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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뷰_둘째 날] 차세대 안무가 클래스 쇼케이스 '9 Works in Progress'
    REVIEW/Dance 2012. 1. 22. 19:09

    1월 17일(화)·19일(목)·21일(토)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2011아르코공연예술인큐베이션 <차세대 안무가 클래스> 9 Works in Progress가 진행됐다. <차세대 안무가 클래스>는 지난 4월말에 시작된 공모 이후 9명의 안무가를 선정하여 각자의 창작 주제를 수개월에 걸쳐 리서치·프레젠테이션·멘토링·토론·오픈스튜디오 등을 진행해 온 결과물이다.
    둘째 날에 있어서 영민한 안무 감각을 보여준 안무가로, 황수현이 눈에 띈다.

    김재승 '사알푸울이 추움'

    춤은 나르시시즘의 영토에, 신비함의 프레임에 종속되어 있는 듯 보인다. 좁은 공간에서 소고무를 형상화하듯 채우는 자취는 시간의 부피가 좁은 공간에 접히고 미끄러지며 자취를 남긴다. 전체적으로 빛 곧 조명은 미적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측면에서 쓰이고 있다.

    춤의 밀도는 숨과 움직임의 세기와 빠르기에서 얻어지며 관계는 접합되기보다 보호되고 종속되며 시간의 잠겨드는 흐름 안에 빠지기보다 그 시간 자체를 벗겨내고 시간과 숨이 자리하지 않는 그 바깥에서 춤이 이뤄진다. 일종의 진공 상태와도 같은 외부적 내부에는 음악이 외부적 장치로 삽입되어 내부와의 간극을 낳는 한편 기억과 추억과 여러 이미지들을 부여한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간극들은 미적 도취와 상념으로 몰아가기보다 접합될 수 없는 이질적인 공기를 낳고 만다. 순수하다고 여겨지는, 어떤 바탕 위에서의 춤은 잉여들을 발생시키고 이는 신비 속으로 사라지지만 신비함이 소멸되는 경계를 낳고 있다.

    이범구 '달빛 속의 비밀'

    내레이션의 퍼포머(내레이터이자 화자에 가까운 존재)는 무대를 드라마적 감성으로 일순간 전제하고 바꿔 놓으며 시작하는데 그녀의 의식이 흩어지는 가운데 두 남녀의 춤이 그녀 무의식 속 잔상들을 재현해 낸다. 사랑, 부정 등의 단어들이 반복되는 가운데 뚜렷한 기표는 그 단어들을 본래적 언어로 복원시켜줄 것이라는 착각 같은 몽상으로 무대를 수놓지만 이는 기의를 강조하는 기표, 실은 기의가 증발되는 기표로 허무하게 강박적으로 흩어져 간다.
    시선이 작용하고 있고 춤은 의식 뒤에 또 시선 아래 종속되어 뒤늦게 따라 붙는 식이고 첫 두 무용수가 등장할 때 이들은 온전히 춤을 구성하는 듯했지만 그 종속 관계를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던 듯 보인다. 지친 일상, 멈춰 버린 일상, 힘없는 일상이 이 춤과 의식을 담지하는 목소리를 통해 표출된다.

    황수현 'Co-lab : Seoul-Berlin'

    이 작품은 결정적으로 임시적이고 과정 그 자체를 작품으로 끌어들인다. 무대에 오르는 스크린을 통해 제시되는 단편들은 무대에서 몸을 통해 동시적으로 재현되어 연장된다. 먼저 스크린과 무대가 뒤섞이기 전에 구분 동작들의 지령과 이를 수행하는 과정이 수반된다. 지령은 목소리를 통하고 목소리는 두 무용수 중 황수현이 내는데 이는 영상으로 확대됐을 때에는 외화면-소리로 초자아와도 같은 내면에 엄숙함을 안기기보다 국민체조와도 같은 가벼운 분위기를 띠게 만들며 우스꽝스럽게 동작들을 구분하며 수행하게 된다.

    이러한 움직임은 몸에 동작들을 입히며 움직임이 되기 전의 유동하는 떨림의 몸짓 차원에 머문다. 하나의 흐름과 의식으로 부재를 풍만함으로 채우며 몸과 함께 공간을 동시적으로 여는 춤이라는 것과의 간극이 여기서 형성되는데 오히려 이와 같은 춤의 해체와 분절된 동작들로써 조합되는 간극의 춤은 몸을 드러낸다. 춤을 발산하는 몸, 춤추며 시간을 타는 몸이 낯설게 현재에, 현실에 드러나는 순간과 마주하게끔 한다. 몸은 신비함을 거두고 투명해진다.

    이 총보score를 띠지 않은 춤은 해체적이다. 또한 임시적temporary이고 일시적이다. 아이디어들을 펼쳐놓는 형태는 춤의 과도함과 과도함에 대한 강박과 집착, 과정에 대한 결과를 과정으로 대체하는 과정을 통해 일시적인 충격을 던진다. 춤에 대한 반문이자 동시에 춤에 대한 가벼움의 상기이기도 하다. 이는 일시적인 시작이자 또 다른 시작의 예고인 것이다. 단편들 곧 구분 동작들은 이어붙임을 통해 마지막에는 어떤 흐름을 형성하지만 이는 철저히 간극들을 떠안은 시간을 응축하지 못하는 춤이다. 춤이 되지 못하는 춤은 춤이라 불리는 것에 그렇게 반문을 유쾌한 방식으로 띠우고 있었다.

    [사진 제공=문화예술기획 이오공감]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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