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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뷰_셋째 날] 차세대 안무가 클래스 쇼케이스 '9 Works in Progress'
    REVIEW/Dance 2012. 1. 24. 13:31

    1월 17일(화)·19일(목)·21일(토)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2011아르코공연예술인큐베이션 <차세대 안무가 클래스> 9 Works in Progress가 진행됐다. <차세대 안무가 클래스>는 지난 4월말에 시작된 공모 이후 9명의 안무가를 선정하여 각자의 창작 주제를 수개월에 걸쳐 리서치·프레젠테이션·멘토링·토론·오픈스튜디오 등을 진행해 온 결과물이다.
    셋째 날에 있어서 단연 눈에 띈 건 김보라의 무대로, 총 3일간의 진행 가운데서도 독보적이었다.

    나연우, 무제

    엄밀히 무대는 없다. 무대는 스크린으로 치환된다. 무대는 관객석을 포함한 아르코예술극장 전반을 환유하며 존재한다. 관객은 무대에 진입할 때부터 극에 동참하게 되고 이 공간이 무대의 연장선상임을 확인하게 된다. 스크린은 동시간의 영상으로 비춰진다. 빨간 풍선을 든 무용수가 관객석에서 움직이고 바깥으로 벗어나 영상에서 자리한다. 카메라는 움직임에 고정된 시선의 연극적인 프레임을 제공하지 않고 유동적으로 불안정하게 움직이며 적극적인 시선으로 자리한다. 곧 카메라는 움직임을 형성하는 과잉으로써 움직임을 완성한다.

    두 남자는 이 안에서 사진을 찍히듯 모델처럼 자리한다. 동시에 고고와 디디처럼 실존의 의미가 외부에 있는 독특성을 모방한다. 카메라를 따라 이 둘의 신체 일부가 접촉 이미지로서(마치 사진에 찍히듯이) 화면을 차지하고 공간의 일부를 점한다. 공간은 현실을 벗어나듯 흔들려 포착되고 신체와 결부된다. 카메라의 시선의 순간적인 옮김은 순간을 이동하고 두 인물의 내면의 떨림은 화면의 떨림에 상응한다. 카메라의 근접 촬영과 순간적인 움직임의 변환은 몸으로부터 공간을 여는 무대 내 춤과는 다른 몸 자체가 공간이자 몸이 부유하는 공간으로 만드는 효과가 크다.

    작품은 실험적이다. 또는 실험을 모방한다. 따라서 일시적이고 총보를 형성 않는, 파편들의(시간 차원의) 심지어 공간 역시 파편적으로(양태 차원의) 이어지는 가운데 기의 없는 기표들은 몽롱하고도 우울한 자취를 형성한다.

    지경민, ‘Animate’

    음악은 시간이 흘러가고 있음을 가리킨다. 유연한 흐름 아닌, 지속의 힘 대신 시간을 붙잡아 두는 일상의 재료들이 흘러간다. 자연을 상정하는 매미나 바람 소리가 흘러가고 사물 되기의 신체들 속에 여자는 이 일상의 (신체를 통한) 오브제들이 형성하는 이야기 속에 인물이 된다. 곧 환영의 재현 차원에 일상의 현대인이 상정되는 것이다. 여러 현실의 차원이 네 명이 이루는 즉각적 앙상블의 단면으로 이뤄지고 계속 재점화된다. 춤 자체가 갖는 환영성이 아닌 장면들을 직조하여 분절화된 단편들의 이야기를 만드는 게(환영성 자체) 독특했다.

    김보라, ‘혼잣말’

    폭력과 울부짖음으로 점철된 어느 신성한 밤을 상기시킨다. 이 속에서 괴물이라기보다 언캐니uncanny한 주체가 탄생한다. 이는 일상을 즉각적으로 벗어난다. 몸은 분절되고 박취처럼 펼친 상태에서 신체 부분들이 꺾이며 구심점에 이르러 일시적으로 해체되고 다시 시작한다. 몸의 끝에서부터 안으로 모이는 에너지가 끝을 이루는 하나의 단위가 일종의 총보score인 셈. 시선은 신체의 구속에 따라, 신체는 시선의 이끌지 못함에 따라 시선과 신체는 한 몸의 이질적인heterogeneous 것을 도출해 낸다.

    시선은 몸의 부분들의 파편적 분출로 인해 분산되며 불안정하게 떨린다. 김재덕이 등장하고 영화 '블레이드 러너'와 흡사한 느낌의 신비하게 가슴을 두드리는 건반의 연주가 창출된다.

    동료집단과 선후배 사이의 친숙함의 유대를 형성하는 한국의 무대에서 타자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김보라의 움직임은 일상을 초과한다. 곧 실재계에 도달하는 듯 보인다. 이질적인 것이 현존한다. 사운드는 이 움직임에 따라, 이 움직임에 부과됨에 따라 실재한다. 단순 배경이 아니다.

    그 단단함의 움직임은 척추와 분리된 움직임으로 곧 비인간으로 또한 인간에서 유폐되는 몸으로서 형벌을 가져가며 그로테스크와 슬픔을 안긴다.

    또한 움직임은 목소리를 빼앗아 간다. 입에 재갈과 같은 빛이 나는 무언가를 묾으로써 말은 (인간의) 언어가 되지 못하고(웅얼거림murmur으로 변하고) 끓어오르는 것은 속에서 표출되지 못한다. 이로써 인간의 경계에 대한 사유에 이르게 된다.

    마이크를 그녀에게 떨어뜨려 놓는 남자의 손길에 그녀는 온 몸으로 반응하는데 여기에 또한 신성함이 있었다. 눈을 감고 춤은 시각 상실을 의미한다. 그렇게 감각들이 무화되고 사라지는 차원에서 척추가 녹아내리고 끝없이 반복(차이의 반복)되는 움직임들이 태초의 밤을 상기시키고 있었다.

    [사진 제공=문화예술기획 이오공감]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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