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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작, 박해성 연출, 〈러브미투마로우〉: 고정적인 것으로부터 유동적인 것을 추출해 내기REVIEW/Theater 2025. 7. 15. 18:05
무대 위에 놓인 비석 구조물들은 복잡한 지형지물의 한 전경으로 묶이는 대신, 편재된 비동시성의 동시성 아래 각각의 자리로 할당된다. 이 하나의 터전 아래 상응되는 유사성의 한 계열들―구조물들―은 하나의 매끈한 장면으로 처리되기에는 과포화된 상태로서 무대를 가로막고 제한하고 있으며, 인물들은 그 일부를 일시적으로 점유하고 거주하며, 그 구조물들로부터 발화하며 생성된다(는 점에서 그것들은 물론 제약 조건이 아니며 결과적으로 창발의 노드들에 가깝다).
(시간적) 분할들과 (공간적) 배치들의 연극, 곧 내용적 단위의 분할들의 공간적 접착으로서 배치들, 그리고 반복으로 거듭나고 회수되는, 그보다 회수되며 거듭나는 이 연극은, 부분들, 단위들이 서로와 접합되어 놓이며, 그 부분들은 모두 독립적이다. 공간적으로 연속되지만, 시간적으로는 연결되어 있지 않으며, 따라서 시간은 탈구되어 있다.
그 결과, 〈러브미투마로우〉는 적어도 표층의 차원에서 두 가지 뚜렷한 특징을 가진다. 그리고 그것들은 각각 전체에 대한 환상과 연결에 대한 믿음이라는 공허함을 준다. 먼저, 두 번째 규칙, 비동시성의 동시성―공간적 접합―을 따라, A′, B′, C′… A″, B″, C″…로 전개되는 듯 극에서 이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인상은, 마찬가지로 그 전에 선행하는 첫 번째 규칙, 부분적 추출, A′, A″…, B′, B″…, C′, C″…의 각 부분들이 그 각각의 전체의 일부라는 것, 따라서 나머지 조각들을 더하면 사실 완성될 것이라는 인상과 같이 공허한 것이다.
중요한 건 이 공간과 시간의 쓰임을 만드는 방식 그 자체이다. 곧 고정된 것과 유동적인 것의 접점을 만드는 것, 고정된 것으로부터 유동적인 것을 추출하는 과정은 그 고정된 것이 하나의 구멍이 되는 것과도 같다―하나의 구멍임을 알리는 것이기도 하다. 구멍들은 분화하고 말하고 서로를 나누면서 연결한다. 구멍들은 그러면서도 거기에 있으며 또 거기에 있었고 또 여기에 있게 된다. 〈러브미투마로우〉는 그 고정-유동으로서 존재를 만들어 내는 어떤 기이한 힘에 대한 연극이다. 그리하여 거시적으로는 또는 표면적으로는 인물-구조물의 동시적이고 전체적인 곧 시공간의 아상블라주이며, 미시적으로는 또는 실제로는 다공성의 물질들을 비추고 세공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는 과거의 연극이거나 판타지의 기호들을 제시하는 건 아닌데, 이는 존재함, 존재했었음을 반영하기보다 뚜렷하게 존재를 발생시키는 연극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제3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과거 혹은 판타지의 차원, 현재를 불확실하게 만드는 장치가 구조적으로 수행되고 있는데, 〈러브미투마로우〉를 인터미션을 전후로 두 번의 반복, 편의상 이를 1막과 2막으로 나눈다면, 그리고 그것이 조응하지만 연속되는 건 아니므로 A와 B로 구분한다면, 곧 A에서 B로의 변주적 이행은 B를 A의 반복으로 인지하게 만들지만, 어쩌면 여기서 B의 A에 대한 차이는 A의 정전으로서 위치를 수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구조주의적 틀 자체에 대한 인식을 구성하는 것으로, 나아가 또 다른 계열의 창발적 경로를 상상하는 것으로 연장된다.먼저, 기억 회로 안에서 선행되는 A는 B의 과거이며, A는 B를 비춰보는 거울로서 시종일관 기능하지만, 반복으로서 A와 B가 아닌, A의 하락한 가치로서 B의 위치, 또는 B에 대한 A의 정보적 기능이라는 부속되는 위치는 엄밀히 A와 B가 독립적인 발산임을 은폐하는 제도적 규칙, 곧 인터미션이라는 봉합 기제를 이전처럼 수용할 수 있을 때(만 그렇겠지만, 물론 사실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A와 B의 비관계적 관계를, 또는 비논리적 논리를 A의 부속으로서 B에 대한 증명으로 가져가지 않더라도, A라는 토대의 무한한 변주 가능성으로서 그리고 그 무한함 속의 변천을 겪을 이 도시의 구조 자체의 영속성 자체는 분명 주창하고 있지 않은가. 이 복잡한 세공이 구조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 대신에 단지 구조에 대한 것이라면, 서사의 점증적 흐름이 완성하는 구조가 아니라 단지 구조적 물리 공간에 욲여넣기 위한, 그래서 반대로 그 물리 공간의 구조를 시차와 장소로 엮어서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면, 일종의 맥거핀으로서 서사는 구조에의 신화를 버리고 자유로워진다. 그리고 A와 B, 그리고 너머에 대한 알레고리를 복잡하게 셈하지 않아도 된다.
다시 그럼에도 A와 B의 구조적 동형성으로의 환원을 피하는 가운데, 근본적으로 또는 마지막으로 피해야 할 지점이자 아마도 도달해야 할 지점은 A와 B라는 전체에 대한 환상인데, A/B를 이루는 부분들이 A/B를 넘어 온전한 하나의 전체 안에 부속될 수 있다는 전제가 그것이다―그러니까 부분들은 아직은 아니지만, 다시 혹은 언젠가 전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완전성이 하나의 구조적 형식 안에서‘만‘ 해결되어야 한다는 진리 앞에서 오히려 전체의 환상이 소거된다, 또는 무력화된다, 곧 A가 B로써 비로소 승인되는 절차에 따라서. A에서 B로의 미세한 변주적 조각은 그 전체가 단지 무한한 시간일 뿐이라는 점을 반증한다.따라서 허무하지만 실재적인, 다공성의 발화라는 표층의 특성에 다시 주목해 본다면, 〈러브미투마로우〉는 이 공간의 전체를 다다를 수 없는 심연의 공간으로 상정하며, 이를 변화하는 한 쌍의 단속적 순환으로 환유하는데, 처음 등장하는 선생님을 처음 만나러 가는 이와 안내인의 쌍이 그것이다. 안내인은 계속 바뀌면서 선생님과의 만남은 계속 유예되는데, 곧 지루해지는데, 따라서 첫 대화는 의미심장한 기호의 성질을 띤다. 도시 외곽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 곧 있을 수 없는 것 같은 곳이 있다는 것. 그리고 동시에 도시의 내부와 도시 바깥의 이분법적 경계가 그어진다.
아마도 카프카의 『성』에서의 의사-신학적 알레고리를 차용하여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곳이라는 결말을 향해 가는 것처럼 보이는 이 단락은, 잠시 화장실을 가며 자리를 비운 선생님이 되돌아오며 마지막으로 바뀐 안내인이 처음이라 미숙해서 발생한 간발의 엇갈림으로 종결되어 유머로써 또는 유머 자체로 재승화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여기서 선생님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안내인의 연계된 속성 아래, 아예 처음인 안내인의 역할을 맡은 이 역시 처음 본 누군가가 선생님인지를 인지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 선생님의 자리에 있는 이는 자신이 선생님이라고 인증할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이 미끄러짐이 선생님과의 만남인 것인지가 불확실해지는 결과로 남는데, 따라서 이 유머는 유예된 일시적 봉합에 가까운 것이다.거추장스러운 무대 세트, 그리고 거기에 구겨 넣는 신체들의 거북함―몸이 놓이는 토대에 대한 의식이 그 몸을 먼저 지배하는―은 이 연극이 ’도시에 대한 연극’이라고 하는 작가의 말에서처럼, 이 우연들의 보다 더 작은 조각들이 물리적으로 점유한 좁은 영토들의 아상블라주로서 도시 자체를 언급하고 (그 장소 바깥의 서사가 아닌) 그 도시라는 거대하고도 좁은 세부로 기꺼이 몰수되는 걸 선택하는 것은 아닐까.
〈러브미투마로우〉는 서사를 완성하기보다 서사를 완수하기 위해 존재한다―그러니 그 구조에의 종속되는 서사에 대한 분석을 유예할 수 있다. 서사에의 발화보다 서사를 위한 그 위치에 자리함을 완성하기 위해서 발화한다. 그 서사 완수의 조건을 만드는 게 연극이다―결과적으로 ‘고정된 것으로부터 유동적인 것을 이끌어낸다.‘. 이 조건을 고수하는 차원에서, 역할은 비진정성을 견지하고, 그것을 수행하는 연기의 특정성을 가시화한다―어쩌면 장면을 완수해야 하는 미션을 윤리로 선취하는 〈서대문구민들이 바라는 장면〉과 이 연극은 유사한 계열 아래 있다.
[작품 개요]
2025.06.06.-06.15.
미아리고개예술극장
작: 김상훈
연출: 박해성
제작: 상상만발극장2
출연진: 권정훈, 김슬기, 김중엽, 김현, 베튤 Zunbul Betul, 신사랑, 전혜인, 편다솜
무대: 신승렬
조명: 김형연
사운드: 카입
의상: 홍문기
분장: 이지연
조연출: 조서연
무대감독: 이라임
제작진
조명프로그래머: 김주슬기
조명팀: 김대현, 김보영, 정태진
무대 제작: A.PIC(대표: 전종혁)
음향감독: 이현석
분장 어시스턴트: 김지민
조명 오퍼레이터: 이예원
음향 오퍼레이터: 김성윤
영상 기록: 삼인칭시점(김태오, 김태환, 이창식)
사진기록: 옥상훈
홍보물 디자인: 박먼지
제작PD: 이시은
기획팀: 이지아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주체지원사업
제작: 상상만발극장2원회 창작주체지원사업
제작 상상만발극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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