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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무용단, 〈사자의 서〉: 재현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REVIEW/Dance 2024. 6. 5. 18:35

    국립무용단, 〈사자의 서〉 콘셉트 사진[사진 제공=국립극장].

    국립무용단의 〈사자의 서〉는 죽음 너머의 세계를 그린다. 이는 신화적인 차원에서의 접근, 곧 재현의 한 범주에 속한다. 곧 죽음 너머의 현실이 존재한다는 전제가 서사의 한 종류를 이루며, 인간의 감정이 잔여하고 지속된다는 관점이 그 뒤를 따른다. 총 3개의 장으로 구성되는 가운데, 현실과의 단절을 인지하고 있음의 1장과 3장, 과거를 현재로 호출해 오는 2장으로 구분된다. 슬픔과 회한의 감정들이 혼재되는 세계는 전반적으로 의례의 정동을 구성하는 가운데, 2장에서는 현실에서 미끄러질 수밖에 없는 주체의 감정적 드라마로 변환된다. 망자를 인도하는 저승사자의 등장과 망자를 애도하는 수많은 사람은 현실과 죽음 너머의 현실을 접합하며 두 세계를 분리하면서 과거의 현실과 새로운 세계를 동시에 구성한다. 또는 전자를 후자로 인계한다. 

    첫 등장에서부터 1장은 일관된 복장으로 산 자들이 악기를 두드리는, 흡사 땅을 두드리는 애절함의 정서를 연주 행위로 정제한 수행은 하나의 스펙터클한 장관을 이룬다. 무대의 깊이는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이미지의 적극적인 역량으로 드러난다면, 이후 이러한 군무의 형식은 주체의 시간적 연장, 주체의 분기 모두를 이루는 대신, 다분히 형식적인 교체의 연속으로 느껴지는 가운데, 후면의 일정한 무대 구역 내에서의 닫힌 움직임들로 체험된다. 

    역동적이고 공간의 가동 범위가 넓고 빠른 몸짓들이 죽음이 가져온 감정의 소용돌이 차원에서 빚어진다면, 하강을 향한 몸짓의 방향성은 죽음이라는 무거운/다른 공기를 체현한다. 움직임 자체의 범주가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실상 살아 있을 당시의 행복과 슬픔이 기호적 대립을 보이기보다는 표정과 속도 차원에서의 약간의 변이 정도로 느껴지는데, 곧 안무의 정형성이 시간이 지날수록 견고해지는 것이다. 

    나아가 군무의 경우, 남성과 여성의 장면으로 극명하게 구분되는데, 남성과 여성은 일종의 사랑의 상징적인 기호를 구성할 때 긴밀한 관계의 합으로 상정되며, 단순한 재현의 범주에 그치는 바 크다. 전자의 경우, 실제 남성의 역량과 여성의 역량과 신체 크기의 차이로 인한 군무의 일정한 틀과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한 차원에서 전제되는 것이라면, 오히려 둘의 수행적 차이를 군무의 단조로움을 상쇄하는 차원에서, 또한 산 자의 정념을 개체적인 차이로 수렴시키는 차원에서 곧 각각 움직임 그 자체의 차원과 드라마적 서사의 차원에서 충분히 둘의 섞임을 운용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성별 대립적 구도와 대비적 틀 아래, 전통은 하나의 단단한 틀, 성별의 명확한 구분이라는 클리셰를 전유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젠더에 대한 구시대적인 관념이 고스란히 적용된다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있다. 군무가 가진 단조로움과 진부함이 성별의 차이에 입각해 분화되고 다시 한번 강화되는 것이다. 

    2장의 회다지는 주체의 드라마를 분절하며 1장과의 연속성을 획득해 낸다. 관을 묻고 횟가루를 뿌리고 발로 다져 동물이 시신을 훼손하지 못하게 하는 과정은, 처음 연주 행위와 같이 일정한 형식의 스펙터클을 구성한다. 동시에 부유하던 서사들의 연결은 (무대가 안정화된다는 차원에서만) 자리를 잡는다. 3장에서 망자의 마지막 모습은 위패를 휘두르며 앞으로 정렬한 산 자의 의식 행위와 방향적으로 대립하며 정합된다. 

    〈사자의 서〉는 다채로운 움직임과 이미지의 차이에 의거해 망자에 대한, 그리고 망자의 세계를 분화하며 그려내고 있는데, 실제 이미지적 착상에서 시작한 작업이기도 하고, 애도와 상실의 차원이 정치적이고 경험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가운데, 어떻게 현실과의 접속 루트를 만들지에 대한 고민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안무의 철학이 심미적인 연출과 구성의 차원에 종속되었다고 보인다. 
    나아가 유사-신화의 단계에서 새로운 죽음의 세계에 대한 체험과 관점 역시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물론, 일종의 동참의 여지를 부르는 1장의 열린 스펙터클이 어떻게든 무대 너머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기꺼이 채택하지 않은 바도 있겠지만, 이는 하나의 방편일 뿐이고, 착상의 이미지가 단편적이고 세계관의 심화로 이어지지 않은 데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하겠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명: 사자의 서
    일시: 2024.4.25.(목) ~ 4.27.(토) 목·금 오후 7시 30분, 토 오후 3시 (3회)
    장소: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주요 제작진〉
    예술감독∙안무: 김종덕
    조안무: 정소연, 이재화
    작곡·음악감독: 김재덕, 황진아
    무대 디자인: 이태섭
    조명 디자인: 장석영
    영상 디자인: 황정남
    의상 디자인: 노현주

    출연_망자 役: 조용진, 최호종 외 국립무용단
    관람 연령: 8세 이상 관람
    소요시간: 80분(중간휴식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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