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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민, 최진한, 《Other Ghost Lives》: ‘현실을 머금은 몸’
    REVIEW/Visual arts 2021. 9. 22. 00:36

    최진한, 퍼포먼스 〈Wish you were here〉, 2021. 신민 작가가 오른쪽에 서 퍼포먼스를 보고 있다. 신민은 퍼포먼스 도중 동작 일부를 따라하기도 하며 퍼포먼스를 바깥에서 연장하고자 했다.
    신민,  〈Opencall〉, 포스트잇, 연필, 사운드, 가변설치, 2021.

    밤에 전시 《Other Ghost Lives》를 재개한다는 것은 전시로서는 꽤 예외적인 경우이지만, 여기서는 그 자체의 새로움보다는 어둠 속에서 전시를 본다는 콘셉트가 중요한 전시라는 점에서 그 온당함을 이야기하는 게 적절할 듯하다. 윈도우가 개방된 Keep in Touch Seoul에 암막 커튼을 달고 관객은 레이저 포인터와 조명이 다 되는 작은 손전등을 받아 들고 벽을 더듬어 간다. 벽에는 하얀 포스트잇 위에 문장이나 단어 들이 있다. 사방의 벽의 중앙에는 높이가 긴 작은 면적의 테이블이 있다. 맥도날드 포장지로 만든 조각을 주로 선보여 온 작가의 작업은 보이지 않는다. 
    하얀 포스트잇은 크게 두 가지 서사가 전개된다. 하나는 작가의 현실을 주로 반영하는 말이라면, 다른 하나는 『바냐 아저씨』에서 나온 대사들의 인용이다. 먼저 레지던시를 전전하며 살아온 작가의 경험은 (전시품으로 지시되는 게 아닌) 어두운 콘크리트 벽 자체에 기입된 글자들로 투영돼 레지던시 스튜디오 내부를 체현한다. 이곳에는 거의 혼자의 경험이 강조된다. 모든 곳은 어둡고 모든 벽에 포스트잇이 있지는 않으므로 샅샅이 훑지 않는다면, 모든 포스트잇을 발견하는 데 실패할 수도 있다.

    신민, 최진한, 《Other Ghost Lives》 전시장 전경.

    이러한 서사의 전개는 시공의 차원에서 독립적인 파편―시간을 달리해 완성될 것이며, 하나의 메모는 그 자체로 자족적이다.―이며 작가의 일정한 정동이 투영된 계열체로서 몇 가지 의미로 중첩되어 간다. 배우가 등장하지 않지만 일종의 지문이거나 대화로서 관객에게 말을 건넨다. 이 말은 이를 읽는 사람을 관객으로 구성한다. 조명과 말이 주어지고, 이 다양체의 말들을 발견하고 그 각각에 인격을 부여하는 읽기의 행위를 통해 비로소 이 극은 완성된다. 
    『바냐 아저씨』 중 소냐의 (어떤 미래에는) 편히 쉬게 될 것이라는 대사는 막다른 저점의 오늘의 배경을 강조한다. 문학의 힘을 빌려 암울한(?) 현재 상황을 감내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동시에 단일한 목소리가 이 어둠을 감내할 물리적 지침으로 작용한다―일정한 서사의 최소 단위가 뚜렷한 경로가 없는 이 전시를 지속할 힘이 된다. 테이블에 이르러 연대할 존재로 초대받기에 이른다. 군데군데 그 대사들에 이입해온 결과로서 “우린 둘 다 외롭고 불행한 사람”이기에 그 조건을 충족할 수 있으며, 동시에 관객은 보이지 않는 존재를 향해 같은 목소리로 발화하는 존재로 위치를 바꾼다. 

    신민,  〈Opencall〉, 포스트잇, 연필, 사운드, 가변설치, 2021.

    이러한 “외롭고 불행한” 조건이 연대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작가의 현실 조건이 컨텍스트로 전제된다. 레지던시 외에 맥도날드에서 근무한 경험 역시 묻어난다―핸드아웃상 설명된, 노동자 semi라는 별칭은 작가의 또 다른 정체성을 발현하게 한다. 직장 내 별칭으로 부르는 문화에 의해, 알파벳으로 적힌 알 수 없는 이름들의 나열, 여성에게 머리를 묶어 단정함을 유지하도록 하는 회사 규정이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사실, 그리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최근 동료 심사에서 “다원예술의 의미를 전혀 모르는 페미니스트”라는 피드백을 들었던 경험 역시 드러난다. 나아가 환경 문제, 동물권 의제 등등도 “외롭고 불행한” 그리하여 막막하고 어두운 컨텍스트로 번져 나간다. 
    그 말들은 제도 비평적인 결보다는 그 제도 자체에 절망하는 존재의 외침에 가깝다는 점에서 현실을 체현한다. 이를 작가는 연극을 통해 우울한 희망의 정동으로 가져간바, 이 전시는 대답 없는 대답을 관객이 가져갈 것을 요청한다. 인물과 우리는 제4의 벽을 통해 철저히 분리되어 있지만, 우리 스스로가 배우가 되는 동시에 그에 반향되는 관객이 되며, 그러한 분리가 은폐된다. 결과적으로 내폐적인 목소리는 계속 공간을 맴돌고, 바깥을 향해 발화하고자 하는 욕망을 일으킨다. 보이지 않지만 사실상 극이 상영되는 동안 성립하는 가상의 관객들―이는 극장과 달리 시차를 둔다.―이라는 점에서 연대가 가능하다면, 더 정확히는 연대의 공명 지점을 인지하게 된다면, 이는 현실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 것인가.

    최진한, 퍼포먼스 〈Wish you were here〉, 2021.(이하 상동).

    사실상 신민의 작품 〈Opencall〉은 그의 개인전 《Opencall 그 자체이다. 반면, 이 공간은 예외적으로 낮에 특수하게 유리창 바깥에서 새롭게 볼 것이 요청되는데, 최진한이 또 다른 유령의 삶(‘other ghost live’)이 되어 주면서 전시명 ‘Other Ghost Lives’을 새롭게 완성하는 때가 그렇다. 신민의 유령으로서의 삶은 특히 어둠 속 화자의 쪼개진 말들을 통해 드러난다면, 최진한은 그가 있는 공간을 유령이 현전하는 공간으로 가시화한다. 
    머리를 붙여 얼굴이 잘 드러나지 않는 상태에서 전시장 구석을 천천히 돌며 진행하는 퍼포먼스는 유리창 앞에서 어항 속 물고기가 뻐끔거리듯 입 모양을 취하거나 반대편 벽에 부딪혀 순간 유리창을 일렁거리게 만들면서 답답한 삶의 조건을 동물처럼 기괴하고 무덤덤하게 드러낸다. 어떤 움직임을 만들기보다 이 공간 자체를 탐색하며 반향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말들은 안에서도 또 밖에서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으며, 벽의 공간 자체로 환원되는 데 가깝다. 

    퍼포먼스 이후 다시 들어간 전시장은 빠뜨린 말들, 그리고 한눈에 들어오는 벽 위에 붙은 포스트잇들의 요철을 확인하게 한다. 디테일과 조망의 시점이 갖춰진다. 동시에 극장의 조건이 사라진 무대에서 관객은 무대 위에 놓인 자신을 감지하며 조금 무게가 덜어진 말들의 무덤을 유유하게 활보하고 이를 빠져나오게 된다. 〈Opencall〉은 신민의 말을 우묵하게 담아낸다. 그것은 연극으로 수렴되기도 하고 동시에 그 연극을 현실의 것으로 지탱하고 있기도 하다. 

     

    신민,  〈Opencall〉, 포스트잇, 연필, 사운드, 가변설치, 2021.

    김민관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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