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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채권자들>: '결여로부터 발생하는 사랑'
    REVIEW/Theater 2013. 5. 19. 15:03

    무대-실재: ‘물 자체의 환상성’


    ▲ 지난 5월 10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열린 연극 <채권자들> 프레스리허설 장면 (이하 상동), 연극은 26일까지 열린다.


    연극 <채권자들>은 1장 구스타프-아돌프, 2장 테클라-아돌프, 3장 구스타프-테클라, 이렇게 2명의 인물들이 대립각을 세우는 방식으로 각 장이 촘촘하게 교직되어 있다. 


    공간은 마치 실내가 열려 있는 느낌이다. ‘뚜껑이 열린 세계’라 하겠다. 실내가 야외와 혼합되어 있고 바위 등이 일상의 레디메이드들과 함께 조각적 대상들로 형상화되어 있다.


    프로시니엄 아치 없이 단지 일종의 강을 형상화한 투명하고 일정하게 평평한 패널 그 위에 ‘탁’ 하고 놓인 커다란 패널이 있을 뿐이다. 이 조명의 밝음과 객석과 분리되지 않은 듯한 가까움은 객석과의 경계 허물기가 아닌 온전히 환상성으로 승화된다.


    이는 내면과 외면의 만남을 의미한다. 더 정확히는 내면이 방기되고 외부의 힘이 내면을 침투함을 의미한다.


    이는 아내 테클라(배우 길해연)가 그의 내면에 들어왔다. 그의 외부에서 곧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그를 엿보게 되는 극의 시점과도 겹쳐 있다. 채권자가 쫓아옴의 꿈을 쉽사리 등장 않는(막상 세 인물이 겹치게 됨은 3장에 들어서인데, 한 명을 조감하며 펼쳐지는 팽팽한 긴장감은 이런 등장에 대한 기대와 그의 결여로서 동시에 과잉으로 존재하는 것에 의한다) 등장 전의 아내를 계속 이야기함으로써 신비한 모호함을 상승시킨다.


    또 하나의 부가적인 무대의 구성물은 아돌프가 만든 조각으로, 삼차원의 조각은 하나로 모아진(집중된) 곧 쪼그라드는 신체(옆에 높인) 형상인데, 만듦의 흔적이 남은 덩어리로서, 피‧생명이 느껴지는 은유가 작동하는 평범한 조각-물론 여기에는 조명의 힘이 있다-으로, 아돌프가 가진 예술가를 상정하는 상징적 환유물로 무대에 놓인다. 


    '보이지 않는 시선': 결여에 의해 매개되는 사랑 



    아돌프(김영필 배우)는 구스타프(이호재 배우)에게 ‘아내가 내 신체 일부 아니라는 것이 신기하다’는 말을 한다. 이는 아내는 이미 온전히 자신의 삶의 평면으로 합쳐졌지만, 여전히 타자로서 이름‧신체를 갖고 있다는 것에 의문을 느끼는 경지다. 그만큼 아내의 존재는 익숙해지고 또 다른 세계에서 그 점을 상정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반면 이러한 사랑은 단지 아내가 등장하지 않는 가운데, 그에 대한 거리를 확인하며 또 사라질 것을 감각하며, 무의식적으로 초조해지는 과정을 겪는 가운데, 아내가 그리우며 두렵다는 감정으로 이어진다. 이는 친숙하지만 낯섦이라는 언캐니라는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부부의 관계는 동생과 누나의 관계이자 스스로는 ‘지배당함’의 층위에 가로 놓이고, (거리를 두고) 욕망하는 아내로 자리하며, 다시 그 욕망함과 그에 대한 또 다른 거리는 예술로 승화됨의 가능성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본다면 조각은 곧 욕망의 2차적, 그리고 불완전한 욕망으로 남는 재현물인 것이다. 이는 일종의 아내를 경외(?)하며 결코 그(러한 이상적 존재)에 도달하지 못하는(동시에 끊임없이 좌절하는) 아돌프의 결여가 예술을 추동함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불행해지고 그 사람이 (그 사실을) 알게 되는 거야.”, 아돌프가 테클라를 향해 테클라의 옛 애인이 자신의 불행을 알게 되고 또 다른 고통에 빠짐을 욕망함을 잉여적으로 그리고 비관적 기조에서 뱉어냄은 이미 그 각인된 슬픔이 지워질 수 없음을 그리고 역으로 괴로움만이 사랑을 절대적으로 증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사실이 결국 해소될 수 없는 어떤 타격을 그 알지 못하는 남자에게 끼칠 수도 있음을 의미할까.


    아돌프는 테클라의 삶의 과거를 가지고 지배하며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에 대한 측면에 묶여 있는 한편, 테클라의 모성과도 같은 지배당함의 관계라는 곧 그녀의 울타리에서 삶을 구가하는데, 이는 ‘어린 아이’인 아돌프가 안전하게 누군가가 지켜보는 가운데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하고, 반대로 누군가를 ‘보호해야’ 하는 구획(경계) 짓거나 안정화되거나 역할을 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는 그의 완성되지 않음은 부유한 듯 예술가로서 모습과도 상응하지 않을까. 


    '채권자란': 감당할 수 없는 부채를 요구하는 채권자



    구스타프와 테클라의 만남은 오랜만에 현재로 자연스레 이어짐을 상정한다. 앞선 1부와 2부의 이야기들을 지워버리며 동시에 그것이 낯섦에 삽입된 잉여처럼 감각되는 것과 같이 기억‧추억은 묻혀 있던 셈이고, 아돌프에게 테클라는 사랑에 있어 ‘태초의 시작’이 아니었는데, 이는 테클라의 실제 사랑의 뿌리가 구스타프에게로 향해 있음에서 드러난다. 이 시작은 사랑의 첫 번째를 가리키는 동시에 지워지지 않는 최초의 자국을, 또한 아돌프로 하여금 근원적인 의지의 대상이 됨을 동시에 의미한다.


    앞서 가두지 않은 이 공간의 마지막 요소는 무대 양 옆, 그 중 하나는 무대 오른쪽(상수)의 뚫린 단 하나의 구멍으로, 삐죽 나온 갈대들이다. 이는 아돌프가 앓고 있는 결여에 대한 혼란과 집착을 상정하는 마치 무의식에서부터 나온 ‘영원한 상처’를 상기시킨다. 극의 막바지에 치달으며 생기는 아돌프의 균열, 그리고 그가 마주하게 되는 진실의 실재는 이 초자연적 모호한 공간에서 유일한 구멍이자 간극이 증거하고 있는 셈이다.


    구스타프의 등장은 아돌프와 대립하며 또 다른 삶의 평면을 형성한다. 익숙했던 광경, 평온‧현존함의 지난 무대가 상정하는 삶은 ‘법’이라는 상징적 개념 아래, 책밖에 없는 삶, 곧 지식과 생명력, 소설 곧 예술의 간극을 이야기하게 된다.


    그가 찾아온 것은 과거에 대한 사랑이 아닌 명예로서, 그만큼 절실한 것이라기보다 부차적인 것이며 외부적으로 스스로를 규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채권자는 분명한 물질에 대한 권리로써 채무자를 강제한다. 그것에 대한 빚이 사랑의 관계가 아닌 법적 구속 관계로서 새겨질 때, 곧 구스타프가 테클라에게 있어 채권자로 분하는 것이다. 



    테클라처럼 그것이 영속하는 사랑을 환상적으로 불가능하게 비현실적으로 꿈꾸는 대신, 그리고 그에 대한 사랑의 꿈을 일시적으로 다시 꾸는 여자의 유혹 내지는 갈망을 내치고 구스타프는 ‘또 다른 현재’로서 젊은 연인과의 관계를 시작한다고 한다. 


    아돌프의 '최초'에 대한 결여, 그리고 구스타프가 제3자 그 자체로 셋의 관계를 가로지를 때 그로 인해 나타나는 아돌프의 간질로 인한 폭풍 같은 동요와 폭발은 곧 잠잠해진다. 이는 사물과 자연, 조각과 상품이 뒤섞인 측면의 혼돈으로 가득 찼던 무대가 어느새 자연의 바람이 흐르는 공간으로 돌아감과 정확히 일치한다.


    구스타프의 (최초가 아닌) 근원적인 의미에서의 사랑을 상정하는 '결혼'이라는 지점으로 돌아감, 이는 맹목적이고 인위적인 끊음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시작의 성질을 갖는다. 이른바 감정 없는 ‘시작-기계’. 여기에 '법'의 이름으로, 테클라와 아돌프의 불완전한 관계에서 그 균열의 끝에 구스타프가 다시 등장함으로써 <채권자들>은 비극을 맞는다. 이 파멸의 국면은 아돌프의 ‘여린 연약한 생명력’을 규정하며 그 '법'이 부조리가 아닌 실제적으로 작동함을 의미하게 된다.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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