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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인도’ 위작 논란 이후 제2학예실에서 벌어진 일들>: ‘사실을 작동시키는 거짓의 힘’
    REVIEW/Theater 2017. 12. 23. 02:51

    ▲ <‘미인도’ 위작 논란 이후 제2학예실에서 벌어진 일들>(작 강훈구, 연출 김현회) 콘셉트 컷, (사진 좌측부터) 배우 신윤지, 송희정, 송철호, 김보나 [사진 제공=극단 위대한모험](이하 상동)

    무대 벽에는 여러 대의 TV가 동일한 영상들의 복제를 가능케 하는 스크린으로 기능하는데, 무대 전면은 사무실로 설정되어 있고 그 경계에 턱이 있고, 길의 역할을 한다. 사무실의 경계에 있는 세 모서리의 턱들로부터 사무실의 세 책상은 평행하지만, 문 옆의 책상은 비스듬하게 배치됐고, 정상적인 각도로 보이는 세 개의 책상과 그 바깥의 세 모서리는 사실상 객석에서 비스듬하게 측정된다. 이로써 관객석으로부터 비정상적 시각을 산출한다. 이는 정상적이지 않은 것에 대한 신념 체계, 이데올로기적인 지배에 의한 지식의 우위를 역설하(려)는 무대 장치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바깥은 매우 좁고, 객석과 거의 맞닿게 되며, 사무실을 벗어나 공개적으로 대중을 만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행사의 자리로만 사용된다.

    사무실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제2학예실로, 천경자 위작 사건을 건조하게 사실적으로 다루는 가운데, 중간 중간 암전 속에 스크린이 비추는 현실은 작품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요한 요소로 기능한다. 처음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희망적이고 미래적인 이미지를 제고하는 광고쯤으로 작동하는 스크린에서, 프레젠테이션의 자리에서 예나(신윤지)는 고독을 추구한 천경자의 삶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곧 천경자의 외롭고 고립된 지위는 외부에서의 정치적인 이권 다툼과 대립하는 가운데 분명해지는데, 국립현대미술관은 작가의 위치를 이 안에서 어떤 발화의 지점도 갖지 못하는 것으로 만든다. 그는 언제나처럼 혼자 떠들고 사회적으로 발언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 <‘미인도’ 위작 논란 이후 제2학예실에서 벌어진 일들> 콘셉트 컷, (사진 좌측부터) 배우 송철호, 송희정, 김보나, 신윤지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가 출현한 이후부터, 스크린에서는 <미인도>상의 인물의 오른쪽 눈동자를 클로즈업하고 지지직거리는 화면을 계속해서 보여주는데, 흔들리는 진실의 눈은 실제로는 눈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진실을 왜곡하는 표면을 상기시킨다. 그림을 그린 이의 주장과 대립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주장에 대한 물음, 곧 어떻게 가짜가 진짜일 수 있는가의 물음은, 권위가 지식을 생산하는 힘의 장력에 대한 대답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가짜임이 판명됨은 국립현대미술관의 권위 자체를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를 낳는다. 하지만 판명은 권력의 힘에 의거한다. 이러한 잘못된 국가의 권위가 예술가를 옥죄는 결과를 낳는 상황은 문화계의 블랙리스트 사건의 연장선상에서 광범위한 지층을 이루는 것으로, 그러한 관점하에서 이 작업이 거꾸로 출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예나가 천경자 화백을 찾아가 작가의 동의 없이 그림을 외부로 반출하는 잘못된 절차에 대한 사과와 함께 그림이 위조된 것임을 밝히는 데 노력하겠다는 편지를 준 것에서 어느새 태도를 180도 변경한 것은 권위에 대한 신념 체제를 그 역시 용인하고 승계하는 데서 비롯된다. 천경자 화백으로부터 <미인도>가 위작이 아닌 자신이 직접 그린 작품이라고 번복했다는 천경자 화백의 말을 그에게 전달하는 상관(김정호)의 말, 곧바로 되묻게 하는 그의 모호한 말은 예나의 믿음을 실재화하라는 주문에 다름 아니다. 진짜와 가짜의 구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것이 진짜라는 것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곧 그것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원래부터 그리고 바뀌지 않는 사실 차원에서 진짜라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 <‘미인도’ 위작 논란 이후 제2학예실에서 벌어진 일들> 콘셉트 컷, (사진 좌측부터) 배우 전운종, 신윤지

    마지막에 예나가 사무실에 찾아온 천경자 화백의 둘째 딸(조하나)의 항변에 자신의 지난날의 발언을 무르고 ‘자식도 못 알아보는 어머니’로 그를 격하하고 모욕함은, 권력의 부역자의 행위가 권위에 의한 수동적인 것이라기보다 권위의 승계에 따른 능동적인 것에 가깝다는 것을 확인시킨다. 사실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가 진실이냐 가짜냐의 판별은 극의 부차적인 부분으로, 예나의 올바르지 않은 선택의 결말과 마찬가지로 현실(의 어두운 작동으)로 흡수된다고 하겠다. 이와 함께 흐릿한 컨텍스트의 지층을 이루는, 어둠 속 좁은 통로로 등장하는 예나의 남자친구(전운종)가 알리는 ‘연수의 죽음’, 곧 그의 남자친구와 같이 민주화운동의 전선에 뛰어들었고, 어떤 한계에서 죽음을 택한 그의 동료에 대한 이야기는, 천경자 사건과 희미하게 합을 이룰 뿐이다.

    대신 그의 유서가 대필로 판명된 미디어의 소식을 전하는 것으로 역시 진짜와 가짜의 판별 자체에 대한 문제로 소급되지 않게 한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가지게 된다, 아마도 그 유서는 <미인도>가 작가에게 가짜였듯 진짜였을 것이다. ‘연수의 죽음’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건 자신의 타락을 정당화하는 것에 다름 아닌데, 그렇게 예나의 오점은 권위의 승계 측면에서 정의 자체를 부정하는 눈멂에서 나온다. 한편으로 스크린상에서 한일 월드컵의 골 장면 등을 통해 매끈한 역사의 표면으로 삭제되는 아니 지시된 바 없는 진짜 역사, 표피적인 역사의 장식들이자 승리한 역사의 표면들로서 역사는 이러한 불편한 현실을 덮는다.

    과정의 흐름들에서 고찰된 예나의 행위에 대한 이해와 그 자신이 갖는 불편함으로 극은 진실을 지켜내고자 한다. 예나의 불편함은 사무실의 회식 자리에서 강요된 ‘오늘밤’이라는 김완선의 노래를 통해 표출되는데, 스스로 그 서먹함을 극복하고자 널뛰며 노래를 소화하기에 이른다. 극에서 제시되지 않는, 다음 단계는 구원일 것이다. 현실은 무겁고 진실은 개인의 양심 차원에서 소구될 뿐인 것이다. 현실을 사실적으로 훑고 정리하던 연극은 견고한 현실의 무게를 일깨워 주며 사라지고 마는 동시에, 진짜와 가짜의 문제를 진실과 거짓의 문제로 환원시키고 만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 <‘미인도’ 위작 논란 이후 제2학예실에서 벌어진 일들> 포스터, 배우 신윤지

    [공연개요]


    ㅇ 공 연 명 : ‘미인도’ 위작 논란 이후 제2학예실에서 벌어진 일들
    ㅇ 기    간 : 2017년 12월 22일(금) – 2017년 12월 31일(일)
    ㅇ 시    간 : 화~금8시 / 토요일 3시 , 7시 / 일요일 3시  *월요일 공연 없음
    ㅇ 장    소 :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ㅇ 주    최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ㅇ 주    관 : 극단 위대한모험
    ㅇ 제    작 : 극단 위대한모험
    ㅇ 관람연령 : 만 15세 이상
    ㅇ 러닝타임 : 100분
    ㅇ 관 람 료 : 30,000원
    ㅇ 예    매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터파크, 대학로티켓닷컴
    ㅇ 문    의 : 010-8317-1005
    ㅇ 작    가 : 강훈구  
    ㅇ 연    출 : 김현회
    ㅇ 무    대 : 장하니  
    ㅇ 조    명 : 이경은     
    ㅇ 음    악 : 김성택
    ㅇ 의    상 : 김미나  
    ㅇ 영    상 : 강경호     
    ㅇ 분    장 : 현새롬     
    ㅇ 영    상 : 강경호  
    ㅇ 디자인ㆍ사진 : 김 솔  
    ㅇ 무대감독 : 박현철
    ㅇ 기    획 : 김시내, 이다혜   
    ㅇ 조 연 출 : 지은진
    ㅇ 출    연 : 김정호, 송희정, 전운종, 송철호, 김보나, 조하나, 신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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