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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헤다 가블러> 리뷰, '껍질 없는 욕망의 파열과 실재'
    REVIEW/Theater 2012.05.21 17:05

    <헤다 가블러>의 현대적 제스처란...

    ▲ 지난 2일 오후 2시경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헤다 가블러> 프레스콜 2막 장면, 배우 이혜영(사진 왼쪽), 브라크 판사 역의 배우 김정호, 헤다의 이혜영의 얼굴은 걱정으로 일순간 심각해졌다가 다시 밝아지며 현실을 점유하는 이중의 기호를 오락가락한다

    2시간 40분에 육박하는 연극, <헤다 가블러>에서 헤다의 등장 전은 꽤 지루한 편이다. 용장률을 낮게 잡은 대사들로 조금 더 속도를 올릴 수도 있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헤다 가블러>에서 이 무대 전체가 헤다 가블러에 대한 하나의 환유로 읽힐 수 있는 측면이 농후하다는 점을 들어서도 헤다 가블러 자체에 대한 포커스는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지만, 그 점을 떠나 박정희 연출은 이혜영에게 헤다 가블러로의 역할 수행의 몫을 전적으로 일임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헤다 가블러는 이혜영이라는 공식을 성립시킨다. 그렇지만 여기서 연기를 잘 했다(이러한 말은 매우 우스운 말임에 틀림없지만) 내지는 역할에 적합했다는 말은 실상 어떤 오류에 가깝다.

    ▲ 지난 2일 오후 2시경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헤다 가블러> 프레스콜 2막 장면, 배우 이혜영(사진 왼쪽), 옐레르트 뢰브보르그 역의 배우 호산

    이는 ‘헤다 가블러’라는 역할에 대한 원전이 있다는 전제가 이 안에서 매우 불투명하게 자리하기 때문이다(원작 자체를 읽어본 것을 넘어 이 작품이 당연히 희곡이 쓰이고 얼마 되지 않아 상연된 작품을 본 사람 역시 없을 것이다. 그 무엇보다 희곡의 원전이란 없다. 희곡은 다시 쓰이고 아니 새로 쓰이는 영원의 파피루스용지이자 백지인 것이다).

    헤다 가블러의 현대적 제스처는 오히려 이혜영이라는 배우 자체에 대한 그녀 스스로의 재현과 벗어나기의 경계선상에서 헤다 가블러를 위치시키는 관객의 시선의 몫에서 유래함으로 봄이 가까울 것이다.

    ▲ 지난 2일 오후 2시경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헤다 가블러> 프레스콜 2막 장면, 배우 이혜영(사진 아래쪽), 브라크 판사 역의 배우 김정호

    곧 ‘헤다 가블러’는 이혜영의 페르소나의 한 축을 형성하고 또한 이혜영으로 소급되는 일부분으로 보인다. 우리는 이혜영이라는 시뮬라크르를 현재 헤다 가블>에 임하는 이혜영의 실제 사이에서 혼동하며 그 자체로 둘을 지우고 또는 합치시키고 ‘헤다 가블러’라는 이혜영, 또 다른 시뮬라크르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 복잡한 시뮬레이션의 과정에서 연출 역시 이혜영의 개성 그 자체를 헤다 가블러라는 원본을 지우고 이혜영으로 대체하는 자연스런 과정에 손을 들어준 것 같다.

    명동예술극장 제작 공연은 종종 이런 트릭을 써왔다. 가령 <돈키호테>에서 돈키호테로 분하는 배우 이순재가 그러하다.

    더딘 시간 : 원작+명동예술극장의 스타일

    ▲ 지난 2일 오후 2시경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헤다 가블러> 프레스콜 2막 장면, 옐레르트 뢰브보르그 역의 배우 호산(사진 왼쪽), 헤다의 남편 이외르겐 테스만 역의 배우 김수현 

    한편 앞선 지루함의 형태는 이 명동예술극장이라는 명동을 대표 또는 표징 하는 이름과 함께 시공간의 독자성(가령 여기서 명동은 현재의 명동이 아닌 아련한 예전 명동의 함의를 띤다)이 명동예술극장이 연극의 인터미션을 가져간다는 것이다.

    꽤나 속도감 있는, 소극장의 장점을 십분 발휘한 지난 박정희 연출의 <철로>와 달리 헤다 가블러는 인물 간의 대화에서 드러나는 정보 가치들은 작고, 조금 더디게 진행되는 바가 있다.

    이 연극이 원작이 있고 또한 그 속의 역사적인 시뮬라크르를 충실하게 반영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다면 실은 이 연극이 가진 현대적 외피, 늘 현대적이고 현재적이어야 하는 연극의 어떤 당위(이념적인 측면에서, 표현적인 측면은 조금 다르다)를 긴 경험이라는 재현의 흐름을 가져가는 가운데 간과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 지난 2일 오후 2시경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헤다 가블러> 프레스콜 2막 장면, 배우 이혜영

    가령 이 조금은 떨어진 곳에서 명동예술극장은 연극으로의 초대를 어떤 시간의 스펙터클로 선사하려는 경향이 자연스런 전제로 허락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 초반의 지루함은, 곧 헤다 가블러를 기다리는 관객의 마음은 실상 헤다 가블러라는 이혜영이라는 괴물의 출현을 기다리는 것으로 연장된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이 헤다 가블러라는 인물을 객관적으로 거리를 두며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 동시에 헤다 가블러가 그럼에도 뚜렷하게 살갗에 와 닿는 이 시간을 통해 헤다 가블러의 잠재적 평면을 그녀로의 어떤 욕망의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욕망을 지배하는 시선과 욕망 그 자체의 간극

    ▲ 지난 2일 오후 2시경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헤다 가블러> 프레스콜 2막 장면, 배우 이혜영(사진 위쪽), 엘브스테드 부인 테아 역의 배우 김성미   

    헤다 가블러의 시선에 의해 다른 이들은 일종의 패러디의 대상으로 변주된다. 그녀의, 인물들에 대응하는 명확한 현실을 입증하는 발언들은 무미건조한 듯 세련된데, 이는 매우 퉁명스럽기 때문이고 또한 사교계의 기호를 우아한 부인의 자태를 유지하는 차원에서 실천한다는 의미를 띠기 때문이다.

    반면 이 말은 현실을 입증하는 것 외에 어떤 기능도 없는데, 그녀의 시선 아래, 더 넓게는 그녀의 시선으로 보이게 되는 무대에서 그녀의 남편 이외르겐 테스만(배우 김수현)은 아무 것도 모르는 눈치 없는 순진한 바보(여기서 언급하는 바보들은 곧 주체의 시선을 갖지 못하는, 하나의 시선에서 능수능란한 헤다의 손길에 주물러지는 대상적 존재자들의 하나의 통칭인 셈이다)로, 옐레르트 뢰브보르그(호산)는 예전 자신과의 사랑의 과거 환영에 집착하는 눈 먼 바보로, 엘브스테드 부인 테아(김성미)는 남편의 이런 정념과 헤다 가블러의 자신을 향한 친절한 태도를 전혀 이해 못하는 바로로 나타난다.

     

    ▲ 지난 2일 오후 2시경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헤다 가블러> 프레스콜 2막 장면, (사진 왼쪽부터) 옐레르트 뢰브보르그 역의 배우 호산, 배우 이혜영, 엘브스테드 부인 테아 역의 배우 김성미   

     

    ▲ 지난 2일 오후 2시경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헤다 가블러> 프레스콜 2막 장면, (사진 왼쪽부터) 옐레르트 뢰브보르그 역의 배우 호산, 배우 이혜영

    헤다는 이 자신 마음대로의 아슬아슬한 욕망의 줄다리기를 타는 게임의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면서도 자신의 욕망을 실현보다는 실천하는 것일까, 이 욕망의 화신이자 냉소적인 삶의 방관자(그녀는 삶의 욕망을 실현하며 현실에 대한 적응과 감내하기의 의지를 가볍게 회피하고 있다)로서 그녀는 제일 위험한, 자신의 삶을 주무르기의 실천을 시도한다.

    그녀가 회피한 삶의 책임과 타자로부터의 지배는 이 헤다 자신으로서 숨 쉬는 집에 피어나는 장작을 바라봄으로써, 곧 헤다 스스로가 되고자 한, 헤다로서 완성하고자 한 어떤 삶에 대한 활화산 같은 의지를 상정하는 가운데 이 불태워짐을 통해 실천되는 그녀 스스로서 소진되며 사라지는, 또한 이 욕망을 매우 거리를 두며 냉정하게 바라보는 수행의 의도적인 태도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파멸을 과잉으로 바꾸는 단 하나의 신

    ▲ 지난 2일 오후 2시경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헤다 가블러> 프레스콜 2막 장면, (사진 왼쪽부터) 옐레르트 뢰브보르그 역의 배우 호산, 엘브스테드 부인 테아 역의 배우 김성미

    헤다의 욕망은 열정이자 소멸과 파멸이다. 이 암시의 시간을 넘어 마지막 신은 이 신 하나 때문에 또는 이혜영과 합치되는 헤다 가블러를 보는 것과 더불어, 또 다른 하나로서 헤다의 끝은 이 암시와 전개상에서 드러나는 어떤 결말에 대한 자연스런 요구를 인식하는 가운데 오히려 과잉으로 부여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이 신은 과잉이라는 점을 두 번의 총소리라는 반복과 소리에서 소리와 시각의 합치로 넘어가는 가운데 그 과잉을 미학적 지점으로 돌린다. 또한 정말 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 지난 2일 오후 2시경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헤다 가블러> 프레스콜 2막 장면, 배우 이혜영(사진 오른쪽), 브라크 판사 역의 배우 김정호

    하나의 순간이며 붙잡을 수 없는 단 하나의 어떤 정동도 감정도 개입될 수 없는 순간, 말을 멎게 하는 정적이 끝없이 연장되는 그런 순간을 보여준다.

    또한 그 전율의 서스펜스적 긴장에서 유리잔들의 떨림은 헤다 가블러의 총체적이고 다차원적인 내면을 가리킨다. 가령 들뢰즈가 설명한 모나드를 이보다 더 정확하게 아니 그대로 보여주는 이미지가 있을까.

    수많은 모나드들이 소통하지 못한 채 하나의 긴장(곧 그녀를 넘어서는 어떤 긴장이자 극 전체의 긴장이기도 한)을 통과하며 하나의 총합을 이루고 있는 장면은 무대에서 보여줄 수 있는 시각적 이미지의 극대치를 보여준다. 곧 무대에서 모든 것이 무화되며 행동을 통해 생명을 얻는다는 원칙들의 지배 하에서 형성되는 무대의 원칙을 벗어나는 이질적인 오브제들의 놓임으로써.

    삶과 어둠의 극명한 대비

    ▲ 지난 2일 오후 2시경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헤다 가블러> 프레스콜 2막 장면, 배우 이혜영

    꼽추 하녀는 헤다의 욕망이 지배하는 현실과 무대 너머에서 이질적인 것으로 틈입하는데 가령 그녀가 오며 어둠이 오는 순간을 맞는다거나(조명이 어둡게 전환됨으로써) 헤다의 세계 너머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알 수 없는 시선을 무대의 과잉으로 남겨 두는 의도적인 장치를 통해 욕망 너머 무의식 내지 전의식, 빛과 어둠의 경계선상에서 어둠을 지배하는, 욕망 바깥에, 헤다 바깥에 외부를 가정하는 유일한 하나의 장치, 말을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언어 너머 죽음의 기호를 가져오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매개자적인 입장의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물론 그 하녀의 존재는 보기보다 과잉으로 드러나고 또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는 모호한 표면만을 그리는 넘침과 부족함 모두 갖는 해석의 어려움을 주는 인물로서 제시되지만.

    ▲ 지난 2일 오후 2시경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헤다 가블러> 프레스콜 2막 장면, 배우 이혜영

    하녀의 시선이 육체로 존재하지만 말이 없는, 실재적이면서 비가시적 존재를 가리킨다면, 또한 헤다와 삶과의 양면을 형성한다면, 무대 위에 위치한 거울은 하녀가 등장하는 첫 순간과 헤다의 첫 등장을 점유하며 환영적인 장으로 가시화된다. 거울은 내(헤다)가 보는 게 아니라 나(헤다)를 비추는, 내가 생각지 않는 곳에서 나를 점유하는, 동시에 내가 그 앞에 나타나는 순간 나를 점유하는, 동시에 내가 없는 곳에 세계를 점유하는 매우 특별한 장소를 허락한다.

    헤다의 우울과 좌절 어린 표정은 욕망에서 미끄러지는 것에서 유래하기보다 바로 이러한 현실을 지배하는 것이 욕망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실제 벗어나고 있는 무언의 다른 욕망 같은 것의 지배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보인다.

    ▲ 지난 2일 오후 2시경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헤다 가블러> 프레스콜 이후 극장 로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배우 이혜영

    [공연 개요]


    작 헨리크 입센(Henrik Ibsen) 
    번역 김미혜 
    연출 박정희
    공연일시 : 2012년 5월 2일(수) – 2012년 5월 28일(월)   평일 7시30분(※5.9(수), 23(수) 3시) ㅣ주말•공휴일 3시 화요일 공연 없음
    장 소 : 명동예술극장
    티켓가격 : R석 5만원 | S석 3만5천원 | A석 2만원
    문의•예매 : 명동예술극장 1644-2003 www.MDtheater.or.kr
    출 연 헤다 가블러 이혜영 / 이외르겐 테스만(헤다의 남편) 김수현 / 율리안네 테스만(테스만의 고모) 강애심 / 엘브스테드 부인(테아) 김성미 / 옐레르트 뢰브보르그(헤다의 옛 연인) 호산 / 브라크 판사 김정호 / 베르타(테스만가의 하녀) / 임성미
    스태프 무대디자인 여신동/ 의상디자인 김지연 / 조명디자인 김창기 / 작곡•음악감독 박천휘 / 분장디자인 이동민 / 소품디자인 강민숙 / 조연출 정수진, 이지영
    제 작 명동예술극장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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