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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효덕, 《현자의 돌》, ‘구리라는 의미 계열체’
    REVIEW/Visual arts 2022. 1. 14. 22:30

    황효덕, 《현자의 돌》 ⓒ김민관(이하 상동). 전면의 다섯 개의 패널에 올려진 구리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다(황효덕, 〈구리 조각〉).

    《현자의 돌》은 ‘구리’라는 재료를 활용해, 병렬, 접합, 서사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을 창출한다. 그중 입구 오른쪽 벽면에 자리하는 〈용바위〉(2021-2022. 구리판, 바위 표면 캐스팅, 450×280×100cm.)는 구리의 내재적인 연장으로서, 화기의 사용 없이 두드리는 행위를 통한 일종의 연금술적 생성에 가까운데, 구리의 재질을 작가의 노동의 인장으로 번역하는 한편, 각각의 구리판을 차이의 소산들이라는 심미적 기호물로 변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자의 돌”이라는 제목은 이러한 전시공학의 문법이 은유적인 서사로 수렴시키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용바위〉가 색, 바램, 평평함, 접힘, 주름, 입체의 여러 각과 기울기 등을 형성한다면, 〈구리 조각〉(2021-2022. 구리, 1024개.)은 수많은 구리로 만든 파편들이다. 그 자체로 도상이 아닌, 의사-도상이거나 도상으로부터 미끄러지는 어떤 잉여 또는 파편 같은 것들로, 일정 정도의 형태를 지닌다. 읽을 수는 없지만 네모난 칸에 병렬되면서―구리판이 그 자체로 윤곽까지를 포함하는 ‘전체의 변형들’이라면, 이는 임시 경계 안에 구획된 응결된 사물로서 자족성을 띤 전시품으로 놓인다.―, 그러한 파편들의 차이를 박물관적 아카이브의 계열체로 일관되게 수렴시킨다. 여기에는 하나의 빈칸에 들어간 QR 코드가 있고, 이를 따라가 작가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메타-사물로서의 지위는 일련의 기간 단위로 분배하는 작업 과정을 아카이브하는 작가의 서사로 수용된다. 

    황효덕, 〈용바위〉.

    이러한 도상의 의미는 너무 작으므로 본래의 지층이 전도된 결과이다. 이는 일종의 오인과 오해이다. 곧 디테일한 세부들을 지닌 전체가 아닌, 뚜렷한 형태의 전체가 되는데, 그것이 〈용바위〉의 크기로 이뤄졌다면, 이는 도상이 아닌 온전한 전체의 생성으로 여겨졌을 파편들이 사실 함께 공존한다. 〈구리 조각〉의 공존, 평등한 분배의 원칙이 이질적인 정보―팬데믹 사태 이후 각각의 점조직으로 분배되는 방역으로의 정보 기능에 익숙해진 이에게는 친숙한―에 따라 기간에 따른 집산으로 의미화(특정화)된다면, 나아가 기간에 따른 집산으로만 의미화될 수 있다면, 〈용바위〉는 전체에 대한 재현의 순수한 차이들로서 연속된다. 각기 다른 형태로 주어지는 텅 빈 이음매는 그 연속을 차이의 강도로 지시하는, 순전한 표면-조각의 집합임을 드러낸다. 〈용바위〉가 재현하는 바위보다 큰 덩어리인 일종의 암벽이 실제 그것을 하나의 평면에서 개별적으로 분절해서 적용한 것으로는 보기 힘들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암벽’은 오히려 온전한 차이들의 접합을 통한 순수한 집합으로서 기능하기 위한 명목이 된다. 

    〈용바위〉는 이를 수직적으로 구현함으로써 신체 전면에 맞닿으며 현상학적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반면, 〈구리 조각〉―1024개라고 한다.[각주:1]―은 바닥에 누이며 가깝고 먼 것의 차이를 극대화한다. 따라서 이 같은 배치는 한 눈에의 조망―이는 “뚜렷한 형태의 전체”를 성립시킨다.―과 디테일을 영접하기 위한 신체의 굴신을 통한 훑기 사이에서 보기의 기울기를 적절하게 조율하기 힘든 난점을 가져온다. 만약 쪼그려 앉는다면, 가장 먼 곳의 사물들까지 완전히 가까워지지는 않는다. 그 평면 자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샐러맨더〉(2021. 감열지, 100×15cm)는 〈구리 조각〉의 파편들을 사물들의 집합이 아니라, 미적 기호로 볼 수 있게 변환한다고 가정했을 때의 어떤 변환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황효덕, 〈불멍〉(2022. 싱글채널 영상, 5분).

    이제 가장 큰 부피의 두 작업을 지나면, 〈Frost Bite〉(2022. 싱글채널 영상, 14분 57초)가 전시장 깊숙이 전면에 들어온다. 반대편 벽의 〈불멍〉(2022. 싱글채널 영상, 5분)과의 사이에 〈달은 차고 산은 기운다〉(2021-2022. 옥수수전분, 미네랄 오일)―유일하게 구리의 소재와 구리를 연상시키는 소재가 사용되지 않았다.―가 끼어 있다. 
    구리의 색감을 스펙트럼으로 확장해 일종의 추상 회화의 동적 변용을 구성하는 영상 작업, 〈불멍〉이 물질적 재료들의 가상-이미지의 도약이라면, 〈달은 차고 산은 기운다〉는 산 중턱을 통과하는 인제 터널의 미니어처식 재현인데, 이 전체를 뚫지 않는 일부 원기둥의 도상이 지닌 인공성은 그 일부만의 자취를 간직하는데, 이는 터널의 사실적 재현에서 미끄러지면서 스크린이 설치된 가벽 뒤의 설치―〈놋쇠 양동이〉(2022. 청동, 60×40×25cm)―를 지시하는 일종의 화살표 같은 도상으로 기능한다. 곧 몸이 그 곡선의 자취를 따르게 하면서 시각적인 이동의 표지를 간직한다. 이는 약간의 점도와 미세한 습도를 머금고 있어 무르고 (단단한 구리와 비교해) 연약한 인상을 준다. 

    황효덕, 〈놋쇠 양동이〉.

    〈놋쇠 양동이〉는 〈Frost Bite〉의 서사 일부의 물리적 현전으로 자리한다. 이는 가벽의 앞과 뒤라는 동전의 양면 같은 접면에 따른 ‘관계항’ 설정과 명암에 따른 ‘발견’의 의미를 구성하는데, ‘유일하게 화자―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로 보이는―의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준 장신구’를 할머니가 자신의 왼손 약지에 평생 끼고 살았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일종의 말 없는 퍼포머가 등장하고, 설경 아래 〈달은 차고 산은 기운다〉의 배경이 되는 인제 터널, 〈용바위〉를 지시하는 바위 등이 나온다. 

    〈Frost Bite〉 앞에는 스피커로 기능하는 손으로 움켜쥔 흔적이 각인된 구리 주물 덩어리 여러 개의 〈구리 스피커〉가 테이블 위에 놓이며 앉아서 그 소리를 들어볼 것을 제안하고 있다. 여기 연결된 전선은 〈용바위〉로부터 온 것으로, 이는 또 다른 두 작업과 연결된다. 〈놋쇠 양동이〉와 〈///”;//,〉(2022. 구리망, 35×35cm)이 전시장 안의 비가시적 영역 안에 놓인다면, 〈선형〉(2022. 구리, 열수축튜브, 나무, 전선, 250×40×40cm)은 전시장 바깥에서 보이며 전시장 일부를 포섭한다―〈선형〉이 바깥에 놓인다면, 〈///”;//,〉는 〈용바위〉와 창문 사이에 위치해 전시장에서 드러나지는 않는다. 도로 위 중앙 분리대를 길게 늘여놓은 것처럼 빨간색과 흰색이 교차되며 구리 선이 감겨 있는 〈선형〉과 유리창을 둥글게 뚫고 거기 안에서 황금 달처럼 반짝이며 걸려 있는 〈///”;//,〉로부터 이 전선이 오는 것이다. 

    황효덕, 〈구리 조각〉 왼편에 위치한 영상은 〈Frost Bite〉이며, 〈구리 조각〉의 중앙쯤에 위치한 기다란 오브제가 〈You can hold it. Really!〉이다.

    수직―〈구리 조각〉에 ‘기생’하는 〈You can hold it. Really!〉(2022. 구리 파이프, 온수보일러, 실리콘 튜브, 5×5×420cm)는 〈선형〉과 안팎으로 대구를 이룬다.―과 수평의 배치, 가벽과 〈용바위〉라는 경계를 통해 안과 바깥의 설정을 통해 《현자의 돌》은 전시 공간을 입체적인 지형으로 전유한다. 전선에 연결된 안테나가 AM 주파수를 잡아내는 것으로, 전시 공간 바깥을 전시로 인계하는 차원에서 확장된 감각을 수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을 손으로 잡고, 사운드가 신체로 연장되는 감각의 체험을 하기에는 손의 자국이 생각보다 크다. 곧 접촉을 하기에는 쉽지 않은데, 〈구리 조각〉이 만질 수 없는 ‘까다로운’ 전시품으로 놓이며, 〈달은 차고 산은 기운다〉는 만지기에는 너무 위험 부담이 큰 것으로 놓이며, 나아가 영상 전시에 어느 정도 포화되는 독립성을 갖기 힘들기 때문이다.[각주:2]  

    〈구리 조각〉의 웹으로의 연장―“구리 모양들(Copper Pieces)”―은 1024개의 모든 구리 조각을 시간순으로 아카이브한 것들을 보여주는데, 중간중간 작가의 작업 이념이 소개되고 있다. 이는 물리적인 차원으로 한눈에 조망이 가능한, 그러나 세부에 집중하기 힘든 몇 개의 네모난 판의 레이어들 대신에 수평적으로 세부를 버퍼링 없이 가로로 2개의 모양을 배치하며 크게 다섯 개의 챕터로 정렬한다. 
    《현자의 돌》의 조각을 보여주는 방식에서 전시 공간과 웹을 활용하며, 전시장 안에서‘도’ 일부 만질 수 있는 지점들을 두며, 조각과 삶의 관계를 탐색하거나 조각의 미술품으로서의 메타적 인지를 보여준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세 〈용바위〉의 부피적 스펙터클, 〈구리 조각〉의 양적 스펙터클 외에도 자전적 서사의 보강, 물리적인 전시 공학적 층차를 분배하는 식으로 작업을 아카이브 과정 자체로 수렴시키는 한편 작가의 경험을 초월적 차원―대자연과 인간 문명, 미시사의 확장―에서 연결 짓고 있다. 결과적으로, 몇 개의 이질적인 작업들의 파편적인 분배는 매체적 확장/실험으로 분류하기보다는 “현자의 돌”을 찾는 작업의 이산과 변주 가운데 불가능성의 현존으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전시의 온전하게 드러나지 않는/드러날 수 없는 제목의 이념적 차원을 가리키는 듯 보인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전시 개요]

    ‘서울문화재단 BENXT(비넥스트)-시각예술 선정작’, 황효덕 개인전, 《현자의 돌》

    전시 일시: 2022.1.8.(토) - 1.28.(금), 월요일-일요일, 매일 오전 11시 - 오후 7시
    전시 장소: 문래예술공장 1층 갤러리M30

    전시 소개:
    “쓸모없는 것을 금이라는 귀중한 물질로 바꾸는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쓸모없는 것을 금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믿음과 몽상이 나는 더 흥미롭다.” -작업노트 중-

    《현자의 돌》은 흔한 물질로부터 값어치 있는 것을 만들어 내려 했지만 결국 모두 실패하여 폐기된 과학이었던 전 근대 과학기술 연금술을 모티프로 한다. 이는 오늘날의 지구 평면설, 별자리 읽기, 혈액형별 성격 구분, MBTI 성격 검사 등과 같은 유사과학과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것들을 믿고 자신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판단의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현자의 돌》은 작은 실험실 안에서 연금술의 결과를 초조히 기다리던 어느 연금술사처럼 ‘아직’ 보이지 않는 세계를 조우하기 위한 믿음과 가능성에 중점을 둔다. 본 전시는 입체, 영상, 사운드의 매체로 구성되며 물질과 비물질이라는 주제와 재료의 연구를 통해 '아직 보이지 않는 세계를 어떻게, 그리고 어떠한 방식으로 사유하여 하나의 새로운 사건으로/상태로 전유시키는가?'를 질문한다.

    작가 소개: 
    황효덕은 서울에 거주하며 서로 모순되는 개념과/물질의 상태를 지속시키는 대립지점, 확정되지 않은 제 3의 지점에 많은 관심이 있다. 이를 통해 ‘어떻게 하면 임의적으로 선택한 물리적 조건 속에서 가시적이거나 비가시적인 물질(성)을 유지시키면서도 와해하게 만드는지, 그리고 그 사이에서 물리적, 미학적 그리고 심리적인 장치들을 어떻게 고안하는가?’를 고민하며 설치기반의 미술작업을 하고 있다.

     

     

    1. 1. 전시 핸드아웃에 실린 송하영의 일종의 서문은 전시의 세부를 잘 분석하고 설명하고 있어 전시에 대한 훌륭한 지침이 된다. [본문으로]
    2. 2. 참고로, 전시를 한 번 더 관람했다. 구리 스피커가 차가운 촉감이라면, You can hold it. Really!는 대조적으로 온기가 전해진다. 후자는 제목에 만질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물론 이는 심미적 알레고리로 거리를 벌릴지도 모른다. 반면, 이 만진다는 것은 전시를 꿰는 중요한 감각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주로 전시장에 놓인 사물들에 대한 체험으로 글을 기록했던 반면, 이미지-배경으로 생각했던 Frost Bite중 퍼포머(남혜연)가 얼음 한 조각을 잡은 손은 앞선 두 작업과 함께 전시의 서사로 연결되는 것이었다. 이 얼음이 춥지 않게 느껴지는 건 일종의 연기일 수 있지만, 퍼포머가 작가의 할머니를 대신하고 있어서일 것이기 때문이다. 곧 할머니가 낀 반지와 얼음을 잡은 손을 합성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기억의 변환 작용이 있다. 그렇게 얼음의 물성은 기억의 정동에 맞닿는다. 22.02.01 부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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