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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번째 <차세대안무가클래스> 쇼케이스 리뷰
    REVIEW/Dance 2013. 1. 31. 16:51

     

    아르코공연예술인큐베이션 <차세대안무가클래스>의 쇼케이스 공연이 지난 27일부터 오는 2월 2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진행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최하고 한국공연예술센터가 주관하는 <차세대안무가클래스>에는 총 13명의 차세대 안무가들의 작품이 각각 무대 위에 오르며, 준비 기간 동안 다양한 강좌와 워크숍, 그리고 멘토들의 참여가 함께 진행되어 왔다.

    몸은 말을 잃어버리다 : 최명현, <사유의 방 : 존재의 조건>

    초원의 배경과도 같은 어떤 공간도 잡아두지 못한 ‘의식의 실존’의 흐름, 처음 시작에는 일종의 구김이 있었다. 이는 일순간이고, 대체로 몸은 흔적이라기보다는 정체됨의 은유로 작용한다. 의식의 흐름을 만드는 내레이션에 몸이 따라 붙는 방식, 문학을 재현하는 방식으로서 몸이 존재한다.

    어둠 속 검은 마스크들을 쓴 존재자들은 무의식적 자아들이라 부를 수 있는데, 이 검은 가림 자체가 보이지 않음의 규칙을 인위적으로 만든다. 내레이션에 따라 이 장으로의 접속에는 몸이 분절된 간극을 도출할 수밖에 없는데, 이 접속의 순간에 글자들은 이미 저만치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말은 유희적이지만, 몸은 무겁디무겁다.

    이 말과 몸의 극명한 대조는 실재의 불가능성을 아마도 의도적이지 않게 구현한다. 이 간극, 그렇지만 말에 대한 몸의 적확한 과잉 반응, 이러한 선후관계의 명확한 주체에 뒤따르는 흐릿한 주체는 이 움직임을 배경 차원에 머물게 한다.

    이 말들의 반향에 정위할 수 없는 방향 없음, 무중력 공간, 그럼에도 춤의 환영을 남기는 굳건한 덩어리 곧 몸. 이 몸은 이 의식이 지정하는 바로 그 몸을 가리키는 것인가? 이 합치될 수 없는 불완전함의 틈에서 생성되었던 것은 무엇인가? 그저 흘러가는 시간의 무게만이 가득하다.

    욕망 없음의 항변 : 유회웅 <비겁해서 반가운 세상>

    B급 감성 독일의 딱딱한 발음이 유희적으로 펼쳐지는 포크 느낌의 일렉트로닉 음악, 콤비라는 현실로 가장한 두 사람은 음악의 흐름 따른 관계 양상을 가상적 사건들의 결합으로 흘려보낸다. 여기에는 미키 마우징(Mickey Mousing)이 음악 내지 음향 효과 차원에서 광대의 움직임을 만드는데, 이것은 이 모두 드러나지 않는, 그러나 충분히 예측 가능한 움직임들의 극적 효과 속의 스테레오타입화된 안무 방식이다.

    춤의 실질 같은 것은 찾을 수 없다. 겹의 미학 따위를 만들거나 내지 중층을 쌓지 못한다. 가장 큰 전제인 “오브제 없음”은 왜 오브제에 둘러싸인 채 벌어지는 극으로 이어지는가, 나아가 오브제-신체로까지 나아간 중간의 시작을 재정초해야 했을까. 이는 배신·위반의 방식 역시 아니다.

    애초에 그가 필기로 적은 “이주노동자” 등의 개념은 그로써 단지 살갗에 닿지 않은 개념들이었을 뿐이다. 정의가 있다고 생각하느냐의 물음이 공허한 만큼이나 빠르게 켜는 바이올린의 급변의 흐름들의 반복에 무한정하게 묶인 몸의 고투가 춤으로 구현된다. 대략 70%정도의 유사성을 띤 미키 마우징을 이루며 물음 자체를 물어 물음을 회피하려는 시도, 이 덧없음의 욕망에의 의지.

    마지막 부푼 풍선-신체는 일종의 팔루스인 셈이다. 20대의 욕망과 명품의 유비가 거기에서 관련을 맺는 게 가능할까. 그것이 아니라면 정말 아무 것도 없다. 이 부푼 욕망의 발악에는.

    사용설명서 : 비-인간의 이전, 곽고은 <도시 미생물 프로젝트-판매를 위한 춤>

    동전-기계 인터페이스, 분절된 사용설명서, 방송을 전유한 목소리. 이 기계의 인간이 되기까지의 불완전성의 지향 과정에서 완전함의 명제를 버리고, 오히려 그 자체에서 완성되는 것이 이들의 ‘기계-되기’의 일단이라 하겠다. 인형 뽑기의 인형은 장치 막 안, 주입된 기억에 따라 그만큼만 속도의 차로서의 차이만을 낳는, 분절 구문들의 시퀀스를 연속해서 만든다.

    사용 설명서를 구현하는 것인데, 이는 곧 춤이라는 기표 차원에서 메소드 타입들을 구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동시에 단기기억으로서 내용을.

    이 기계, 비-인간의 기이한 생명력은 뒤엉켜 퍼질 때의 파멸을 예고한다. 동전을 쌓아 나갈 때 어떤 쨍한 칼날 소리로까지 생각되는 으스스함이 이는데, 그리고 이 막을 확장하며 해체했을 때 이 꼬임과 경계 없음의 에로스(애초에 성까지를 간직할 수 없는 로봇이지만 이러한 뒤섞임이 인위적인 성의 장을 만드는 듯하다)에서 절단-음향의 격렬함과 음향이 끝나기 전 이른 죽음은 사망 의식을 치루는 것과 이어진다. 인공적인 검은 옷의 자름은 죽음이 출고 시점과 겹치며 시간을 꼬아 버린다. 곧 시간을 되돌리며 현상한다.

    심장 멎는 기계 신호가 전자-칼날로 이들을 도려낸다. 상품화와 함께 매혹적 상품성과 인간의 대체 가능성 사이, 그리고 조종하는 인간과 기계 언어의 사이에서, 인간을 존재하는가의 물음이 단연 따른다. 이 내레이션이 세계 전체를 덮고 있는, 자연 세계를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판옵티콘으로서 목소리를 드러내는 가운데, 인간은 이미 그 기억을 잃어버린 것 아닐까.

    [사진 제공=한국공연예술센터]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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