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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모의법정>: 원점에서, 그리고 다시 원점으로
    REVIEW/Theater 2013. 7. 12. 04:06

    '이것은 연극일 뿐'



    배우들은 역할 이전의 상태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건 그저 연극입니다”라고 강조한다. 현재 연극은 어떤 경계를 긋고 들어간다는 것인가. 아님 이 말은 이미 적용되고 있는가. ‘크레타 섬 사람들의 거짓말 논리’가 여기에 해당된다.  


    연극이 자문을 구한 이광철 변호사는 검열이 너무 강압적이라는 의견을 전한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소환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레젠테이션 형식으로 계속 진행되는 연극은 일종의 상투적인 통과의례 형식 먹는 게 가능하다며 여타 극장에서 통상 허용되지 않던 금기가 가능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대로 돌아가도 된다며 책임지지 않을 것임을 ‘공지’하며, 어떤 개인적인 자아로 소급되는 영역으로 연극을 한정 짓는다.


    공연은 국가보안법의 야만성, 곧 헌법이 공연예술의 자유, 그것을 포함하는 표현의 자유라는 큰 영역을 보장하고 있지만, 그것이 국가 보안의 맥락과 겹치는 지점에서 범법이 됨을 넌지시 언급한다. 


    주체와 객체의 혼종적 경계 사이




     연극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함으로써, 책임을 지는 것이 실은 그다지 개연성이 있다거나 합리적이지 않음을 전하며 우리가 단지 이 연극 안에 있기 때문에, 연극 공동체 안에 위치하기 때문에 이 책임이 성립됨을 의미한다. 


    여기서 처벌에 대한 논지 없이 단지 처벌의 주체만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여기서 비가시적인데, 일단 제3의 초자아적 권력은 우리를 잠재적인 범법의 대리자로 둔다. 그것은 피할 수 있는 기회라는 환영적 표지, 또 그것을 부인하는 언표 곧 연극의 방어막, 그리고 각자 이성을 지닌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질 수 있는) 주체임을 모두가 확인하며 우리는 이 속에서 참여하고, 또 모종의 벗어남의 유혹에, 그 말도 안 되는 도주의 시험에 들며, 자율적 주체와 처벌에서 자유롭지 않은 객체라는 두 상이한 층위에서 충돌하는 참여자로서 존재하게 된다.


    그것과 관련 없는 자유로운 (비)주체가 이제 자유롭지 않은 모순의 주체, 곧 평등하지 않은, 보편적이지 않은 특정한 주체가 된다. 곧 우리는 이 ‘잠재적 위협’의 법적 정의가 그은 선에 관련된 정치적 존재가 된다.


    우리는 표현의 자유의 경계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실은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가능한지, 실은 불가능한 것이었는지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표현의 자유의 정치적 전제를 실은 알지 못했던 것이다.


    국가보안법의 실재적인 수행적 효과



    이 국가는, 곧 이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는 국가는, 이 연극의 단지 외부가 아닌 그것을 강제하고 제한함을 이야기한다. 곧 우리는 관객으로서 있기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대표성을 띠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처벌은 지연되고 있고 오히려 연극 이후에 올 것임을 전제한다. 


    이 연극은 끊임없이 이 연극을 메타적으로 언급하고, 이 연극의 외부로부터 연극을 정의하고 있다. 마치 촉박한 듯 그리고 지금이라도 나갈 수 있음을, 이 연극은 다행히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이야기하는 듯도 하다.


    극은 나아가 법을 보여준다. 아니 이를 읽으며 상기시킨다. 그리고 연극은 앞선 장면들이 이에 해당하는지를 ‘자가’ 검열하게 한다.


    김일성을 보기 전에 또 그것이 검열에 걸릴 수 있음을 주지시킨 뒤(그렇지 않으면 불고지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것 역시 언급된다) 하나의 잉여 차원에 그 이미지를 둔다. 이 대중매체의 잡다한 이미지는 그 순간순간 수감 따위의 죄와 처벌을 상기시킨다. 


    이 잉여는 어떤 묵념과도 같다. ‘죄’가 없지만 ‘처벌’의 범주 안에 드는, 그리고 그 죗값을 받은 많은 지난 ‘범죄자’의 지나간 것들, 더 상위의 지배 주체, 그리고 그것을 매개하는 의미, 이데올로기 등의 지속적인 제3의 주체를 여전히 가정하는 가운데.


    현실로, 그리고 다시 원점



    배우들은 사라지고 인터뷰 영상만을 남기고, 공연은 그 처음 시작했던 지점으로 돌아간다. 공연을 시작하는 시점에서의 이야기는 공연이 끝나고서 여전히 유의미하다. 이는 우리의 입장이고, 이 문제를 접한 우리의 유의미한 인식의 지점이다. 


     시작 전에 경찰이 보러 오는 것의 공포, 소환장 오면 후회하게 될 것, 무언가 닥칠지도 모르는 채 겪는 두려움들, 그럼 이는 다시 보면 연극을 지배하고 있던 이들의 실제 태도이기도 했다.


    국가보안법은 이전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며 유효한 문제이자 정치적 지점이다. 처음의 고민은 여전히 유효하고, 여전히 타당하다. 그것이 어떤 회의를 형성하는 지점, ‘국가보안법’(의 존폐 여부)을 궁구하는 지점에서 이 물음은 어쩌면 가장 미약한 존재(자유롭지 않은 존재)임을 표상하며 동시에 진정 가장 자유로운 주체로 거듭나는 지점에 다름 아니다.


     끝이 곧 시작으로 돌아가는 것, 어떤 끝도 내려 하지 않는 것, 곧 이는 우리 모두의 한국인으로서 가진 원점의 문제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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