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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나훈무용단 <씨저테일 서전트>: 파열과 기울기의 연쇄적 안무
    REVIEW/Dance 2014. 12. 31. 11:36





    ▲ 박나훈무용단 <씨저테일 서전트> [사진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이하 상동)


    ‘드르륵’의 더딘 가격과 일시적인 파열, 곧 시선을 무력화하는 일시적 멈춤과 굼뜬 움직임을 체현하는 규칙적인 박자가 형성하는 리듬과 그것을 빠르게 재생하며 입체적으로 뿌리고 펼치는 ‘드르륵’ 갈리는 소리의 이어짐, 가령 움직임들의 교차와 반복을 지속케 하는 사운드들이 생생하게 의식을 조인다. 이 우화 같은 반복에의 강박적 리듬은 작품 전체의 리듬의 규격이 되는데, 이 작품이 경사진 탄력적 4면의 정사각형 판에 올라탄 존재자들이 일종의 머릿속을 유영하는 식의 알레고리를 형성하는 부분과도 관계를 맺는다. 


    이 사각형의 경계에서 잔디를 만지며 이 땅을 하나의 세계로 구성하는 시선, 동시에 그 세계에 파묻히는 시선을 그 사각형의 세계/잔디밭에 세 명의 엉뚱한 침입자들의 예기치 않은 유희 속에서 그녀의 의식은 뒤틀리며, 유동하는 그야말로 널뛰는 소요의 존재자들의 각축장이 된다. 그녀가 그 세계/의식(뇌) 사이에 들어오면 그녀는 그것을 초월하기보다 그 속에 타자의 시선 아래 관찰대상으로 전이되기에 이른다. 이는 또 다른 가상-실재의 평면이라 부른다면, 그녀의 세계 자체의 요동이고 온 몸/세계의 기움이다. 



    발 디딤은 운명의 은유에 그치지 않고, 피드백으로 의식을 환기시키고, 발 디딤에 대한 갈등, 머뭇거림의 의식-신체로 연장된다. 이 사각형의 무대는 일종의 환상성을 갖고 있고, 관찰될 수 있는 외부를 갖는다는 점에서 또한 가상의 놀이터에 가깝다. 여기에 몸을 세움은 움직임을 구성하는 매체-환경이자 제약-가능성의 조건으로 작용하는데, 가령 좁은 판이라기보다 중앙에 대체로 고착돼, 한 걸음을 채 나아가지 못하는, 각기 다른 세 명의 무대는 각자 다른 결의 움직임을 만든다. 


    신체는 뻗어나가기보다 이동하며 이어질 수 없는 대신, 신체를 타격하고 지시하며 신체로 소환되며 신체를 하나의 세계로 묶는다. 그리고 이 신체는 360도의 백터라는 잠재성을 띠고 있다. 박명훈이 신체를 모으고 위에서부터 아래로 떨어지듯 신체를 짚어 간다면 김모든은 신체에 타격을 가해 뻗어나감과 수축의 강도를 자신의 신체 안에서 해소한다. 이종화는 직선의 긴 동작들로 사각형의 무늬를 구성하고 이내 사각형의 판에서 떨어져 나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 원래 위치한 닫힌 문의 빗장 위에 덧대는 움직임을 만든다. 


    제목 ‘씨저테일 서전트’는 알을 키우다 그 에너지가 소진되면 자신의 알을 먹는 열대어종을 가리키며, 이는 세대 간 갈등의 문제를 안무로 끌어오는 가운데 그것과 연관된 맥락으로 차용한 것이다. 애초 다소 중성적이고 어린 아이 같은, 세 사람과 간격을 갖는 손지민 무용수는, 잔디의 생경하고도 불완전한 터전이 현실보다 우화의 차원에 가까운 인상을 주는 가운데, 그 세계의 밖에서 거기에 기대며 무심하고도 무한한 어떤 눈빛의 아이로 분하고 그 안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는 분명 꿈꾸던 그 세계 자체를 두려움을 안고 바라보며 세계에 대한 변화된 입장/위치를 드러내며, 전체적으로 극은 하나의 주체/타자로 수렴되는 바를 만든다. 



    제목이 가리키는, 전적으로 대립되기보다 순환되는 실재의 자연적 균형의 은유는 그래서 현실에 대한 지시이지 봉합과 대안 제시가 아니다. 정확히 존재의 대립 형상이 세대의 범주를 구현한다고 보이지는 않는데, 그것은 다만 추상적 차원에서 상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결국 이 작품은 춤의 다른 중심과 다른 무늬, 다른 매체적 환경의 고안에 의한 차이 발생으로서 유동하는 판의 설정(이 가장 주요한-전제가 되는 하나의 지점이고)과 바깥에서 안으로의 시선과 그 바깥을 볼 수 없는 안의 다른 시선은 안/바깥의 구도가 가능한 판 곧 매체적 측면이 전제된 채, 적대적 타자와 타자의 얼굴이라는 실재적 경계 폭을 만드는 극적 차원의 연출에 힘입은 바 크다. 


    무엇보다 유동하는 대지라는 내용적 맥락과 결부될 수 있는 매체 환경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춤의 결들을 구현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또한 움직임을 가리키기보다 움직임의 외화면으로서 소리들의 조임과 증폭적 철렁임을 통한, 리듬이 강조된 음악의 파열적 연쇄(두 번째로 주요한-전제가 되는 지점)가 흥미로웠다. 이러한 판과 판을 만드는 사운드는 이 작품이 그 움직임과 움직임이 우연적으로 맞닿는 사운드의 꽉 짜인 그 자체의 표현형에-곧 현실의 유비로서보다- 가깝게 만들었다.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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