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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됴화만발」 : 신화적 세계, 순간(죽음 망각)에서 영원(죽음 인식)으로.
    REVIEW/Theater 2011. 9. 13. 05:00



    신화적 세계, 이곳은 어디인가의 질문에 선행하는 이곳은 무엇인가?, 곧 이곳은 어떤 질문에 소급되기보다 오히려 이곳이 주는 감각에 대처해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여기는 어떤 한 시공간의 재현(다다를 수 없는 측면에서 이미 주어진)이자 현시(그 다다름의 지점이 이미 와 있기에 지금 펼쳐지는)가 오가는 특별한 공간.


    이곳에 떨어진 소녀, 서술자로 변함, 그리고 (관객의 시선으로) 현실에 개입하기, 이와 같은 소녀의 시선, 말, 자리가 없다면 이 작품은 어쩌면 매개되지/보이지 못 할 수도 있다.

    아이들의 노래의 기능, 허공에 울려 퍼지는 노래, ‘나는 간다네~’, 어딘가로 흐르는 주변자/ 서술자의 목소리, 무의식의 기제들, 곧 떠도는 것들의 이야기의 전제.

    죽음과 삶이 맞닿아 있는 일, 비규칙적 신화의 세계.


    (갑작스런) 결혼 사건 이후 (갑작스런) 두 사람의, 몸을 더듬어 가는, 몸과 몸의 접합, 그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사건‧끌림‧따스함‧감촉, ‘복숭아꽃을 심으러 가야지’하는 시간은 덧없이 아니 영원한 한 자연의 흐름으로 흐르고 반복(곧 영원을 전제한)된다. 그래서 영원함의 세계, 복숭아꽃은 그 하나의 정확한 은유이다.


    사람들이 나타나고 또 나타나는, 곧 케이의 죽이고 또 죽이는 능동적인 행위, 대결이란 이 사이 죽음만이 전제된 반면,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는 것, 죽음은 단 한순간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 뭔가 다른 세계이다. 이는 삶이 한 순간이라는, 덧없다는 심상을 가동시키기보다는, 늙음과 죽음에 대한 신경증적 공포가 없다는 것, 이곳이 신화적 세계임을 재확인시킨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으니 역설적으로 그에 가닿는 욕망(주이상스)도 없는 법, 이는 이후 공허함을 낳는 것과 연관된다.


    죽음, 멧돼지 같은 신음소리, 밑(구멍)으로 들어가는 죽음, 구멍으로 사라지는, 이것은 심연이라기보다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연극적 트릭이지만, 곧 현실 이면의 세계가 현실로 진짜 존재한다는 것을 들어내는 환유로서 죽음이 끝이 아닌 또 다른 세계라는 의미에서 허망함을 던다.

    시체를 묻다 방금까지 거센 록적 비트는 오르골 인형이 동작되는 소리로 전환되는데, 그 신비로운 정서에 빠지지 않게 단지 뭔가 지나가고 있는, 덧씌워지고 있는 무엇이다.


    그 가운데 사람을 죽여야 하는, 죽이는 이것(기제)은 무엇일까(느와르물의 미학적 스펙터클을 구현하고자 함과는 다른 층위에서), 모든 것을 다 죽이는 동물/사람 가리지 않고, 전 부인도 다 죽이고(이들의 죽음에서 위험성 같은 것이 느껴지기보다 친근하게 몸을 내어 주는 대상으로서 감각되며 죽음은 너무 가볍고 또한 무겁다. 그 몸뚱이 자체는 의식/아픔으로 점철되기보다 하나의 덩어리로, 몸으로만 남기에), 죽음은 우화적이면서 또한 실재적이다. 반면 죽음은 개체 각각이 아니라 이 집단 자체가 하나의 개체인 매우 특이함의 샘법이 작용한다.

    곧 죽어도 죽어도 또 죽는 무엇이 죽었다는 다른 무언가로 대체될 수 있음, 곧 그 어떤 게 특정한 어떤 게 아닌 무언가에 대한 무언가일 뿐.

    죽음과 죽임에 대한 어떤 감각도 없는 케이는 어느 순간 공포를 알게 되는데, 그를 홀린 ‘단이’가 던져준 대처라는 곳이 주는 알 수 없는/말할 수 없는 공포, ‘상징계’인 언어의 옭아맴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단어의 작용(곧 파악할 수 없는, 실재를 동반하지 않지만, 그렇기에 그 정체를 가늠할 수 없는)에 단이에 무릎을 꿇고 안긴다.


    한편 단이는 재물을 동내는, 따라서 케이의 정력을 덜어 내는 기제(케이의 힘을 통한 살인으로써 머리를 수집)로 작용하는데, 그녀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에 무엇들을 계속 채워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목숨은 물물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변용되는데, 머리를 가지고 놀면서 그 목숨은 자연으로 곧바로 돌아가지 않게 된다. 반면 대처에서부터 출현한 상징계의 공포는 어느새 그녀가 갖는 대상에 동조하는 게 아니라 그녀의 말을 구현하는 아버지와 딸 같은 관계로 변해 있다.


    남자 머리, 여자 머리, 이것들을 가지고 노는 이 잔혹성, 그리고 싫증냄은 현실에 구멍 내는 방식과 같다. 즉 똑같은 일상에 그녀는 뭔가 다른 식의 감각되는 지점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곳은 초자아의 발동이 없는, 금기가 없는 곳이기도 하다. 매일 다 똑같다. 심하게 지루하다. 술 먹고 죽이고 하는 것,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모두 싫증나는 이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술과 죽임 그보다 더한 자극이 역설적으로 없다는 것. 삶의 상징계의 규칙들, 지켜야 하는 코드 시스템 따위는 없는 시공간.


    소녀의 케이에게 ‘살과 그게 눈물이에요.’, ‘눈물’, 그 단어가 갖는 수행성, 묘한 역설, 설명을 못 하는 것(하지만 눈물이 눈물이라고 하니까 눈물이라는 설명을 못 하는 것을 알게 되는 언어적 역설과 인식보다 앞서 선행하는 눈물이 갖는 자신을 앞서 있는 무엇의 숭고함), 복숭아꽃 위에 앉아 있는 나, 끝이라는 것의 자각. 눈물을 멈추는 것도 죽음뿐, 그렇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자의 눈물은 눈물(죽음)보다 더한 무엇이다. 곧 눈물은 그 눈물보다 더한 무엇인 동시에 그 더한 무엇 때문에 흘리는 형용할 수 없음의 감정에서 다시 눈물이 흐른다.


    곧 죽임 자체가 죽임이 되지 못 하는, 그보다 덜 한 무엇이었다는 곳은, 복숭아꽃이 만발한 곳(영원과 순간이 편재된), 그 곳에 어울린다. 이놈의 복숭아꽃은 무엇인가, ‘난 대처를 떠났는데 그것이 복숭아꽃 숲으로 가는데 산이 그대로인데 첩첩인데……’

    반면 복숭아꽃 숲은 죽음을 인지하게 된 후 도래할 것(징후), 도래하지 않을 것(부정), 반드시 도래할 것들(부정에도 스멀스멀 올라오는 확신)로 변용되며 『맥베드』의 닥쳐오는 죽음의 징후, 그 숲과 복숭아꽃 숲은 묘하게 일치 지점을 갖게 된다.


    죽음을 넘어선 곧 죽음이란 것이 없는 세상을 사는, 그렇지만 (타인의) 죽음에서 얻는 것이 왔을 때 죽음은 공포로 변할 수 있다. 내가 정복하지 못 한 세상, 하지만 죽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세상.

    ‘10년 100년 나무 그늘이 말을 한다.’, ‘깊은 산속 나그네 하나, 날은 어둡고 흔적은 없네’, 봉합으로써 신비를 간직한 서사. 나무 그늘이 말을 건다네. 쉴 곳을 주마.’, 이 울부짖음은 무엇인가, 신화의 꿈틀거림. 이미 신화적 세계에서 「됴화만발」은 그 신화를 영속화시키고 아련한 목소리로 신화로서 사라진다.

    [공연 개요]
     장    르 : 연극
     제    목 : 검객괴담 「됴화만발」
     공연기간 : 2011년 9월 6일(화) ~ 2011년 9월 25일(일)
                  * 9월 12일(월) 추석당일 쉼
     공연시간 : 평일 8시 / 토요일 3시,6시 / 일요일, 공휴일 4시 (월쉼)           
     공연장소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티켓가격 : 일반 25,000원, 학생 15,000원
     러닝타임 : 100분
     관람연령 : 17세 이상
     원   작 : 시카구치 안고
     재창작, 연출: 조광화 / 드라마투르그 : 김주연 / 무대 : 정승호 / 조명 : 정태진 /        음악 : 원미솔/ 의상 : 이유선 / 분장 : 채송화 / 안무 : 심새인 / 소품 : 권보라 /          무대감독 : 김방근 / 조연출 : 김석기
     출   연 : 박해수, 장희정, 황선화, 홍원기, 설  하, 장세준, 이재호, 안재현, 유명훈,  이정수, 박경주, 김주환, 안창환, 진명희, 염혜주, 조민정, 이운호
     제    작 : 남산예술센터
     주    최 : 서울문화재단
     후    원 : 서울특별시
     문    의 : 02-758-2150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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