 사람들로 보인다.)



    프롤로그는 전화벨과 수화기음, 소리의 오고 감을 통해 두 존재 간 거리 자체와 수신자‧발신자를 없애며 시작된다. 그리고 섹스하지 못 한 사람에게 섹스 현자의 지혜를 일러주는 목소리.

    ▲ 「나는야 쎅쓰왕」 퍼포먼스 시작 전, 관객들이 퍼포먼스의 배경이 되는 스크린-거울에 포착된 모습이 보인다

    결핍으로부터 욕망하는 상상계의 존재 대신, 인식되지 않는 존재, 친숙하지도 낯설지도 않은 존재 그 자체로 공간에 머물러 있는 눈앞 (섹스 후의) 신체적 존재, 그것을 여전히 온전히 파악하지 못 함, 어쨌거나 그러한 감각으로 수용 또는 발산했던 신체 간 교응 이후 여전히 그 자체로 머물러 있는 신체 자체에 대한 타자성을 너는 알 수 없을 거라는 식의 일방적인 전화 녹음으로 시작된다.

    사랑의 부재 그 사람은 끊임없이 사라지는 가운데 그것을 지켜볼 뿐인, 남아 있는 사람으로부터 사랑의 부재가 시작되고, 결과적으로 사랑은 '사랑'이 없는 가운데 부재로부터 시작되고, 또한 사랑은 사랑의 부재로만 성립되고, 사랑의 부재를 가진 한 사람에게만 일방적으로 사랑은 진행된다.

    관객 앞이지만 노트북 앞에 그리고 위치에 따른 공간적 깊이를 달리하지만, 거울이자 창문인 유리 앞에 위치한 두 사람은 영상과 유리로 이들의 행동을 재매개 또 거울로 도착시킨다(그들은 유리 속에 있고, 유리보다 앞에 있다. 또한 우리는 유리 안으로 우리를 비춘다. 배우와 관객은 판타지 속에 공모를 이룬다.).

    이 작품은 이제 그 거울-스크린과 의자와 침대 등 어느 정도 구획된 영역을 벗어나지 않고 그 안에서 읽기와 쓰기의 교환을 통해서만 퍼포먼스를 진행시키고 엄밀히 렉처도 아닌 차용을 통한 텍스트의 수집과 나열, 구문적 배치를 통해 리서치의 과정을 현재로 재가동시키는 것으로 퍼포먼스를 완성해 간다.

    이 지식의 끝없는 나열은 그에 대한 연극적 대사가 아니라 비슷한 톤으로, 그렇지만 강세를 둔 힘 있는 목소리로 계속 읽어나가는 추동력에 의해 그 지루함에 지치지 않고, 힘을 지는 언어들의 나열로 인해 그럭저럭 인지하며 나아가게 된다.

    대사 중에는 상실 내지 부재를 처리하는 부재의 놀이 Fort-Da 놀이가 직접 거론되지는 않지만 그러한 관념을 내포적으로 깔고 있다.

    사랑은 결핍에서 유래한다. 곧 역설적으로 사랑을 욕망하는 대신 사랑의 결핍 그 자체를 욕망하게 된다. 왜냐하면 사랑은 결핍함으로써만 욕망을 통해 접근할 수 있고, 욕망을 완전히 채울 수 없는 대신 결핍을 통해 지속하며 결핍 그 자체를 통해 지속할 수 얻는 힘을 얻는 차원에서 사랑이 아닌 결핍을 욕망한다는 것

    주체는 대상을 통해 온전해지고자 하고, 사진 등으로 치환된 이미지를 통해 동일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적 재단의 근거를 얻고 이미지로 치환된 세계에서 이미지가 되기 위한, 이미지로서 인정받기 위한 여러 포장의 욕망들을 가동시키게 된다.

    사랑이 섹스로 치환되는 묘한 논리의 전환이 오고, 섹스왕은 섹스를 최고로 잘 하거나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정한 최고의 섹스를 위해 섹스를 오히려 피하는 사람이라는 논리가 성립되면서 사랑의 은유들은 섹스로 단어를 탈바꿈하고, 섹스 지식을 탐구하는 사람으로 섹스왕이 정의되면서 리서치 과정을 하는 역할로서 투입되는, 관객 바깥으로 놓인 이들의 정체성의 주석을 다는 것으로 끝을 향해 간다.

    ▲ 「나는야 쎅쓰왕」 퍼포먼스가 끝난 이후 정경, 유리에 새겨진 텍스트 읽기에서 임의로 포착된 중심 개념들이 눈에 띔

    여기에 흥미롭거나 또는 처음 목소리의 직접적인 것 또는 음률을 적당히 지닌 대사들을 지나 섹스 지식, 아니 성기 등에 관한 과학적인 물리적인 지식들을 나열하는 것이 과정이 된다. 흰 칠판에 그것들을 적는 왕성한 움직임이 벌어지며 다른 전환의 맥락을 갖는다.

    왕관을 쓰고 온 둘은 한 명의 기타를 치고 “나는야 섹스왕~” 따위의 노래를 하는 것으로 에필로그를 두는데, 단순한 기타 현을 오가는 연주에 따라 짧은 호흡에 많은 가사를 빠르게 담아 숨 없이 가사를 계속 이어가는, 그러면서 섹스왕이 변칙적으로 화음을 이루는 기제로 튀어나오는 노래를 만들어 간다.

    이 지식들의 나열은 무엇이든 이 암흑의 공간 속에서 관객과 배우도 아닌 역할만 주어지면 그 말들이 대사로 치환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게 되는 단순 전제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흥미로운 리서치의 말들을 공유하며 어떤 이념의 생각들을 만들어보자는 것일 수도 있다.

    뭔가 잘 맞지 않는 것 같은 어설픈 두 사람의 호흡 즉 대사를 교환하는데, 맞바로 교환되지 않고 대사들을 온전히 잘 찾아 읽지 못 하거나 또 몇 번 다시 읽기를 하게 되는 등의 것들은 오히려 이것이 하나의 대본으로 훈련을 거치지 않고, 공간에 몸을 둠을 조금은 더 자유롭게 규정되지 않고 놓아둔 것 같은 가능성을 발견하게 해 오히려 생동감 있는 부분으로 다가왔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 『고래, 시간의 잠수자』전단 [출처=국립극단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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