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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다페 2013] 시디 라르비 셰르카위& 데미안 잘렛, <바벨> : ‘타자로의 연대와 접속’
    REVIEW/Dance 2013. 5. 28. 02:37

    소통으로서 언어의 역사를 조망하다


    ▲ 시디 라르비 셰르카위& 데미안 잘렛Sidi Larbi Cherkaoui & Damien Jalet, BABEL(Words), ⓒ Koen Broos [사진 제공=모다페] (이하 상동)


    ’단순한 제스처들이 발전되어 소통의 언어 형식을 이룬다, 그리고 그 안에서 완전한 소통은 불가능하다. 언어는 곧 오해와 이해의 사이에서 끊임없이 유동한다’, 일종의 언어에 대한 메타적인 탐문과 그러한 시원적 제스처로부터 끌어내는 언어를 춤의 기원과도 결부지어 생각하게 하는 내레이션과 몸짓들이 서두를 장식한다.


    이 내레이션을 담당하는 인조 로봇 같은 여자의 목소리는 이 역사에서 현대로 오기까지의 시간들을 체현하고 전달하는 매체 자체가 된다. 이는 신성함(과거)과 평범함(현대)의 의미를 분절하며 그 모두를 가리키며 이 ‘목소리’가 태초에 있던 목소리 그리고 현재 그 뿌리의 흔적을 확인케 하는 것으로서 어떤 신비함, 무대에서 그것의 아련함을 표상하는 구술 기계로 자리하는 것이다.


    ‘지구촌’을 현상하다



    리듬에 따른 춤, 곧 북과 같은 월드뮤직에 박력 있게 ‘수신호’로서 동작들을 지정하는 것, 이는 명쾌하고 또 ‘촌스럽다’ 이 ‘촌스러움’은 모든 움직임을 박자에 따라 단순화한 결과로, 여기에는 인류의 상이한 집단의 대표성을 체현‧재현하는 존재들의 평등‧공통됨 그리고 화합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메시지의 거듭남이 있다.


     이들은 곧 무대를 벗어나 ‘역동적 과잉의 생명력’으로 관객을 환대함으로 일부 드러나기도 한다. 이 경계 없음의 순간이 구획 짓기의 경계로, 곧 ‘미래적 바벨탑’을 설치해 놓는 것으로 반전된다.


     이 인류의 다양한 국적의 전형들은 이 작품의 제작 과정 자체를 증거로 하는 지표로서, 협력 프로젝트가 가진 평화라는 메시지를 산출해 낸다. 하지만 이는 일부 타자를 간편히 봉합하고 하나의 화합에 대한 의미로 소급시키는 차원에 머무는 측면도 있다.


     앞선 사이보그 인형-기계를 조종하는 것과 더불어 풍속적 일본의 노래로 흥겨움의 장을 더하며 조종하고 받는 두 쌍을 병치시킨 뒤에 점차 확대되어 무대 전체를 채운다. 이 수신호는 일종의 언어다. 


    ‘타자로의 접속’



     ‘운동 명령 신경 세포’는 (모방에 의해 탄생하게 되는) 움직임에 타자가 전제되어야 하고, 타자의 시선 자체를 가져와야 함을 설명하는 데서 출현한다. 이에 따라 현재 이들의 행위를 복제된 상태의 재현으로서의 집단의 춤이 아닌, 서로 긴밀하게 관계 맺고 있음을 의미하게 된다.


     이는 ‘공감의 신경세포’로도 표현된다. 이것이 동양철학의 기초라는 말도 한다. 이 신경세포를 통해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증명된다는 것이다. 팔이 잘려지고 누군가 다른 팔을 만졌을 때 자신은 그것을 느끼고 이는 연결되어 있음을 뜻한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이는 팔이 없음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얻어지는 결과에 불과하다. 곧 너와 내가 연결되어 있음을 가리킴은 어느 정도 트릭이 아닐 수 없다.


    큐브로 표현된 다양한 경계



     제 3세계의 음악은 이제 남녀의 신비로운 만남의 부드러운 섹스를 연상시키는 흐름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는 이 사랑의 흐름에서 돌연 큐브에 갇히게 되고 그 ‘투명한 막’을 때리는 행위를 한다. 여기에 북으로 동기화한 까닭에 실제 벽을 상정하는데 일종의 ‘거짓 인터액션’이 시각의 층위에 부가되어 있는 형식이다.


     해체와 뒤이은 재건축의 과정은 신비한 순간에만 성립하는 건축물을 짓는 동시에 그 시간을 삶으로 육화하는 순례자의 이미지를 환영적으로 구축했다. 여기에는 연주와 노래의 힘이 물론 작용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이 큐브를 잡고 돌기는 공항 검색대라는 또 다른 큐브에서 언어의 불통의 장면을 모사하는 한편 재전유하는 장면으로 넘어간다. 여러 언어들이 튀어 나오는 가운데 소통이 일시 된 것처럼 보이게 하며 넘어가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어 프랑스 말을 하며 큐브를 통과하는 가운데 점점 자세가 낮아지며 유인원으로 또 동물로 변해가는 과정을 표현한다. 


    이 인류 시원을 간략하고 거칠며 유머러스한 과정으로 표현한 데 이어 영어가 글로벌 언어라는 메타 언어 정보가 더해지고 그와 반대의 지점에서 끊임없이 다른 각자의 언어들로 모여 한 사람씩 나서서 말함에는 소통되고 있음을 심정적으로는 상정하지 않지만 귀를 기울이는 모습들로, 그것이 가능한 것 같은, 각자의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결과를 낳는 것으로 이어진다.


    ‘경계 허물기’



     여기 집단의 축제의 장의 분위기를 머금고 육체의 에로스적 시를 쓴다. 상의를 탈의한 채 육체의 생명력을 입증해 낸다. 신비로운 음악은 반복되며 얽혀드는 행위들의 의식적 측면이 있으며 또한 그 자체로 의미를 매개하고 있다. 


    이는 무엇을 표현하기 위함 이전에 있으며 이것이 겹쳐지고 고정될 때 역동적 광경을 이루어 음악의 세계에 육화되고 점입가경으로 몰입해 감을 의미하게 된다.


     피리소리에 일렬로 서서 발을 포개 놓는다. 중앙 사람부터 한발씩 연이어 발을 빼며 나아가고 ‘힘든 걸음’은 언어의 무한한 차이를 확인하여 그 언어가 그 존재임을 증거하며 다퉈 온, 거쳐 온 시간을 뒤로 하고 말없이 한 몸으로 하나의 인류사적 궤적을 만들어 내기, 이것이 곧 말없음의 세계, 그리고 바벨탑 이전의 세계의 현재적 공명이었다. 곧 얽힘과 아스라한 접촉, 그리고 큐브 위쪽으로 점점 사라져 간다.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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