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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언니들’ 리뷰, ‘신화와 상징이 거주하는 세계’
    REVIEW/Theater 2011. 12. 27. 23:17


    ‘언니들’은 신화적이고 또한 무의식의 상징들을 따라간다. 끝 간 데 없는 옥수수 벌판은 사건들의 연속선상의 시간 계열이 아닌 어떤 하나의 원형적 이미지, 기억 이미지로 측정된다. 여기에는 삶의 일상적인 흐름이 아닌 죽음에서 생성으로 나아가는 사건의 반복적인 출현이 자리한다.

    수레바퀴처럼 반복되는 역할 놀이와 무의식적 기억의 엄습은 어디까지가 언니들의 의식인지 다소 혼란에 젖게 만든다. 한편 해질녘이 되어 사라지고 마는-그리고 혼자 남는 소녀에 대해 상대적으로-언니들인 두 언니의 말과 행동은 기억이라는 더 큰 범위에서 출현하지만, 이는 소녀의 기억과 삶에 어떤 경계를 지우고 있어, 이 기억으로부터 촉발되는 삶과 그것이 없는 삶의 간극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세 명의 유폐된 환경에서의 삶은 제의적 놀이를 출현시키고, 현실이 탈각되어 오히려 오지 않는, (기억을 통해 또는 망각을 통해) 언젠가는 왔었던 아버지를 기다리는 또한 어머니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듣는 이들의 삶은 그로테스크하기 짝이 없다.


    언니들이 갖는 남자들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환상, 어머니가 자궁을 적출하는 환상 등 개별화된 기억도 있고, 사회의 동창회 파티로 자동차를 몰고 나가다 사고를 당하고 다시 이들의 일상으로 돌아오는 공동의 기억 환상이 있는데, 후자에 있어 기억은 사건으로 현실에서의 죽음과 망각 그리고 영원한 유폐된 삶으로의 회귀를 전제한다. 이는 그 죽음과 삶의 접점이 순간의 기억으로, 그리고 다시 망각되고 다시 기억으로 반복될 때 그 순간의 펼쳐짐으로, 현현 내지는 실제 펼쳐지는 기억이라는 점에서 이는 기억이 현실을 추인하는 기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끔 한다.

    옥수수는 남자의 대리물인 남근으로, 허수아비는 성관계를 하는 남자로 변신한다.

    어머니가 자궁을 적출한다는 둘째의 환상은 자궁이 상징적 남근을, 어머니가 아버지를 각각 대체하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어머니가 집을 나간 사이 아이들이 일탈을 벌이는 것과 같이 이들 역시 단지 목소리 곧 무형의 법으로만 존재하고 출현하되 등장하지 않는 어머니의 법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유희적 왕국을 형성하는 것으로도 이해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이들의 놀이는 단순한 유희가 아닌 죽음의 제의로 나아가는 것이자 신화적 세계의 원형적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다.


    모든 여성을 취하는 그리고 모든 사람을 죽이는 허수아비는 온전한 향락을 즐기는 최초의 아버지(실제적 아버지)라면, 목소리로만 존재하는, 곧 무형의 법의 형태를 띠는 어머니는 상징적 아버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이야기를 통한 신화의 세계로 들어갔을 때 허수아비의 의미라면, 묘하게 허수아비는 좀비와 같이, 숨 없는 비-존재로 자리한다. 이의 간극을 통합하는 건 허수아비가 일종의 언니들이라는 신화를 잇는 환상의 존재들과 마찬가지로 일상에서 신화로 나아가는 어떤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 곧 멈춰버린 삶은 인형과도 같이 있고, 여기서 일상을 벗어나는 생이 시작된다. 옥수수를 성기 삼아 있는 허수아비 존재는 남자를 기다리는, 동시에 남자에 의해 처녀성을 빼앗길 소녀와 언니들의 욕망과 두려움에 섞여 드는 기괴함을 띤 채 숨을 거두고 있다. 언제 그 숨과 성이 터져 나올지 모르는 긴장감을 어느 정도 안고.

    ‘언니들’은 여자들, 그리고 어린아이들이 겪는 성장통의 무의식의 저변을 따라간 단순한 형태로는 치환할 수 없다. 오히려 일상의 시간을 떠나 신화적이고 상징적인 세계에서 무의식의 언어들이 쌓는, 은유가 적출하는 현실의 또 다른 양상을 바라보게 만든다. 이 세계는 매우 독특하면서 모호해 파악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공연 개요]
    공연일시_ 2011. 12. 2 (금) - 2011.12.18(일) 정보소극장 평일 8시 / 토 3시 6시 / 일 3시(월 쉼)
    작_   최치언
    연출_ 이성열
    출연_ 김현영 김민선 김원진 박미란 정훈 홍기용 유시호 이반석
    티켓_ 20,000원
    관람_ 만 13세 이상 관람가
    제작_ 극단 백수광부
    후원_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사진 제공=코르코르디움]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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