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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레스콜 현장_26CUT] <뜨거운 바다>, '연쇄적 유희의 원환'과 '비극의 무의식'
    REVIEW/Theater 2012. 8. 11. 02:33

     

    데리다가 제시한 끝없는 기표 작용으로 의미가 연기되는 ‘차연(Différance)’이란 개념을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성을 설명해 볼 수 있을 텐데, 곧 ‘기의’(뜻)가 우선시 되는 게 아니라 ‘기표(표현)가 기의를 역전’하는, 곧 ‘의미가 주어지고, 그에 맞는 표현이 형성되는’ 것이거나 기원을 갖는 것이 아닌 이 차연이란 개념은 <뜨거운 바다>를 설명하는 데 꽤 유효할 듯싶다.

    마치 <뜨거운 바다>는 발화가 대사를 앞지르고 있고, 표현이 배우를 앞지름이 매우 급격하다. 이는 조금 복잡한 이해를 요구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배우는 표현에 당도하는 데 즉각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뛰어넘어, 오히려 배우는 행동하기에 이후에 사유하게 되는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그러하다.

    부조리극의 대표적인 극작가인 이오네스코의 『코뿔소』를 강하게 현상하게 하는 고선웅 연출, 극공작소 마방진의 <들소의 달>, 여기서 언어화되지 않는 움직임과 무의미한 언어들의 조합이 갖는 부조리극의 성격은 ‘아타미 살인사건’이란 남녀 치정 살인이 얽힌 일종의 신파가 깃드는 사건을 표현하는 것으로 연장되는 듯 보인다.

    부조리에 초점을 맞춰, 작품의 표면에서부터 해체를 가동해 말의 난입과 난맥(亂脈)의 코드에 합치시켜 이를 풀어낸 것이라면, 만약 그렇다고 해석한다면 이것이 본질은 없고 단지 표면만의 연쇄 순환 과정으로 의미망이 형성된다는 것 아래 <뜨거운 바다>는 이 표현형의 변화 양상만을 즐길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함인가.

    이는 새로움인가. 새로움의 표현형은 부조리극(이미 지나간 하나의 특정한 성격을 가리킬 뿐인 개념)과 지난 ‘85년’(80년대는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의 본격적인 시기인 셈) 츠카 코헤이가 내한해 <아타미 살인사건>을 개작해 공연한 <뜨거운 바다>라는 제목의 작품이 갖는 함의는, 곧 포스트모던의 초입을 말하지 않는가, 그래서 오히려 새로울 것 전혀 없는 것으로 봐야 하는가 따위의 물음을 낳는다.

    참고로 서구의 근대 연극을 수입한 이후 60년대 일본 소극장 운동이 일어났을 당시 합리적인 사고는 정념의 사고 전환을 이뤘고, 이 소극장 운동의 2세대의 대표 주자가 코헤이이기도 하다.

    아님 여기에 고선웅 연출만의 나름 개성을 발휘해 자신만의 연출 스타일을 더한 것으로 봐야 하는가, 츠카 코헤이의 작품을 보지 않았으니 이 부분은 말하기가 어려운 부분이다,.

    어쨌거나 극 전반을 지배하는 이러한 정신없음의 또한 유희의 구문으로 채워지는 표현형은 끝으로 가면서 다른 양상의 전환 국면을 맞는데 진정성의 측면의 외침과 그 속에 깃든 거대한 에너지 분포에 입각해 그 변환 양상까지 일단 미쳐 보는 게 중요할 듯싶다.

    그럼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도무지 등장인물들의 말은 그 자신의 일방적인 표현들로 소급되어, 대화를 나누지 않는 가운데, 명확한 말의 함의와 서사의 점진적인 전개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특히 그 말은 에너지가 과잉되어 있어 굉장히 정보는 묻혀 있는 상태이며 축적된 사고의 호흡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이 과잉의 에너지가 꿈틀거림을 관객은 확인하지만, 그것이 일상적인 대화나 그 속에 담긴 함의를 캐내기에는 불가능한 그런 혼란스런 상태가 조직되는 가운데 관객은 또한 이것을 본질적으로는 이해 불가하다고 판단하게 될 것이다.

    미즈노는 강박에 사로잡혀 말에 사고를 담지 않는, 자동 반사적으로 흘러나올 뿐인 말의 권력의 힘을 보여주는데, 한편 이 말은 그가 부장형사로 범인을 취조하는 입장이자 그 전에 이 공간 안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편이라 권위를 앞세우는 것으로 변화하기도 한다.

    이 말의 쓰임(도구)에서 헤게모니를 갖고 있던 미즈노는 막 말을 주워 담다가 어느새 그 상태에서 벗어나서, 곧 이 말 자체가 그를 끌고 가는 가운데 강박적으로 몸이 반응하던 것에서 그 흐름이 끊길 때 즈음이면, 눈에 힘을 주고 이 권력의 위치에 주체의 주파수를 맞추며 이 말의 지위에서 자신의 현실적 지위로 옮겨 가며 의지 없는 빈 주체에서 주체를 호출해 낸다. 그 간극은 매우 뚜렷한 편이고, 이는 거의 무의식적이라 드러나는 인물의 변화이며 극 속에서 잘 표현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미즈노는 말이 멈췄을 때 공백을 이 전유의 눈동자에 모든 자유를 날려 버린 채 이 순간을 모면한다. 이 권력에의 자리에 그 스스로 옭아매어 있지 않음을 드러내며(사실은 속이며) 발현된다.

    한편 ‘말의 권력’에 있는 그는 대중 코드에 흔적들을 호출하며 신파와 같은 표피 구축이 벌어지는데, 여기에는 어떤 진정성도 없다. 앞서 미즈노를 분석한 것처럼 배우들은 일종의 역할 놀이만을 무대에 수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등장인물들의 말들이 의미보다 하나의 형태로 추상적으로 뭉뚱그려진다고 함은 추상적인 설명인 듯하지만, 실제로 이 전체적인 에너지 곧 꽉 찬 무언가, 그리고 그 주제를 서사의 분절들이라 이해하며 그것들을 매치하기 어렵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아타미 해변에서 여공 아이코의 시체가 발견된 사건의 용의자인 오야마가 취조를 받는 과정은 실상 일부분이고, 등장인물들의 거의 잡다한 개인적 이야기들이 정신없이 분사되며 비선형적으로 오고 간다.

    그 가운데 등장인물들의 결과적으로 이 말들의 파악되지 않는, 사유로 기입되지 않는, 파편들의 연쇄적 순환(비선형이라는 점에서)은 그 자체의 패러디적 재미와 역겨울 정도의 인위적인 모습으로 드러나며, 익숙한 대중 코드의 재코드화를 넘어가 어느 주파수에도 맞추지 못한 채, 탈코드화되어 무언가 닿지 않는 있는 세계에 있음을 어렴풋하게 감지할 뿐이다.

    일종의 강박적 말의 유희와 뭉뚱그려진 에너지의 일관된 흐름 하에 표면적인 연쇄를 통해 진행되는데(이는 무대에서 말을 달고 무대를 누비는 배우들에서) 갖가지 클리셰의 음악적 차용에 흐름을 바꾸고, 춤의 회상 신은 감각적인 구문을 극대화하는 등 극의 전환을 꾀한다.

    이들은 실상 온전한 주체를 구성하는 대신 파편들의 순간적 전유와 이것들이 배치되는 가운데, 흩어지는 관점으로, 합산되지 않는 흐름으로 흘러가는데, 이는 이 커다란 흐름 하에 인물들은 휩쓸러 가며 하나의 관점을 발산하는 주체로 소급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러니 여기에는 고유의 등장인물의 내면의 동요와 갈등에 의한 집중과 몰입이 만들어지는 대신(도무지 이 말들 자체가 어떤 초점을 지녔는지 모를, 단지 웅성거림 같이 들리기까지 한다), 관계가 맺는 정보의 형성 대신, 각 개인이 분출하는 그 말 자체에 휩싸인 채 결과적으로 공허한 흔적만이 남는다.

    어느덧 이 하나의 큰 구체가 굴러가며 표면들을 수없이 깎아 내며 그 본질을 향하기보다 순간의 자국만을 남기고 가는 극의 얼개는 어느덧 아타미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현장으로 돌아가며, 급작스레 이 구체의 본질과 진실을 향한다.
    이는 수사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진술되는 일종의 재현의 층위지만, 실상 보이지 않던 것, 밝혀지지 않았던 것으로서, 어두운 조명 아래 두 남녀의 밀회는 매우 내밀하다.

    창녀가 된 여자를 사랑하는 순수한 남자의 사랑은 부조리하고 냉정한 세속 인심과 덧없는 시간의 흐름과 그 간극이 쓸쓸하게 바닷바람 차갑게 이들 사이의 교통할 수 없는 지점을 누비며 알 수 없는 광기로 남자를 몰아간다.

    이는 앞선 등장인물들의 추리가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을 추정하는, 곧 직접 그 상황에 있지 않은 채 간접적으로 진실을 상상하고 또 용의자의 진술을 듣는 것이 대부분을 이루는 것과 달리, 두 인물만의 관계가 실제적으로 펼쳐지는, 바깥에서 그 본질의 표면만을 서술하는 입장이 아닌, 곧 그 서술의 본래적 사건이 일종의 현시되고 있는 장면이다.

    여기서 이른바 주체는 탄생하고, 집중의 순간이 만들어진다. 인물의 내밀함이나 내면 따위가 형성되는 것이다. 용의자의 비극적 진실이 현실에 대한 비극의 시선으로 옮아가는 가운데, 사건은 일단락되고, 떠나는 자는 이 구조 바깥의 세계에 주파수를 맞춘다.
    바다를 데우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뜨거운 바다는 뜨거운 눈물, 곧 정념(파토스)의 세계를 가리킨다.

    이 파토스를 이어, <let it be me>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기무라 형사는 이 음악에 맞춰 지휘의 제스처를 선보인다. 화려한 무대로 이 수사실을 아니 이 연극의 세계를 새롭게 전유하며, 빛나는 조명 아래 이 파토스를 표면적으로만 전유한다.

    모든 것들은 유희적으로, 또 사유 없이 충동적이고 중독적으로 내뱉는 말과 급작스런 움직임으로 드러나는 가운데, 격앙된 말이 지시하는 바는 그 말의 함의가 아닌, 오히려 이 파토스의 궁극적 배출을 위한 것이었음을,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도출하기 위함이었음을, 이 비극을 위한 희극이자, 비극이 본질이 되는 순간을 보여주고 은폐하며 망각하는, 그래서 이 희극이 비극을 매우 얕게 감싸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과 관련된다.

    끓어오르는 것이 아닌 이미 무언가 격앙되어 있는 미즈노로부터, 또한 미즈노가 주축이 된 에너지는, 그리고 거기에 이를 감쇄하기보다 또 하나의 삐죽 드러나는 다른 인물들의 중첩되는 에너지는 결국 비극(두 남녀의 재회와 살인 사건)이란 본질을 희극이란 표피를 무한하게 벌려 나가며 잃지 않는 에너지로 감싸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표피적인 순간들에 다른 역할의 양상 전환을 하던 배우들, 이들을 끌고 가는 에너지의 원동력, 이는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비극의, 비극이 지닌 무의식이라고 봐야 할까. 그리고 비극의 무의식이 이 희극을 무한히 벌려 나가고, 다시 비극의 짧은 틈새를 열어젖혔다 다시 덮는다. 아폴론의 빛이 디오니소스의 어둠을 다시 밝히며, 그럼에도 그 안에는 여전히 디오니소스의 커다란 어둠만이 자리함을 실상 보여주며.

    [공연 개요]

    공연기간 2012.08.04(토) ~ 08.19(일)
    공연시간 평일 8시 / 토•공휴일 3시, 7시 / 일요일 3시 *7일(화), 13일(월) 공연 없음
    공연장소 HanPAC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관 람 료 VIP 70,000원 / R 50,000원 / S 40,000원 / A 30,000원
    관람등급 고등학생 이상 관람가
    티켓예매 인터파크 티켓(1544-1555), HanPAC 한국공연예술센터(02-3668-0007)

    출 연 이명행 마광현 김동원 이경미
    스태프•작 츠카 코헤이(김봉웅) / 연출 고선웅 / 예술감독 전무송 / 번역 김태희
    무대 김충신 / 조명 최형오 / 음악 김태규 / 음향 도명호 / 안무 김재리
    의상 오수현 / 소품 김수진 / 분장 김숙희 / 특수효과 The Effect
    제작감독 김윤형 / 무대감독 신동환 / 조연출 김성현

    주 최 한국공연예술센터,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
    주관•제작 ㈜이다엔터테인먼트
    홍보마케팅 ㈜원더스페이스
    티켓예매 인터파크 티켓(1544-1555) HanPAC 한국공연예술센터(02-3668-0007)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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