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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선화, 〈혹시 마주하기 ; Reflection〉: 불화로서 몸에서 출발하기
    REVIEW/Dance 2025. 7. 15. 18:15

     

    혹시 마주하기 ; Reflection(이하 마주하기)에서 거울과 카메라는 ‘reflection‘, 곧 제목이 가리킨 두 개의 상을 매개하며, 이를 이중으로/동시에 마주하는박선화 안무가가 있다. 무대는 하나의 흰색 평면을 이루는 공간이며, 중앙의 분장대와 그 위에 놓인 카메라가 비추는 관객을 투사하는 분장대 위쪽의 화면이 공간의 너비만큼을 차지하고 있다. 이 거울을 통해 자신을 보면서 관객이 자신을 보는 걸 볼 수 있는 자신을 그 바라보는 시선들에 역으로 노출하는 박선화가 등장하고, 그 참여된 관객 자신을 보는 박선화를 보는, 그 보이는 대상이자 그러한 대상이 그 중간의 박선화에 의해 반영되어 감을 선취하는 보는 주체 사이의 시차 속에 이중으로 각인되는 (걸 보는) 관객이 뒤편에 자리한다

     

    이 복잡한 터널의 경계로부터 움직임의 계기가 만들어지는데, 캐리어를 들고 극장으로 등장한 박선화가 분장대의 의자에 앉고 스스로에게로 스스로를 향한 응시의 시선을 경유해 응시하는 과정에서, 표출되는 정서적 자장이 생겨난다. 곧 이후 시작될 네 개의 음악에 대응하는 방식으로서 박선화는 무대를 마주하는데, 그 사이에 어떤 감정의 차이들은 그 음악들에 대한 모티브를 가리키는 희미한 단서가 된다. 여러 다양한 색채의 자아가, 과거의 흔적이 자리하고 (앞선 감정들은 다만 그 흔적들로서 실재를 재현하며 그것을 표현하지는 않는 대신) 음악은 본격적으로 그것을 표현하는 매개체가 된다

     


    박선화는 분명히 몇몇 순간에 음악 안에 있다
    . 첫 번째로 Boney MSunny가 나오는 순간, 그는 증폭된 음악과 함께 관객석을 횡단하며 관객을 수축시키는데, 이는 관객의 양방향적 소통과 참여에 대한 강제를 구성한다. 이 참여의 현장이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은 것은, 그 현장의 연출된 열기가 스크린-거울과 거울-스크린의 이중적 시선의 관객을 뒤로하고 마주하며 자신을 보()는 봄과 보임의 겹침, 보임에 대한 인지와 봄의 의지의 자기 의식 내 경합 작용을, 분열의 양상을 종합해야 하는 박선화의 기이한 상태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곧 거울과 카메라는 자아와 사회를 통합하는 기전이며, 그 사이의 갈등이며 갈라짐(에 대한 극복의 몸짓)이다. 그렇지만 음악을 처리해야 하는 건 박선화이며, 그는 음악들을 하나씩 훌륭하게 처리해 나간다, 그 음악의 재현적 차원에서, 장르적 차원에서, 또는 질적 차원에서. Sunny가 대중음악적 차원에서 전형적으로 흥을 돋우며 분위기를 고양시키는 음악의 정체성에 박선화는 부합한다. 다음으로 Connie FrancisSiboney는 간주곡으로, 분장대에 앉아 머리를 풀거나 매만지고 옷을 갈아입는 절차들을 거칠 때의 박선화의 정서를 반영한다. 곧 박선화의 정서에 대한 재현으로 자리한다. 이때 박선화는 음악과 함께 음악 위에 ()있다.

     

    Disse alguem(All of Me)가 나올 때 박선화는 그 음악 안에 있(고자 하)는데, 가령 그가 눈을 감고 그 음악을 듣는 순간이 그렇다. 노닐고 육박하며 연장되는 신체, 그리하여 변주되기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신체, 동시에 자유롭고도 의지적이며 텅 비워지는 신체, 입을 벌려 텅 빔을 수용하는 듯한 기이한 수축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신체, 이 곡에서 박선화의 움직임은 아마도 가장 고유한 차원에서 자연스럽다

     


    다음으로
    , 붉은 하이라이트 조명이 하나에서 둘로 늘어나고 공간 전체가 붉게 물드는 분장실에서의 박선화의 응시 이후에 시작되는 붉은 MetallicaEnter Sandman에서 강력한 메탈의 음향에 맞춰 기타리스트나 보컬의 몸을 본뜬 움직임으로 그 음악의 반응으로 요구되는 아마도 상상할 수 있는 재현적인 몸짓을 유려하게 표현한다. 박선화는 그 음악 안에 있음을 연기하면서 관객으로부터 유리되어 있음을 선취하려는 듯 보인다음악과 함께 그 바깥으로부터 유리된다. 이때의 괴리됨, (눈앞에 마주하는 누군가로 대응될) 무언가를 완벽하게 차단하려는 욕망의 굴절된 모습으로서 그 움직임들은 피상적이고도 표피적이다

     


    그는 정면을 마주하며 숨을 고르고 이내 과호흡 증후군에 걸린 사람으로서 그 호흡으로 인해 뒤집히고 굴복하며 사투하는 몸짓들로써 불연속적인 노이즈의 음악을 대체한다
    , 더 정확히는 표현한다. 그 끝에 자리하는 MahlerSymphony No. 5_ IV. Adagietto를 그의 숨이 뚫고 나오려 하며 오버랩되고, (음악은 드리워지다가) 그 숨이 안정화된 이후에야 비로소 박선화는 음악 안에 있게 되는데, 마지막 몸짓은 그 음악 위에 여린 몸짓을 얹는 것으로, 이는 그 음악 위에 흐릿하게 있으면서 그 음악이 비로소 체현되는 경로로서 몸에 이르는 부분이다

     

    호흡이 음악을 함입하는 신체의 연장선상에서 수용되는 것에서, 그 호흡 자체가 명시화되면서 모든 걸 집어삼키는 과정은 일종의 히스테리 증상으로 볼 수 있을 것인데, 이는 안으로 수렴하는 그에 대한 신체에서 그가 응시하며 방어하는 그의 신체까지를 전면적으로 뒤집는 것이다. 응시로 이어진 끈은 결락되는 경로와 과잉의 발신, 덜컹거리는 숨, 곧 말의 불화로 드러나며, 불안정적인 몸, 곧 세계의 상태 안에 관객을 잡아끌며 담근다. 이는 가장 처음 분위기를 달군 과잉의 몸짓들이 기괴하게 우리를 포함한 응시의 시선 아래 머물며 우리를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재인지하게끔 만들었던 것과 달리 진정 보이지 않는 가장 작은 것으로부터 내파된 세계에서의 과격한 자유를 맛보게 한다. 그것은 결코 쉬운, 편안한 것이 아니다

     


    박선화는 이 응시의 결정체로서 자신을 수렴하는 것의 간격을 드러내고
    , 정확히는 그 간격 속에서 태어나고, 거듭나며, 그 간격을 새롭게 형성해 내고자 한다. 몸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포스터 속 이미지에서처럼 언제부터인지 모를, 아니 그 시점으로 귀결되지 않는, 고통과 간격과 불화를 안고 있는 덜그럭거리는 몸임을, 그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걸 상기해 내며, 그렇게  음악 위에 몸을 투신하고, 음악 위에 머무르며, 그 스스로가 음악이 되고, 나아가 그 음악과 함께 닫히는 과정을 겪는다.

     

    [공연 개요]

    기간: 2025. 06. 27.()-06. 28.() ** 20: 00 , 17: 00

    장소: 언더스탠드에비뉴 아트스탠드 (서울 성동구 왕십리로 63)

    문의: weallreallymatter.official@gmail.com

     

    안무·출연: 박선화

    조안무: 전환성

     

    무대: 이도엽

    조명: 김지우

    사진·영상기록: 피아츠

    그래픽디자인: 안수빈

    프로듀서: 김혜연

     

    주최·주관: 박선화 @seonhwapark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 2025년도 청년예술가도약지원 사업 선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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