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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의 정치화'「루핑 더 두리반, 샘플링 더 두리반」 제13회 서울변방연극제 개막작
    REVIEW/Performance 2011. 9. 25. 23:20


    밤섬해적단 : 폭력에의 냉소와 전유, '우리는 아방가르드'

     

    두리반, 6개월간의 그 기록은 무엇이었을까, 싸움의 동력은 어디서 얻는 것일까, 이 싸움은 반드시 역설적으로 즐거움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래야 (즐겁게) 승리할 수 있는 것, 그래서 이는 현실에 대한 거리두기(소격 효과/비판)와 함께 그 안에서의 즐거움이 동반되어야 한다. ‘이 싸움의 터전을 즐겨라’, 거꾸로 ‘병신건설의 신입 용역 오리엔테이션’ 현장을 만들고, 거들먹거림의 태도로써 이 상황을 완전히 장악하는 밤섬해적단은 전경의 모습을 띠거나 두리반을 부수는 용역을 전유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폭력의 지축을 오히려 뒤집는 것으로 그 폭력을 전유하여 극단에서 안과 밖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약한 비폭력주의에 대한 폭력/냉소/전복의 은유이기도 한 것이다.

     

    용역이 바람잡이이자 댄서로 춤으로써 음악을 매개하는 것을 보자면 밤섬해적단은 내면/안 밖의 힘을 반대로 안으로 들고 옴으로써 권력의 바깥/주변부와 권력/중심부를 전복하고, (중심을 가져 와) 안에서부터 내파를 감행한다.

    그러니 진정 이들은 (폭력의) 현실을, 폭력(의 현실)을 드러낸다. 이는 우리는 폭력의 현실을 사유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을 말함과 같다.

    영상은 쓰레기 놓은 그림(비예술의 예술화)과 디자인 수도의 이념형/이상형(예술의 목적화/권력의 이념형으로서 상징)이 일상 속의 세계에 들어온 현실의 차이를 구분 짓고, 그리고 폭압/강제의 현실과의 대비를 또한 비춘다.


    치고 갑자기 튕기는 기타 현의 저 들끓는 소리, 용솟음 자체, 화산 같은 에너지로 나타나는 연주, 단순히 악도 지름도 아닌 그 상태, 이 힘의 분출/연주는 대개 한 악구를 넘지 않는다. 그 단순함의 기저가 그래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조성을 만드는/만들지 않는 기타, (기타와 드럼 간) 대위법의 물결을 둥글게 사실은 모나게 반복으로 치닫고 오가는 그들. 어떤 틈도 없는 노래의 정공법, 반주에 섞이는 목소리, 거친 목소리는 곧 섞여 들고, 또 다른 악기가 되는데, 그 노래의 멈춤에도 바로 속주, 아니 처음부터 속주였던 연주가 진행된다.

     
    이들은 회사의 이념을 설명하며 회사·이윤·돈(자본주의 사회)·물·생명(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이상형으로 전유된 것들, 또 다른 상품 가치)과 좌익·김정일·전쟁·폭력·죽음(현실의 이면, 자본주의 사회를 탈주하는 실재)의 대비를 긍정과 부정의 가치로 나눈다.


    마지막으로 드럼을 부순다. 악기는 연주하는 게 아니라 부순다는 것, 하지만 악기는 부술 수 없는 것이라는 전제/역설에서, 이 부숨이 연주하는 것이 된다. 이들 연주의 폭력성과 음악에의 정치성은 이들의 말의 맥락과 더불어 음악으로부터의 정치성을 만든다.

    야마가타트윅스터, 일렉트로닉 파장에 틈입하는 랩 구문


    야마가타트윅스터, 저 혁명의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랩 비트, 일렉트로닉 파장 층위를 정확히 짚는 음악가의 손, 이상한 웨이브, 이 음악에 맡겼지만 그 음악을 아주 미세하게 벌리고 들어나는 몸/신체, ‘오레오’로 치솟지 않는 은근한 리듬.

    그래서 이 음악에 취했지만, 실은 취하지 않은 것 같은, 움직임 자체를 튀어 나오게 만드는 피처링, 은근한 끈기로써 구문론적 반복이 진행되는데, 그것이 갖는 어떤 욕망, 곧 진행되지 못 함이 주는 어떤 강박과도 닿아 있는데, 그것의 계속됨으로 그것 자체의 스타일 또 다른 구문, 그 끝나지 않음과 되돌아옴의 악구/구문적 반복을 만든다. 
    그리고 선행된 인지의 부딪침(반복된 것이 다시 돌아오며, 그 반복으로써 잊고 있던 반복/구문이 돌아오는 것)의 놀람과 메타적 인식(곧 이 반복의 구조의 인식)을 동반하는 가운데, 이 리듬 체계 속에서 넣는 랩의 음악을 완성하는 텍스트 구문, 그러니까 야마가타트윅스터의 음악은 그 반복 구문에 랩 구문을 통해 틈입을 찾는 음악과 같다.


     ‘저질러 넣고’를 반복, ‘저질’이 튀어 나오는 식의 구문의 해체/분석과 전복적 전유, 단순한 박자 사이에서 너저분하게 늘어뜨려지는 길게 잡아끄는 목소리.

    ‘잘 안 들려. 안 보여’하며 삿대질은 누구로의 삿대질인가, 반면 이 움찔하는 (수용자의) 반응은 그 가리킴(혁명의 에너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말해준다.

    이는 퍼포먼스이기 때문. 또한 굉장히 정치적인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균등한 박자의 배분은 일종의 오히려 박자가 시간의 감, 그래서 음악의 흐름을 인식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흐름이 전혀 끝나지 않을 것임을, 그래서 이 지루함과 공허함의 리듬이 오히려 그 자체가 즐거움임을 주지시킨다.


    ‘vic빅’tory, ‘자’립음음악회, 두리'반'에서 한 글자씩을 딴 ‘빅자반’이라는 이름을 선언하기도 한다.

    'a' abandon/apart……, 'b' better, 'c' construction, 'd' deconstruction duriban democracy, 이 반복의 힘 반복의 너저분함, 그렇지만 스멀스멀 올라오는 무엇.

    마지막 곡은 세련되고 미래적 사운드에 매우 복고적 스타일과 어떤 촌스러움이 공존하고, 이 이야기가 계속 반복되면서 그저 흥겨운 리듬으로 전유된다.


    'walking in the rain, walking in the fire', 물을 걷고, 불을 걷는 균형추의 맞춤, 그래서 이도 저도 아닌 ‘물불 안 가리는’ 구문, 그리고 급작스런 끝의 선택, '좆 꼴리는 대로 음악' 나중에 fire는 desire와 그 어미로 연결된다. 단어들은 자의적으로 또 그저 튀어 나오는 대로, 그리고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어떤 반복의 힘, 곧 내가 선택하는 게 아니라 언어가 나를 이끄는 대로 가는, 야마가타트윅스터의 노래에는 그런 자유로움과 또 힘이 있다.

    박다함, 예술이 요동하는 현실의 파국에서.


    두리반의 기획자/커미셔너이자 표면적으로는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았지만 실무를 총괄했던 박다함은 마지막에 등장했고, 지금은 타협을 이뤄 명동으로 그 장소를 이전했지만, 그간의 기억을 기억으로 남기고 싶다는 말을 채 잇지 못 했다. 이는 퍼포먼스의 연장선상이 아니었지만, 이 눈물은 분명 감상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예술의 심미화/비정치화/자족적인 형식·구문으로 치닫는 것이 아닌 현실/실재의 힘/수행적 구문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곧 일상과 예술의 간극을 해소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재편하는, 현실로부터 출발하는, 그리고 현실로 나아가는 예술의 방향/힘을 확인하는, 그 파국의 파도/유동치는 흐름 안에 있었다는 것, 그러니 이는 일반적인 예술의 정치성의 배제로서의 비정치성이 아닌, 오히려 그 비정치성의 정치성을 확인하는 게 아닐까.

    [공연 정보]
    제목 :「루핑 더 두리반 샘플링 더 두리반」
    장르 : 신개념오페라연극음악극
    출연 : 자립음악생산조합/밤섬해적단, 야마가타 트윅스터, 박다함
    일시 : 9.20(화) 8pm
    장소 :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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