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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혜림, 《Night Movers》: ‘바깥’의 기호들
    REVIEW/Visual arts 2021. 10. 19. 16:49

    디스이즈낫어처치에서 열린 차혜림 개인전, 《Night Movers》 전시 전경. ⓒ김정현

    전시 《Night Movers》는 상징으로 파악되거나 도상으로 수렴되지 않는 기호적 사물들의 불연속적이고 불균질한 매듭들이 점철된다. 이 말이 없는, 또는 말이 되지 않는 엮음에 따라 그 사물의 이름이 지워지며 갱신되는 전시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지웠을 언어, 곧 캡션 없는 이 사물들의 전시[각주:1]에서, 어떤 언어가 있는 세계의 현재를 표상하는, 그 내용을 유추해볼 수 있는 그림이자 가장 거대하게 자리하는, 본문이 없는 책들이 군데군데 있는 이 전시장에서 유일하게 읽을 수 있는 본문에 해당하는 그림 역시 명확하지는 않다. 
    우선 기름종이에 그려진 이 그림(〈Recall〉, 우레탄 비닐, 마커 펜, 600×400cm, 2021.)은 도구를 다루는 사람들, 작업하는 사람들을 표한다. 당연히 그것들은 어떤 멈춰진 장면들이다. 그리고 이는 어떤 행위를 하는 사람들의 재현이다. 사람들은 뼈대만 건설된, 곧 중앙이 텅 빈 골자를 엮어 가는 미완성된 구조물을 두고는, 그 구조물의 일부처럼 그것을 안에서 밖으로 또는 밖에서 안으로 손을 뻗쳐 만들어 가거나 그 안팎에 앉아 내통 없이 그저 자리하는 모습이다. 

    이 그림의 뒤에는 사물들이 분포한다. 곧 그림 두 점과 설치 두 작품은 그림의 그림자처럼 사물들로 자리한다. 중심을 공유하며 중앙으로 향할수록 더 짙게 점들이 분포하는, 세 개의 원으로 분할된 일종의 ‘망막-역기’(〈Broken line〉, 우레탄, 폴리스티렌, 마커 펜, 스테인리스 스틸, 가변크기, 2021.) 앞에 높인 그림은 그저 회색 배경에 어두운 자줏빛 색의 비선형적 도형으로 분할된, 설치에 상응하는 의미 없음의 회화(〈Protective shell〉, 타폴린에 회화, 100×100cm, 2021.)인데, 그 옆에 회색 원과 직사각형이 두 번 결합한 또 다른 회화(〈Protective shell〉, 타폴린에 회화, 60×81cm, 2021.)가 벽면 기둥 옆에 세워져 있다. 이는 그 앞에 놓인, 즉 그림의 오른쪽 끝의 뒤에 놓인, 화분과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책이 꼽힌 직삼각형의 하얀 설치물(〈Dog’s ear〉, 목재, 틸란드시아, 책, 우레탄 코팅, 2021.)의 기울기에 상응하며, 동시에 인테리어 조각과 같이 공간에 자연스럽게 분포한다. 
    그리고 또 하나 잘 눈에 띄지 않는 그림 한 점이 발견된다. 이는 사물-그림자를 생성하는 가장 큰 그림의 왼쪽 끝의 방향으로 연장되는 검은 그림(〈Protective shell〉, 타폴린에 회화, 33×53cm, 2021.)이다. 아래의 반원과 그 양옆으로 직사각형, 그리고 그 위로 ×자 표시가 된, 그러니까 그냥 검은 형태의 어떤 회화는, 잘 가시화되지 않은 내용으로서의 형체들을 그 앞 기둥과 함께 공간의 잘 보이지 않는 자리에 위치하는 물리적 분포에 상응시키고 있지만, 마찬가지로 앞선 ‘인테리어 회화’ 같이 어떤 의미로 수렴되지 않는다. 

    하나의 그림이 전시장을 치우쳐서 가로지르고 있다면, 그 그림 앞에는 숫자 4―소문자 h가 뒤집혀서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설치물이 앞쪽으로 기울어져 있다(〈Number 4〉, 스틸, 나무, 고무 볼, 석고, 거울 필름, 2021.). 그 앞, 검은 천 안에 몇 개의 사물이 놓이는데, 구불거리는 구조물, 노란색 원기둥, 발목에서 잘린 왼쪽 신발, 내용 없는 흰 책들, 일종의 바람개비 모형의 네모난 판 두 개를 중앙에서 교차시키며 접합한 사물, 망치와 끝 마디가 잘린 손과 그 손가락, 옆면이 바닥에 닿은, 맹인안내견이 그려진 회색 원기둥 등(〈False step〉, 혼합매체, 가변크기, 2021.)이 그것이다. 
    또한 그 앞에는 중앙의 원기둥과 연결된 누인 파란색 얼굴들―하나는 코가 나와 사람의 얼굴을 감각하게 한다면, 그 옆은 그 코가 매끈하게 다듬어져 사람의 형체에서 조금 더 멀어지는, 그럼에도 작은 선분으로 모두 연결되어 있는 가운데, 그러한 차이가 미세하여 그것들 모두가 사람의 형체로 감각되는 얼굴들―(〈 (1/2) × world〉, 우레탄, 페인트, 마커 펜, 스틸, 2021.)이 있다. 그 옆에는 캣타워 같은 재질의 계단형 구조물과 그 위의 뼈대만 있는 맹인안내견의 형상(〈Seamless sound〉, 인조 모피, 나무, 구리 파이프, LED 네온 플렉스, 가변크기, 2021.)―이는 그 앞 계단의 바닥에 깔린 공간과 그 재질을 의태한다.―이 있다.

    파란 얼굴들의 조금 더 먼 다른 옆으로는 모서리에서 중앙으로 향하는 뾰족한 긴 삼각형 모양의 입체 장식이 달려 있는 흰색 합판(앞선 회화 한 점이 조각의 기능을 하는 회화라면, 이 조각 같은 합판은 회화의 기능을 애매하게 하는 조각이다.), 그리고 그 앞에 길게 허리를 뻗은 채 서 있는 맹인안내견 한 마리가 있다. 이 맹인안내견은 앞의 의사-캣타워 구조물의 작은 동물의 뼈대에 상응하며, 가장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존재의 형태로 부상한다. 또한 그 앞의 조각들이 중앙으로 모이는 합판(이 합판과 맹인안내견은 하나의 작품을 이룬다. 〈Secret character-guide dog〉, FRP, 섬유 유리, 흑연, 나무, 베개, 가변크기, 2021.)은, 그 옆 벽면의 시계 모양의 구조물(〈Faithful witness〉, 타폴린에 회화, 가변크기, 2021.)로 연장된다. 

    캣타워-파란색 얼굴-맹인안내견이 마주하는 그 앞의 면, 곧 카펫을 깐 계단 위에는 여러 층의 샹들리에와 거기에 걸린 일정하게 접힌 수건들(〈Throw in the towel〉, 알루미늄, 수건, 스틸, 가변크기, 2021.), 그 옆에는 ×자와 □자의 네온사인 장식이 각각 위아래로 두 번 반복되는 뼈대만 남은 구조물(〈XOXO〉, 스틸, LED, 280×61×56.5cm, 2021.)이 있다. 
    애써 이것들을 묘사하더라도 명확해지는 건 없다. 파편들을 매듭지을 특별한 단서는 없다. 핸드아웃의 작가 노트 발췌 부분을 참조한다면, 이는 일본의 슬럼가, 지도에 없는 산야라는 지역의 사람, 곧 작가가 “자발적 실종자”로 명명한 사람을 새로운 “좌표”로 구성하며 서사를 만드는 작업이다. 자발적 실종자는 “스스로 사라지려는 사람들의 좌표를 은밀하게 이동시키는 사람들과 주변 사람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이후의 남아있는 사람들(The Leftlovers)”과의 관계에서 살펴볼 수 있다. 곧 자발적 실종자가 표상하거나 재현할 수 없는 일종의 실재라면, 그 바깥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성을 살피면서 그들의 존재를 추정하고 복원할 수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전시로 돌아오면, 가장 큰 그림이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재현이라면, 그 바깥의 설치와 회화 들은 모두 그 존재들의 흔적을 가리킬 것이다. 전시장 안의 작품들이 아니라, 그 공간 바깥을 가리키는 듯한, 곧 그 공간을 탈주하려는 듯한 이 파편 같은 작업들은, 어떤 스타일의 도열이 아니라, 또 안전한 공간에의 안착이 아니라, 공간 자체에 기이하고 파악될 수 없이 자리한다. 그렇지만 그 자리함은 매우 굳건한 편이다. 예컨대 이 사물들은 원래 있던 공간의 낯섦 자체로부터 탈구되어 나온, 부조리한 사물들이다. 
    결과적으로 작업들 각각이 그리고 그것들 간의 관계에서 해독 불가능한 지점을 낳는 건 일정한 미적 도상의 형태를 띠거나 하나의 계열체로 쉽사리 수렴하지 않는 모호함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맞닥뜨리는 관람객은 작가 노트에서의 새로운 좌표에 대한 감각을 만들려는 차원에서 도출되는 언어와 만난다. 그 지점은 낯선 그리고 흐릿하면서도 뚜렷한 이중의 감각이 공통적으로 체현될 것이다. 《Night Movers》는 거기에 위치한 존재자들을 현실적으로 탐방하는 것이 아닌, 그 존재자들의 불가능성을 마주하는 정도의 감각을 출현시키는 듯하다. 

    김민관 mikwa@naver.com


    [전시 개요]

    차혜림 개인전 《Night Movers》
     
    전시기간: 2021.10.14~2021.10.27
    관람시간: 11:00-18:00 
    전시장소: 디스이즈낫어처치(TINC)(서울시 성북구 삼선동 4가 37 (구)명성교회)
    디자인: 장원호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1. 1. 각 사물에 해당하는 캡션이 실제 존재하는데―이 각주는 부기에 해당하며, 작품명을 지정하는 것 역시 그에 속한다.―, 이를 당시에는 확인하지 못했다. 반면 캡션은 불투명하고 두꺼운 기호에 가까운데, 작품을 사물로 환원하거나 작품으로의 지시성을 획득하려고 하거나 하나의 의미로 수렴할 수 있는 가능성과 멀어진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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