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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가악회: 아리랑 삶의 노래-강원도 평창>: ‘삶의 노래들’
    REVIEW/Music 2013. 8. 15. 20:31


    ▲ <정가악회: 아리랑 삶의 노래-강원도 평창> © 노승환 [사진 제공=국립극장] (이하 상동)


    생황은 이국적 울림을 안긴다. 무조격의 음계는 무미건조하게 지속되고 다양한 음계의 분절식 오르내림이 이중적으로 겹쳐진다. 이 아스라하고 강한 주선율의 생황 가운데, 구음 위주의 보컬, 해금, 거문고, 장고, 징이 작은 긴장으로 큰 낙차 없이 진행된다.


    장고가 이 와중에 그 리듬의 편재된 분위기를 이끌어 간다. 이 역동적인 또 둥글게 굴러가는 반주는 끝을 향해 달려가는 중에 일순간 멈춘다. 그러나 이 순간에 어떤 의식의 환기가 일어나며 한 차례 이 끝은 끝이 아닌 반복인 것처럼 다시 온다. 


    각 장소에서 소리 채집을 통해 그가 자연스레 있는 곳, 현존을 담아낸다. 연출된 것이라기보다 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아리랑으로 통칭되고, 곧 삶의 노래를 대표하는 형식으로 표상된 상징으로 드러난다. ‘평창미탄아라리보존회’의 음악이 ‘삶의 노래’라는 현존의 형식을 띨 때, 아리랑이 역으로 삶의 노래라는 타이틀을 아리랑이 가져갈 때 아리랑은 묻혀버린 것이 아닌, 살아 있는 것으로 살아난다.



    이어지는 노래는 동요처럼 어떤 심각함이나 무거움을 얻지 않은 형식에, 어린이에게 말하듯 맑고 기교 없이 따스한 감정으로 부른다.


     다시 영상은 ‘강남스타일’이 시골읍내까지도 번져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우리 민요는 따분하다고 느껴지는 문화일까, 심드렁한 표정이 대비되어 담긴다.


     ‘미탄’은 4개의 분절된 화면에 담긴 미탄 지역 풍경을 음악적으로 변주해 낸다. 대금의 긴장 어린 분위기를 해금이 해소하기도 또 연장하기도 한다. 음악을 마구 달려 나가기보다 영상의 풍경들을 이질적으로 두며 어떤 의식을 올리듯 경건하면서도 진지하게 느릿느릿 나아간다. 이 사진은 그 안에서 분해되며 음악 역시 영상을 또 결코 앞서 나가지 않는다. 앞서 나갈 때도 화면은 그 시차 안에서 음악에 절합된다. 


    사람 흉내를 내면서 호랑이가 밖에 와서 자고 간다고 했다. 합리주의적 세계에서 파악될 수 없는 신화적 세계관 속에 충분히 가능한 것들이다. 호랑이가 인간이 되고 인간이 호랑이 언어를 이해하는 그런 차원에서 가능한 이야기들이다.


    엄마를 보지 못해 우는 아이, 그 엄마가 죽었음을 아는 할머니의 입장에서 아이를 달래기, 이는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말로 치환해, 곧 미약한 어렴풋한 가능성으로 치환해, 운 아이를 어르는 것. ‘오마던가 오마더냐’와 진배없다. 이 말들은 죽음을 지우고 또 반복하며 수줍음과 삶을 함께 어루만지며 공동의 시간을 상정하는 것이다.



    ‘육백마지기’는 노동을 하는 것에 마법적인 알약 같은 아라리의 힘을 확인케 한다. 드넓은 자연 풍광을 모사한 또는 그것과 하나가 되는 목소리, 조심스런 제스처의 두드림들, 이는 자연스런 의식을 치루는 수행의 몸짓이 된다. 단순 물리적 숫자 대신(다만 그 행해진 양이 실제 컸다는 점에서 여전히 물리적·산술적 개념인) 이 상징적인 의미의 육백마지기는 읍내의 궤적을 거치며 아련한 이야기, 추억의 한 단편이 되고 말았다. 또한 할머니의 부잣집 밥 먹듯 굶었다는 식의 비유는 참신하고 재미있었다. 자기 집도 제대로 못 가는 엄청난 답답함의 단절된 삶.


    정가악회는 내재적인 음악에 머무는 대신 (각종 채집과 만남, 삶을 함께 함으로써) 외부성을 가지되 또 어떤 모티브를 재표현, 또는 음악으로 재해석·전유하여 색다른 세계로 손쉽게 나아간다. 물론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겠지만.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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