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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다페 2013] <Spark place #2> 리뷰(안무 신아람·차형도·주선희·정수동)
    REVIEW/Dance 2013. 5. 28. 06:53

    신아람 <사색공감>: '파도에의 환유'


    ▲ 안무가 신아람 [사진 제공=모다페]


    어둠 속 클래식은 ‘재현’의 장을 어느 정도 지시한다. 핀 조명의 수직 하강의 부재하는 자리는 이 이중의 재현에 대한 징후를 드리운다. 


    세 명은 파도의 환유물이 되어 출렁거린다. 이는 어떤 특별한 표현을 만들기보다 앞선 ‘부재의 자리’를 확대시켜놓은 자리에서 그 파도를 몸으로 감각하며 파도의 일부가 되는 그래서 표현 자체를 형식적으로 무화시키고 내용적으로 합치시키는 노곤한 시작 지점을 제공한다.


     앞서 빛의 자리가 부재의 자리였던 것처럼 그곳은 어떤 내면의 빛과 같은 초월적 지점이 되는데, 애초 그것을 먼저 제시하고도 한 차례 현실의 등가되는 자리로 확대시켜 제시한 후, 현실과 함께 현실에서의 없는 자리로 제시함은 이상향의 의미를 상정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파도의 사운드를 떠나보내고 파도 자체가 되어 움직이는 것은 바다에 잠기는 실제적 경험이 내면의 자장과 합치를 이뤘고 현실 속에서 내면의 양상으로 재현될 수 있음을 가리키는 것 아닐까


    차형도 <Alive>: '동물적인 삶의 현대인'


    ▲ 안무가 차형도 [사진 제공=모다페]


    응원의 소리들이 ‘환시’되고 동물의 기호로 무대를 누빈다. 이 옥죔은 일종의 판옵티콘의 내부에 위치하며 외부를 벗어날 수 없음을 의미하는데, 무대 3면의 흰색 조명이 그 틀을 상정한다.


     동물을 체현하고 여유 없는 현대인의 정서를 가쁜 숨과 여유 없는 움직임으로 지정하며 단순하고 구조적인 상관항들로 치환하며 어둠의 터널을 통과한다. We will rock you를 전유한 뜀박질과 활기찬 정서를 도출하는데 한 명이 거기서 이탈해 뛰자 다른 세 명은 이를 우스꽝스럽게 흉내 내며 바라볼 뿐이다.


     이 탈주와 머무름의 시차에서 사회 시스템의 작동 그 자체에 대한 제시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과 일상으로의 변전이 확인된다. 전체적인 안무의 집중도와 치열하고 위험한 움직임의 교직은 대칭적이고 또한 어떤 임계점에서의 폭발, 가령 뜀박질 이전에 구름과도 같은 준비를 노정하는데, 이러한 짜인 틀은 여유 없는 현대인이라는 기표 대신에 또한 가상적 음성에 적응하며 또한 그것의 외부가 몸 그 자체와 부딪친 숨소리들의 실제적인 폭발의 기호들을 구성해 나가야 했던 것 아닐까


    곧 사회에 예속된 우의적 동물-인간의 움직임은 우스꽝스러움의 풍자와 ‘록’의 폭발 사이의 치열함 사이에 어중간하게 위치했다.


    주선희 <보통사람들>: '환영과도 같은 일상'


    ▲ 안무가 주선희 [사진 제공=모다페]


    멜빵의 산업시대 노동부 같은 옷들의 맞춤은 무성영화 속 광대라는 존재의 몸짓들을 상기시킨다. 록에 맞춰 셋의 역동적 구성의 관계 맺음의 변천 양상들이 쉴 새 없이 재배치의 끊임없는 국면을 이루는데, 이는 처음 일상의 한 남자들이 영화로, 현실로 끌어들여 포섭하는 두 사람의 매개 것을 통한 것이며 이로써 잠깐의 꿈에서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첫 장면 이후, 남자의 몸짓은 능동과 수동의 사이에서 표현하고, 또 끌려 나간다.


     꿈꾸기 속 자의적이지 않은 움직임들과 꿈의 여정은 다시 멜빵과 그 멜빵의 존재들이 하나로 합쳐져 갈 때 하나의 현실로 돌아감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현실 자체 역시 환영일 것이다.


     정수동 <Grey man>: '선택의 기로에서'


    ▲ 안무가 정수동 [사진 제공=모다페]


    양측의 줄을 온몸으로 잣는 남자는 삶의 고난과 복잡한 관계 얽힘을 형상화하는 듯 보인다. Yes, No, All right의 영어 테이프의 구문이 반복되어 Yes와 No의 사이에서, 긍정과 부정 사이에서 고민하는 남자의 표정을 비춘다.


     셋의 관계 얽힘은 프레임의 분절된 조명의 나눔 아래 타악의 잰 기표들의 리듬에 의거해 겹치며 치환되는 분절의 리듬을 따르는데, 이 급격하고 가파른 리듬 속에 곧 쉴 틈 없이 몸을 다시 추동하는 이 음악에 붙잡힌 채 앞서 ‘운명의 끈’이라는 예속에서 어떤 이화된 삶의 풍경에서의 예속, 그리고 수미상관 형식의 신체에 결부된 줄을 다시 당겨 놓고 다시 관객의 판단에 그 줄을 맡기고, 이번에는 그 줄을 놓을지 말지 자체를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어둠 속에 끝을 낸다.


     이 타의에 의해 방황하는 그 방황이 관찰될 뿐인 남자는 우리 인생을 은유하는 의미의 지지물인 셈이다.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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