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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회견 현장] 채프만 형제 개인전 프리뷰
    PREVIEW/Visual arts 2013. 8. 23. 12:46


    ▲ 디노스 채프만(좌), 제이크 채프만


     오는 23일부터 12월 7일까지 송은 아트스페이스에서 2013년 해외작가 개인전으로 yBa 출신 작가, 채프만 형제Jake and Dinos Chapman의 개인전이 국내 처음으로 열린다. 


    1990년 영국 왕립 예술학교를 졸업한 이후 이들은 주로 전쟁, 대량 학살, 섹스, 죽음과 소비지상주의를 주제로 다뤄 왔다. 이번 전시는 2002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채프만 형제의 작품 세계 전반을 아우르며 신작 페인팅 작품 5점은 이번 전시에서 최초 공개되는 것이다.


    “작품 자체가 내면을 바라본다기보다 외면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22일 송은 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채프만 형제는 좋은 예술가가 되려면 자신에게 어떤 상처가 있거나 다른 사람과 다른 특별한 경험이 있어야 된다는 기존의 생각 대신에, 작가가 쌓아온 경험의 조건들이 자신의 작품의 반향을 이끌었고, 그러한 조건들을 반영해서 그려야 한다고 전했다. 일례로 화가가 길거리에서 그렸던 그림에서 자동차가 한 대도 없었는데, 이는 작가가 그리고 싶은 것만 그린, 자기 경험이 반영되지 않은 잘못된 사례로 전했다. 세상에 부정적인 것들이 계속 일어나기 때문에 그것들을 (피할 수 없으므로) 다룰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상이 행복하다고 믿는 것은 개인의 선택의 영역이지만, 물질주의와 상업주의가 공존하는 것으로 바라보는 것이 더 정당한 시각이라는 생각을 전했다. 가령 ‘맥도날드’라는 것이 패스트푸드 산업의 성장과 함께 시작됐고 자본주의 상징으로 이해되는데, 좀 더 빨리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는 측면에서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는 점에서 계몽주의를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다는 것.


     “예술이 반드시 목적성을 가질 필요는 없다. 목적을 갖고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사기”일 수 있다. 또한 예술은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경계가 정해지지 않은 무한정한(오픈 엔드open-end)의 실험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매춘이나 마약이 큰돈을 벌게 하는 것이고 작가의 혼돈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로운 장이다. 사회적으로 많은 파급효과를 미치는 데 목적이 있지 않지만, 개인의 즐거움 등의 효용은 있다.” 


    제이크 채프만은 불편한 진실을 투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 더 적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고 전했다. 작가는 최소한의 문제제기를 보는 이로 하여금 되돌리는 것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예술이라는 것이 인간으로서 작가로서 누릴 수 있는 최대의 자유로움”이며, 예술이라는 것의 경계가 유연하다며 예전과 같이 예술대학교를 졸업해야 작가가 됨은 기존의 (사고) 방식임을 전했다.


    “죽음이라는 소재에서 탄생한 것이 기독교이고, 종교와 종교 이후의 신념 역시 작품에 영향을 미친다.” 


    한편 북유럽의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방식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밝혔다. 대표적으로 19세기 초 스페인 미술을 대표하는 프란시스코 고야의 광기 어린 살풍경이 계몽에 대한 저항적 정신으로 해석되듯 이들 역시 고야의 영향을 통해 “이성에 치우친 방식”(제이크 채프만)에 거리를 둔다. 대표적으로 <The Sleep of Reason Produces Monsters>(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는 고야의 동명의 작품을 차용한 것이며, 고야를 전유한 이들의 태도를 전면에 드러내고 있다. 


    제이크 채프만은 고야에 대해 “미적으로 아름다운 작품도 있겠지만 종교적인 도상들을 인간의 심리적인 부분으로 해석해 낸 최초의 작가”, “새로운 표현의 영역을 개척해 낸 작가”라고 전했다.


    또한 자신들의 작품에 대해 서구의 담론을 이해하지 않더라도 이해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없다는 생각이다. 예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입관을 타파하고자 하고, 어떤 심오한 메시지나 목적성을 띠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것(정치적인 담론에 휘말리는 것)이기 때문에 이에 저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No Woman No Cry>, Fiberglass, plastic and mixed media_215 x 127.5 x 127.5cm, 2009


    제이크 채프만은 환경 재난 등으로 인한 ‘소멸’이라는 것은 저항의 형태로, 유쾌함의 정서와도 닿아 있다고 전한 것처럼, 이들이 말한 작품의 잔혹한 풍광에 아이러니한 측면이 담겨 있을까. 가령 <No Woman No cry>(2009)를 보면 상의 내지 전신을 발가벗은 시체 구렁텅이 속에 간간이 나치 완장을 한 이들의 시체가 섞여 있고, 그 위에서 지상전이 벌어지는데 이는 한편으로 처절한 아귀다툼의 생존과 참혹한 죽음 사이의 동시적 현전의 양상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는 그 둘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치 일어날 수 없는 두 양상이 하나의 시간으로 정박되어 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한편 군데군데 살피면서 하나씩 발견되는 부분들은 해골이 드러난 신체, 해골이 박힌 막대기, 사람 키의 두 배가 넘는 십자가에 박힌 나치 군사의 패닉에 빠진 모습, 돼지의 뾰족한 귀에 사람보다 더 큰 형상의 언캐니한 생물을 십자가로 떠받들고 가는 모습으로 도무지 현실에서 발생할 수 없는 것으로, 이는 리얼리티보다 어떤 이것들이 낼 수 있는 과잉의 극대화된 효과를 산출하며 하나의 장면으로 치환해 버린다. 


    곧 전체적으로 이질적인 것의 부분이 바꾸는 환상적인 풍광이 내는 숭고함의 반전 효과와도 같다고 할까. 곧 전체화되면서 그것을 벗어나고 변증법적으로 새롭게 구조화되는 그런 풍경이다.


    <Unhappy Feet>(Fiberglass, plastic and mixed media_216 x 171 x 171cm, 2010)에서는 돌에 떠 있는 백조들, 둥둥 뜬 돌 위의 사람 같은 포즈를 한 곰의 극미한 부분을 뒤로 하고, 고래와 곰 등과 싸우는 펭귄들 그리고 그를 정복한 펭귄들은 어쨌거나 그 위에서 우리가 알던 대로 순진무구하게 서 있다.


     이 모든, 참혹한 세계가 디테일에 변해가는 과정에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The Same Thing But Silver>(9.5 kg of Hallmarked English Silver_43.5 x 41.5 x 20.5cm, 2007)에서는 해골이 나무에 매달려 있는데, 이는 십자가의 은유임을 알 수 있다. 해골들이 부분 신체로 나뉘어 군데군데 붙어 있고 제 일 위에 새가 매달려 그 살풍경을 지시하고 있다.


    ▲ 채프만 형제, 전시장 풍경


    '마치 볼트 같은 목을 지닌(곧 그것과 절합된) 신체의 우스꽝스러운 눈 가면을 쓴 인간'(<CFC74812577>, Bronze_120 x 27 x 15cm_Edition of 3, 2002)은 형상과 색 등 몸 자체로만 보면 다분히 원시적인 측면이 있다. 이는 가면을 쓴 아프리칸 인디언처럼 느껴지는 동상에서 드러난다. 한편 이는 '맥도날드 인형의 얼굴을 전유한 원시 부족의 화살을 든 맥도날드'(<CFC74378524>, Bronze_125 x 48 x 45cm_Edition of 3, 2002)에서 풍자로 넘어가며 '“McDonald’s맥도날드”를 새긴 방패'(<CFC76249559>, Bronze_92 x 41 x 9cm_Edition of 3, 2002)에서 그 절합된 양상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벽면을 보면 “채프만 가문의 소장품”이라고 명명되어 있다. ‘어떻게 이게 수집한 것들이란 말인가’, 곧 그 구문 자체도 하나의 픽션을 결과적으로 창조해 내는 전시의 일부로, 곧 작가의 전략적 장치의 일환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Chess Set(체스 세트), Edition of 7, 2003>은 파머 머리의 흑인과 성기 모양의 코를 가진 머리를 주로 딴 백인들이 체스 판 가에서 각각 서로를 향해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해골이 판 각각에 그려져 있고, 두 해골이 한 쌍을 ‘사이좋게’ 이루고 있다. 이는 풍자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광경이다.


     이는 영국의 공동 예술 사업체 RS&A가 체스를 사랑한 예술가들의 전통을 잇는 의미에서 2003년과 2009년 사이에 총 15인의 작가들에게 자신만의 스타일로 체스를 재해석하는 작업을 의뢰한 가운데 첫 번째 작가로 선정되어 작업하게 된 작품이다.


     중세 유화 작품 같지만 조금만 자세히 보면 얼굴의 세월의 누적으로 인한 변형과 유화 특유의 붓놀림으로 인한 질감이 의도적으로 과잉되어 얼굴을 변형시켜 마치 괴물처럼, 엽기적인 인물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전시 문구를 참조하자면 “역설적이게도, 괴기스럽게 변형된 주인공들은 다시 한 번 세상의 빛을 보며 아름답고도 사랑받는 대상으로 변모한다”라고 되어 있다.


    ▲ 회화 <Georg Paint the Bunny>(2011)와 <Minderwertigkinder> 시리즈


     그림 <Georg Paint the Bunny>(2011)을 보는 세 명의 소녀, 아이들(<Minderwertigkinder> 시리즈)이 있는데 이는 각각의 신체에 맞게 적절한 거리와 반경을 두고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막상 가까이 가보면 이는 그림을 보는 위치를 지정해 주는 대신, 저마다 각기 다른 곳들을 보며, 혹은 눈을 뒤집어 까며 반항적으로 위치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림은 그에 비하면 평범한데, 그러한 그림을 대하는 저항적인 태도는 우리가 그들을 먼저 본 이후에 전유되는 것에서 발현되는 것이라 할 수 있고, 한편 이는 이 이질적인 기괴한 신체들을 재배치하는 것에서 기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곧 어떻게 보면 궁극적으로 이 그림 대신 이 그림을 보는 태도와 신체들을 확인하는 것에 가깝다. “They Teach Us Nothing(그들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가르칠 수 없다는)”라고 쓰인 문구에 나치 휘장을 그 중심에 두고 있는 감청색 트레이닝 복 같은 의상을 하고 있다. 한편 입은 개나 늑대, 오리의 동물을 전유하고 있어 인간을 의도적으로 벗어난다. 또 다른 그림 <Piggle-Wiggle>(2011)앞에 의자에 앉아 있는 두 인간 형상 역시 동물이나 기다란 당근 같은 것을 달고 있다.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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