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다니엘 아브레우 컴퍼니 <Otros Rastros>: ‘명멸하는 어둠 속 움직임으로의 집중’
    REVIEW/Dance 2013. 5. 24. 14:23

    ▲ 다니엘 아브레우 컴퍼니(Cía. Daniel Abreu)의 <Otros Rastros> [사진 제공=모다페]


    다니엘 아브레우 컴퍼니(Cía. Daniel Abreu)의 <Otros Rastros>는 단순한 움직임들을 느리고 정적으로 반복한다. 빛과 어둠을 원초적인 측면에서 사용하며 그와 같은 신비로움을 의식(儀式)적 움직임들로 치환한다. 


    이는 희미한 서사의 궤적을 따르는 것으로, 움직임을 그 서사(어둠의 정도를 통해서도 작동되지만 주요하게 음악에 의해서 역시 가동되는)에 환원시키기보다 신체 자체에 대한 집중을 유도한다. 


    빛과 어둠의 서사


    ▲ 다니엘 아브레우 컴퍼니(Cía. Daniel Abreu)의 <Otros Rastros> [사진 제공=모다페]


    발가벗고 엎드려 있음의 포즈, 금세 밝아지며 이 어둠으로의 묘연한 뒤섞임은 순간에 그친다. 다만 정적과 두 몸만이 남았는데, 하나의 몸은 다뤄지는 대상으로서, 또 다른 몸은 이를 스스로에게서 분리하며 의미를 생산하고, 스스로는 그 의미를 내재적으로만 간직하는 기능으로서 몸이 된다. 


    ‘움직임 기계’와 함께 ‘버튼을 누르는 스위치 주체’는 곧 같은 움직임을 반복하고 또 상대를 움직이게 하며 그 스스로도 대칭된 움직임을 찾는 것에 따라 그 구문은 그 자체의 미학적 구문으로 드러나게 된다. 


    두 몸이 하나의 동일선상의 움직임을 보일 때 호흡은 전체로 확장되며 무대 전체가 온전히 그 두 사람 간의 등으로 흘러나감을 감각하게 된다. 이국적 노래와 무대 앞뒤로 대각선으로 나뉜 두 남자의 어둠에 묻힌 정도의 차이들로 마치 ‘헤어짐’이라는 서사 속 느낌을 선사하는 부분에서 여자가 찾아온다. 


    이 음악과 고요함 ‘의식적’(儀式的)이라 느껴질 만큼의 움직임-호흡들이 이러한 어둠과 빛의 경계에 대한 서사를 작동시키고, 여자의 출현과 함께 여자는 두 남자 간 매개자적 기호로 두 남자의 중간에 위치하고, 시선을 외부로 동시에 스스로를 향한 온전히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 두며 타자적인 위치에 서고, 연약함의 기표로 단단함의 기호를 남자로부터 끌어낸다.


    바람과 음악의 대위법이 낳는 균열



    ▲ 다니엘 아브레우 컴퍼니(Cía. Daniel Abreu)의 <Otros Rastros> [사진 제공=모다페]


    실제 무대에 바람이 불고 소음이 출현하는 가운데 음악과 만나며 실재와 환상과의 청각적 미끄러짐을 낯설게 생성하지만 ‘움직임’은 흔들림이 없다. 


    이 바람이 붐은 곧 무대 자체에 환상의 성격을 부가하는 배경음악 위에 잉여로 덮고 있는 사운드 궤적으로 드러나며 환영적 몸을 구가하는 움직임에 꽉 찬 밀도를 이 몸의 전면에 형성하며 실재적 기호들로 움직임을 치환한다.


    여기에 이들은 몸의 펼침과 접음에 웨이브의 몸짓들을 더해 몸의 무늬의 궤적을 드러내거나 안온한 의식 자체를 잃지 않고 있는데, 이러한 가득 찬 부자연스러운 대위법의 사운드가 지나가면 몸은 가쁜 숨을 내쉬며 벌거벗은 신체 그 자체로 드러나게 된다. 


    두 사람의 누움에서 맞잡음과 구름, 물질들이 흘러가며 부딪치는 그 안에서의 끊임없는 반복이 순차적이고 점진적으로 음악의 작용과 함께 고양되어 간다. 여기에는 반복의 과정이 필시 드러나며, 분절적으로 거친 사운드 매질의 반복에 의식(意識) 역시 방기되고 신체의 그러한 고양을 향한 반복의 차이들로 변해 나간다. 


    두 사람의 병치는 이 한 사람의 내재적 반복이 중첩되며 발생하는데, 단순한 움직임은 음악의 파열과 몸짓의 한정된 채 곧 그 에너지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그 파열적이고 단속적인 부분에 어떤 움푹 패는 커다란 선분과 반복으로 무대를 채운다는 것이다. 


    이는 점점 어두워지며 그 어둠의 단속적 차이에 따라 어둠 자체로 무화되어 가는 동시에 어둠에서 일순간 어둠의 빛 자체로 튀어 오름으로, 두 불가능의 노력과 의지 속에 추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가령 ‘얼굴’이 없는 살의 번쩍임, 동시에 어둠의 되먹임의 변용된 신체들에 이르는 몸들의 지독한 구름은 이 파편의 사운드를 더 큰 덩어리로 묶고 체화하여 그 고양됨을 오로지 신체적이고 물질적인 무엇으로 거듭 발현해 내었다.


    몸을 비추는 의식의 과잉


    ▲ 다니엘 아브레우 컴퍼니(Cía. Daniel Abreu)의 <Otros Rastros> [사진 제공=모다페]


    어둠 이후 의례 신비한 현의 공명이 무대를 신체로 뜯어냈는데, 다시 ‘실재’의 바람이 불고 이제 옷을 입은 두 남녀와 앞선 벌거벗음의 신체가 부조화스럽게 층위를 달리했다.


    조용하게 정적으로 움직이며 그 ‘내리누름’의 과잉이 이 음악적 정서의 ‘설명되지 않음’의 과잉을 설명했고, 이 잠재된 정적의 몸놀림의 구문들은 곧 고양될 시간들을 다시 예비하고 있었다. 이러한 전환은 실상 매우 단순한 구조 아래 있었고, 어떤 기다림 자체를 숨 고르기와 함께 받아들여야 하는 측면이 있었다.


    남자가 여자를 두서 걸음 가서 땅에서 여자가 몸을 굴린 후 신체를 다시 들고 있다 내려놓는 하나의 프로세스의 끝에 굳이 바람이 가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말해 왜 바람이 하나의 기호로 그들에 부여되어야 했던 것일까.


    이는 바람이 이들 신체를 어떤 유동하는 무엇으로 촉각의 매무새로 빛과 생기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신체에 이 전체를 감싸는 어떤 특별한 시각이 부여된다. 정적의 순간에 부여되는 ‘과잉’ 그리고 그 과잉이 체현된 몸으로서.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