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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본 작가, 극단Y: 〈로비: 기어코 그 손을 잡고〉: 공백을 향하는 응시의 손길REVIEW/Theater 2025. 7. 15. 17:41
이예본 작가, 극단Y: 〈로비: 기어코 그 손을 잡고〉 © 이미지작업장 박태양 (이하 상동). 〈로비: 기어코 그 손을 잡고〉(이하 〈로비〉)는 청소노동자의 노동 행위와 산재 사고로 죽음을 맞은 이의 유가족의 팻말 시위가 겹쳐지는 하나의 지대를 로비로 제시한다. 이는 중앙의 직육면체의 프레임 안에 숫자를 표시하는 상단의 LED 문자가 엘리베이터 공간으로 확장되는 것과 함께, 고층 건물의 수평적, 수직적 차원에서의 직선의 선분이 각각 펼쳐지고 확산되는 것으로 상상된다. 또한 로비는 일종의 인트로에 해당하는, 〈로비〉의 등장인물들이 무더기로 지나가는 짧은 장면으로써 무정형의 사람들이, 보통의 바쁜 현대인이 냉랭하게 또는 생기 없이 지나가는 특색 없는 통로를 나타내며, 무엇보다 이를 생계의 차원으로 전유하는 복희(한혜진 배우)의 존재가 이곳을 가장 먼저 그의 삶의 일부로서 주요하게 점유한다.
이 수평의 선에, 새로운 점유자, 희수(원채리 배우)의 시위가 지속되고, 거기에 어느 날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 전화를 받은 복희가 그 곁에서 자신의 시위로 동참하고, 희수의 자신의 죽은 언니 희서(배우 배선희)가 그 중간에 자리하며, 그 셋의 뒤에 사선으로 복희와 오래 전 가족을 이뤄 살아가던 강인(배우 김섬)의 복희에 대한 응시가 더해지면서 〈로비〉의 표면적 차원의 투쟁은 연대의 관계 위에 애도로, 그리고 하나의 장면이자 결론으로 완성된다. 또는 애도는 마침내 투쟁 위에서 피어난다. 그리하여 ‘우리가 기대할 것보다 기억할 것이 너무 많아 회상하게 된다‘라는 복희의 말은 세계의 변화 불가능성의 부정성과 내재적 차원의 애도 불가능성 사이에 자리하는 그 모순적인 조응의 관계를, 곧 〈로비〉의 위상학적 토대를 선취한다.
애도도, 투쟁도 복희보다 더 강렬한 건 희수인데, 이는 그 둘의 대상이 물론 직접적으로 상응하며 같기 때문이다. 애도의 대상이 탈락되거나 소거되지 않고 그들의 일부로서 삶을 구성할 때 투쟁은 희수에게서 자신 안의 희서라는 충만함을, 충만함의 존재로서 희서의 자리를 나누고자 하는, 희서라는 긍정을 희서에의 긍정과 같이 두는 행위로 변모되는데, 여기서 희서가 결코 희수의 삶에서는 판타지로 개입되는 것이 아닌 것은, 또 오로지 희서 스스로만 자신의 현실 위의 존재를 부자연스러운 것인 양 인지하는 것 같은 건, 희수의 애도 불가능성의 실재성을 드러낸다. 곧 희서의 부재를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희서가 아닌, 희서의 죽음 자체가 하나의 판타지이다.반면, 복희에 있어 강인이라는 존재는 삶의 기억이자 잔상 같은 것으로 희미하게 표현되는데, 이와 같은 부분은 복희의 노동자로서 삶이 그 노동의 세계 안에서 확장되기보다 차라리 개인의 내재적 차원의 모호함을 반영하는 차원에서 그 투쟁이 진행된다는 것에 상응한다. 그리고 복희에 있어서 희서가 처음부터 인지되지만 그 역은 아니라는 점, 곧 희서가 복희의 딸의 과외 선생이자 희서와 희수는 쌍둥이이기에 복희가 희수를 인지하는 단서가 되지만, 이는 직접적인 관계 속으로 연장되는 대신에, 단지 그 희미한 연결 자체의 속성을 강조할 뿐이다. 그리고 그 희미한 연결은 친숙함으로 분별되며 적대적이지 않은 주변의 대상에 대한 수용의 근거로서, 그리하여 작은 곁을 내어 주는 행위로 이행될 수 있는 작은 단서로 자리 잡는다.
복희와 희수가 쉬이 연결되는 부분의 우연한 토대가 만들어 내는 다른 확장성의 차원은, 곧 노동자 스스로의 투쟁과 노동과 결부된 애도의 산물로서 투쟁의 느슨한 그렇지만 오직 그 둘만의 연대가 성립하는 부분에서, 그 둘 모두 각각의 적대를 상정해 내기보다 그 안으로의 다른 구심점을 만들어 내는 데 초점을 둔 것으로 보이며―그러니까 정치성의 차원을 내재적인 차원에서 구성하는 나아가 내재적인 차원에서만 정치적인 것이 구성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이며―, 또는 그 구심점이 희미하게 연결되고 있음에 더 주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는 노동 자체보다는 노동과 결부된 삶 전반의 영역에 대해 〈로비〉가 발화함을 의미한다.
〈로비〉는 희서의 죽음을 소문으로만 주워 담고, 구체적으로 그 사고를 재현하지는 않는다. 또는 그 소문으로써만 죽음을 재현하다. 한 노동자가 죽었다는 사실은 꽃집을 운영하는 엄마 정애(김효진 배우)에게 자신의 회사에서 벌어진 반죽기에 사람이 빨려 들어간 사고, 사실은 희서의 죽음의 장면이 그렇게 빵의 반죽이 아닌 인간이 그곳에 위치하게 된 것에 대한 믿을 수 없음의 감각을 환기시키는 차원에서 인선에 의해 조심스럽게 옮겨지는 것이다. 이내 배가 고프다던 인선에게 미리 사두었던 빵을 권하자 어두워진 안색으로 우물쭈물 그것을 거부하는 인선의 모습과 그로부터 그 장면을 환기하며 성찰하는 정애의 모습을 통해 작은 실재의 윤리적 조각들이 애도의 고리로 연결된다.〈로비〉는 곧 투쟁을 통한 사회 정의의 구현 이전에, 그 투쟁에 내몰린 자들의 자들과의 연대를 꿈꾸며, 곧 그들(의 상상적 대리물)을 구성하며 그들에 대한 (재현이 아닌) 애도와 연대의 가능성의 틈을 엿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는 그들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사후적으로 발견되지만, 무엇보다 소문이 전달되는 경로에서처럼 우리는 간접적으로 미디어를 통해 듣고 그것을 삶의 툭 튀어나오는 순간으로 수용함에도 여전히 그것과 떨어진 채 그것을 지각하는데, 〈로비〉는 그 직접적 연관성의 차원이 아닌 우리의 곁에 부상하는 하나의 진실로 우리가 수용할 수 있음을 유대에 대한 희미한 희망의 가치로 위치시키고자 하며, 거기에 내기를 건다.
그러니까 사후적 발견―복희의 딸에 대한 과외 선생으로서 희수의 언니가 희서라는 사실―은 이들의 대화에서 표현된 감각과 언어의 세계를 따로 더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애초에 의미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오히려 직접적 인연의 설정은 앞서 복희가 희서를 희수로부터 알아차리는 부분이지만, 이 역시도 희서와 복희의 이후의 관계를 재조정하지는 않는다). 차라리 이러한 연결보다는 연결로서 앎은, 꽃을 사러 오는 희수의 언니가 한 노동자의 그 죽음의 몫을 견디고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앎에 상응하며―마찬가지로 희서와 정애의 관계가 직접성을 띠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정애가 희수에게 선사한 꽃다발의 가치, 마찬가지로 복희가 희수에게 건네는 사탕 하나의 가치를 통해 연대의 차원으로 피어나고 녹아든다.
희서의 경우는 직접적으로 현실에서의 실제 유사한 일련의 사고들, 국내 제일의 제빵업계 기업―SPC―의 빵 공장에서 벌어진 일에 대응한다. 그러니까 연극의 바깥은 다른 현실이 없다, 곧 연극은 현실에 접면한다―따라서 그 현실에 직접 다가가지 않고 어느 정도 우회한다. 세 명의 적대 없는 응시의 선분으로 다시 돌아온다면, 그 투쟁은 적을, 부조리함을, 악을 겨누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자신의 내부에 있는 어떤 중핵으로 움푹 들어간다.
내재성의 평면은 희수의 경우에서처럼 그의 삶 온통 그와 함께 하고 있는, 전면에 드러나 있는 희서와의 여전한 다른 분기의 동거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결코 같은 하나의 평면에 있을 수 없는 복희와 강인의 어긋나는 시차와 간극의 평면에서처럼 그것은 어렴풋이 짐작되는 것으로만 희미하게 드러나기도 한다―그래서 강인의 마지막 응시는 복희의 알 수 없는 응시를 애도의 차원으로 갈음한다(는 점에서 미묘한 장면이다).
결과적으로, 〈로비〉는 무언가 현실에 대한 첨예한 언급과 비평의 차원을 띠기보다 몇 가지 공백을 메우는 일련의 사회적인 것 같은 무엇, 내재적인 것 같은 어떤 것을 잠재적인 차원에서 드러내는 것에 머무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는 〈로비〉가 재현에 대해 갖는 태도 때문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로비〉는 몇 가지 재현의 대상을 피해 가는데, 희서의 죽음, 악마적 자본주의의 기업의 얼굴, 강인과 복희의 삶, 그 외에도 인선의 연애(하지 않음), 정애의 가정사 등이 있다. 또한 재현으로서 고착됨 역시 피해 가는데, 청소부로서 복희의 모습, 투쟁을 하는 희서, 복희의 모습이 그러하다.가령 복희의 노동은 사회의 특정 구성원으로서보다 오히려 일반 가정주부의 모습에 가까워 보이고, 그건 평범하고도 일상적인 차원에서 분리된 대상으로서 그에 대한 시선을 갖지 않게 만든다. 곧 우리가 아는 투쟁하는 청소노동부의 모습은 이미 하층 노동자 신분의 그것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우리와 가까운 존재로 상상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만든다. 복희는 그 거칠거나 상투적이거나 투박하거나 한 것들의 바깥에 있다. 나아가 복희는 어떤 존재의 특성으로 구체화되거나 정의되기 어려우며, 차라리 애도가 일상화된 하나의 증상에 가까워 보인다.
아마도 가장 애매한 위치를 갖는 인물은 인선일 텐데, 그는 〈로비〉를 매개하고 복희와 희서의 바깥에서, 그리고 그들을 주로 그 바깥에서 듣는 정애를 매개한다. 인턴으로서 그는 사회에 대한 예속감과 부담감을 유일하게 명확하게 체현하는 인물로, 이는 엘리베이터 안의 좁은 공간 안에서 상사의 과한 충고를 묵묵하게 듣는 것으로 가시화된다. 반면, 그의 분열과 갈등이 전면화되지는 않는 건 현실적인 이유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를 관찰자로서의 위상으로 처리하기 위함이다.
그는 애도할 대상도 투쟁할 대상도 가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쩌면 평범한 우리와 가장 가까운 모습을 하는데, 이는 바로 그 특별한 위치로서 청소노동자, 산재로 인해 가족을 잃은 존재를 다루는, 그리고 그 존재 자체보다 그 존재들의 희미한 연결 가능성을 부여하는 〈로비〉의 자기 정립적 위치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곧 그 당사자성에 대한 재현 대신에, 그 당사자성을 포함하는 사회 내의 일반적이고 평범한 존재를 그에 맞세우는, 그리하여 일종의 사라지는 매개자가 되며 그들을 우리 곁으로 불러오는 역할로서 〈로비〉를 인선이 곧 충실하게 대리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곧 그들의 응시에 대한 비밀 역시 풀리는 듯 보인다. 그들이 말함으로써 그들이 재현되기보다 말하는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응시를 그들이 사실 하고 있었던 것이라는 것. 곧 우리의 응시가 결절되는 지점을 마지막에 만듦으로써 우리가 할 수 있는 불가능성의 연대를 시도해 보고자 했다는 것, 가령 사탕과 같이 소소한 것들을 투여함으로써 내재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과 같이. 그렇게 〈로비〉는 공백 안에 존재들을 나란하게 둠을 통해서 그 공백을 바라보게 한다, 존재가 지닌 공백을, 공백으로서 존재를, 우리가 지닌 공백을.[공연 개요]
공연 일시: 2025.06.20 ~ 2025.06.29, 화~금요일 20:00 / 토~일요일 15:00
공연 장소: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단체명: 극단Y
연출: 강윤지
작가: 이예본
출연: 김섬, 김효진, 배선희, 원채리, 장샘이, 한혜진
관람등급: 만 7세(초등학생) 이상
관람 시간: 90분
접근성 제공: 개방형 한글자막해설(전 회차), 수어통역(6월 20일(금)-6월 22일(일)까지 총 3회차), 폐쇄형 음성해설(6월 24일(화)-6월 29일(일)까지 총 6회차), 무대모형 터치투어(전회차 공연 전, 극장 로비 접근성 테이블), 안내견 동반, 안내보행(동행, 혜화역 2번 출구부터 극장까지), 휠체어석 2석
기획: 김연경
무대감독: 이효진
무대디자인: 조경훈
조명디자인: 홍유진
음향디자인: 목소
의상·소품디자인: 김미나
조명오퍼레이터: 김소영
음향오퍼레이터: 류혜영
그래픽·사진: 이미지 작업장
하우스매니저: 황수희ARKO
티켓마스터: 이주담ARKO 강서연ARKO
고객지원: 편영란ARKO
영상기록: 아르코예술기록원
자막해설 디자인: 임민정
자막해설 오퍼레이터: 이수림
수어통역 대본번역: 이래봄, 명혜진
음성해설 대본작가: 한국콘텐츠접근성연구센터 서수연
음성해설 낭독: 박수진
음성소개 녹음: 사운드매니아스튜디오
점자프로그램 제작: 도서출판 점자
접근성 장비: 엠투비주얼자막해설(자막해설), 위콤미디어음성해설(음성해설)
실시간 문자통역: 평화속기사무소 장정수
접근성 영상 R2D2미디어 황호규
운영지원 허선영ARKO, 김태임ARKO
접근성 매니저: 플랫폼안녕 이청
접근성 프로듀서: 이유진ARKO
주최·주관: 이예본
제작: 극단Y
접근성 공연제작: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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