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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왕은 죽어가다>: ‘죽어 있음과 죽음의 시차’
    REVIEW/Theater 2013. 8. 15. 23:08


    ▲ 연극 <왕은 죽어가다> 콘셉트 촬영 사진 [제공=극단 맨씨어터] (이하 상동)


    왕의 자리에 앉는 것, 왕의 권위를 체현하는 것은 그의 신하 대리인이다. 곧 스모그와 불이 켜진 후 비로소 드러난 수족관의 기표는 왕의 등장을 알리는 효과다. 하지만 여기엔 어떤 간극이 느껴지는데, 왕은 그가 그를 보는 하지만 그가 보지 않는 그를 경외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의 눈치를 본다. 


    이는 물론 그가 왕이 아니었음에 기인한 것으로, 이는 왕이 완성되는 방식을 사유케 한다. 무엇보다 그가 왕으로서 드러났던 처음이나 그것이 아님으로 드러났을 때 역시 왕(의 모습)은 ‘왕’ 자체에게서 내재적인 부분이 아니다. 왕 바깥에서 왕과의 직접적 관계없이 왕이라는 형식 그 자체에서, 또 그것을 보존하는 그 ‘이외의 것’(그가 보지 않는 시선들)에 의해 그 바깥에서 이것들이 성립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왕의 권력은 보다 우선하는 것, 그의 백성들로 하여금 그를 향해 보존되는 시선의 측면에 닿아 있다.



     왕의 권위가 추락 ‘했음’은 여기서는 단순한 형식 이외에, ‘실질적인’ 권능으로 증거가 되어야 하는데, 이 절대 왕정의 되기에 곧 왕은 ‘태양’ 그 이상이며 그는 자연과 그 이외의 사람 모두를 지배할 수 있어야 한다. 극에서 왕이 과연 이 자연과 모든 것을 움직이는 권능으로 이전에는 존재했는지 의문이지만, 이 왕은 전근대의 신화적 존재인 동시에 죽어가며 힘을 잃은 존재인 것을 너머, 죽어야만 하는, 죽고 있음 외에 어떤 의미로 산출할 수 없는 그저 무기력한 한 개인임으로 상정된다. 왕의 비극은 한 개인의 희극으로 변용된다. 


    그에게 윽박지르는 왕비, 그 외 나머지 인물들은 왕의 권위를 체현하는 그의 말의 대리자들에서 그것을 (이들 질서에 대해) 비난하는 경멸의 제스처를 선보이게 된다.


    왕은 이들의 권고 아래 왜 죽어야만 할까. 왕의 권능이 사라진 전근대 너머의 사회를 따라 현상 역시 왕은 (상징적으로) 죽은 것일까 (시차적으로) 살아 있는 것일까, 아님 이는 이 권능이 죽은 더 이상 왕의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왕은 죽는 것일까.



    왕의 죽음은 새로운 시대의 탄생을 고대하는, 지난 세대의 죽음을 알리는 결구일까, 아님 그야말로 (어떤 대안 없는 현대) 속에 이 시대 자체의 종언, 인류의 멸망, 희극의 한 개인의 죽음에 차라리 가까운가. 


    ‘권위’의 죽음, 왕 개인을 확인할 수 없는 왕으로부터 개인을 분리해 내기의 진행 과정, 아니 처음부터 <왕은 죽어가다>는 신화적 왕이란 존재하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다. 그가 죽기를 죽어야만 한다는 끝없는 ‘알림’들은, 왕에게 명령하는 형태에서가 아닌, 왕이 왕이어야만 하는 어떤 상태가 아닌, 이들은 왕의 내부에서 왕이라는 것에 가해지는 ‘미미한 사물들’의 반복과도 같다. 


    왕에서 인간으로, 권능에서 그것의 거세(죽음)로 가는 문턱에 걸쳐 있는 왕에게 있어 마치 일종의 착시처럼 제대로 박히지 않는 이 말들의 효과는 무엇보다 어떤 그 간극 속에 부착되는 잉여다. 어쩌면 그 간극을 다시 지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귀가 멀고, 오르골 인형의 박제화된 떠도는 진공 상태에서 하나의 꿈에 진입하며 왕은 상상계의 터널을 지나 한 개인으로 돌아가고, 곧 그에게 부착된 신화적 의미들을 하나씩 제거하고, 더 이상 왕과 개인이 갖는 간극이 사라지는 순간 곧 하나의 개인이 탄생하는 순간, 극은 끝나게 된다. 아니 더 정확히는 극의 의미를 마감하게 된다. 역설적으로 새로운 시대가 다시 시작될 수 있는 것일 수 있다.



    왕은 눈이 멀고 오히려 꿈속으로 들어가게 되며 들리는 것이 맞는지 먼저 반문한다. 다른 세상(에 대한 환상)이 펼쳐지는데, 이는 세상이 곧 환상이라는 점에서 그의 죽음이 이 시대의 나아가 한 지구의 마감이라고 확장할 때 마치 이 지구는 마지막으로 그의 현존에 가까울 수 있다. 


    마치 지구 멸망이라는 거대 서사에 왕의 추락, 그리고 마지막으로 왕의 권위로서 단지 그 절합만으로 죽음을 수용해야 함의 입장에 놓이고, 이제 회상과 함께 지난날을, 추억 아니, 또 지고 있던 짐을 내려놓는 한 단독자의 ‘환상적인 죽음’에 끼워 맞춘 듯한 모호한 상황을 안긴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 죽음에 대한 수용, 그리고 인간을 위한, 인간을 뛰어넘는 권능을 버리기, 최종적으로 추억과 회상의 부분들이다. 인간적인 것을 모두 버리며 왕은 인간으로, 다시 죽음으로 간다.


    왕(이란 권위)은 이미 죽은 상태에서 왕은 왕과 인간의 간극에서 다시 인간으로서 진짜 죽는다.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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