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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기봉 - 흐린 방> 아르코미술관 2012 대표작가전 : '모호한 것들이 구성하는 세계'
    PREVIEW/Visual arts 2012. 5. 16. 13:35

     

    ▲ 지난 15일 오후 2시경 서울 대학로 소재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아르코미술관 2012 대표작가전 《이기봉 - 흐린 방》의 기자간담회에서 이기봉 작가

    오는 18일부터 7월 15일까지 서울 대학로 소재 아르코미술관에서 아르코미술관 2012 대표작가전 《이기봉 - 흐린 방》이 열린다.
     
    이번 전시는 국내 미술관으로는 최초로 여는 이기봉 작가의 개인전으로, 6점의 대형 설치 작품과 3점의 대형 회화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그 중 7점이 신작이고, 2점만 지난 작품인데 2작품 역시 이번 전시에 맞춰 개작되어 전시된다.

    ‘흐린 방’은 불투명한 레이어와 함께 설치작품 자체를 가리키기보다 특별한 감각들이 전해지는 내재적 경험의 장(방)을 상기시킨다.

    <End of the End>, 아르코미술관 2012 대표작가전 《이기봉 - 흐린 방》

    파란색 수족관 내에서 두 권의 책이 생명체처럼 유영하는 <End of the End>는 작가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가져다 준 작품으로, 작가가 특별히 애정을 갖는 작품이기도 하다. 작가는 목욕탕 욕조에 앉아 책 보는 것을 평소 좋아하는데, 어느 날 그만 욕조 속에 책을 떨어뜨렸는데, 자신의 다리를 흔드니까 책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죽었는데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이러한 경험을 근거로 이를 작품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8년이 흐를 정도로 힘이 들었고, 세기말적인 의미를 띤다는 평가와 함께 세계 여러 큐레이터들에게 큰 관심을 끌었다.

     

    <Sense Machine>, 아르코미술관 2012 대표작가전 《이기봉 - 흐린 방》

    <Sense Machine(감각 기계)>은 작품 내부에 뿌려지는 수증기 속 레이저 광선이 시간의 축에서 변화‧횡단하는 작품으로, 수증기가 걷혀 내부가 맑아지면서 한 쪽 모서리에만 닿는 선이 다른 쪽 모서리까지 닿게 된다. 전시장 왼쪽에 설치된 작품은 수평선으로, 오른쪽에 설치된 작품은 수직선으로 아주 미세하게 이동한다. 40분 동안 이동한 후 다시 가스가 뿜어져 나온다. 단순해 보이지만 복잡한 프로세스가 숨겨져 있다. 뒤에 숨겨져 있는 텍스트들은 읽지 못하는 물질 자체로 숨겨져 있다/내지는 드러난다.

    텍스트가 어떤 텍스트인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텍스트가 물질로 느껴지는 경험의 측면에서 갖는 텍스트와 물질 사이의 어떤 경계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이러한 정적인 움직임의 경험에 묘하게 매력을 느끼고 이를 전유한 작품들 역시에도 빠져드는 편이다. 앞선 <End of the End>도 계속 자신의 집에서 들여다보기도 하고, 이 작품 역시 계속 들여다봄으로써 그 움직임의 도달이 주는 어떤 감흥을 강조했다.

    <지속되기 위하여 - 망각>(사진 왼쪽), <지속되기 위하여 - 기억>, 아르코미술관 2012 대표작가전 《이기봉 - 흐린 방》

    설치 작가로 불리는 작가는 본래 그림을 그리는 데서부터 시작했는데, 어느새 화폭이 좁아 보이고 캔버스 안에 종합적으로 내용 담기 어려워서 설치 작업과 병행하게 된 경우다. 회화와 설치가 혼합된 두 작품 지속되기 위하여 시리즈인 <망각>‧<기억>은 순간적‧찰나적 감각들이 드러난다. 작가는 어느 날 안개에 대한 정서, 숲에 대한 경험, 빛에 대한 순간적인 감각 등에 대한 관심들을 담아 봤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됐고, 그런 판타지와 작가와의 교류가 작품을 만드는 과정상에서 끊임없이 이어졌다. 꽤 많은 노동력이 들어갔다.

    두 작품 중 왼쪽에 설치된 작품 <지속되기 위하여 - 망각> 역시 <Sense Machine>처럼 텍스트가 작품 하단에 표시되어 있는데, 보통 작가는 책이 글자가 아닌 물질(잉크)로 보인다고 한다. 의미를 빼내면 껍데기만 남는, 무의미하게 되는 것을 보는 것이다. 한편 이는 이 작품에서 자연의 카오스로서의 성질과 인공적인 조형의 질서를 의도했다. 그 두 부분을 다루는 데 있어 작업의 태도 역시 어떤 매혹에 다가서는 것과 이성적인 자세로 구분되며 상반되게 나타났다.

    <지속되기 위하여 - 허물>, 아르코미술관 2012 대표작가전 《이기봉 - 흐린 방》

    세 번째 ‘지속되기 위하여’의 <허물>이라는 작품은 최근에 나온 작품으로, 기계공학적으로 작품들을 만들었던 것에서 나아가 작가가 가진 감성적인 부분을 다시 끌어내기 위해 시도되었다. 카오스적인 것을 나타내기 위해 속에는 나뭇가지들을 뜯어 붙이고, 앞 캔버스에는 아크릴 그림을 덧씌운 매체 혼합적 설치작품이 만들어졌다.

    ‘허물’은 여러 중첩된 기호로서 의미 작용을 하는데, 작가가 어렸을 적 산에서 많이 놀았을 때 반투명한 뱀의 허물이 나뭇가지에 많이 걸려 있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주 멋진 흔적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한편 허물에서 욕망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하고, 이는 우리 모습을 반영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른 한편 허물과 망각이 상응하는 부분도 있어 허물에는 여러 확대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 작품의 제목을 정했다.

    <There is No Place - Shallow Cuts>, 아르코미술관 2012 대표작가전 《이기봉 - 흐린 방》

    , 곧 ‘장소 없음’을 뜻하는 작품은 어딘가에는 있을 것 같지만 상상 속에서만 있는 세계를 나타낸 것으로, 시간을 조각으로 자른 형태로 드러난다. 이는 단순히 시간을 같은 간격의 단위로 재편함을 의미하는 대신 한 순간에 한 장면을 마주치고, 이 장면이 어떤 유기적인 장으로서 유동함을 느끼게 되는 경험으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유리 안에 나무가 있는데, 뒤쪽 전시 벽 문 안의 숨겨둔 장치를 가동시키면 안개가 뿌려진다. 불투명한 레이어로 보이지만 실제 나무를 싸고 있는 매체는 유리가 맞는데, 다만 작가가 만든 환경(이 역시 작품의 일부라 볼 수 있다)에 의해 불투명한 레이어로 변하는 것이다.

    세상에 안개를 뿌려두기도 싶다는 작가는 이 세상이 다 애매하다고 생각하며 최종적인 아름다움은 모호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죽음이 예술로 재탄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작가는 죽어 있는 소나무를 발견하고 말을 걸었다. 작품으로 살려 줄 테니 잘라내도 너무 아파하지 마라는.

    <Cloudium>, 아르코미술관 2012 대표작가전 《이기봉 - 흐린 방》

    제2 전시장에는 먼저 거대한 하나의 작품 <Cloudium>이 눈을 사로잡는다. 아침부터 거품이 생성되어 물을 거품이 다 덮으며 전체가 하얘지는 과정을 매우 더디게 밟는다. 어떤 모양으로 형성될지는 작가 역시 알 수 없다. 작품은 우리의 몸과 닮아 있다. 상층부는 정신적인 것, 하층부는 육체적인 것이 공존하며 결과적으로 두 부분이 애매해지는 경계에 이른다.

    머리를 감으면서 작품을 고안했고 머리를 감으며 거품이 하수구로 흘러가 사라지는 모습이 아마도 작품으로 연결된 것 같다고 전했다. 작가는 ‘소멸하는 것은 다 아름답다’는 생각처럼 아름다움을 발생시키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는 아침에 머리를 감으며 거품을 내며 시작하는 것처럼 매일 거품을 내면서 사는 것 같다고 설명한다.

    이 작품 역시 <허물>이나 <End of the End>와 같이 아직도 정리가 덜 됐다고 하는데, 이런 작품들을 할 때는 기계 장치를 다루는 과정에서 항상 딜레마가 발생하게 마련이다.

    ▲ 지난 15일 오후 2시경 서울 대학로 소재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아르코미술관 2012 대표작가전 《이기봉 - 흐린 방》의 기자간담회에서 전시를 기획한 고원석 큐레이터

    이 작품과 연계해 안무가 정영두가 작품의 구성 일부에서의 두 영상에 출현하고, 개막식 날 퍼포먼스도 펼치게 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고원석 큐레이터가 정영두 안무가를 작가에게 소개해 줬고, 정영두가 직접 참여 의사를 전해서 퍼포먼스까지 이뤄졌다. 정영두는 영상에 뒷모습‧앞모습으로 출연했다.

    작가는 누드로 해달라는 부탁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전하지는 않았다.

    <Romantic Soma>, 아르코미술관 2012 대표작가전 《이기봉 - 흐린 방》

    몸‧신체의 뜻을 지닌 soma는 ‘환각’이란 뜻도 내포한다고 한다. <Romantic Soma>는 ‘아름다움‧생명 등의 극치’가 표현된 작품이다. 거품 작업을 하면서 레이저 포인트가 닿아 물방울이 생겨나는 경험이 작가로서는 매우 놀라웠다. 이는 난반사 때문에 생기는 문제로, 작품을 만들면서 자신이 알케미스트alchemist(연금술사)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전시 개요]
     주 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 (Arts Council Korea, Arko Art Center)
     전 시 명: 아르코미술관 2012 대표작가전 <이기봉 - 흐린 방>
    (Kibong Rhee – the Cloudium)
     전시기간: 2012. 5. 18(금) ~ 7. 15(일)
     개 막 식: 2012. 5. 17(목) 오후 6시 아르코미술관 1층 Space Feelux
     부대행사: 개막식 퍼포먼스 - 2012. 5. 17(목) 오후 6시30분 아르코미술관 제2전시실
    퍼포머 정영두 (안무가, 두댄스씨어터 대표)
    작가와의 대화 - 2012. 5. 24(목) 오후 5시 아르코미술관 1층 스페이스 필룩스
     전시장소: 아르코미술관 제 1, 2 전시실
     전시관람: 오전 11시 – 오후 8시 (매표마감 오후 7:30)
     휴 관 일: 매주 월요일 (공휴일 운영)
     관 람 료: 무료  문 의: 02-760-4850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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