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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극단 「주인이 오셨다」 리뷰, 검은 빛과 삶의 어둠의 부인否認과 부상浮上
    REVIEW/Theater 2011. 9. 19. 01:45

     
    주인이 오셨다는 존재/역할보다는 사건 그 자체에 초점이 맞춰 있다. 곧 어머니의 등장 자루의 출현 죽이는 자의 소문(으로서 사건, 죽임의 발생)이 모든 것이 하나의 존재로부터 나오는 양태, 그로써 구성되는 세계가 아닌, 오히려 세계는 불투명하고 또 그래서 획정 지을 수 없고 무한한 양태를 띠는 가운데, 존재는 분석할 수 없는 세계/사회의 징후들을 안고 남길 뿐이다.

    이는 정서적인 측면의 고양, 동정심과 안타까움의 카타르시스로는 이 작품이 주는 폭력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이야기는 연결되거나 흐르지 않고 (뜻밖에) 출현한다.

    ‘오는 주인’은 주종 관계의 구조적 선분을 그리기보다도 오히려 버려둔 것들의 귀환, 억압·방기된 것들의 아가리를 펼치는 것을 의미하기에 이는 표면적인 권력 주체가 아닌 오히려 소외된 것이 내 목을 조여 옴을 뜻한다.
    이른바 자루의 칼날에 오직 자루를 품는 그를 낳은 어머니인 순이가 그를 모성의 힘보다 인류 공동체적 운명애의 더 넓은 차원에서 감쌀 뿐이다.

    ▶ 9월 16일 서울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열린 프레스콜 - 사진 기사 보기

    실질적인 그의 아버지는 부재한다. 그의 아버지는 있었지만, 간간이 멍한 눈동자로 현재/현실을 인식하지 못 하는 어리석음의 눈 먼 자로 나오지만, 어떤 아버지로서 자리도 만들지 못 한다. 그는 자루 어머니에게 관계 맺음의 대등함을 허락하지 않았고, 살을 섞는 것도 꺼려했다/부인했다. 이 살의 섞음의 부인, 순이가 입을 맞춰 사랑을 표하고 존재를 수용할 때의 순이의 행위에 단말마적으로 혐오감을 배출하던 그의 행위에서 이 살의 더 검은 빛이 곧 색이 아닌 더러움으로 여겨지는 인종적인 편견과 고정관념과 완전히 떨어뜨려 생각하는 것은 불가할 것이지만, 여기서는 그것을 판단하기 이전에 사람에 대한 편견과 배타/구분 짓기적 시선이 낳은 경계, 분리할 수 없지만 분리하려 하는, 곧 신경증적으로 반응하는, 떼려 해도 떨어지지 않는, 그래서 환유적/신체적 작용의 몸의 징후(일명 페티시즘적 기호)가 우선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검은 빛이 두려운 것은, 아니 분장임을 알지만, 아니 분석하건대 분장일 수밖에 없는 연극의 장치라는 것을 알지만, 이는 후속적인 판단일 뿐이고, 이 검은 떼(색)가 오히려 마치 그녀의 진짜 피부인 듯 결코 그 경계를 분간할 수 없는 무엇이라는 것을 알 때, 그리고 그 색으로 인해 얼굴의 전체적인 선들의 윤곽·두께의 차이로 얼굴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까지를 보건대, 그리고 이 비천하다고도 비루하다가도 미약한 존재라고도 하는 이 여자 그 자체의 현시임을 알 때, 오히려 그 현시의 틈에서 이 검은 빛을 두른 재현의 노력과 의지, 결코 그녀가 아닌 그녀/문경희만이 현실에 있다는 것을 알기에, 아니 그 삶/살의 영역만이 우리에게 들어와 있기에 이 연극은 그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흑인 여자(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언어, 부정의 언사로만 주로 쓰이는)인 그 여자에게서 우리 삶의 경계와 간극의 실재를 느낀다는 것은 결코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결국 이 실재하는 이 여자는 이 연극 안에서, 그렇지만 그 바깥에서 역설적으로 부재하는/보이지 않는 이 여자의 살, 그 닿지만 미치지 못 하는, 미치지 못 하지만 밀착되어 있는, 곧 배우를 역할로 만드는, 실제를 실재로 만드는 이 장치(사실 이 두 번째 쓰는 글에서 붙는 것은 클로즈업된 그녀의 얼굴 곧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사건들의 초래/과잉 곧 ‘누구의 아들이 누구였더라!’(곧 우리와 같은 누군가라는 당연하지만 또 그렇지 않은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는, 매우 낮고도 폭넓은 관계에 있어서의 대화)라는 식의 온전한 이야기 흐름이 성립되지 않는 이 사건들의 집합은 곧 핏줄과 가족의 온전한 구성 자체에 대한 어떠한 이야기도 꺼낼 수 없는 자아들, 법 앞에도 호명될 수 없는 존재(법조차 처리 불가능한 존재, 사실 추방 이외에는 방법이 없는 존재), 갑작스레 나타난 존재인 자루, 마치 순이의 자식인지도 모를 정도로, 그는 어느새 현실에서 부인되고(엄밀히 따돌림보다 더 정확한 단어) 있는 존재로 나타나는 것.

    그리고 그 착하디착한(사실 외부자/타자의 시선에 감지되는 착함이라는 수식어를 통한 지배의 실현 따위의 타자/외부자의 시선의 감지에서 작동되는 것) 모습. 따라서 그가 갑작스런 분노 주체, 섬뜩한 얼굴의 반전(생각하지 못 했던, 예측치 못 한 어떤 하나의 순간이 찾아오는 것), 곧 계약상의, 가족 관계상의 어머니와 딸의 관계가 아니라 진정한 주인이 오신 것을 만드는 것은 그의 행위가 신화적인 폭력, 곧 현실적으로 반복되는 사람에 대한 구분 짓기와 경계의 폭력이 아니라 어떤 그 모든 두려움과 더러움(실상 환유적 작용을 하므로 이를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오히려 나를 덮고 있는 그 무엇이다)에의 시선들이 혼종된 질서/구조-시스템의 전복적 지점, 곧 신적 폭력에 다름없지 않을까!


    이 모든 것을 말소시키는, 그렇지만 이것이 혼자의 그 무엇 이해받거나 주목되지 못 하는 곳에서의 외파적인 내파라는 측면에서 죄로 곧 반성과 속죄로써 삶의 여백을 덧씌워 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그가 설사 반성하고 있더라도 이는 이 세상의 시스템의 말소와 새로운 시작의 조금도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씁쓸할 뿐이다.

    죄를 녹이는, 실상 그래서 죄를 깨닫게 하는 순이의 눈물, 그 삶의 신화, 전근대적인 의식은 우리가 믿지 않았던 경계를 그리는 근대적 주체에 대한 하나의 대안적 시선일까! (참고 : 지난 1차 「주인이 오셨다」공연 리뷰 「주인이 오셨다」, 집의 주인은 누구인가?)

    [공연 개요]
    공연명 주인이 오셨다
    일자 9월 16일 ~ 10월 2일 시간 화~금 20시, 토, 일 15시 월 쉼
    장소 백성희장민호극장
    작 고연옥
    연출 김광보
    스태프 무대디자인: 김은진 | 조명디자인: 김하림 | 동작지도: 고재경 | 음악: 최정우 | 의상디자인: 이명아 | 분장디자인: 길자연 | 조연출: 김수희  | 조연출 보조: 이준우
    출연 조은경, 이기돈, 문경희, 한윤춘, 천정하, 김송일, 권택기, 문호진, 안준형, 심원석
    관객과의 대화 9/17, 9/18 15시 공연 후
    예술감독 손진책
    제작·주최 (재)국립극단
    관람료 일반 3만원 | 청소년(만 24세미만) 2만원 국립극단 다솜석 5만원
    공연문의 02-3279-2233
    예매  인터파크
    www.interpark.com | 1544-1555 국립극단 02-3279-2233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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