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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승엽의 댄스살롱] 송주원 <환. 각 (幻. 刻)> 리뷰, '불가해한 이미지들의 중첩'
    REVIEW/Dance 2013. 4. 2. 06:14

    ‘홍승엽의 댄스살롱’이란...


    국립현대무용단의 2013년을 맞아 선보이는 첫 공연은 오는 4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리는 ‘홍승엽의 댄스살롱’이다. 


    '살롱'은 프랑스어로 응접실을 가리키며, 17세기·18세기, 활발했던 프랑스 살롱 문화는 궁정 귀족의 사교계 모임이자 그 속에서 다양한 지식들이 오가는 교류의 장이 됐다. 


    네 명의 국내 안무가의 신작들을 초청한 이번 공연에서는, '댄스살롱'이라는 타이틀과 같이, 국립현대무용단의 예술감독인 홍승엽은 공연 중간 중간 관객을 만나며 함께 안무가를 공연 전에 짧게 만나보는 시간도 갖는다. 또한 공연 전후에는 극장 로비에서 4 작품의 연습실 사진 전시 및 다과를 즐길 수 있는 이벤트도 마련된다. 실제 극장을 찾았을 때는 네 명의 안무가들도 로비에 나와 관객을 맞는 모습이었다. 


    한편 이번 공연은 무용 공연으로는 이례적으로, 6일간이나 진행된다. 네 개의 작품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지 않고, 안무가 제 각각의 창조성이 발현된 작품들이다.


    송주원 <환. 각 (幻. 刻)>, 강렬한 이미지들의 현현



    ▲ 지난 3월 28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송주원 안무가, <환. 각 (幻. 刻)> 리허설 (이하 상동)


    <환. 각 (幻. 刻)>(안무 송주원)전체적으로 여러 다양한 이미지들의 나타남, 이는 각각의 이미지 자체의 ‘현현’에 가까운 드러남이다. 


    우선 이 작품에 대한 몇 가지 남는 의문점들은 되도록 멀리 한 채, 작품에 쓰인 여러 이미지들의 강렬한 현현의 성격을 띤 제시와 함께 그것을 안무로 전이시키는 과정에서 다소 불충분한 해소의 느낌이 남았다는 점에서 시작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조금 더 상세한 접근을 해보자. 


    하나, '현실 이미지'


    첫 번째로, 검은 구두를 신은 여자는 그저 사선으로 두 발을 교차시켜 정면에서 비스듬히 서 있다. 이 몸은 어떤 긴장감을 갖지 못한 몸으로 하나의 '잉여적 구문'으로 여겨진다.


    무대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서 있을 때의 몸은 실은 가장 절제되어 있는 동시에 가장 큰 잠재력을 띤 상형문자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곧 현존을 담지한다. 하지만 정장을 입은 여자는 이후 따르는 과정에 비추어서도 어떤 맥락도 가져가지 못했다.


    둘, 굴레의 형상화



    이어 긴 머리 여자가 어렴풋하게 무대 뒤에 비친다. 이는 존재로 언표될 수 없는 하나의 동물의 그림자에 가깝다. 이어 긴 머리를 한데 엮어 더블(double)로서 둘이 필연적인 상관관계의 굴레 속에 살아감을 상기시킨다. 머리가 묶여 있다는 것과 그 머리의 길이만큼 움직임은 제약받고, 또한 움직임의 구조와 호흡은 그 제약과 함께 생성된다. 


    곧 머리는 하나의 움직임을 추동하는 장치(dispositif)다. 둘은 정면을 향해 앉아 발을 휘젓기도 하는데, 이는 그 두껍게 뭉텅이진 머리카락에 상응하는 안무라 하겠다.


    한편 표현 단계 이전의 이미지 자체를 ‘일차적 이미지’로 놓았을 때, 안무가는 그 일차적 이미지를 그 매질이 갖는 출렁거림, 곧 파동으로 해석한 부분이 있다. 


    셋, 탐문하는 어른-아이



    풍선들이 촘촘하게 엮여 커다란 구를 이룬 입체물을 머리에 쓴, 더 정확히는 커다란 풍선 머리 형태를 가진 외계인 같은 여자(정마리)가 등장해 구음에 가까운 소리를 낸다. 이 풍선 머리는 뇌의 외화이자 일종의 뇌의 표피가 투명하게 드러난 것이라 봐야 할 것이다. 아이의 음성을 내는 이 신비함을 띤 여자는 사운드 공명을 통해 또 그 사운드가 가 닿는 지점의 미지를 탐문하는 아이로 현현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사운드 공명은 뉴런의 신속한 화학적 전달이 아닌 일종의 덩어리들의 모나드로 각 부분을 차지하며 전체적이고 또 느린 공명을 이루는 뇌의 형태와도 어느 정도 유사성이 있다.


    한편 이 어른-아이에 가까운, 내지는 어른이 영원히 되지 못하는 형벌을 가진 아이는 성과 속의 어느 중간 지점에 있는 가운데, 그의 노래는 상징적 구문을 지니는 대신, 그 어느 애매한 지점을 찾는 주파수의 성격을 갖는다.


    넷, 반 인간



    다음은 긴 머리 여자로 그 머리카락이 뒤덮여 얼굴이 없는 메두사의 변형적 이미지로 나타난다. 머리카락 자체는 몸의 형벌로 역시 작용하고, 반 인간이자 괴물의 형태를 입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얼굴이 없다는 점에서 그리고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점에서, 괴물이기도 하며, 동시에 괴물의 외피를 쓴 형벌을 당하는 인간이기도 할 것이다. 


    다섯, 예속된 신체



    마지막으로, 가로/세로, 2m가량의 정사각형의 치수로 묶인 머리를 쓴 세 명의 존재가 출현하는데, 이 '거대한 머리'는 커다란 머리 공간에 예속된 존재들이 겪는 굴레의 한 형태로서, 세 명의 존재 쌍은 묶여 있다.


    이들은 머리가 곧 몸 자체인 상관물적 성격에서의 머리(몸)는 내려놓는 순간 잉여물적 성격으로 놓이게 되는데, 그것에서 벗어나지 않음으로써, 다시금 예속된다. 곧 원-이미지는 어떤 파기될 수 없는 전체이자 도착적(倒錯的)으로 존재를 호출하며 그 존재를 정의하는 일종의 강력한 힘과도 같다. 


    물리적으로는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는 어떤 자석과도 같은 점성을 지닌 물체로 사용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로는 그것에 벗어날 수 없는 몸의 기억 자체가 몸의 저항할 수 없는 형벌을 만들어 낸다고 해석 가능할 것이다.


    신화적 이미지의 세계


    앞선 다섯 개의 이미지들이 중첩되지만 서로 간의 직접적인 연관을 형성하지는 않는데, 이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차원에서 그저 괴로움에 허덕이거나 나갈 수 있는 입구를 찾는 노력 속에, 그것이 실현될 수 없음에서 몸부림치는 지난한 주체로만 존재하게 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들은 마주칠 수 없는, 다만 중첩될 수만 있는 이미지 차원으로 존재한다. 


    안무가는 ‘기억의 판타지성’을 다룬다고 프로그램에서 언급했는데, 정확히 신화 속 이미지들의 차원에서 그것을 사용했음을 이야기하지는 않은 것 같다. 이번 작품은 ‘기억이 가진 판타지성’이라기보다 판타지로 가정된 원형적 이미지들의, 재현되거나 조감될 수 없는 것들의 현현에 가깝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몸의 형벌적 외피를 입은 존재들의 벗어날 수 없는 어떤 차원에서 그들의 내재적 기억을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이것과 유사하게 프로메테우스의 몸은 고통과 극복의 의지를 담은 기억 자체일 것이다), 이 전체 풍광을 우리 삶의 한 기억이라고 보기에는 크게 이질감이 드는 것이다.


    일차적인 이미지를 안무가는 신화적인 차원에서 서로 연결되는 대신 떠도는 기억의 부재와 동시에 망각될 수 없는 기억의 단편을 지닌 존재들의 서글픈 운명으로 조망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안무는 그 이미지들을 기괴한 생명력으로 살아있게 하는, 정확하게는 그것이 갖는 머리카락과 머리의 변형된 이미지들의 장치에 적응하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춰 최소한도로 드러나고 있다.


    이미지와 안무 사이


    결과적으로 정마리의 소리에 따른 트랜스는 갑작스러웠고 일차적인 이미지들이 가진 잠재성을 인지했을지언정 이것들을 온전히 안무화하고, 그 시간의 퇴적을 온전하게 쌓아가거나 지속하는 여지를 만드는 데 있어, 그리고 알 수 없는 세계의 불연속적 환상 외에는 안무의 리듬을 만드는 데는 불충분했다. 곧 세계를 펼쳐 놓는 데에만 어느 정도 이미지들의 잠재성을 활용함을 통해 가능했지만 이 세계가 어떤 감응을 직접적으로 일으키기에는 부족했다고 보인다. 


    이는 협업의 과정에 있어 충분한 시간을 들이지 못한 부분으로도 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 이미지 변환 과정에 따른 안무 그 자체의 고안에 공을 들이지 못한 부분에서 오는 것이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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