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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SIDANCE] 한국-일본 신은주 & 수미 마사유키(角 正之) 댄스 캠프 프로젝트 리뷰 : 세 명의 분배와 접합의 퍼포먼스
    REVIEW/Dance 2011. 10. 20. 06:15

    ▲ 신은주, 수미 마사유키(角 正之)

    신은주, 수미 마사유키(角 正之), Yasuda Noriyuki, 이 세 명의 관계는 이 무대라는 공간 대기 안에서 매우 평등했다. 작업을 만드는 과정을 작품 외적으로 체현하고 있었고(메타적으로 반추하고 있었고), 작품은 이 셋의 암묵적인 동의외적인 규칙/대기에 의해 구현되고 있었다. 한 마디로 이 대기는 이 셋 모두의 것이었다.

    어둠에서 출발하는 몸, 몸을 뒤틈과 신음은 그 앞 구조물/사람에 겹쳐져 표상된다. 몸 앞의 존재는 하나의 존재의 흔적이고, 또한 자기 자신의 그림자이자 시간의 표상이기도 하다. 여기서 그림자는 자신과 결부되는 은유적 작법이자 감상주의적 초월에 다름 아닌데, 이는 이 공연 전체적인 문법에서 봤을 때 하나의 서사를 제공하기보다는/거기에 사로잡히기보다는 오히려 안과 밖 열고 닫음의 대기로의 진입/침범/열어젖힘의 부분에 가까울 것이다.

    시간은 이 대기 속에 심연으로 자리하고, 여기에 떨어지는 북이 돌연 이 세계를 딱 깨우며 시간을 공간으로, 또 공간을 대기로, 대기를 현실/현재로 전환시키는 차원 이동이자 현재를 밝혀 주는 기능을 한다. 곧 이로써 시간은 표상되고 공간과 현재 역시 생겨나게 된다.

    이 북소리는 일종의 과잉으로 남아 있고 그 과잉이 몸에 쌓이면 느지막하게 또 그 내적 의식의 자연스런/알 수 없는 고양에 따라 움직임이 구현되게 되는 것이다. 한편 몸의 진동은 북소리에서 연유하며 그 북/실재의 잉여가 몸을 때리고 몸은 이러한 상처/누적의 층위를 깨고 분연히 일어나게 된다.

    이 북소리에 맞춰 신은주는 앞으로 무릎을 꿇고 다리를 땅에 붙여 무릎과 땅 사이의 얕은 탄력만으로 이동하며 이 북소리의 잦아듦/사라짐의 징후는 의식의 점증적인 고양과 (청각) 감각의 확대에서 현재로 의식을 전환시키는 기능을 한다.

    ▲ 신은주

    몸의 다양한 감각과 움직임을 무대로 대기로 상기시키는 는 북에 또 하나의 채를 두고 굴리며 북을 동시에 침으로써 중층적인 소리를 만들어 내며 어떤 고양과 혼란을 동시에 만든다.

    의식을 일으키는 것은 몸에의 축적인데, 여기서 세 사람의 관계 쌍은 일차적으로 다른 공간의 점유이고, 사운드와 몸이 충돌하며 조응한다면 두 남녀의 층위는 서로 다른 현실 층위를 상정하는 가운데 만나지 않는 평행선상을 그리게 된다.

    그래서 신은주가 괴로움과 절절함의 몸부림을 그 뒤돌아 무릎을 꿇은 상태의 연장선상에서 그러한 어떤 의식意識을 담보한 자신만의 의식儀式을 치루는 가운데, 그 앞에서 또 하나의 침묵 주체로(그녀가 정념 주체라면 남자는 더욱 말없음의 주체에 가깝다) 자리하며 사그라드는/다시 대기로 돌아가는 한편 그 여자를 은유적 층위(그녀가 있었다는) 안에서 감싸 안는, 중층적인 차원에서 이 만나지 않음의 층위를 극단적으로 부각시키며 가상과 실재의 간극을 만든다.

    남자의 구음이 다시 이어지고 두 개를 부딪쳐 내는 잔을 들고 무대로 확장하며 소리를 낸다. 이 구음은 움직임을 잠잠하게 만드는 것, 또 하나의 실재적 움직임/감각이며 이 셋은 조명에 의해 몇 개의 칸으로 분할되어 나뉘어져 있다.

    반면 이 나뉨에 의해 서로는 만남의 가능성을 상정할 수 있게 되고, 또한 상대를 타자로 그릴 수 있게 된다. 한편 이 셋은 이 소리 안에 하나의 자장을 이루며 서로 다른 층위/경계에서 만나게 됨을 의미한다.

    칸은 없어지고 셋의 경계는 다시 하나의 대기로 바뀌고 의 음악 역시 매우 경쾌하게 심벌즈를 부딪혀 소리를 내며 여기에는 가벼운 표층 층위에서 (몸의) 발화를 작동시키게 되며 경쾌하게 몸을 떨고 움직이는 대신 시선은 다시 바깥으로(은유적 층위) 또 한편 안으로 자신의 내면 층위로 자리하며 자신(에)의 중심을 잃지 않는다.

    ▲ (사진 왼쪽) 수미 마사유키(角 正之)

    앞선 구조물의 형태는 중간 중간 두 존재에 의해 품어져 전유되기도 하고, 어떤 슬픔/회한/기억 등의 심상과 궤를 같이 하는데, 다시 흔적들로 그것이 몸과 떨어져 무대 앞에 있고, 이것은 몸에서/몸과 결부된, 그리고 다시 그것을 슬며시 무대 앞으로 내밀어 놓음으로써 시간이 흐른 뒤의 현재에 갖는 기억의 심상으로 자리하게 된다.

    사운드를 입지만 돌연 출현함으로써 무에서 유가 발생하는 남자의 움직임, 그리고 이 대기/무대 자체를 하나의 무로 치환하는 가운데 사운드와 움직임이 일어난다.

    악기를 통해 그것에 떨림(을 전유함)으로 인해 신들림/샤머니즘적 어떤 의식의 양태를 만드는데, 그 떨림이 꺼질 때/의식이 빠져 나갈 때 이 움직임은 무엇을 말함인가.
    곧 움직임의 추동은 내면/사운드/감각에 이성과 합리의 정신 이면의 어떤 것, 은유적 관계로 인한 것들임에 하나를 더하며 구조를 만들기보다 무에서 유로 유에서 다시 무로 돌아가는 대기(빈 공간)로서 무대를 깨우고 인지시키며 이것이 오직 외부적으로는 현재라는 것을 직시하게 하는 퍼포먼스적인 현재가 있는 무대를 만들고 있었다.

    [사진 제공=국제무용협회]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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