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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 예술의 이념
    Column 2021. 12. 31. 23:04

    지역 예술의 이념[각주:1]  

    김민관

    신혜진 안무가, 퍼포먼스 〈전래적인공무용〉, 2016. [분홍공장 제공]

    지역에서 예술을 경험하고 생각한 바를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올해는 강원도 인제에서 잠깐의 연을 맺었고, 이제 혼자 산 지 3년이 넘은 인천에서 제법 예술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작년까지 5년 정도 강원도 홍천에서 기획 일을 하면서[각주:2] 더 이상 지역의 의미가 낯설게 인식되는 것이 낯설지는 않은, 저 역시도 지역을 완전한 제 그라운드로 둘 수 없는 그런 중간자적 입장에서 지역에 놓여 헤맸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제가 할 수 있는 말이 지역 예술을 정돈된 이야기로 펼쳐 내며, 지역에서의 대안, 또는 지역으로서의 대안 모두를 이야기하는 데 애초에 실효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울은 2006년 예술과 처음 제가 관계 맺을 때 크게 대학로와 인사동으로 양분되는 곳이었습니다. 그 외에 홍대를 종종 오가곤 했습니다. 대학로와 인사동과 홍대는 각각 공연과 미술, 그리고 실험[각주:3], 독립[각주:4], 음악[각주:5] 등의 카테고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바깥의 예술은 비엔날레를 찾으러 들르는 광주[각주:6]나 부산[각주:7] 정도의 지역에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놓친 국립의 대극장 공연의 지방 순회공연 소식을 들을 때 저는 지방은 조금 더 싼 티켓, 그러나 이동을 위해 더 많은 소요 시간을 청구하는 곳이라는 생각을 어렴풋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굿-즈(2015)에서 거지로 분장해 퍼포먼스를 선보인 김동규 작가. [사진=굿-즈] 출처: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510181624876515

    2010년대 서울에는 신생공간[각주:8]이라는 현상 이후 서울 변두리라 불리는 곳들을 포함해 더욱 너저분하게 공간들이 산적하기 시작했고, 서울의 더 많은 곳으로 예술이 분산되었지만, 서울과 지역 각각의 주권이 갖는 격차는 해소되지 않고 연장되었습니다. 마치 고시원이나 반지하를 전전하며 일종의 독립을 좇는 청년의 모습과 기존 제도와 공간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청년 예술가가 비좁고 허름한 작업 공간을 구하고 다시 그에 걸맞은 작품의 양식을 창출하는 것이 서로 상응하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저 역시 독립을 하기 위해서였지만 비용을 맞추다 보니 인천에 갑작스레 떨어져 내린 형국이었지만, 그럼에도 막상 도착하니 인천에 나름 심취해서 인천을 진지하게 바라보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각주:9]. 하지만 어떤 한계는 이곳이 제 유년기가 있던 곳이 아니다 보니 도무지 내 자신이 이 지역에 친밀해지지 않으며, 이곳에 예술이 없다 보니 제 생활 터전으로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저 스스로의 이곳에서의 이물감과 외로움은 꽤 컸고, 삶 전반의 상실감과 허전함을 초래했습니다. 

    〈강화도 산책 : 평화 도큐먼트〉 (2021) 포스터.

    작년 말에 부평문화센터의 상주단체로 있던 극단 앤드씨어터[각주:10]를 만나게 되었는데, 한편으로 극단 일부가 인천 강화도 ‘공간 그리고’라는 공간[각주:11]에 또 적을 두고 있어서 일요일마다 인천 강화도에 다니며 사람들과 오전에는 산을 타고 오후에는 강연을 듣고 스터디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서해평화 프로젝트”라고 명명된 이 시간은 비슷한 이름의 리서치 기금을 받아 진행되었던 프로젝트의 일환이었습니다. 저는 책자를 만드는 역할로 초대되었습니다[각주:12]
    사실 지원금이 모든 걸 성립시키기는 했지만, 그 씨앗은 “강화학파”라는 제도권에서 멀어진 조선 시대의 학자들이 주창한 양명학이었습니다. 이를 언어 유희적 전유로써 강화역량학파라는 이름으로 바꾸었고, 이어 강화도의 낮은 산들을 타며 북한을 바라보거나 몽골군이 고려에 쳐들어온 광경을 상상하고, 임금에게 진상할 게 없어서 급조해 냈다는 강화도에만 있는 젓국갈비를 먹고, 버스가 없어서 황량한 농촌 풍경을 터덜터덜 걸어가고, 일정을 마치고 빈 정거장들을 빠르게 지나치며 총알택시처럼 위협적 승차감을 주는 버스 막차를 경험하고, 며칠간 밤을 새우며 책자를 완성하는 것으로 올해 초 그 여정을 마쳤습니다. 이 리서치북을 토대로 가을이 오기 전 공간 그리고는 “강화도 산책: 평화 도큐먼트”라는 공연의 막을 올리게 되었습니다[각주:13]. 여기서 저는 드라마투르그로 참여했습니다.

    〈강화도 산책 : 평화 도큐먼트〉(2021). ⓒ김솔(이하 상동). 강화터미널에서 군인으로 분한 전민호 배우.
    6.25 참전용사기념공원 초소 위에서, 사진 왼쪽부터 이도준, 전민호 배우.
    연미정에서 김포와 강화도 사이에 있는 강인 염하를 소개하고 있는 권근영 배우.
    고려천도공원의 주차장의 철책선을 마주하고, 국가를 상대로 소리지르며 발화하는 이윤하 배우.
    공연의 마지막 장소에 도착해, 김금화 할머니의 말을 밭에 먼저 내려가 있던 강민지 배우가 버바텀 형식으로 재현하고, 관객은 이를 위에서 내려다보게 된다.

    이 공연을 잠깐 설명하자면 두 대의 승합차에 배우와 연출 포함해 관객 열 명 정도씩 탑승하고, 여러 스팟을 이동하며 공연을 관람하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자동차 안에서도 미리 녹음된 사운드가 재생됩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과정이 선행되고 진행됨을 의미합니다. 차에서 나오는 오디오 시간과 차로 소요되는 시간을 사전에 조율하는 것, 다음으로 정해진 오디오 시간을 맞추기 위해 현장에서 운전의 속도를 조정하는 것. 다큐멘터리 연극을 지향하는 극단이다 보니, 내레이션, 인터뷰, 배우의 자기 발화, 버바텀, 나아가 율동, 노래 삽입 등 여러 형식과 매체가 공연의 얼개를 이뤄 나갔습니다. 
    강화도 터미널에 집결한 관객은 배우들이 서해에서 평화를 찾는 사람으로서 각자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것을 MP3로 들으면서 시작된 공연은, 6.25 참전용사기념공원에 첫 번째로 도착한 후 초소에 오른 군대 시절 취사병이었던 이도준 배우의 경험, 작년에 같이 리서치를 하다 북한학과를 들어가게 된 박세담 배우의 발화로 시작해, 돌연 판문점에서 김정은과 문재인 대통령이 만났다는 뉴스를 전하며 박세담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국기에 대한 경례’ 음원이 흘러나오고, 초소에서 군인 역할의 전민호 배우가 국기를 향하여 경례를 하고 있고, 이도준 배우와 관객 역시 거기에 동참하게 됩니다. 아마도 30대 이상이면 다음과 같이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그런데 그 이후의 세대는 이 맹세문이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합니다. 사실 1974년 이후 만들어진 맹세문은, 저의 어린 시절에는 “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였던 것처럼, 2007년 이후 새롭게 갱신되었습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가 그것입니다. “조국”과 “민족”이라는 단어가 빠졌고, “몸과 마음을 바쳐”라는 문구가 빠졌습니다.
    다시 차로 이동해 연미정에 올라 “예성강, 한강, 임진강, 염하까지 모든 강물이 만나는” 할아버지 강인 조강을 굽어보며 돌아가며 배우들 한 명씩 가이드를 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장소를 굳이 통과하는 것은 북한과 남한의 경계를 물리적으로 구분할 수 없는 장소가 있음을 인식하게 하고, 바로 그 장소에 관객을 두기 위함입니다.
    다시 철책선을 따라 차를 타고 이동합니다. 고려천도공원의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배우 한 명이 뛰쳐나가 철책선에 붙어 북한을 바라보고 “국가”에게 “평화”롭냐고 묻습니다. ‘북한’은 직접 언급되는 대신 “너”로 이야기됩니다. 이러한 국가 혹은 북한에 대한 의인화 기법은 국가나 북한을 우리와 먼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친근하고 접근 가능한 것으로 바꿉니다. 이윤하라는 배우 자신의 전략이자 자신의 말인데, 조금 놀랍습니다.
    이 장면과 관련해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두 개 있는데, 그중 하나를 이야기하면, 여기서 외치는 소리가 실은 북한까지 전달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는 이 경계를 지키는 해병대로부터 “북한을 향한 도발”의 의미로 다가오게 되고, 인천문화재단에서 지원받은 사업이니 인천시의 인가 아래 진행되는 것이라고 연출은 현장에서 둘러대 봅니다. 결국, 이러한 ‘도발’은 철창에 붙어서가 아니라 맞은편 도롯가에서 북한을 바라보며 하는 것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그러한 “도발”에 대한 제지는 군인을 전유한 전민호 배우의 언어로 옮겨 옵니다. “북한을 향해 도발하지 않습니다!”
    그러고 나서 천도공원으로 들어가서 강화도의 음식인, 대갈범벅으로 흔히 불리는 닭알범벅을 먹었는데, 이는 직접 공간 그리고에서 요리를 해 온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동한 장소는 어떤 공터 앞, 한 밭입니다. 할머니는 북한을 건너다보며 저기 잘 보이냐고 말을 거는데, 미리 스태프 차량 한 대가 더 공연을 따라 다니고 있었고, 미리 이동한 강민지 배우가 할머니로 분하여 하는 말이었습니다. 실제 실향민인 김금화 할머니의 말을 유사한 장소에서 재현한 것입니다. 여기서 할머니의 통일을 “평화”로 지칭하는 어법 역시 할머니에게서 그대로 가져온 것인데, 그러니까 우리가 망각한 것들 안에 누군가의 평화 역시 묶여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꼬부랑게하(2021) 포스터. 강영민 작가의 그림을 바탕으로 만든 포스터이다.

    그 전에 경성콤, 강영민 작가와의 인연으로 강원도 인제에 잠깐 내려갔다 오게 되었습니다[각주:14]. 그렇지만 인제에서 자리를 잡고 활동하는 예술가를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오만한 생각이겠지만, 아마 제가 생각하는 컨템퍼러리 예술가가 거기에는 있을 것 같지도 않기는 합니다. 강영민 작가가 금성여인숙에 머물며 그 역할을 기꺼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와 함께 지역을 보는 또는 접근하는 또 다른 방편이 생겨났는데, 자연을 곁에 두는 방식이 그것입니다. 길을 내고 그 길을 좇아가는 천릿길 투어, 강변에서 달을 보며 캠핑하는 시간 등이 특별했습니다.
    극장이나 전시장은 사실 각각 ‘어둠’과 ‘밝음’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잠과 답답함, 나아가 신경증을 일으키기 딱 좋은 폐쇄적 공간이기도 합니다. 자연은 저한테는 그 반동적 환경이 되어 주었습니다. 강원도는 제게 익숙한 곳이기도 했고, 한편으로 차가 없는 저는 홍천에서 시간을 제법 보냈을 뿐 많은 곳을 다녀보지 못했던지라 강원도에서 홍천이 어떤 정도의 감각을 주는 것인지 어떻게 위치하는지도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인제에 오니 한강이 발원하는, 홍천보다 더 동쪽의 지대에 내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리프트를 하는 강과 천릿길 산행에서 만난 계곡 모두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더욱 더 동쪽으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인제에 가서 만든 곡 하나를 불러보고자 합니다. 이 곡은 소양강 관대리의 혼자 외떨어져 있는 나무 곁에서 당시 트래킹을 하던 경성콤 멤버들과 함께 부르기도 했던 곡입니다.

    바로 “간다-하”라는 노래입니다. 여기에 “~하”는 음을 맞추기 위해 마지막에 따라붙는 의미 없는 음절입니다. 


    우리는 산으로 간다-하 
    우리는 바다로 간다-하

    박쥐나무꽃 함박꽃을 보며
    박쥐나무꽃 함박꽃을 보며

    모닥불 피워놓고 우리는
    모닥불 피워놓고 우리는

    긴 기다림에 우리는 
    긴 기다림에 우리는 

    우리는 산으로 간다-하 
    우리는 바다로 간다-하


    다큐멘터리 연극 〈이후의 도시〉(2021) 포스터.

    이렇게 인제에 반짝 들르고, 강화도를 ‘접고’ 난 이후, 다시 만난 앤드씨어터는 어느새 인천 서구문화회관의 상주단체가 되어 서구를 소재로 한 연극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서구는 재개발이 이뤄지는 도시라 폐허 위에 쓰인 역사의 현장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배우들은 재개발, 청소년, 환경 등의 화두와 관련해 여러 서구 주민의 이야기를 듣고, 마침 냉동인간 관련 회사가 서구에 있어 과학자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이런 리서치를 바탕으로 배우 자신의 발화를 곁들이면서 연극이 조금씩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여기서도 드라마투르그를 맡게 되었습니다[각주:15]
    그런데 한 가지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인천에는 연극이 없습니다. 엄밀히 관객이 있어야 성립하는 게 연극인데, 관객이 없는 것입니다. 이 관객은 예술을 그 자체로 즐기는 것을 넘어, 예술계라는 지형 아래에서 나아가 동시대 예술의 형상이라는 범주 안에서 이를 담론적인 차원으로 엮어 나갈 수 있는 예술계에 직접 속한 사람이거나 비평적 입장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전문성을 갖춘 관객이 없다는 것, 비평이 없다는 것은 그걸 행하는 주체 자체도 무력해지는 현상을 초래합니다. 또는 예술 형식의 실험에 있어 지나친 타협과 절제를 추동합니다. 예술가는 서울에서 했을 법한 것을 이곳으로 가져와 새로운 것이라 착각하게 될 수 있습니다. 새로움에 대한 감각이 없어집니다. 물론 저는 지금 서울이 중심이 되는 새로움, 곧 서울 중심의 사고를 전제하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처음 이야기했듯 이러한 태도를 저는 완전히 버리지는 못할 것입니다. 어쨌거나 이런 새로움이 필요 없는 것은 도전에 대한 강박이 없어서라기보다 이 환경 자체가 어떤 자극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니 이곳에서의 삶이 예술로 들어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서울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일까요.
    서울에는 없는 지역의 역사를 찾아서 현재에 잇는 것, 망각된 타자의 삶을 추적하는 것, 그들과 연대를 생성하는 것 등등 사실 그 어떤 것도 실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지역에서는 예술의 형상이라는 것이 매우 고정적이며 그조차도 보고자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활동 자체가 그저 무용한 행위로 치부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비단 관객에 해당된 것만이 아니라 이 지역을 둘러싼 제도와 기관 모든 것에 해당됩니다.

    예술을 위한 환경은 없고, 어떤 예술의 형상을 유지하면 턱을 넘을 수 있는 그런 환경만이 있을 뿐입니다. 결과적으로 지역 예술은 서울 예술과 한편으로 다르지 않고 다른 한편으로 서울 예술의 낮은 버전으로 존재합니다. 예술가는 지역을 예술로 만드는 데 실패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지역에 대한 이미지만 있을 뿐 지역에 대한 감각은 전혀 부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떤 새로운 시간의 파편들만을 받아들일 뿐, 물리적 공간이 주는 감각을 인지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서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울에서 서울의 예술을 보는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지역에서 지역의 예술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동시대적 시간성이 예술의 특정한 형식적 변화로, 또는 유행하는 주제와의 연계성으로 갈음되는 서울 예술계에서 지역은 단지 먼 곳일 수밖에 없습니다. 시간은 낭비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만그만한 서울 예술을 보는 것에서 지쳐서도 안 됩니다. 

    지역에서 뭔가를 해보고자 했다면, 저는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역에서만 할 수 있고 볼 수 있는 것들이 있었지만, 그것은 희미한 이미지로 증발하고 말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습니다. 이 시간으로부터 탈구돼 자기의 공백을 향해 갈 수도 없습니다. 서울 예술 지원 시스템이 이미 서울 예술인의 신체를 잠식했습니다. 거기에는 그럴싸하게 유행하는, 인지 가능한 형식만 있으면 됩니다. 우리는 근대를 이해하지도 해소하지도 못한 불쌍한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그러니 헤매지만 단지 그것이 우리의 일시적인 현기증이라고 착각할 뿐입니다. 고양이를 키우고 와인을 마시고 커피숍에 가고 자기 안위를 하는 장면들, 이를 인스타에 올리면 건강해질 것이라고, 인생은 완전히 충족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역에서 뭔가를 하는 건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서울 예술인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희망도 기대도 없습니다. 

    이제 무언가를 증명하거나 보여주거나 관성으로써 무언가를 해내거나 하는 것들을 조금은 버려 보고자 합니다. 지역에 대한 것들을 읽고 존재를 마주하고 그 바깥으로 향하는 운동성을 생각해 봅니다. 이것이 내 삶의 지속적인 의식이 되고 미래의 죽음이 되고 현재의 공백이 되는 예술을 생각해봅니다. 그것이 지역일 수 있을까요. 서울이라는 거대한 환상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흩어진 시간들로서의 공간을 하나의 지평 안에서 꾀는 사유의 궤적이 만들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역이라는 막막한 환상 역시 버려야 할 것입니다. 아니 그 막막함으로부터 예술이 시작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종착지는 어떤 지역으로의 닫힘과 지역에 대한 허구가 아니어야 할 것입니다. 지역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이 아니어야 할 것입니다.

    가령 어떻게 지역에서 예술이 발생할 수 있을까요. 아니 그보다 지역을 예술의 소재로 삼을 수 있을까요. 지역에서의 예술이 장소-특정적인 예술이라는 물리적 좌표와 외양이 결부된 예술이 아닌, 그 장소와 예술과 맺는 관계를 성찰하는 비가시적 예술의 범주로 확장될 수 있을까요. 오늘날의 예술이 부정적 의미에서 쉼이 없다면, 예술에 일종의 안식년을 베풀어주는 것은 어떨까요. 강화도에 유배를 간 학자들이 양명학을 공부하고 주창하고자 했듯, 지역은 긍정적인 의미에서 타자를 사유하는 곧 자신의 소외를 경험하는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극작가들이 강화도의 ‘공간 그리고’에 와서 희곡을 집필할 생각을 하거나 그렇게 한다고 들었습니다. 외부의 자극이 없는 일종의 도피일 수도 있지만, 사실 내부의 자극을 감지할 수 있는 일종의 모험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역이 그러한 시간에서 서울과 만나는 담론을 찾는 것 역시 가능할 것입니다. 지금 말하는 것들은 서울에서 지역으로 예술을 내려보내는 어떤 명분을 만들기 위한 문장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러한 노력, 곧 서울을 과포화시키는 노력보다는 서울을 분산하는 노력이 중요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안민욱, 〈마스터 베이비(Master-Baby)〉, 2017. 나무, 의자, 휴지통, 물티슈, LED 전구, LED 조명, 석고, 모터, 아크릴, 112.1x104.8x238cm.

    우리는 지역을 내려가도 그 지역을 잘 경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지역민의 삶에 온전히 뛰어들기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로컬”이라고 하는 곳의 정서와 문화를 읽고 체화하는 것 역시 쉽지 않습니다. 이방인의 정서라는 건 서울 예술가의 어떤 의식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의식이 어떻게 깨어져 나갈 수 있을까요. 저 역시 그렇지 못했습니다. 홍천에 있으면서 안민욱 작가는 군인이 자위할 수 있는 방을 전시장에 설치했습니다. 이 작품은 철저하게 또는 처절하게 실패했는데, 군인이 단 한 명도 아마 전시장에 안 왔기 때문입니다[각주:16]
    이 작품의 리서치를 위해 개인적으로 홍천 유흥 시설에 조금 관심을 두고자 했었는데, 어느 주말 새벽에 들른 맥줏집이 생각났습니다. 새벽 서너 시에 중년의 커플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부부로 판단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도시의 기본적인 조건으로 성매매 시설이 존재한다는 어떤 책의 구절을 봤는데, 이곳에는 그런 곳을 찾기 힘들었습니다. 마사지방이 있었는데, 단순히 신체를 푸는 것에 한정되어 있었던 거 같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군, 열악한 재정 상태와 인프라 부족으로 시가 되지 못하는 홍천에서 가장 큰 읍으로서 도시의 외양을 닮아가고 있는 곳에 그런 시설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홍천이 도시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이곳에는 대학이 없어 20대 이상의 젊은이를 찾기 힘든 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노인, 아마도 홀로 사는 노인의 자살률이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라고 들었습니다. 이곳에서 2020년 할머니, 할아버지의 여성신화 관련 구술을 듣고자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결국 실행은 하지 못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실패로 점철된 지역에서의 예술 기획자였습니다. 적당히 서울의 예술가와 연구자를 (서울에서) 유행하는 주제에 맞춰 데려오는 정도였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마치 서울과 다른 특별한 무엇으로 이곳을 소개하며 예술가들을 지역으로 유혹하는, 그러면서 저 스스로의 죄책감을 덜어내는, 그러한 언어 이상의 것이 제게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지역에서의 어떤 비전도 설계하지 못했고, 그저 묵묵하게 일정을 치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었던 게 없었던 거 같습니다. 

     

    예술텃밭 예술가 레지던시-기후변화2021 포스터.

    얼마 전에는 강원도 화천의 한 레지던시 시설을 방문했습니다. 극단 뛰다가 운영해 온 공간이었습니다. 화천은 홍천보다 위쪽에 있고, 화천과 홍천 중간쯤에 춘천이 있습니다. 1박 2일로 그곳에 있었는데, “예술텃밭 예술가 레지던시-기후변화2021”[각주:17]이라는 거기서 열린 행사가 종료된 후, 레지던시 측에서 마련한 음식들로 꾸린 뷔페를 나눠 먹고, 그 앞 야외에서 모닥불을 쬐며 옹기종기 예술가들과 기획자들과 앉았습니다. 새벽 2시가 넘도록 사람들은 한 명도 자리를 뜨지 않았습니다. 10시쯤 시작한 잡담이 장장 네다섯 시간 계속되었습니다. 그날은 그곳 레지던시가 종료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5개월 정도 작가들이 이곳에 일정 기간 모여 워크숍을 하고 논의하고 하는 공동의 기간과 개인 리서치를 하는 시간이 마무리되는 날이었습니다. 
    어떻게 단 한 명도 자리를 뜨지 않았을까요. 그 속에서 펼쳐진 이야기가 온전히 지역을 경유한 것이라고도 지역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없을 것이지만, 그리고 이 주거의 기억이 어떤 예술의 형태나 이념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도 모르지만, 무언가 발생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별과 달처럼 잠깐은 변하지 않을, 그리고 곧 사라질 어떤 자취들이겠지만, 그렇게 영원 앞에 모든 것들은 잠깐 빛나고 마는 것들 아닐까요. 
    그날은 2018년 여름에 별똥별이 쏟아지던 날, 홍천의 분홍공장에서 작가분들과 별똥별이 떨어지는 걸 지켜보던 날과 오버랩됐습니다. 머리를 맞대고 각 시선의 방향이 다르게 누웠습니다. 한 사람이 떨어지는 별을 모두가 보기는 불가능했고, 우리는 같이 하나의 별이 떨어지는 걸 보자는 약속을 결국 포기하고 숙소로 들어갔습니다. 멍하게 바라보던 모닥불과 별로 가득한 하늘이, 아무 말이나 나누던 작가들과 그날 스몰 토크를 하던 작가들의 모습이 겹쳐졌습니다.

    사라질 것들을 만들되 그 사라짐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아가기, 그 사라짐을 매개하기, 사라짐과 사라짐을 잇기, 곧 어떤 사라짐을 가져오고 또 다른 사라짐과 연결하기, 이런 미약한 매개에 대한 의지가 있으면 충분한 것 아니었을까요. 갑자기 지역을 자연으로 등치시키며 낭만으로 모든 걸 덮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사실 이 좁다란 모닥불을 둘러싼 대형은 매우 미세한 것들만이 공명하는 곳이었습니다. 매우 사소하고 소소하고 그런 것들, 대범하고 거창하고 그런 것들을 아마도 거기에서 찾을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거창한 무엇을, 예술이 좇아야, 또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서울 예술가는 낭만을 꿈꿉니다. 그것은 레트로나 빈티지라는 세련됨의 기술로 포장되기도 하지만, 우리는 무언가 생산하기보다 매개하며 마주하고 되돌아보는 기술이 더욱 필요합니다. 80년대 노래나 방송을 보면 어떤 낭만이 가득합니다. 그에 비한다면, 지금은 뭔가 냉소의 주의와 유려함의 기술이 만들지 않는 다른 가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이는 핫과 쿨의 문화적 대비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질 용기가 필요합니다.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는 공포를 감당해야 합니다. 

    지역은 이제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지역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라지는 것에 저항하는 어떤 응시가 가능할 수 있는 곳입니다. 복원이나 복구가 아닌 도래하거나 현현할 무엇이 가능할 수 있는 곳입니다. 우리는 기억 상실증을 겪는 것에서 벗어나 인류의 한 점으로서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가 갱신되며 연결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인류의 타락이나 멸망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한 사람의 죽음 역시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 죽음을 같이 기억하고 기록하기에 사라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이야기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삼부인당 내부, 팔봉산 제2봉에 좌정한 삼여신 그림. 왼쪽부터 며느리 홍씨, 딸 김씨, 시어머니 이씨. ⓒ현지예.

    홍천의 팔봉산 2봉에 있는 신당에는 여신 세 명이 그려진 불화가 있습니다[각주:18]. 시어머니, 며느리, 딸로 이뤄진 성이 다른 세 명의 대안 가족은 어느 날 부둥켜안고 울며 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삼여신은 여성학자 김신명숙의 의견에 따른다면, 인간의 삶과 관계된 자연의 사이클을 의미하는 것으로 분석 가능하다고 합니다. 원형적 여신 신앙에는 탄생과 죽음의 여신이 각각 있고, 이 모두를 균형을 이루는 방향으로 적절하게 관장하는 대모신이 있다고 합니다. 이 세 여신의 관계가 이러한 신화로 표현된 것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서사를 발견하고, 팔봉산에 작가들과 올랐다가 1봉에서 너무 비가 오는 바람에 급히 하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음력 9월 9일에 열리는 당굿을 올해는 가고자 했지만, 코로나로 열리지 않아 가지 못했습니다. 언젠가는 가야지 했지만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제에는 홍천과 마찬가지로 기우제를 지낼 때 여성을 동원했는데, 과부가 속곳을 벗고 강에서 오줌을 싸는 식으로 수행을 하도록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뿌리 깊은 여성 혐오가 공동체의 가치를 구성하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생각했습니다. 개성과 개성이 어떤 급격한 차이로 분할되거나 분리되지 않는 소위 시골이라는 곳의 지역에서는 오히려 성 소수자를 그냥 똑같은 마을 사람으로 보고 있다고 영화 〈불온한 당신〉[각주:19]은 말하고 있다고 합니다. 

    도시와는 다른 지역의 가치라는 것이 있는지, 그렇다면 공동체의 가치라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아니라면 미래에는 그러한 가치가 어떤 것이 될 수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근대의 잘못 봉합된 이념과 역사의 자장을 파헤치고 재절합하는 것이 경성콤[각주:20]의 활동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성콤에 주어진 많은 책을 다시 읽어보는 것, 또 그 책 읽기를 이어 나가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용한 거리 두기, 등산과 텅 빈 곳, 유배 등이 절실합니다. 아울러 서울 예술, 서울 사람의 정신 분석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현상으로서의 지역 예술이 아닌 이념으로서의 지역 예술일 것입니다. 지역에만 있지 않고 사실 우리 모두에게 있는 예술의 이념일 것입니다. 

    [강좌 정보]
    신촌문화발전소 문화예술연계강좌 〈경성콤스터디 ‘예술가의 리서치’〉
    ❶ 강영민이 그린 경성콤스터디 展
    일시: 𝟐𝟎𝟐𝟏.𝟏𝟐.𝟐𝟐 - 𝟐𝟎𝟐𝟐.𝟏.𝟐𝟗 * 월/법정공휴일 휴관

    〈강영민이 그린 경성콤스터디 展〉은 2018년 여름부터 진행해온 경성콤스터디의 커리큘럼 중 대표적인 도서를 선정하여 강영민 작가가 팝아트적으로 재해석하여 다시 그린 책표지를 소개합니다.
    장소: 신촌문화발전소 1층 로비

    "그렇다면 우리는 반대로 가장 어두운 기억을 뽑아내면 어떨까?
    매끄러운 표면 위에 불길한 얼룩처럼 뚫려있는 구멍 속으로,
    그 토끼굴 속으로 들어가 보면 어떨까?"
    _강영민 작가노트 中

    ❷ 경성콤수다회
    일시: 𝟐𝟎𝟐𝟏.𝟏𝟐.𝟐𝟑 - 𝟏𝟐.𝟐𝟒

    〈경성콤수다회〉 경성콤스터디를 통해서 진행해온 스터디・리서치가 구성원의 삶과 어떻게 만났는지, 작업의 방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을 어떻게 바꾸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자리입니다.
    장소: 신촌문화발전소 2층 스튜디오 창
    접속: 온라인 스트리밍(zoom)

    23일(목) 오후4시
    이택광 ‘경성콤이라는 공구통’
    김민관 ‘지역 예술의 이념’
    김민선 ‘문화주택’
    김환희 ‘예술교육의 미래’

    24일(금) 오후 4시
    안대웅 ‘토성의 고리’
    김소원 ‘아니 뭐 이런’,
    전강희 ‘공연 만들 때 쓰는 안경’
    김은주 ‘예술이 정치가 될 때’

    *경성콤스터디는 한국과 아시아 모더니티를 공부하고 반성적 사유를 모색하는 인문-예술 모임입니다.

     

     

    1. 1. 신촌문화발전소 문화예술연계강좌 〈경성콤스터디 ‘예술가의 리서치’〉 중 경성콤수다회(𝟐𝟎𝟐𝟏.𝟏𝟐.𝟐𝟑 - 𝟏𝟐.𝟐𝟒)에서 첫날 발표된 ‘지역 예술의 이념’(김민관)의 전문이다. 발제의 정보 보완을 위한 주석이 추후 달렸다. [본문으로]
    2.  2. 2016년, 작가 레지던스의 독립 출판물 편집장을 맡아 책을 편집했고, 2017-2019년, 레지던스 프로그램 디렉터, 2020년 〈성이 다른 세 여신〉의 리서치 및 출판 편집을 진행했다.  [본문으로]
    3.  3. 한국실험예술정신이 당시 홍대에서 한국실험예술제를 주최, 주관했고, 이를 바탕으로 2008~2012년 사이에 5권의 퍼포먼스 아트 관련 도서 편집을 한국실험예술정신과 함께 진행했다.  [본문으로]
    4.  4.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 당시 홍대에서 열렸고,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은 1998년 독립예술제가 전신이다. 2008년에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서 “이구동성 스~토커”를 맡아 리뷰 작성을 했었다.  [본문으로]
    5.  5. 홍대는 인디와 클럽이라는 음악의 키워드가 존재하는 장소였고,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서도 음악 장르의 예술가들이 공연을 선보였다.  [본문으로]
    6.  6.광주비엔날레를 말한다.  [본문으로]
    7.  7. 부산비엔날레를 말한다.  [본문으로]
    8. 8. 미술에서 대안공간 이후 제도적 지원을 벗어나, 아티스트 런 스페이스 성격으로 작고 허름한 공간에서의 출발과 한시적인 운영이 특징이었던 공간으로, 2016년을 기점으로 처음의 성격과 현상으로서의 새로움은 많이 경감되었다. [본문으로]
    9.  9. 2018년, 《밤의 두께는 밤의 길이를 상회하는가》라는 전시를 열었다.  [본문으로]
    10.  10. 2008년 창단 이후, 극단 이름이 “Analogue and Digital Theatre”의 약자로,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아우르는 기법과 함께 다큐멘터리 연극이라는 장르를 통해 지역을 리서치하고 지역을 만나는 작업들, 문학을 기반으로 한 작업 등을 해오고 있다.  [본문으로]
    11.  11. ‘한 달에 한 주 레지던시’나 ‘희곡 읽는 오후’ 등 여러 프로그램을 공간에서 진행해 오고 있다.  [본문으로]
    12.  12. 공간 그리고 아카이브 북 Ⅰ 『강화도 산책 : 평화 도큐먼트』(2021).  [본문으로]
    13. 13. 〈강화도 산책 : 평화 도큐먼트〉(2021). 제작은 공간 그리고, 작품에는 앤드씨어터가 전면 참여했다. [본문으로]
    14. 14. 인제에서 진행된 아티스트 런 게스트하우스 ‘꼬부랑게하’(2021)를 체험했다. “꼬부랑게하는 전시장이나 극장에서 관람 가능한 작품들과는 다른 환경임에도 한 예술가의 아이디어와 실행으로부터 전유된 인제의 특수한 시공간―무한정한 열린 인제나 한정된 관광 코스로서 인제와는 차별화된―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작업이자 비평 가능한 작품이기도 할 것이다.” https://www.artscene.co.kr/1751  [본문으로]
    15. 15. 다큐멘터리 연극 〈이후의 도시〉(2020). [본문으로]
    16.  16. 안민욱 작가, 〈마스터 베이비(Master-Baby)〉, 2017. 나무, 의자, 휴지통, 물티슈, LED 전구, LED 조명, 석고, 모터, 아크릴, 112.1x104.8x238cm. 이를 물론 실패라고 단정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작가는 순수하게 커뮤니티 아트를 기획했기보다 애초에 개인적 욕구를 금지당하는 군인의 생활 여건에 주목했고[“만약 예술이 없는 세상이 있다면 군대가 아닐까?”(안민욱)], 일상에서 존재하지 않는 비가시성의 존재로서 군인을 상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작업은 온전히 성공한 것이다. 다음 안민욱 작가의 포트폴리오 홈페이지에 사진들과 글이 실려 있다. https://pricks.tistory.com/entry/Master-Baby  [본문으로]
    17.  17. 부제는 “관점의 전환, 세상을 보는 시선들”로, 7명의 참여 작가의 전시 및 발표, 두 편의 환경 관련 영화가 저녁에 상영됐다. https://www.gokams.or.kr/01_news/event_view.aspx?Idx=37063  [본문으로]
    18. 18. 2020년 〈성이 다른 세 여신〉의 리서치에서, 현지예 드라마투르그와 김남수 안무비평가가 이에 주목했다. [본문으로]
    19.  19. 이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2015년 상영됐다. 2019년 분홍공장에서 열린 ‘젠더지리학’ 2차 라운드테이블에서, 정희성 연구자와 함께 쓴 「퀴어와 공간의 관계 재구성」이라는 논문을 기초로 한 트랜스젠더퀴어 연구활동가 루인의 발제를 통해 영화의 존재와 의미를 확인할 수 있었다.  [본문으로]
    20.  20. “일제 강점기 말기에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이자 비밀결사 조직”(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경성콤그룹, 2021.12.31. 접속.)인 경성콤그룹을 전유해, 2018년 “한국 모더니티의 중요한 한 축이지만 잊혀져버린 코뮤니즘 사상과 운동의 역사를 복기해 실재의 역사를 그려보려는 스터디 모임”으로 시작해, 매 기수별로 주제를 정하고 이에 맞춰 도서 목록을 선정해 매주 읽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주로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 발제 역시 발표된 “경성콤수다회”로 2021년의 마지막 행사를 진행했다. 이는 그동안 경성콤스터디를 통해 진행해 온 책 읽기와 제반 활동과 자신의 삶을 연계해 발제하는 시간으로 진행됐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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