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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놀이클럽,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 퀴어라는 세계/설렘의 입구 혹은 시작
    REVIEW/Theater 2025. 7. 30. 23:27


    공놀이클럽의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이하 〈말린 고추〉)은 소시민 가족의 한 전형으로부터 퀴어와 페미니즘의 의제를 길어 올리고 맞세운다. 이는 각각 서울대 사범대학을 휴학 중인 규빈과 그의 동생 재수생 은빈에 해당하며, 이 둘은 자신들의 독립적인 욕망 실현을 위해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의 질서 아래 자신들만의 비밀을 은밀한 것으로 둔다. 그 질서를 지키거나 승인하기보다 그 아래 또 다른 삶의 지층을 전개하는 것이다. 은빈의 시점에서 가족의 모습이 그려지고,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지닌 오빠 규빈의 비밀이 은빈의 삶에 들어왔을 때 그것은 은빈의 은밀한 기호로 연장된다. 오빠는 그 전과 같이 남성으로 대별되어야 하고, 자신의 독립을 이루기 위해 유예되어야 하는 사실이 된다. 

    공놀이클럽,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공놀이클럽_이지응 (이하 상동).


    규빈이  할머니의 가부장적 의식과 어머니의 정상성의 성 관념에 맞춰 “복숭아향 립스틱”을 바르며 여성으로 식별되어 가는 자신만의 은밀한 취미를 가족의 질서와 철저히 분리함으로써 충분히 남성으로 오인된다는 사실은, 기이하게도 그가 가족에게서 남자로 갖는 유리함을 획득하는 결과를 낳고, 이는 여성 은빈에게는 억압과 부정의의 기제로 은빈의 의식 저변의 운동성의 한 축을 형성한다. 가족 사회는 두 다른, 퀴어와 페미니즘의 의제를 그렇게 하나의 질서로 묶어 내며 이 둘을 각각 은폐하게끔 만들거나 억누른다. 

    키는 은빈에게 주어지고, 이 둘은 가족이라는 작은 사회로부터 독립된 자아로 주창되며  사랑의 통합을 이룬다. 이는 세일러문 노래 가사에 정박되는데, “솔직하지 못한 내가” 지금의 질서를 벗어난 꿈의 실현으로서 “마법의 세계”에 들어감으로써 ‘필연적인’ 우리의 만남을 “사랑”으로 성취한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다만 〈말린 고추〉는 그 사랑이 역순서로 구성되는데, “우연”이 아닌 우리의 관계는 사랑에 대한 자각의 결정적 효과이며, 사랑의 기호로 상대방이 정립되는 건 서로의 비밀을 인지하고 나서이다.
    여기서 독립의 가치는 사랑과 연계되는데, 바로 독립이 기존 이데올로기와 차이의 질서를 무력화하는 가족의 질서에 대한 저항이나 전복으로부터 직접 발생―그것은 오히려 부차적이고 사후적으로 찾아온다.―하기보다 서로에 대한 인식과 인정이라는 절차를 통한 승인으로써 차이를 지닌 특별한 개인으로 정체화됨의 과정이 곧 독립된 자아를 확충하는 주요한 방식이 되며, 나아가 사랑의 정의를 생산하게 되는 것이다. 


    익숙함은 소홀함과 무감각함을 초래한다. 나아가 오인과 은폐를 가능하게 한다. 예컨대, 거대한 가족이라는 관념이 뒤덮고 있다면. 규빈과 은빈의 서로를 향한 교차하는 마음은, 규빈의 자신의 비밀을 알리지 못했다는 점과 은빈의 상대방의 입장을 잘 알지 못했다는 점으로 인해 서로에 대한 반성으로 귀착된다. 이는 상대방에 대한 연민과 상대방에 대한 부족한 관심에 대한 반성의 정동을 일으킨다. 그럼에도 이 둘의 마음은 시차에 우선해 시행착오를 먼저 겪어야 하는데, 곧 가족이라는 관념 너머의 존재에 대한 규정과 인정 사이에서, 가족으로서의 정상적인 사랑의 규정을 재검토하고 전복해야 마음은 표현의 범주에 귀속될 수 있는 것이다. 


    그 둘의 마음은 가족 사회라는 망령으로부터 미끄러져 나오는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미약한 보물과도 같다. 인식론적 범주에의 내파, 자신들의 굳건한 경계 의식을 확장하고 넘어서야만 그 둘을 그 각각의 존재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여분의 가족이다. 그렇게 은빈이 좇는, 바라보는 규빈의 또 다른 삶의 진실과 규빈이 뒤늦게 인지한 은빈만의 자신에 대한 진실은 규빈의 가족에 대한 이탈의 선언에 이르러서야 가족의 경계 너머에서 존재의 대면으로 결정되게 된다. 가족이라는 사회를 가시화하고 그에 벗어나며, 가족의 일원이 아닌, 새로운 존재의 탄생 차원에서의 만남, 그리고 가족의 탈가족화와 재규정(재가족화)이 이뤄지며 극은 종착지에 이른다.


    규빈의 자신의 성이 아닌 다른 성으로 향하는 설레는 마음은 타자로서 규정될 수밖에 없는 사회의 너머에서 은밀하게 잠재했다면, 그 은밀한 속살에 놀라고 수용하고 보호하며 존중하고 지켜주기 위한 차원에서 은빈의 삶에는 다른 방향성이 구성된다. 그것은 또 다른 설레는, 두근거리는 마음이며 다른 특별한 존재에 대한 마음이다. 이 두 마음이 곧 세일러문 노래에서 하나의 화자의 두 다른 방향의 마음으로 분기된다. 규빈의 마음은 그 타자로서의 모습이 자연스러운, 가족 사회가 아닌 또 다른 사회로의 이탈을 위한 가시화(아웃팅) 전략을 통해, 현실의 경계에 선다. 그리고 그 경계에서 그를 마주하는 게 바로 은빈이다. 막다른 길과 새로운 시작의 갈림길에서 〈말린 고추〉는 말을 멈춘다. 현실의 판타지적 대안보다는 현실에 대한 판타지적인 가로지름을 통해 현실이 아닌, 현실에 대한 다른 선택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 여전한/여전할 현실을 가시화하는 것이다. 


    [공연 개요]
    공연명: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
    일시: 2024년 8월 2일(금)~8월 11일(일) 화~금 20:00/토-일 16:00 (총9회)
    장소: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출연진: 김솔지, 남재국, 류세일, 박은경

    스태프
    작: 서동민
    연출: 강훈구
    조연출: 전준구
    무대감독: 김동영
    조명 디자인: 이경은
    의상 디자인: 온달
    음향감독: 남영모
    드라마투르그: 김지혜
    그래픽 디자인: 장한별
    사진: 이지응
    기획: 강소령

    제작: 공놀이클럽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 연령: 만 13세 (중학생 이상)
    소요 시간: 110분(인터미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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