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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과 디자인
    Column 2021. 11. 2. 23:09

    안대웅


    ≪서울, 25부작≫의 홈페이지 캡처. 출처=http://p-p-p.site/
    ≪광장조각내기≫ 홈페이지 캡처. 출처=http://seoul25.kr/space/

    얼마 전 ≪서울, 25부작≫의 홈페이지와 관련해 SNS상에서 자그마한 논란이 있었다. 시작은 최황이라는 이름의 작가로, ≪서울, 25부작≫의 웹사이트가 자신이 기획하고 작가로 참여한 ≪광장조각내기≫와 “아이디어와 보여주는 형식”이 몹시 유사하다는 것이 이유였다.[각주:1] ≪서울, 25부작≫의 웹사이트는 미술계 일을 꽤 많이 맡아서 하는 것으로 알려진 디자인 스튜디오인 일상의실천이 만든 것으로, 공교롭게 일상의실천은 ≪광장조각내기≫ 웹사이트의 디자이너이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일단, 최황은 일상의실천이 아니라 ≪서울, 25부작≫의 실무자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아마 ≪광장조각내기≫의 웹사이트의 제작자가 일상의실천으로 동일하므로 표절까지 가기에는 무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테다.[각주:2] 그러다 약 4시간 뒤 최황은 생각을 바꾼다. 자신의 SNS 계정에서 최황은 ≪서울, 25부작≫이 웹사이트뿐만 아니라 전시의 주제나 형식까지 모두 유사하다고 판단하여, “창피한 줄 압시다”라는 문장을 필두로 본격적인 비판을 시작한다.[각주:3]


    여기서 최황은 일상의실천을 향해 큰 실망감을 표하며 “문법의 문제가 아니라 문체의 문제”를 문제 삼았다.[각주:4] 문법과 문체는 뭐가 다를까? 이걸 이해하기 위해 『글쓰기의 영도』씩이나 들고 올 필요는 없겠지만 대략 문법은 일반적이고 문체는 독특하다고 이해하면 여기선 무리가 없을 듯하다. 왜 이런 구별을 했는지는 비교적 분명한데, 최황은 일단은, 일상의실천을 자신의 ≪광장조각내기≫에 디자이너이자 작가로 섭외했기 때문이다.[각주:5] (그리고 이것이 일차적으로 최황이 비판의 대상으로 일상의실천이 아니라 ≪서울, 25부작≫의 실무진을 떠올린 이유인 듯 보인다.) 최황 입장에서, 일상의실천은 비슷한 개념의 전시에 비슷한 작품을 다른 듯이 내는 아방하지 않은 작가로 비쳤을지도 모르며, 약간의 심한 배신감과 함께 매머드급의 ≪서울, 25부작≫ 프로젝트가 일상의실천이 디자인한 홈페이지를 통해 유명세를 탈 경우, ≪광장조각내기≫의 의미가 역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퇴색될 수 있으리라 걱정이 미치는 것도 자연스러운 전개다. 두 작품의 전체적인 개념과 형식이 유사하다고 비쳐질 때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작가가 가지는 고민은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하다. 더군다나 ≪광장조각내기≫가 안티-공공미술이라면 최황이 보기에 ≪서울, 25부작≫은 ≪광장조각내기≫를 정반대로 차용한, ≪광장조각내기≫가 비판하고자 했던, 누가 봐도 “관-제도”의 공공미술이다. 만약 일상의실천을 작가의 위치에 놓을 수 있다면, 이는 실로 이율배반적으로 보이는데, 똑같은 작업물로 하나는 안티-공공미술에, 다른 하나는 정반대의 관-제도 공공미술에 참여한 것이다. 최황이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여기쯤인 듯하다.

     

    일상의실천이 내놓은 답변은 조금 다르다. “최황 작가가 찾아온 것은 작년 8월이었다”로 운치 있게 시작하는 이 글은 곧바로 ‘손님 이제 와서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는 흐름으로 간다.[각주:6] 그에 따르면, ≪광장조각내기≫의 웹사이트 작업은 원래 2017년 ≪타이포잔치≫에 출품했던 골격을 그대로 사용한 작업이며, 터무니없이 적은 보수로 열정페이를 강요하고 시간도 별로 주어지지 않았지만 의미가 있어 보여서 특별히 자신의 ‘문체’를 “차용할 수 있게 허락해줬다.” 마지막의 표현의 이 복잡 미묘한 울림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아무튼 간에 일상의실천은 이 논란에서 최황이 애매하게 부과한 ‘작가’라는 타이틀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대신, 일상의실천은 예술가의 생각을 충실히 구현해주고 싶은 선의의 마음을 가진 디자인 에이전시로 돌아간다—여기서 최황은 당연히 클라이언트가 된다. 디자인은 매우 “섬세한 노동”이며, 3개의 프로젝트는 큰 골격은 공유하고 있지만 “레이아웃, 타이포그래피, 인터페이스, 개발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른 접근과 고민으로 만들어진 결과물들이다”라는 것—이것은 모두 기술적인 문제다.

     

    여기에 더해, 이어지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 최황은 기획자와 작가 사이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일상의실천을 작가로서 섭외할 때 최황은 기획자이지만, 이제는 자신이 기획자가 아니라 작가라 기획의 일반적인 진행을 잘 알지 못하며, ≪광장조각내기≫ 역시 그 자체로 자신의 작업과 다름이 없다고 밝힌다.[각주:7] 이 발언은 물론 자신의 진심을 표출하기 위한 것이었겠지만 부지불식 기획자와 다른 참여 작가 사이의 암묵적 거리를 좁히는 효과도 있다. 이것은 창조적인 큐레이터가 작가의 작업을 도판으로 만들어버린다거나 하는 전시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일로 사실 작가가 자신의 작업을 위해 고용한 어시스턴트의 창의력까지 도용하는 일에 비견될 만하며, 최황이 전시가 작업이었다고 공표하는 순간 이 갈등은 심화된다. 이렇게 최황은 기획자와 작가 클라이언트 사이에서, 또 일상의실천은 참여작가와 디자인 에이전시 사이에서 몹시 진동한다.

     

     

    가장 바깥의 표층

     

    두 프로젝트에 관한 논란을 지켜보다 보면 한 가지 의구심이 든다. 유사하든지 다르든지 간에, 양측의 말에서는 전혀 구체적인 참여작이 등장하지 않으며, 마치 웹사이트가 전체 프로젝트를 대변하는 듯 다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웹사이트를 보면, ≪광장조각내기≫의 경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서울의 지도 위에 표시된 작업의 좌표인데, 여기를 클릭하면 간단한 작업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일단은 이것이 가장 먼저 ≪서울, 25부작≫을 떠올리게 한다. 아무튼 상당히 깔끔한 레이아웃에 다양한 필자의 텍스트와 작가의 이력, 작업 아카이브가 올라와 있어서 전시 카탈로그를 대체해도 될 정도로 포멀한 인상이다. 그럼에도 부분적인 작가의 스테이트먼트와 스틸컷, 영상만으로는 대략의 스케치는 가능해도 작업의 전모를 구체적으로 파고 들기는 힘들다—그러니까 레이아웃이 깔끔하게 잘 빠졌을 뿐, 일반적인 카탈로그의 수준 이상의 정보는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 25부작≫의 경우는 어떨까? 먼저 ‘스토리’ 페이지에는 서문 격의 인사말과 참여작가의 한마디가 짧게 올라와 있어서 ≪광장조각내기≫의 ‘광장’과 대응한다. ‘스페이스’ 페이지에서 보여주는 지도의 경우, 라운드가 직각이 되어 있다거나 하는 것만 빼놓곤 ≪광장조각내기≫와 같은 시스템을 사용한 것처럼 보이며, 마찬가지로 클릭하면 간단한 작업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그 외 ‘시퀀스’와 ‘스토리지’ 페이지에는 각각 진행과정과 보도내용 등을 기록해놨는데, 큰 틀에서 둘을 비교하면 이렇다. ≪광장조각내기≫의 경우, 좀 더 기획자와 참여자의 작가주의 성향이 드러난다면, ≪서울, 25부작≫의 경우, 서문을 통해 드러나는 기획자의 방향성보다는 참여작가의 짧은 후기로 대체했고, 대체로 다양성과 공정한 과정 집행을 사이트를 통해 드러내고자 했다—이것은 최황이 쓴 “관-제도”라는 말과 공명한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웹사이트 디자인은 두 프로젝트에서 모두 중요한데, 왜냐면 두 경우 모두에서 서울시에 분산되어 있는 개별 작업을 총괄하는 아이덴티티는 오로지 웹사이트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이란 메가-데이터베이스, 어떠한 필요와 판단 이전에 이미 무지막지한 양의 정보가 내 편이라고 믿게 만드는 상호수동적 매체의 시대다—인터넷에 있다면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엄지손가락 끝을 시작으로 습관적으로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타임라인 속에서 가시성 있게 포착되는 이미지는 단순하게 작업된, 말하자면 포스터의 그래픽 디자인이다. 누가 그의 작업을 보러 친히 전시장을 찾을까? 따라서 최근 담론에서 디자인은 예술의 가장 바깥쪽을 감싸면서 거기서부터 안을 향해 예술을 정의하고 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웹사이트에 올라오는 짤막한 소개와 파편적인 이미지가 결국 실질적인 작업의 프레젠테이션이다. 그런 면에서 웹사이트 디자인은 프로젝트 자체의 아이덴티티를 정의하고 프레젠테이션하는 중요한 미적 형식이며, 거듭 최황이 지적한 문체는 프로젝트 전체를 통틀어서도 중요한 문제로 다가온다.[각주:8] 확실히 최황이 지적한 어떤 종류의 문체—예를 들어 타이포그래피 중심의 미니멀한 기능주의적 레이아웃—는 두 프로젝트가 확실히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이것이야말로 어떤 면에서 일상의실천이란 디자인 스튜디오가 가진 독특한 저자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떤 동상이몽

    그래서 무엇이 문제란 말일까? 최황은 웹사이트의 형식을 “전시의 구조”라고까지 이야기한다.[각주:9] 앞서 최황은 두 웹사이트의 문체가 유사함을 지적했는데, 거듭 문체는 저자의 독특성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여기서 되돌아오는 질문. 일상의실천이 가진 ‘문체’, 즉 독특성은 최황의 전시의 구조가 될 수 있을까? 또 하나의 질문은 일상의실천은 그 문체를 최황이 차용하도록 허락해줬다는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두 가지 문제는 사실 공공미술 사업에서 다른 형태로 빈번하게 일어난다. 전자는 예술가가 참여한 관급 사업에서 자주 보이는데, 이때 행정가 입장에서 예술가는 용역이고 작업은 물품이자 자산이다—행정적 프로토콜에서 그런 격이다. 따라서, 결과물에 관해 기관은 배타적 소유권을 가지며, 참여한 예술가가 누구인지는 별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으며, 성공적일 경우 그것은 담당자나 관리자, 기관의 실적으로 홍보될 것이며, 운이 나쁘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계속 같은 것을 보게 될지도 모르는데, 별다른 특약이 없다면 대체로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여기서 예술가의 자리는 차라리 디자인 업체다.

     

    후자의 경우 속되게 말해 공공미술의 업자를 떠올려볼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업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경멸하는 이유는, 알다시피 자신의 예술혼을 다른 사람에게, 느낌적으론 부적절하게 팔아넘기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지방의 홍보 캐릭터 조형물이 때가 되면 인터넷 밈으로 주기적으로 떠돈다. 대부분 지방의 공무원의 미감이란 일반인 평균에 운 좋으면 가깝거나 대부분 미달한다. 이런 공무원과 가장 시너지가 좋은 사람이 업자 예술가인데, 이들은 클라이언트의 무리한 요구에 최대한 부합하는 결과물을 만들어 줄 뿐이다—이유는 다양한데 그것이 돈일 수도 있고 명예일 수도 있고 실적일 때도 있다. 무엇이 좋은 예술인지 판단할 수 없다면 쉬운 방법은 권위에 의존하는 것이며 그래서 전국 방방곡곡 공원이나 휴양지에서 항상 보게 되는 것이 땡땡 미대 교수의 어시스턴트가 열심히 만들었을 조형물이다—그런데 이 업자에 대한 모든 부정적인 평가가 일하기 편한 디자이너의 긍정적 요건이 된다.

     

    작가의 경우 문체는 오로지 자신에게 귀속된다. 반면 업자는 문체를 다른 목적으로 사용한다. 이를 다시 돌아와서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근대 이후 예술가는 자율적 대상을 디자이너는 도구적 대상을 만드는 것으로 분화했다. 두 가지 상반된 미술의 단면이 일상의실천과 최황의 예에서 봤듯이, 공공미술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이따금 충돌한다. 우리는 왼쪽을 보면서 오른쪽을 볼 수 없으므로, 지금은 둘 다 가능하다는 애매모호한 표현은 되도록 피하자. 공공미술은 예술일까 디자인일까? 공공의 이익, 그러니까 되도록 많은 사람의 만족이 중요하다고 믿을수록 공공미술은 디자인에 가까워진다. 반면 독특하고 자유로운 표현이 중요하다고 믿는다면 공공미술은 예술에 가까워진다. 작가주의를 밀어붙인 경우, 작가로서 성공은 차치하고서라도 클라이언트에 만족을 주지 못해 실패한 디자이너가 되기에 십상이다—이럴 경우 작업에 붙은 대부분의 별칭은 흉물이다. 디자이너로서 클라이언트의 만족에 가까워지면 실패한 작가라는 평가를 피하기 힘들다—별칭은 역시 업자다. 이렇게 공공미술에 대한 이중잣대는 자유롭고 독창적인 표현이 최대한 다수의 사람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것이 가능할까?

     

    실로, 최황과 일상의실천은 동상이몽을 꾸었다. 최황의 야심은 디자인을 예술로 끌어당기는 것이었지만, 종국에 드러낸 것은 모더니스트적 독단적 저자성이다. 이는 최황이 작가로서, 큐레이터로서, 참여작가를 섭외하고, 또 디자이너를 섭외할 때 주문했던 모순적인 위치성—충분히 독창적이면서도 자기 목적성을 가지면 안 된다는—을 독단주의적으로 편취한 것에 기인한다. 여기서 일상의실천은 큐레이터의 생각을 표현해주는 수단, 즉 디자이너일 뿐이다. 반면, 일상의실천은 나쁜 업자와 착한 업자 사이에서 진동한다. 일상의실천은 정반대의 취지를 담고 있는 전시에 같은 계열의 작품을 보낼 정도로 의식이 없는 업자-작가이거나, 혹은 클라이언트의 의제에 부합하는 무언가를 안 되는 여건 속에서도 제공해주는 착한 업자-디자이너다. 이런 일상의실천의 위치는 최황과 일상의실천 모두 절대로 바란 것이 아니었겠지만, 봤다시피 구조적으로, 시작부터 그렇게 되어 있다. 

     

     

    소결

    이 웹사이트를 둘러싸고 벌어진 자그마한 해프닝은 그래서 우리가 공공미술을 볼 때 부과하는 교묘한 이중잣대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심급에 구조화되어 있는 것은 예술과 디자인이라는 분화된 학제가 서로의 위치를 고수한 채 씨름하고 있는 줄다리기며, 이는 엘리트주의와 대중주의 사이의 익숙한 반목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 혹은 서로를 편취하는 것 이상이 가능할까? 최황이 바랐던 것처럼, 예술과 디자인은 동료가 될 수 있을까? 같이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상태일까? 모두의, 모두에 의한, 모두를 위한 예술이란 게 가능이나 한 것일까? 

    한 가지 사례로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장근희와 김태균은 2015~2017년 <파지키트>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는 경기문화재단의 문화 바우처 사업으로, 보통 차상위 계층에 문화상품권 따위를 나눠주는 것으로 일이 진행된다—사업의 성격상 여기서 독특한 예술 실천이란 기대되기 힘들다. 당시 경기문화재단 사업 담당자였던 류혜민은 예술가를 채용해 관례적인 무언가를 넘어보자 했다—그렇다고 해서 ‘문화를 나눈다’라고 하는 현물 지급의 성격이 바우처 사업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파지키트> 프로젝트에서 바우처 대상으로 주목한 건 파지 줍는 노인이다. 컬렉티브가 보기에 이들이 리사이클링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에서 너무나 주변화되어 있었으며, 따라서 이들의 노동 조건을 개선시킬 수 있는 방안으로 ‘파지키트’를 디자인한다. <파지키트>는 파지를 줍고 리어카에 싣고 이동할 때 제반 효율성과 안정성을 강화시키는 도구다. 폐지를 주우면서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지압 점이 새겨 있는 방수 손 장갑이라든가, 자동차 운전자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형광색 고무밴드로 만든 수레 고정끈, 파지 보관 시 비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꽃과 숲, 그리고 보석함이 인쇄된 방수 덮개 등이 이 파지키트에 담겨 있다. 이 키트는 바우처 사업이라는 한계 내에서, 차상위 계층을 대상으로 현물을 지급하기 위해 디자인된 물건임에 분명하다—더군다나 이 키트는 철저히 효율적 도구로서 제작된 것이다. 

    그럼에도 <파지키트>는 도구적인 무언가를 넘어서는 면이 있다. 예술가가 상상하기에, <파지키트>는 전문가의 장비이며, 그것을 장착하는 순간, 남들이 쓰다 버린 고물을 주워다가 생계를 연명하는 불쌍한 노인은 사회의 리사이클러가 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파지키트>는 파지를 줍는 도구가 아니라 일종의 변신 키트, 강화 장비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물론 예술가의 상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 상상은 독단주의라고 볼 수 없다. <파지키트>가 제공하는 어떤 효율성, 다시 말해 달리는 차와 거친 고물로부터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것을 통해 사용자는 지금보다는 더욱 나은 삶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파지키트>는 일반성—파지 줍는 노인의 스테레오 타입—을 넘은 독특성이 나타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며, 그것은 저자의 독단주의라기보다 전적으로 사용자에 달린 것이다. 이 계기는 클라이언트와 에이전시 사이의 관계 너머의 것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예술과 디자인은 무언가 배울 필요가 있다. 

     

     

    1. [1] 최황, “제가 2020년에 아르코 후원을 받아 기획했던…”, 페이스북, 2021년 8월 19일, (접근: 2021년 9월 24일, https://www.facebook.com/eltitnu.1984/posts/1335168570212127)  [본문으로]
    2. [2] 이런 언급이 특히 그렇다: “디자인은 모두 일상의실천이 맡았습니다. 일단 그래서 표절까지는 아닌 것 같고요.” 위의 글. [본문으로]
    3. [3] 최황, “<서울, 25부작>을 기획한 관계자들, 정말 창피한 줄 압시다.”, 페이스북, 2021820. (접근: 2021924, https://www.facebook.com/eltitnu.1984/posts/1335961470132837) [본문으로]
    4. [4] 위의 글. [본문으로]
    5. [5] 최황은 자신을 큐레이터이자 작가로, 일상의실천을 작가이자 디자인 에이전시로 모호하게 이해하고 있는데 이는 뒤에 다루겠다. 최황, “정말로 잘못한 게 0.1g도 없기 때문에”, 페이스북, 2021826, (접근: 2021924, https://www.facebook.com/eltitnu.1984/posts/1339853853076932) [본문으로]
    6. [6] 일상의실천, “최황 작가의 게으른 디자이너라는 비난에 대한 답변,” 페이스북, 2021823. (접근: 2021924https://www.facebook.com/ilsanguisilcheon/posts/2617072175094179). 이후 일상의실천의 인용은 모두 여기. [본문으로]
    7. [7] 최황, “정말로 잘못한 게 0.1g도 없기 때문에[본문으로]
    8. [8] 공공미술 프로젝트에서 웹사이트가 이렇게 중요하게 디자인 된 경우가 과거에는 흔치 않았는데, 이는 여러 미디어 환경의 재편성과도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포스트-인터넷이라는 담론이 시사하듯, 현재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구별은 무의미하며, 웹사이트 자체가 작업의 결과물로 프레젠테이션되거나 관급 전시에서 3D 시뮬레이션으로 전시를 공개하는 등 이런 현상은 포스트-코로나를 경유하며 심화되고 있다. 여기에 관해선 다음의 기사를 참고할 것. “[국현 온라인 좌담회]포스트코로나 시대, ‘미술관 역할의 지속적 논의 필요”, 서울문화투데이, 2020724, (접근: 2021924, http://www.s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219)  [본문으로]
    9. [9] 최황, “<서울, 25부작>을 기획한 관계자들, 정말 창피한 줄 압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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