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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원한 침대>: '미완성의 모색들'이 가진 미학
    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13. 8. 16. 02:56


    ▲ <영원한 침대> 콘셉트 이미지 [제공=LIG아트홀]


    배우들은 공간의 각기 다른 곳에 위치해 있다. 일상을 환영으로 전도하는 이 ‘위치함’은 이들이 분명 같은 공간에 있지만 배우라는 암묵적 전제가 자리한 채 특정한 피사체가 되며 동등한 입장에서 의미 교환을 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환영적으로 자리하는 배우들의 움직임을 열어주는 건 연출의 개입인데 이는 기존의 비가시적인 연출의 영역의 경계 허물기나 아니면 또 다른 역할로의 극 내재적인 등장으로 보기에는 모호한 부분이 있다.


     연출은 거의 들리지 않는 입만 뻥긋하는 듯한 말을 흘려보낸다. “말은 명령어”(들뢰즈)로 직접 작용하며 이 정지된 피사체의 접근 불가능함의 영역을 붙잡을 수 없음의 유동하는 흐름으로 바꾸어 놓는다.


     마치 어떤 영감과도 같은 이 ‘들리지 않음’의 말은 비가시적인 부분, 그러나 분명 (연출의) 접근과 전함, 이후 나타나는 작용의 효과로 실재적인 무엇인데, 마치 우리가 행동할 때 추동하는 생각들처럼 작용하는 것이다. 


    여기서 ‘연출가의 개입’은 이 말 자체가 이미 극에 개입할 때 연출의 지위는 작용하지 않기(곧 이를 배우가 아니라면 퍼포머의 일종으로 봐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정 부분 정확하지 않으며, 이 개입이 그럼에도 분명 배우와는 다른 표지를 남긴다는 점에서 그리고 배우와는 다른 층위를 생성한다는 점에서 개입이라는 드러나는 부분을 성립시킨다.


     그렇다면 이 개입은 최종적으로 연출자의 몫이라 말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하자면 극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연출의 몫과 이 일종의 퍼포머의 몫은 연속되는가. 


    기실 그는 말을 (직접) 하지 않고, 배우라는 피사체와 같이 연기를 하는 것도 아니며 일종의 들리지 않는 디렉션을 하는 영향력을 가진다는 점에서 배우에 선행하는 존재로 여전히 어떤 창조하는 자로서의 자리를 유지한다.


     과연 들리지 않는 이 말은 어떤 ‘최소한의 것’으로 ‘최대한의 것’을 끄집어내는 것에 가깝다. 곧 ‘지시’는 짧되 이어지는 행동은 길기 때문이다.


     연출가 내지 창조자에게 있어 일종의 배우라는 질료는 다시 이 최소한의 질료로 현실을 구성해 낸다. 분명 환영적이지만 관객들 사이에서 경계 없는 공간으로 현재를 구성해 낸다. 이는 관객의 신체를 심리적으로 침투하되 이는 직접적이지는 않다. 시선은 마주할 수 없는 것이거나 마주침 자체가 설사 있더라도 이는 나란 존재가 그 안에 포섭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현재의 어느 한 시차를 보는 것에 가까운데 배우들은 배우 이전에 역할-존재로 있다. 그리고 이는 해명되거나 서사의 탑을 쌓는 과정의 일부로 작용되지 않는다.


     그 자체로 내재적인 이들은 외상의 반복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며 이는 순간적인 생각의 떠오름, 단어 내지 말을 통한 역시 급작스런 상황으로 이어지게 된다. 


     ‘움직인다’ 내지 ‘이동한다’는 이 피사체에 고착된 시선과 자세, 위치를 모두 이동시키는 것에 가깝다. 곧 관객 사이를 빠져 나가며 관객은 스스로를 체감하게 되는데 공간이 작은 관계로 고정된 상태로 이들의 행동에 묶이는 형국이 된다. 


    곧 관객은 말하자면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 이미 배우는 이 공간에서 개인적이고 내재적인 공간을 만든 상태이고(비록 허구더라도) 관객은 그 과거의 기억들이 현재화되는 것을 단지 지켜보는 것인데 어떤 진정한 사건이 벌어지는 대신(이 사건은 오직 관객이 관객의 몸을 체현하는 순간을 느끼는 동시에 그들이 곧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의 것만이 해당할 것이다) 과거가 호출되며 풀어지고 다시 닫히는 그런 우발적이면서 파편적인 질료들 자체를 확인하는 것만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우발적인 침범(관객에게든 또 연출가에서 배우에게든)은 여전히 관객과 배우를 또 연출(명령)과 배우를 이중으로 분절하며 그 사이에서의 경계를 확인하게 하는데 이는 일종의 수수께끼로 남는다. 앞선 최소한의 것이 과연 종합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의 일부였던 것인가 또한 이는 즉흥적인 요소가 가미되며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드는가(그러기 위해 최대한 것은 원래 없는 것인가). 


    연출가 김철승에게 궁금한 것은 바로 이런 완성되지 않은 듯한, 아니 완성 자체라는 말을 폐기한 어떤 과정 자체의 (미)완성을 따라 그 과정 자체의 드러나지 않은 어떤 모색들일 것이다.


    (비고) 공연명: 영원한 침대

    일 시 7월 5일(금) 오후 8시 / 6일(토) 오후 7시

    장 소 대안공간 이포(서울 영등포구 문래동3가 58-77)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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