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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댄스 리뷰] '우리춤 빛깔찾기', 우리 것의 현대적 변용과 혼합 사이에서...
    REVIEW/Dance 2012. 10. 16. 07:48

    최지연 창무회 <칼춤 시를 지어 미인에게 주다>

     

    무속의 무가 시작에 차용된다. 이는 이후 작품의 음악적 행보를 지시하는 성격을 띤다. 격하게 몰아붙이는 리듬에 여러 소음 같은 음향이나 소리 지름 등이 맞물린다. 두 사람이 각기 시차를 두고 달리 깨어나고 서로 등을 맞대고 만나 대치도 화합도 아닌 긴장의 지점에서 숨을 가다듬고 각기 다른 속도와 거셈으로 무대를 헤치고 돌아다닐 때는 흥분이 인다.

    실상 이 무속인 같은 존재의 등장은 하나의 외떨어진 삽입에 가깝고 이 둘의 춤과는 대별되는 흐름의 양상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차용과 삽입의 측면은 이 공연의 퍼포먼스적인 수행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곧 이 시간이 하나의 재현이 아닌 현재의 시간 안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다는 것.

    여기에 두 무용수의 움직임은 보폭을 넓게 해서 기본적으로 중심을 잡기 때문에 동작이 빨라지면 호흡의 강도가 높아질 뿐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깨어남과 움직임은 숨의 출발과 숨이 충만한 신체 양상으로 대별되어 생각해 볼 수 있으며 깨어남은 곧 인식의 지점이나 어떤 상황에 근거한 것이라기보다 매우 우연한 것으로 비치는 통제되지 않은 예측할 수 없는 출발인 것이다.

    무대 전면을 구획하는 실들 정도로 비치는 사실 흰 줄들은 어떤 알레고리를 형성하는 대신 비가시적인 투명함을 띤 하나의 공간 형성 정도의 의미만을 가져가는데 이들은 이 안에서 신비롭게 출현하며 또 복잡하게 노니는 움직임들의 뒤엉킴과 숨이 만드는 춤의 여러 유형학적 움직임들이 정교한 구역 속에서 차이를 두며 맞물리는 것 같은 효과를 만들어 낸다.

    이태상 댄스 프로젝트 <어린 앵무새와 로미오>

    지경민의 움직임은 한국의 춤을 매우 새롭게 구성해 내는 측면이 있다. 처음 출현하는 여자 무용수는 브래지어를 입고 엉덩이와 허리께에 붙인 체크무늬 천은 이질적인 양상의 의상으로, 한복의 하늘거리고도 천의 풍부하고도 부드러운 자연의 질감을 야하지만 섹시하지 않은 현대적 특이함으로 변용해 낸다.

    여기에 로봇처럼 분절된 동작들로, 마치 어떤 유연한 흐름도 도달의 지점도 없이 파편적인 기억들이 순간의 움직임을 추동하는 것 같은, 동시에 자신에게로 소급되는 신체 움직임을 만드는 지경민의 춤이 더해지며 여자의 움직임을 조율하고 여자는 즉각 여기에 물들어간다.

    한국의 전통 음악은 이 분절된 움직임들에 의해 다른 맛으로 감각되는데 잘게 움직임들을 쓰거나 고아하고 단단한 멈춤 대신 우스꽝스러움이 배어드는 듯한 앞의 응시와 멈춤이 그러하다.

    세 남녀가 만나면서 무대는 중단되고 꽤 오랜 적막의 어둠이 무대를 뒤덮는데 거의 사분 삼십삼 초가 아닌가 싶을 정도의 긴 길이다. 이 시간을 측정하지 않았지만 만약 그렇다면 고전에서 현대로 음악적 변용의 서사를 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 시간은 꽤나 길었고 극장의 여러 테크니컬한 부분들이 진행되고 있었음을 인식하게 했고 앞선 장면들을 다시 머릿속에서 요약하게끔 하며 여러 생각들을 불러일으켰다.

    이어진 음악은 프로코피에프의 ‘로미오와 줄리엣’ 음악으로 긴장된 음악에 맞춰 한국 춤의 변용된 지점을 앞선 연장선상에서 새겨 넣는데, 음악의 긴장감과 오르내리는 고유한 리듬을 흥미롭게 잘 엮어나갔다. 오히려 발레에서 무대 전체를 재는 긴 공간 안의 빈 지점들 없이 잔 움직임과 스텝만으로 음악과 팽팽하게 교류했다.

    김진미풍유무용단 <세 치 혀>

    사과를 어둠 속에서 발견하고 이어 관객에게 건네는 일련의 과정은 사과라는 오브제에 거의 작품 전체의 주제를 발명하는 것으로까지 이어진다.

    의 등장은 사과를 발로 밟아 부수는 것으로 이어지는데 그녀 뒤에서 배치된 무용수들은 네발짐승과 같은 언캐니를 도출하는 표정과 함께 어슬렁거리며 시각적인 진단을 하고 있는데 그녀가 어떤 감정선을 신체로부터 급격히 파생시키는 지점에 맞물려 소용돌이와 같은 급격한 에너지를 만든다.

    음악이 파생되는 에너지는 꽤 큰데 이 지점에서 저항하는 신체는 어떤 감정선 자체를 담고 있는 음악의 전환으로 마무리됨으로써 감정의 분출과 카타르시스적 해소 자체로 무대를 급히 마무리한 것 같은 아쉬움을 남겼다.

    곧 조금 더 음악을 붙들거나 신체 자체로부터 출발한 움직임들의 고유함을 가져갈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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