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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환장지경> : 비존재의 삶, ‘소외로부터 소외를 택한 양녕대군’
    REVIEW/Theater 2011. 9. 13. 20:36


    역사는 재구성되는 것, 현재의 유의미한 지점을 얻기 위해서는 존재들의 삶을 재현이 아닌 방식이 필요하고, 그 삶을 현현시키기 위해서는 고증과 복원의 개념이 아닌 현재 시각에서의 재해석과 창조가 필요할 것이다.

    ‘환장지경’에서 보여주는 삶은 시공간이 거세된, 허무하고도 지루한 삶의 역설에 가깝다. 나약하고 여성/모성에게 의존적인 모습의, 삶의 미래를 향하지 않는, 현재에 파묻혀 있고 싶어 하는 양녕대군의 모습을 부각시키고 있고, 그의 옆에 그가 애원하다시피 매달려 차지한 여성, 표독스럽게도 보이고 그 속에서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모습의 양녕대군이 납치한 前중추부사 곽선 대감의 첩 어리, 그리고 양녕대군의 정실부인(세자빈)의 소외/귀양의 삶, 또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 하는 그녀의 버림받은 삶, 그의 부하로서 그를 연모하는 남자, 구종수 네 인물의 구도가 (시스템 바깥 이들만의 현실에서) 존재하는 가운데 펼쳐진다.

    말 그대로 수도/왕국을 벗어나 비존재(호명되지 않는 주체, 인식되지 않는 주체)의 삶을 사는, 언제 올지 모를 미래를 단지 기다리는, 잊힌 존재, 아닌 스스로 잊힌 존재라는 소외감과 함께 막막하게 잊음의, 권력 주체의 마음을 향하고 동시에 두려워하는 존재로 사는, 이러한 귀양에서 또 양녕대군이 갖고 있던 지위는 어떤 서사의 진행을 가져가거나 기승전결의 도약적 발판의 계기가 있는 것이 아닌, 단편적인 현재들만의 나열식 제시를 통해 인물 간 서로에 관한 마음의 방향과 심리들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 연극 <환장지경> 연습현장 (세자빈役 신서진)

    사실상 특별히 미래의 기약도 없고, 삶의 요동침도 없는 하루하루에 무기력한 삶은 죽음과 연결되어 있고, 이 네 명의 인물 관계도는 양녕대군의 나약한 삶의 해석을 비롯하여 그에 침잠되는 게 아닌 어리와 세자빈의 내면을 비추는 신들을 통해 비극적 삶의 운명을 구체화한다.

    곧 나약한 양녕대군의 모습은 설득력을 얻기보다 비현실적인 초상을 띠며 정상적인 행복한 삶의 추락 전의 삶을 동경하며 양녕대군 주변의 인물은 양녕대군으로 인해 망가져 버린 삶의 현실에 차갑게 위치한다. 현실을 직시하더라도 현실은 제대로 갖춰질 수 없다. 현실을 보지 않고 현재에 숨는 여성의 품 안에 숨는 양녕대군의 비극은 그래서 이 둘의 특히 어리의 현실 인식에 기초하여 완성된다.

    단편들로 갈려 제시가 아닌 재현에 가까운 장들 안에 인물들은 그렇게 중심을 획득하기보다 현재의 조류에 휩쓸려 가는, 오지 않을 미래를 마주하고, 현재를 하루하루 지나가게 한다.

    음악 없는 이런 무미건조한 리듬은 이들의 삶이 파괴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 연극 <환장지경> 연습현장 (왼쪽부터 양녕대군役 김홍근, 어리 役 채윤희)

    이런 장면의 기시감 어린 반복의 삶, 곧 파괴되고 있음의 내면은 커다란 구멍으로, 어리의 울부짖음으로 자연스레 옮겨가며 어리가 죽음을 택함으로써 이 비극에 대한 현실 인식을 통해 삶의 자리로 돌아온다. 그 비극의 초상으로서 양녕대군 자신을 인지하면서(현실 인식은 어리로써 구현된다. 그렇다면 역설적으로 양녕대군의 시각은 무엇인가).

    파편화된 주체, 분열된 주체로서 양녕대군은 주체의 개념을 만드는 대신 구성되는 존재로 찰나적으로 비춰지고 사라진다. 또한 현실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역설적으로 그 현실에 얽매이지 않는 내재적이고 불안정한 존재로서 (오로지 구성된다) 그의 말은 현실과의 간극을 보여주는(현실로부터 멀어지며 현실과의 평행선상을 달린다) 역사의 소외된 자리의 존재를 보여준다. 소외로부터 소외를 선택한 양녕대군의 무의식적인 말의 단편들의 삶의 조각으로만 언뜻 구성되는 결코 역사에 편입되지 않는 그의 초상(모던 주체를 훌쩍 뛰어넘는).

    [공연 개요]
    공 연 명  | 연극 <환장지경 / Hwanjangjigyeong : People Going Utterly Crazy>
    원    작  | 홍석진
    연    출  | 김정근
    제    작  | 공연예술제작소 비상
    출    연  | 김홍근 정충구 신서진 채윤희 이호진 이철희 김지민 정성우 전지석 김강수 김종현 김양희
    제    작  | 공연예술제작소 비상
    기    획  | 문화기획 원
    후    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나노조명
    공연일시  | 2011년 8월 25일(목) ~ 9월 3일(토)
     평일 오후 8시 | 토요일 오후 3시, 7시 | 일요일 오후 4시 (월 쉼)
    공연장소  |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관람등급  | 만 13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 100분 (인터미션 없음)
    공연예매  | 한국공연예술센터, 인터파크, 옥션, 미소나눔티켓, 사랑티켓
    공연문의  | 문화기획 원 02-6402-6328 

    [사진 제공=공연예술제작소 비상]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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