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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이즈미 메이로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 내용적 진실으로서 VR
    REVIEW/Visual arts 2021. 12. 2. 12:01

    고이즈미 메이로,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 ⓒ Aichi Triennale 2019 Photo - Shun Sato

    고이즈미 메이로의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는 하나의 텍스트에 대응하는 두 번의 관람 방식을 취하는데, 한 번은 VR, 두 번째는 스크리닝이다.[각주:1] 이 매체의 전환이 실은 이 작품의 메시지라는 점에서, VR의 활용은 부차적인 것이면서 필연적인 것이 된다. 동시에 그 텍스트는 순전한 내용이 아니라 두 다른 세계와 연결하는 지표로 기능한다. AI 기계음의 목소리가 가상 공간에 대한 가장 분명한 부재를 지시하는 현존―가령 목소리는 인간의 현존을 어설프게 흉내 내는 기계의 목소리이다.―이라면, 스크리닝에서는 실제 루게릭병 환자의 말과 동기화된다. 

    VR이 기술적 시현을 위해 신체를 ‘구속’한다면, VR 장치를 벗어버린 스크리닝의 시간은 이 지점이 예외적 존재가 발화하는 하나의 시간을 경험하고 있었음을 전한다. 곧 기술은 우리의 일반적 감각을 이탈하기 위한 매체였음이 드러난다. 관객은 현실에서 실제 존재했던 발화가 가상 환경으로 던져졌음을 사후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그래서 관객은 다른 시간과 장소로부터 연결된, 곧 목소리가 가리키듯 과거와 미래가 연결되고 뇌와 뇌가 연결되는 세계로부터 지연된 실제적으로는 실시간으로 목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곧 남자의 말은 현재가 아니라 과거를 기록한 것이고 관객은 비로소 그 장소에 도달한다기보다는 그 장소가 앞서 펼쳐졌음을 뒤늦게 확인한다. 

    관객은 서사가 말하는 바깥에서부터 온 존재이다. 이 바깥은 공간이 아닌 시간이다. VR의 가상성이 확인되는 것은 실제 남자의 모습을 통해서다. 곧 이것이 가상이지 않은 듯한 생생한 세계 자체의 감각을 주고자 하는 VR은 그 서사가 지시하는 가상이 현실에서부터 온 것을 경유해 남자의 꿈을 지지한다. 거기에는 사실 바깥이 없다. 신체는 투명해지고 사물은 장애물이 되지 못한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면, 존재와 존재, 사물과 사물 사이의 경계는 없다. 이것이 VR이 보여주는, 만져지지 않는, 이미지의 환영만 있는, 그러나 우리가 실제가 아닌 것을 보기 위해서 발명되지 않은 눈을 통해 여전히 보이는 세계다. 즉물적으로 우리의 손이 닿을 수 없고, 우리의 몸이 그 세계의 경계에 있음에서 이는 가상의 이미지로 상정된다. 그것이 누군가의 꿈이라는 게 명확해지는 순간, 관객의 시간은 합산되며 증폭된다. 

    마지막에 남자는 휠체어의 부상으로 일어선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장치는 일어섬을 만든다. 주체는 도약한다, 신체의 자유가 아니라 신체로부터의 자유로. 주체의 의지가 닿지 않는 지점에서 움직임은 주체의 꿈이 경계를 지정할 수 없는 확장된 지점과 별개로 매우 초라하다. 역으로 그 꿈은 신체의 어느 한 부분도 여전히 움직일 수 없음을 속인다―곧 이러한 움직임은 기적이 아니라 그런 속임수가 탄로 나는 지점이다. 관객은 VR의 세계에서 움직임을 취할 때 비대한 눈-머리, 그리고 잘린 손과 발에 의해 오히려 그라운드에 더욱 접지된다. 반면 VR은 우리의 세계가 무한하고 광활하며 경계가 없음을 강조한다. 

    모니터가 아래에 있고, 그 위에 미닫이 창문이 열었다 닫았다 하는 건 이 전시를 위한 설계이다. 다음 VR 체험자의 모습이 우리의 이전 모습을 재현한다―기우뚱한 균형으로 걷는 모습. 곧 30분 단위의 시간 분배가 1시간 총량의 작업에 절합되는 순간, 그 창문을 열어젖힌 순간이다. 동시에 모니터는 또 다른 두 개의 시간을 분배한다. 먼저 말하는 남자, 그리고 뒤따르는 남자, 시차로 두 대의 카메라로 송출하는 영상은 그렇게 도래하는 말과 지나가는 말이라는 말의 시차라는 이념을 가지고, 이 퍼포먼스 형식의 전개를 지시한다.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세계’, ‘내가 모든 시간에 편재해 있는 세계’, 그렇지만 결국 신체를 벗어날 수 없는 세계가 이 작품의 최종 결론이다. 

     

    김민관 mikwa@naver.com

     

    [작품 정보]

     

    작품 일시: 11.26.금—11.28.일 / 12:00 / 12:30 / 13:00 / 13:30 / 14:00 / 14:30 / 15:00 / 15:30 / 16:00 /

    16:30 / 17:00 / 17:30

    상연/상영 장소: 문화역서울 284

    지역: 도쿄

    장르: VR 퍼포먼스

    소요시간: 60분

    소개: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는 아이스킬로스의 동명 비극에서 출발한다. 인간에게 불이라는 기술을 훔쳐다 준 대가로 영원한 고통에 빠지게 된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는 인간과 기술 사이에 존재해 온 기나긴 긴장의 역사를 시사한다. 이번 VR 작품에서 고이즈미 메이로는 근육이 굳어가고 있는 루게릭병 환자와 대화를 나눈다. 둘은 함께 과거와 미래, 자신과 타자, 인간과 기계가 뒤엉키는 공상과학 같은 근미래를 상상한다. 우리의 몸과 감각이 가상 현실로 확장될 때, 우리가 보게 될 것은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 페스티벌 형태의 가상 정거장》 일환으로 열림.

     

    가상 정거장 소개:

    역사 속 서울역은 물리적인 장소들을 이어주던 정거장이었다. 문화역서울 284 협력전시 ‹가상정거장›은 이곳에서 여러 멀티버스들을 잇는 장을 만든다. 단일한 세계를 상정했던 과거와 달리 여러 세계들이 중첩되고 있는 오늘날, 현실과 가상, 물질과 비물질을 넘나들며 이 시대에 필요한 비평적 사유를 모색한다.

     

    홈페이지: http://virtualstation2021.com/

     

    1. 1. 이 작품은 가상 정거장》의 일환으로, 해당 홈페이지에 나온 작품 표시에서, 퍼포먼스로 기재돼 있다. 후반의 스크리닝 , 그리고 스크리닝을 위한 이동을 제외하고 남은 VR이 퍼포먼스라는 장르로 수렴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다. 물론 화면이 중개하는 사물들을 따라 관객은 이동할 수 있다. 반면 일반적인 전시에서 작품들을 따라 이동하는 것이 곧 퍼포먼스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이러한 명명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져갈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작품을 따라가거나 그렇지 않거나 하는 선택 역시 동일하다. 그렇다면 아마도 VR 장치를 착용한 어정쩡한 퍼포머(?)의 몸짓이 퍼포먼스의 수행성으로 옮겨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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