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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적산가옥》: 중층의 시간과 시각
    REVIEW/Visual arts 2021. 10. 15. 11:38

    문화연구의 시각을 도입하기

     

    전시 《적산가옥》 전경 ⓒ오석근(이하 상동)

    적산가옥이 산재한 동인천 부근에 새롭게 자리한 부연에서 열린 전시 《적산가옥》은 해당 지역의 역사를 현재에 각인시킨다는 점에서 미술 전시로서는 매우 드문 경우다. 세 명의 작가는 이의중 건축가와 같이 현대 미술 작가만으로 구성되지 않았는데, 건축사와 근대사를 연결하는 리서치를 작업으로 연장해 온 카마다 유스케와 실제 『신흥동 일곱주택』이라는 책을 이의중 건축가 외에 여러 작가와 함께 만든 오석근 작가가 참여하며, 건축에 대한 전문성과 실제 경험을 공유하며 전시로 연장할 수 있었다고 보인다. 레퍼런스가 모인 테이블 위에 함께 놓인 『신흥동 일곱주택』은 전시의 밑거름이자 전시를 참조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적산(敵産)은 자기 나라에 있는 적국(敵國)의 재산(財産)을 의미한다. 적산가옥은 1876년 개항 이후부터 1945년 광복 이전에 일본인이 조선에 지은 “거주공간”으로, 이는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한국의 생활양식으로 전유되었으며, 현재에 이르러서는 재개발에 대항한 문화사적 보존과 레트로적 문화 공간으로의 활용이라는 두 차원의 주장으로 전개된다. 여기에 《적산가옥》은 문화 연구의 공백을 지시하며 전시로 구성한다. 
     

    사진 작업을 하는 오석근 작가의 ‘인천’ 작업은 전시장 전체의 곳곳에 놓인다. 과거 인천 시장의 관사로 사용된 부윤관사의 2층 모습은 일본 건축에서 족자를 걸고 꽃이나 장식물을 놓는 일종의 집 안 전시 공간인 도코노마 위에 책장, 일종의 돌출 창인 우측 츠케쇼 앞의 트로피, 바닥에는 장판을 깔아 사용한 모습 등은 한국인의 삶이 투영된 결과다. 작은 병풍 형태로 만든 작업들은 적산가옥의 뼈대나 틈과 같은 표면을 밭게 찍은 결과로, 공간과 관람자의 거리를 협소하게 구성하고 조망의 시선을 거두는데, 이는 형태들 자체보다 시간이 켜켜이 쌓인 동시에 이지러진 시간의 무덤에서 중심을 잡는 것의 어려움을 현상하는 듯하다. 

    전시장 입구에서 가장 먼저 들어오는 카마다 유스케의 〈만약 그들이 살아 있다면, 오늘 밤의 달을 어떻게 볼 것인가〉(2021. 8'43", 2채널 비디오)는 일본과 한국의 두 지역, 장소를 각각 해당 국가의 퍼포머가 한 명씩 등장하여 마임 동작으로 허공을 또는 눈을 감고 손으로 건물을 더듬어가는 퍼포먼스를 2채널로 재생하는 영상 작업이다. 이는 적산가옥과 달리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한반도와 중국 침략을 위한 군사기지로 건설한 나고야성의 터가 남아 있지 않음을, 조선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히데요시의 조선 출병에 참여한 장군들인 “코바야카와 카토 고니시가 세상에 있다면 오늘 밤의 달을 어떻게 봤을까”라고 읊은 노래와 연결시킨다. 
    이를 통해 작품은 부재하는 역사의 현존을 대리해, 사라진 존재의 몸에 빙의하는 것을 퍼포머들에게 주문한 것일까. 하지만 여기서 사라진 현존은 차라리 장군들이기보다 그들을 상상하는 데라우치 마사타케의 현존으로, 나아가 역사와의 간극을 상상하는 동시대인의 현존으로, 이전의 현존 자체를 재현하기보다 역사의 간극을 메우려는, 사라짐의 시간에 대응하는 현대인의 인식을 초점화한다. 눈을 감은 퍼포머의 모습은 달에 대한 인식이라기보다는 달만큼 아득한 역사와의 거리, 그러나 분명한 존재의 형상을 나타내고 동시에 체현하는 듯 보인다.

    카마다 유스케의 또 다른 두 작업 〈Japanese Houses〉는 각각 세 개의 도면을, 그리고 세 개의 일본식 주택을 병렬한 것으로, 적산가옥이 잇는 국제적 반경을 중첩, 교차시켜 시각화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먼저 영상 작업 옆에 위치한 작업은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1943년 미국 유타주에서 열린 소이탄 실험을 위해 지은 적산가옥, 1938년 도쿄에서 열린 대 소이탄 연소 실험을 위한 적산가옥, 1927년 안토닌 레이먼드에 의해 설계된 도쿄의 일본식 주택(미국에서 자발적으로 지어졌으므로 일본이라는 ‘적국’이 한국에 지은 재산과는 지칭이 달라야 할 것을 전시 핸드아웃의 서문 역시 지적하고 있다.)이 각각 배치되는데, 이 세 가옥의 도면은 각각 자신이 위치한 방향의 부분만을 남기고 다른 부분과 합체된다. 그리고 그 잘라짐에서 그 형태를 가장 많이 남긴 1943년의 도면이 가옥의 형태를 가장 온전히 남기고 있고, 이어진 1938년과 1927년의 도면은 가옥의 반절 정도씩을 가지며 하나의 가옥 형태에 가까워지는데, 이는 다시 그 옆의 1943년의 도면에서의 가옥의 모습에 상응한다.
    이는 또 다른 〈Japanese Houses〉 작업에서는 실물의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1930년대 현재의 대만 타이페이에 지어진 적산가옥, 1930년대 브라질 레지스트로에 일본인 이민자들이 지은 일본식 주택, 1930년대 인천에 지어진 적산가옥으로 이어지는 세 개의 사진은, 역시 각각 잘라 이어놓아 높낮이가 다른 하나의 사진으로 만든 것이다. 대만과 한국 모두 일제강점기를 겪은 반면, 중앙의 일본식 주택은 브라질로 이주한 일본인들이 같은 양식으로 지어놓은 것이라는 점에서, 지역과 맥락의 차이가 있는데, 이는 공통된 일본식 주택의 모습으로 연장된다는 사실이 인지적 충격을 준다. 
    국제주의적 시각 또는 장소의 확장적 시각이 전제된 이 불균질한 입체는, 동일한 이미지들을 중층적 배치로써, 다시 하나의 시각으로 배치함으로써 시각에 대한 역사의 입체성과 파악되지 않는 단면을 드러낸다. 나아가 이 융화되기 쉬운 공통의 형태는 세 사진의 배치처럼 시각을 쪼개고 이어, 하나의 매끄러운 테두리가 아닌 울퉁불퉁한 시각적 형태의 요철을 가진 입체로 현상됨으로써 그 차이를 드러낸다. 곧 공통의 기반과 형태의 간극을 지시하는, 그리고 동일한 것들을 내포하고 있는 경계의 매끄럽지 않은 구획은 순일한 이미지라 믿어지는 것에 균열을 내며 그 중층적 구조를 가시화한다. 

    이의중 건축가의 〈신흥동 9주택〉(2021. 혼합 매체, 가변 크기.)은 『신흥동 일곱주택』의 성과의 연장으로 볼 수 있으며, 신흥동의 2호 주택, 단독주택, 마츠야, 나가야 등 다양한 일식 주택의 실측 도면과 상량문, 각종 리서치 보고서, 책 『신흥동 일곱주택』 등을 전시한다. 서문을 인용하면, 2호 주택의 경우 “본래 두 개의 가옥이 하나의 구조를 쌍둥이처럼 공유하고 있는 2호 주택이지만 이를 한 채로 사용하기 위해 두 가옥의 구분을 없애고 하나로 보이도록 수리를 한 것”이라고 한다. 
    증축과 변형의 상태 이전을 본래 건축의 설계도를 추적해 파악하는 작업―전시장에서는 “일식가옥 모듈 치수”와 “해방 이후 변형된 치수”의 두 도면이 각각 위아래로 걸려 두 도면을 비교 검토할 수 있다.―은, 중첩된 현재, 과거에 둘러붙은 현재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나아가 누적된 시간 이전의 초기 모습을 상상하는 작업이다. 도면을 읽는 시각이 훈련돼 있지 않은 이상, 도면들의 차이를 확인하기는 쉽지 않은데, 〈Japanese Houses〉 작업들이 시각의 공시적 차원을 접근하고 보여준다면, 그리고 오석근 작가의 ‘인천’ 시리즈가 적산가옥의 기괴한 현재를 초점화하거나 그 현장의 무게를 감각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신흥동 9주택〉의 도면들은 통시적인 차원에서 역사의 흐름을 시각의 변화로 드러낸다. 이는 건축가의 시선에서 찾은 시각 너머의 역사에 대한 상상적 차원을 현상한다. 
    이러한 이미지는 여전히 남아 있는 신흥동 주택이라는 현재의 시각과 물론 어느 정도 겹치거나 맞물릴 것이다. 과거의 이미지(도면)의 연장에서 현재의 이미지 질서를 추적하거나 또는 그 역의 과정과 같이 시차와 간극의 이미지의 배합을 통한 해석의 방식이 여기에는 적용되고 있다고도 할 것이다. 이는 다양한 읽기의 방식, 참조의 방식, 시각들의 조합을 통해 현재의 ‘다른’ 읽기, 또는 가시화가 가능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역시 인상적이다. 

    《적산가옥》은 리서치에서 출발한 작업 방식이 어떻게 그 과정을 압축적으로 결과물로 전개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전시이다. 오석근 작가의 작업이 적산가옥에 관한 현재의 무늬라면, 다른 두 작가의 작업은 그 구조에 대한 지(시)에 가깝다. 오석근 작가의 적산가옥의 사진이 삶의 양태들을 전시한다면, 곧 인류학적 범주를 구성한다면, 그리고 이의중 건축가의 작업이 신흥동을 건축적인 차원에서 접근해 해당 자료들을 읽고 종합하는 관점을 구축하도록 유도한다면, 카마다 유스케의 〈Japanese Houses〉의 작업은 고고학적 리서치 결과가 압축적 도상으로 드러나며 간명하게 국제적 차원의 (동)시대상을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실제 《적산가옥》은 구 한옥을 그 외양을 최대한 보존하며 리모델링한 건물인 ‘부연’에서 열렸다는 점에서, 전시가 가리키는 장소와 현장이 맞물리는 듯한 인상을 준다. 전시에서 일본이 지은 본래 건물의 도면과 해방 이후 변형된 치수를 알 수 있는 도면 두 개와 함께 걸린 1938년의 상량문 역시 공간에 이질감 없이 어우러진다. 문화연구의 간극을 비평하는 서문과 같이 전시의 뼈대 역시 공간과 맞물려 있음을 지시한다는 점을 긍정할 수 있겠다. 

     

    김민관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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