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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헌, 〈All i do for glory〉: 우리를 잠식하는 것들의 영광REVIEW/Dance 2025. 7. 30. 23:39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SAL) 창단 5주년 기획 공연 ‘GAMMA’의 시작을 연, 권재헌 안무의 〈All i do for glory〉는 두 다른 움직임의 병치를 주요하고 집요하게 사용한다. 이는 아마도 중앙에서 손목을 꺾은 채 아래로 향한 두 팔을 힘주어 좌우로 왔다 갔다 하는 중앙의 일자와 그 나머지의 일치된 집단적 움직임의 도열, 그 둘의 대비라는 첫 번째 순간에서 가장 강렬하게 드러난다. 전자의 두 팔의 한 방향으로의 운동이 한쪽 어깨의 꺾임을 필히 동반하며 그 뒤틀림에 주의를 실리게 한다면, 후자의 보디빌딩의 대표적인 포즈, 프론트 더블 바이셉스와 유사한 과시적 표현의 형태이지만 이두박근의 조임 대신에 거의 완벽한 직각을 이루는 팔꿈치의 각도를 유지하는 포즈는 그 자체로 너무 과도해서 기괴해 보이는데, 이 둘은 형상과 배경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고정된 축으로서 형상과 극단적으로 변경되는 움직이는 배경의 맞물림 속에서.
배경은 한순간에 일제히 무너지는 것으로 걷히고, 가득 찬 집단의 존재들은 일제히 빠르게 옆으로 굴러서 안쪽으로 사라짐으로써 롤지처럼 말린다. 이는 다시 처음의 포즈로 돌아오는 순환의 경로를 밟는다. 형상의 세부, 곧 뒤틀린 어깨의 촉각적 세부는 새로운 집단적 움직임으로 분기할 때 이를 악문 채 갈리는 음악과의 동기화에 따른 사각거림으로 이전하는데, 이는 홀로 종을 든 채 무대 왼쪽 일렬로 선 이들을 마치 사열하거나 일깨워 주는, 일종의 벨보이 같은 역할로 뚜렷하게 구분되는 배진호만의, 그 전의 집단 안의 동일한 움직임 속에서 먼저 발견되었던 부분인데, 이는 그의 독자적 움직임 속에서는 알 수 없는 과잉된 미소의 고착됨으로 현상된다.그리고 과잉이면서도 그보다는 과장된, 의례적 연출의 커플이 팔짱을 끼고 등장하는 짧은 장면 이후로, 급격하게 현실은 해체되고 존재들은 탈구된 모습을 보인다. 현실 안에 놓이기보다 현실‘로’의 경계를 지정하는 배진호를 이들을 매개하며 동시에 이들과 다른 트릭스터적인 존재로 본다면, 그 바깥의 하나의 자아 도취된 집단은 이제 남녀 한 쌍씩 다분히 퇴폐적인 관계를 맺는 것으로 분열하는데, 이는 한편으로는 느슨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필요 이상의 힘이 방사된다. 곧 의사 성행위적 결속은 축 늘어진 하나의 신체를 과격하게 제어하되 결코 매끄럽게 이뤄지지 않는다.
더 큰 자극의 완성은 〈All i do for glory〉에서 가장 주요하고 긴 분량으로 지속되는 남자의 장갑 낀 손으로 얼굴 전체를 움켜쥐고 여자의 버둥거리는 신체의 쌍이 만들어질 때인데, 이러한 폭력의 재현은 손 틈으로 새어 나오는 쾌락의 표정만으로는 정당화되기 어려워 보인다. 거기에는 분명 과도한 힘의 투여가 연약한 신체로 전이되는 부적절함이 너무 선명하다―물론 이는 남녀의 바뀐 역할로도 시현되지만 이는 예외적이고 찰나에 불과하다. 여기에는 분명 주의가 필요한데, 곧 뒤따르는 질문은 이를 순전히 욕동과 이성의 변증법적 고양 혹은 상호 정립적 관계로만 볼 수 있는지의 여부, 설사 그렇다고 해도 다분히 남녀에 대한 편의적인 재현의 도식을 재현의 위험을 무릅쓴 채 반복할 필요가 있느냐라는 것이다.그럼에도 이를 구명 장치로서 장갑과 위급한 존재의 목구멍의 도식이라는 하나의 주체의 형태적 프로세스나 두 다른 성정의 분열적 총체로 볼 수 있다면, 이 같은 장면은 소비가 보여주는 텅 빈 욕망은 지배당함과 지배함의 도식 아래 폭력적으로 분출됨을 드러낸다고 하겠다. 그것은 물질적인 것의 매개 대신에, 물질적인 것에 대한 욕망 대신에, 전도된 몸, 굴절된 몸에 가해지는 자극의 수위를 수용하는 것, 반대로 새나오는 욕동을 틀어막는 잔인하고도 냉정한 결기의 지속으로 드러난다. 곧 욕망은 계속 채워지는 무엇이며, 계속 억누름에도 보존되는 무엇이다.
질펀하고도 늘어뜨려지는 몸들의 생생하고도 거친 시간의 솔기를 지나면, 어둠의 실존적 시간이 찾아오는데, 수평으로 도열한 이들은 입에 랜턴을 물고 두 손을 보며 작은 웅덩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는데, 단속적으로 꺼져 가는 빛 이후에 이들은 다시 재생되며 경박한 춤의 양식을 선보인다. 위로 솟구친 손을 깜빡거리며 점차 음악 역시 증폭되며 카운트다운의 순간이 출현하는데, 음악은 단지 시동만 거는 데에서 그칠 뿐이다. 결말은 느슨해지고 나약해진 한 남자가 등장하고, 그 앞에 나타난 여자는 입에 문 조명을 남자에게 떨어뜨리며 남자를 들고 이동하려 하는 모습인데, 결국 외부에 대한 강력한 의존은 존재의 복구와 재생이 불가능함을 보여주는 것이다.형상과 배경의 정확한 경계선을 초점화하는 시작의 방식, 두 사람의 손과 얼굴의 부분적인 접촉으로부터 다시 분기되는 냉정한 응시의 시선과 버둥거리는 신체, 그 사이의 익살스러운 캐릭터의 등장과 전환, 그 전후로 과잉된 포즈에서 쇼를 위한 몸짓들까지 〈All i do for glory〉는 소비에 대한 직접적 이미지 대신에 소비의 자리를 점유하는 욕망의 자리, 곧 환상적인 잉여가 메운 주체의 공백이 벌어지는 틈을 포착하려 한다. 그리고 그 틈은 형상과 배경의 뚜렷한 대비, 곧 심지어 얼굴과 장갑의 점착에서도 드러나는 이 같은 배치의 기술을 통해 드러난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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