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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뷰_첫째 날] 차세대 안무가 클래스 쇼케이스 '9 Works in Progress'
    REVIEW/Dance 2012. 1. 24. 13:22

    1월 17일(화)·19일(목)·21일(토)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2011아르코공연예술인큐베이션 <차세대 안무가 클래스> 9 Works in Progress가 진행됐다. <차세대 안무가 클래스>는 지난 4월말에 시작된 공모 이후 9명의 안무가를 선정하여 각자의 창작 주제를 수개월에 걸쳐 리서치·프레젠테이션·멘토링·토론·오픈스튜디오 등을 진행해 온 결과물이다.
    첫째 날에 있어서 반복으로 일상을 구성하며 객관화한 금배섭의 안무가 독특하게 기억에 남는다.

    금배섭, ‘보이는 것에 대하여’

    무대는 두 개의 프레임이 자리하고 상수에는 머리가 보이지 않은 채 한 사람이 바둥거리고 있고 하수에는 손으로 닭 머리 같은 움직임의 비슷한 모션들을 취한다. 여기에 닭-인간이 무대 하수로부터 출현하고 상수 쪽 무대 바깥에서 할머니가 난입하며 닭을 쫓아낸다. 이와 같은 하나의 시퀀스가 약간의 차이를 두고 여러 차례 반복된다. 시퀀스와 시퀀스에는 내레이션이나 노래 등이 삽입된다.

    금배섭은 무대에서 춤이 아닌 일상 자체를 구성하고자 한다. 관계없는 것들의 연결은 우연한 시간과 그 동시성을 나타낸다. 이는 영원회귀처럼 도돌이표를 찍는다. 이음매가 없는 것들의 연결은 그 간극 자체를 명확히 하며 하나의 구조적 반복, 반복으로 갖는 차이를 일으킨다. 우연한 사건들의 비개연적인 연결을 통한 개연성의 획득은 각 층위의 존재가 갖는 실존을 드러내면서도 그것을 동등하게 포섭한다.

    심각함과 우스꽝스러움은 감정 없이 객관화된다. 닭의 머뭇거리는 듯한 움직임, 꾸물거리는 할머니, 버둥대는 자살을 꾀하는 여자, 닭의 머리와 같은 손동작들은 일종의 총보를 형성 않는, 움직임이 되지 않는 몸짓에 가깝다. 내레이션과 노래는 아련한 주체를 상정하는데, 이는 내부의 어떤 주체와도 연결되지 않는 독자적인 목소리로 기능한다. 또는 현실의 외피를 입는 중계 차원의 것이다.

    일상의 펼침은 우연성들의 연결과 현실에의 동시적인 접속을 통해 현전된다. 춤의 신비화 외양을 통한 일상에서 벗어나기가 아닌 일상을 붙잡아 반복하며 목소리를 지워 객관화하여 삶을 인간과 개인의 중심에서부터 벗겨내는 것이 안무가가 의도한 바였을까.

    박소영, ‘back’

    냇물소리는 몸에 입혀진다. 몸은 냇물을 환유한다. 두 명의 무용수는 긴밀하게 움직이고 자연의 일부가 된다. 조명-빛은 햇살을 닮는다. 자연을 예찬하고 그 속에서 순수 존재로서 운동성을 가져가지만 현실에 점착되지는 못한다. 무릎을 접은 앉은 자세에서 몸을 뒤로 젖히는 움직임이 강조되는데 일종의 제의성을 띤다. 자연의 일부에서 자연에 스스로를 투과trajection하는 의식으로 변화하는 순간으로 보인다.

    필자의 생각에는 전통적인 춤사위는 일부분 유제니오 바르바가 말한 총보를 엄격한 훈련으로 체화하고 구현하는 북극배우로 또는 한의 감정으로 내재화되는 측면으로 발현되는 것 같다. 상응하는 두 무용수의 움직임이 긴밀했던 것은 그 움직임이 단단하게 구현되며 비껴나고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시간의 간격을 가져갔기 때문으로 보인다. 숨에서 선으로 감정으로 이어지는 게 아닌 숨을 점처럼 파편적이고도 차이를 벌리는 분할체divisual로 사용하는 법은 없을까, (전통을 차용하는) 작품(들)을 보며 드는 의문이다.

    배준용, ‘쓰레기 같은 작품’

    무용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무용을 보는 관객 그 중에서도 일반 사람-아버지-의 시선, 무용을 동경하고 꿈꾸는 딸이 관객으로 자리하고 파편적이고 무의미의 의미를 지향하는 작품이 무대 안에서 극 중 극의 형식으로 동시적으로 펼쳐진다. 아버지와 딸은 무대를 보고 의견을 덧붙이고 극은 계속 이어진다. 일종의 무용에 대한 메타 언설이 무대에 침범한다. 그럼으로써 작품은 우스꽝스러운 면모를 띤다.

    곧 이 말들이 갖는 거리 두기에 시련을 겪는 작품이 과연 작품인가에 대한 반문은 거꾸로 작품이 그 말 이전에 이미 그 말의 유효성을 갖고 가기 위해 우스꽝스럽고 반문을 품을 여지를 갖게 만들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에서 유래한다는 점에서 물음은 공허하고 작품 속의 작품 역시 그러하다.

    너저분한 배치, 과정들이 작품에 그대로 노출되고 흥겨움이 끼어들며 극중극은 혼돈을 띤다. 일종의 현대적인 것으로 지칭되는 동시대성contemporary는 일시적인 것temporary, 곧 단편들의 나열이다. 무대의 일상과 일상화되는 무대가 뒤섞이고 음악은 초과되어 자기 지시적으로 소급된다.

    왜 무용은 우스꽝스럽게 비유되어야 하는가, 드러나야 하는가, 관객과 괴리되어 있는 무용, 총보를 구성하지 않는 무용에 대한 이중 비판은 어떻게든 관객을 웃음으로 이끌어 온다는 점에서 성공하지만 이는 여전히 임시적일 뿐이다. 곧 무지한 관객의 모습은 메타적으로 현실을 반추하지만 무지한 관객이 스스로 적극적으로 배울 수 있음을 상정하지 않는다(무지한 스승이 전제되지 않는다).

    [사진 제공=문화예술기획 이오공감]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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