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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기찻길> 리뷰 : 우리 역사의 무의식의 트라우마에 접속하다
    REVIEW/Theater 2012. 8. 19. 13:05

    <기찻길>은 우리의 상처와 고통으로 얼룩진 근현대사를 조망한다. 일제강점기에서부터 6.25 전쟁, 군부 독재 시절까지 이름 없는 자들을 주체로 앞세워, 그들의 이야기를 신체적인 것으로 표현해 내며, 또 무의식의 결에서 접속함을 꾀한다.

    이 상처가 배어 있는, 무의식적 트라우마는 바보 같은 화자에 의해 순진한 동화의 껍질을 걸치는데, 이 이야기는 일종의 비극이 현재가 아닌 역사로 봉합되고 있는 현실을 패러디하는 셈이다. 그의 삶에 깃든 고난의 역사가 무의식적으로 꿈틀거림이 이 무대의 현존을 이룬다고나 할까. 상처들은 코러스에 의해, 또 그들의 신체에 의해 징후적으로 드러나는 방식을 택한다.

    새를 찾아 떠난다는 신비로운 분위기의 시작은 전통 선율과 함께 붕 뜬 심상을 만드는데, 형체가 잡히지 않는 분위기는 곰 한마리가 무지하게 길어지는 태몽을 꾼 남자의 이야기, 곧 신화로 모습을 바꾼다.

    아들과 꼽추 아버지, 어머니의 삼각형 구도가 무대 상하수와 무대 중간 가에서 공간을 만들고 이 안에서 모호한 분위기가 퍼져 나간다. 기찻길 소리에 무대 흰 커튼을 뚫고 기차를 들고 온 아이(역할의 배우)는 자궁과 기차문과 거기서 곧 기차 자체다.

    ‘새보다 빠른 기차’를 일본인이 가져왔고, 고속 문명이 세워지는 것을 일종의 용광로로 표현하는 가운데 여기에 자궁의 자리가 뒤섞인다.

    매우 규칙적인 리듬으로 삽을 파는 행위, 곧 기차 길을 만들기 위해 동원되는 노동의 행위는 신음소리와 섞이고 이것들이 교차하며 인간의 근원적 고통 같은 본래적인 것과 이어진다.

    불특정한 인물들, 시대를 대변하는 인물들의 앞을 보고 움직임은 벽을 상정하고 마치 노동운동의 투쟁하는 자세를 전면에 내세운 제스처를 그대로 닮은 것으로도 보인다.

    이윽고 “우리의 철도는 힘찬 첫발을 내딛었습니다.”라는 말은 순진한 듯하지만, 하나의 외침이자 울분이 서려 있는 격앙의 목소리다. 이러한 점은 무엇을 말하는가. 곧 인식하지 못하지만 이 분위기는 비극의 그것을 담고 있고 또 그 비극이 무의식적으로 발현됨을 의미할 수 있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은 가령 지나간 어떤 것이다. 그 재현이 일시로 갑작스레 밀어닥치는, 그런 시차적인 간극의 무엇으로 낯설게 들여오는 것이다. 또는 그 에너지들의 고동침만을 감각하면서.

    한 마음을 사로잡은 소녀가 기관차가 달리다 궁극에는 바다에 도착하는지의 순진한 질문을 옮김은 그 기차에 덧씌워진 신화를 오히려 강하게 드러낸다. 순수함은 곧 깨지기 쉬움이다. 위험성과 순수, 이 지극한 낭만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사고를 잠시 유예하게 한다.

    ‘철로를 따라 움직이는 기차는 길을 잃지 않는다는 것’, 무언가 희망적으로 들리는 이 말은 단순한 사실에 대한 지극한 의미 부여이자 외부적으로 그 의미가 순진한 것임을 드러낸다.

    엘리베이터는 하늘에 도착하는 기차로 변한다. <기찻길>은 기차의 모사가 다른 것들에 적응되어 그것들이 다시 기차로 나타나는 것을 보여준다.

    일종의 재현 형식으로 삽입되는 이야기 속 말이 이어질 때 “빵 효과음을 그 중간 중간 배우가 대사를 뒤에 또 넣는다. 이 아련함은 기차의 낭만의 표식이다. 마치 삶의 절망적인 것을 희망으로 바꿔 다시 건네주는 것 같은 저 멀리에서부터 다가오는 소리이다.

    <기찻길> 속 거의 모든 여성은 인고의 삶에 성적 폭력과 착취를 당한다. 이는 사실주의적이기보다 표현주의적으로 그려지는데, 여성의 몸은 일종의 소수자의 지위를 단적으로 보여주며 권력의 심급이 가로지르는 장소로서 전유됨을 보여준다.

    소녀가 겁탈 당하게 됨은 빨간 새를 찾음으로 표현된다. 여러 헌병이 그녀를 지나쳐간다. 그런데 갑작스런 총소리가 죽음을 알린다. 끔찍하다. 이는 다시 역사의 한 장면이었을 것이라 생각이 번져간다. 이름 없는 누군가는 이름 있는 자들에 의한 부조리한 죽음을 맞는다.
     
    창씨개명을 거부하며 총에 죽어나가는 사람들은 황국신민이 되고 싶다고 외친다. 사람들은 도망갈 때 발 사각거림 빠르게 나며 다시 기차 소리로 환유적으로 옮겨간다.

    결혼식은 소란스러운 음악과 함께 바삐 진행되는데 일사천리로 의지와 상관없이 결혼이 소극처럼 구성되는지를 보여준다.

    죽음은 놀래는 총소리로 순식간에 사라진다. 충격은 주지만 이는 거의 유희적이거나 단순한 효과음처럼 느껴진다. 이는 그래서 이 죽음이 얼마나 순식간에 이뤄지고 또 외부의 강제에 의해 흔적 없이 그 생명이 지워지는지를 이 감각적인 소리의 자극만큼이나 분명하게 보여주고 그 죽음의 한갓됨을 상기시킨다.

    기차가 바다(수평의 세계)가 아닌 우주(수직의 층위)까지 올라감을 희망하는 각하에 따라 이 개발 위주의 정책에 희망이 덧씌워지고, 각하의 희망이 화자에게 전이되어 정동을 불러일으키는 사태를 맞는다. 곧 이념이 강제가 아닌 특별한 수행적 효과로 그대로 옮겨짐을 보여준다.

    희망의 새는 해외 노동자로 떠난 아버지에게 미약하고 불가능한 희망으로 다시 그 모습을 바꾼다. 각하를 보면 아버지가 생각난다는 말에서 국가의 대통령 아버지가 개인의 관념으로 전이됨을 보여준다.

    여기에 반복된 음악 리듬이 도무지 파악 불가능한 것에 몰아가는데 이 부분이 종잡을 수 없는 리듬으로 극을 이끈다.

    경제 발전은 정주형 농사를 짓는 삶 대신 자본의 흐름 따르는 이동형 인간으로 그 모습을 바꾸게 된다. 특이한 것은 하늘을 나는 각하의 꿈을 개인적 꿈으로 그려내고, 그 속에 발전에 대한 개인적 욕망이 발현되고 있다는 것인데, 이 검은 선글라스 낀 각하가 누구를 표현하는지는 짐작가는 대로다.

    그런데 이 인물을 희화화하면서 다른 인물들처럼 순진한 인물로 표상하고, 그 욕망을 순수한 것으로 바꾸면서, 오히려 의도와는 다르게 외부로 다른 사람들을 강제하는 경제 일변도의 삶이 다른 모든 것들을 배제하며 확장되는 것으로 작품은 해석을 던지는 것이다.

    “태양을 소유하는 자가 최후의 승자가 된다”는 말과 같이 역사 속에서 행위를 판별되는 게 아닌 그의 꿈이라는 미시 차원에서 이 경제 개발의 도식의 원형과 모티브를 잡아내고 어쨌거나 벗이 됐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에 의해 이 욕망의 열망은 희망의 믿음과 맞닿고 있다는 것이다.

    각하는 태양을 쟁취해서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다, 국민을 구원해 준다는 소망에 사로잡힌다. 반면 각하에게 새는 잡혀야 하는 것이고 먹어치워야 하는 것이다.

    몸을 파는 여자로 잡혀 간 여자와 해외 파병을 자처해 돈을 벌로 가는 남자의 생이별은 이 경제 성장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현실의 망각되어 있던 자리를 불러 세우며 그 역사의 부조리함을 참기 어려운 정서로 몰아붙인다.

    “빵~”하는 기차에 부여되는 리듬과 백치의 절뚝거리는 리듬, 희망을 제일 위에 위치해 조금 더 채워지길 바라는 각하 사이에 희망에 대한 아이러니와 그 부조리가 형성된다.

    “빵~”, 도무지 멈출 수 없는 정념, 아득함의 노스탤지어, 아직 당도하지 않은 무엇, 그 비가시적이지만 기차를 가리키는 분명한 수식어. <기찻길>은 기차라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장치에 추상적 희망의 가치들을 씌운 역사의 흐름에서 이름 없는 자를 호출한다.

    그들이 상처와 고통 속 신음으로 죽어갈 때 그들의 목소리는 우리 내부의 원초적인 것과 만난다. 이성적인 측면에서 사유되기보다는 타자화되지 않는 비인간적인 죽음의 타자화되는 현상을 보며, 우리는 이 타자화의 주체(극)가 되는 대신, 우리 각자의 무력함만을 본다.

    이 무력함 속에 주체의 자리는 미약해지고, 역사에서 혼돈의 주체로 이들과 뒤섞이며 나아간다. 이러한 효과를 노렸음일까. 기차의 소리는 여전히 낭만적이고 또 슬프다. 어두운 현실의 이면에서 희망은 중첩되어 있었던 것이다.

     

     

     

     

    [공연 개요]

    공 연 명 기찻길 - 역무원 이야기
    작/ 연출 박정의
    제    작 극단 초인
    후    원 서울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연극협회, 한국메세나협의회, 태영기계공업

    일    시 2012년 8월 9일(목) ~ 8월 12일(일)
       평일 오후 8시, 토요일 오후 3시 / 7시, 일요일 오후 3시
    장    소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시    간 80분 (인터미션 없음)
    관람등급 만 13세 이상 관람가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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